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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조선시 여름夏 달밤의 여름 노래 맹인 악사 바가지 꽃 물은 생명 냇가 풍경 건축의 마술 행복 벌거숭이 아이들 가을秋 조선 가을 정취 하얀 그림자 무덤의 언덕 바가지의 시 장날 조선 마을 저녁 풍경 술집 겨울冬 조선 땅의 겨울 풍경 눈 겨울의 조선 다듬이 사온에 대한 동경 사온의 방문 봄春 긴 담뱃대 연 가난한 아이들의 연 조선 땅의 초봄 까치와 봄 미륵불과 벚꽃 타이완과 조선 장편시 흙담에 그리다土墻に描く 서곡 어둠의 곡 꿈의 곡 새벽의 곡 부속시 야마토 시大和詩 빛의 야마토 푸른 잎과 나라 길 호류지 중문에 탄복하는 시 힘 탑 미카사 산 미카사 산 소곡 삼림 숭배 잡시雜詩 상쾌함 한 그루 나무 잊혀진 실개천 인간의 등불 병 앓는 자 안식 전등 화르르 웃는 자가 있다 봄밤의 꿈 나무가 없는 하늘 발문 옮긴이의 말 한반도 문학의 잊혀진 기억 우치노 겐지의 삶과 문학 우치노 겐지 연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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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은색 달이 동쪽 하늘에 오르기 시작하자
하나둘 강변의 노래로 모여드는 백의의 무리들이여 어떤 이는 다리 위에서 서성이며 말하고, 어떤 이는 강기슭에 돗자리 깔고 잠들어 머리 위에는 무한한 침묵을 머금은 유리의 창궁蒼穹 창궁에 무수한 별들의 꽃이 흩어져 피면 달은 또 그 꽃밭에서 여왕의 발걸음으로 나아간다 하계下界를 흐르는 강에도 하늘 꽃빛 비쳐 반짝이고 꽃빛과 음영이 교차하는 흐름에 환희의 목소리를 내며 받는 사람들 모습의 여릿함 ---「달밤의 여름 노래」중에서 빛바랜 입술로 작은 피리를 불며 낡은 해금을 마디 우락부락한 손으로 켜네 맹인 악사는 여름 대낮에 초록 나무 그늘 공원 한구석에서 정성을 다하고 힘을 쥐어짜내 비조悲調를 자아내지 강렬한 햇살을 피해 모여서 둘러서 있는 백의의 사람들의 손에서 동전 소리가 날아드네 맹인 악사는 주변 동전 소리에 아랑곳 않고 그저 피리와 해금의 조화에만 귀 기울이며 불고 또 켜지 땀과 먼지에 범벅이 된 간장색 백의 기름과 때 탓에 적동赤銅색으로 번들거리는 이마, 뺨, 가슴팍 피부 ---「맹인 악사」중에서 올려다보면 깊은 숲에서 솟는 맑은 샘물을 찰랑찰랑 머금은 깊은 못 바닥에 있는 오싹함 느껴지지 않는가 좀 더 보시기를, 저 쇳조각 이어 붙은 듯한 산봉우리로부터, 냉장고에서 나온 선인장 같은 달이 기어오르지 않는가 그리고, 기어오르면 기어오를수록 드넓은 하늘은 한층 더 밝아져가는 것이니 하지만 그것도 한 점의 온기도 없이 차디찬 밝음 식민지의 부랑자 같은 길쭉한 여기저기 보이는 포플러 나무들은 부조처럼 또렷하고 선명하게 형광색을 띤 하늘에서 튀어나와 있어 오오 그 포플러 위에서 별사탕 같은 별이 쓸쓸히 웃음 지으면 조선 여인이 두드리는 다듬이 소리가 이 상쾌함과 차가움을 가르며 맑은 가슴에 향수를 자아내지 않겠는가 ---「조선 가을 정취」중에서 꽁꽁 얼어붙은 대지와 같은 색 초가지붕, 흙벽 낮은 온돌 집은 지상에 들러붙은 듯하고 포플러 나목 주변에 모여든 좌절된 혼의 모습이여 가끔씩, 그 온돌 집 마을에서 마른 논 사이를 잇는 좁은 길 더듬어 걸어오는 백의 입은 사람들 생김새는 서툰 조각가가 조각한 듯 생기 없는 표상! 