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프롤로그 아쉽고 허망하고 박탈당한 것들
보이지 않는 존재와 관련된 일 마음은 어디에도 정착하지 않았다_그 남자의 공책 1 겨울 산에 서 있는 참나무의 생각 거칠고 광포하고 휘몰아치는 것들 사랑은 인생에 한 번이면 충분하다_그 남자의 공책 2 박새가 알고 있는 몇 가지 사실 미끄러지고 헝클어지고 어긋나는 것들 한 십 년 잠 속에서 총소리가 났다_그 남자의 공책 3 청설모가 이해할 수 없었던 것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이야기 시조 한 수로 하루를 산다_그 남자의 공책 4 바람은 투신하는 노을을 보았을 뿐 에필로그 빛나고 충만하며 서러운 것들 |
|
“그 후 거기 가본 적 있어?”
“우리 나중에 여기 다시 와보자. 눈 녹고 할미꽃 필 무렵에…….” …… “내 사랑이 커지는 게 느껴지니?” “아니야 나를 믿지 마.” 연희는 그 아침의 행위가 지난 이틀 동안의 것과 전혀 다른 차원의 것임을 알아차렸다. 지난 이틀 동안의 행동이 긴장, 공포, 불안, 발작 같은 감정들과 관련이 있었다면 그 아침의 행위는 안정감, 친밀감, 애착, 배려 같은 감정들과 관계있었다. 오래도록 그와 성을 나누어온 듯 자연스럽고 익숙한 동작, 그의 몸을 전부터 잘 알고 있었던 듯 편안하고 스스럼없는 태도……. 그것은 나흘째 되던 날부터 연희가 계속 느껴온 욕망이었다. 이글거리며 타는 장작불을 보고 있으면 그 아궁이 불길 속으로 기어들어가고 싶었고, 산더미처럼 쌓인 눈을 보고 있으면 그 아래 묻히고 싶었다. 한 번씩 회오리바람이 휘몰아쳐 나뭇가지에 쌓인 눈을 허공에 흩뿌리면 자신의 육체도 그렇게 분해되어 허공으로 날아올랐으면 싶었다. 절망도, 무력감도, 허무도 아닌, 설명할 수 없는 조마조마하고 아슬아슬하고 간질거리는 느낌, 가슴을 가로질러 거미줄 같은 금이 가는 파괴의 조짐이 느껴지기도 했다. 연희는 그럴 때마다 고개 돌려 세중을 찾았고 세중은 연희가 원하는 것을 정확하게 알아보았다. 그럴 때의 성은 손쉽게 자학과 가학의 아슬아슬한 경계까지 치닫고 했다. 세중과 입을 맞추다가 문득 그를 머리부터 삼키고 싶다는 느낌이 들던 때가 있었다. 그때 연희는 암컷 사마귀가 왜 교미 중에 수컷을 머리부터 삼키는지, 어떤 기생충이 왜 숙주의 몸에 들어가는지, 전갈이 짝짓기 할 때 왜 그토록 상처투성이가 되는지 이해할 것 같았다. 몸이 산산이 부서져 터져나가려 할 때 연희는 실제로 울음소리에 가까운 소리를 내며 애원했다. 순순히 연희의 입에 손가락을 넣어줄 때 세중의 낯빛에도 틀림없이 자멸과 파괴의 열망이 가득했다. 그 상황에서도 연희는 세중을 배려해 자신의 충동을 절반쯤만 표현했을 것이다. 세중은 비명을 지르며 손가락을 뺐고 그가 진짜 고통스러워하는 표정을 보며 연희는 또 호들갑스럽게 사과했다. 그렇지