창문에서 이 풍경을 바라보는 내 가슴에는 무엇엔가 방해받고 학대받은 운명의 모습이 줄줄이 진술되어 머리가 욱신거리는 듯한 상념에 이끌려간다 아아 이 잿빛 구름에 덮여져 지상에 낮게 움츠러든 조선의 겨울에 새로운 소생의 빛을 던져서 정신의 빛나는 새싹을 틔우는 것은 무언가? ---「겨울의 조선」중에서 아아 보라 별은 별로서 저 창공에 찬란하게 빛나고 나무는 나무로서 지상에 청명한 초록의 팔을 뻗으며 강은 강으로서 영원토록 시원하게 땅위를 흐르지 않는가 설령, 그것이 일본에 있고 인도에 있고 로마에 있다손 치더라도 우리를 저지하고, 뜯어내고, 괴롭힌다고 사유하는 것 그것은, 저 물에 이는 거품처럼 덧없는 꿈- 저 하늘에 솟아올라 새 그림자처럼 사라져 가는 허무한 구름 오장육부의 쇠퇴가 잉태하는 망령의 모습 아니겠는가 그저 눈에 보이는 것, 귀에 들리는 것, 손에 잡히는 것에 눈을 부라리고, 귀 아파하고, 손길 애먹는 자가 난무하는 모습이여 상대에 조종되는 꼭두각시 인형 우리라고 치면 악마의 갈채 소리를 듣는 것에 불과하리니 ---「흙담에 그리다 - 새벽의 곡」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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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문학의 잊혀진 미지의 작가
제국주의와의 평생의 싸움을 시작하다 『흙담에 그리다』에는 문화 통치 중인 일제가 자국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발간 금지를 명령하는 이례적인 조치를 취할 정도로 그들을 불편하게 하는 이유가 분명히 있었습니다. 우선 『흙담에 그리다』는 일본어로 쓰였지만 조선어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일본어와 한국어가 함께 쓰이며 당대 조선의 풍광을 모던한 언어로 세련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다소 신경을 거슬리게 만들긴 하지만 이 부분만 보면 총독부 입장에서는 수용 가능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치노 겐지 본인이 가장 공을 들였을 장편시, 책 제목과 같은 표제시인 ‘흙담에 그리다’가 그들의 심기를 정면으로 건드렸습니다. 여기에서 묘사되는 한반도의 풍광은 핍박받는 민중의 고통과 연결되고, 깨달음과 행동에의 독려로까지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총독부는 『흙담에 그리다』의 발간을 금지시킨 후 이 시를 집중적으로 지적하며 우치노 겐지의 계속된 항의에도 불구하고 삭제를 명령합니다. 이 사건은 우치노 겐지 본인에게 큰 영향을 줬습니다. 그는 이후 경성을 거점으로 재조일본인과 조선 문인들을 아우르는 다양한 문학 활동을 전개합니다. 잡지 창간, 문학 모임 결성, 전시회 개최 등 분야를 가리지 않는 활동을 정력적으로 추진하는 그를 조선총독부는 계속 두고 볼 수 없었습니다. 결국 그는 1928년에 교사직에서 파면되고 환송회조차 허락되지 상태로 조선에서 추방당합니다. 경계에서 만들어진 독특한 문학 체험이자 역사적 기록 『흙담에 그리다』의 국내 최초 완역 일본인인데도 불구하고 일본으로 쫓겨나야 했던 우치노 겐지는 도쿄로 적을 옮긴 후에도 자신의 의지를 굽히기는커녕 더 날카롭게 세웁니다. 그는 조선에서의 기억을 되새기며 자신의 삶과 사상을 가다듬은 두 번째 시집의 제목을 조선어를 그대로 쓴 『까치』로 짓습니다. 그리고 프롤레타리아 작가 아라이 데쓰라는 필명으로 제국주의 일본에 맞서는 평생의 문학 활동을 쉬지 않고 진행합니다. 그런 그를 일제는 위험분자로 간주하여 체포와 구금, 고문으로 박해하게 됩니다. 『흙담에 그리다』는 우치노 겐지의 작가적 시작이자 일제 문화 정책의 양상을 보여주는 역사적 증거인 동시에 당대 한반도 문학의 이색적이고도 완성도 높은 결과물이기도 합니다. 일본어와 한국어가 뒤섞인 독특한 시어를 구사하며 향토문학적 기조를 잃지 않으면서도 단순히 풍광의 묘사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닌 행동주의적 사상을 전개하는 점, 그리고 아직 젊은 시절의 작가다운 탐미적 색채가 한국과 일본의 향토적 소재들과 어우러지는 모습 또한 『흙담에 그리다』가 가지는 특별한 면모이기도 합니다. 시를 통해 한반도 문학의 큰 풀을 만들려던 이채로운 작가, 세계를 간파하면서 이상을 꿈꾸게 된 우치노 겐지가 본 시대가 여기에 담겨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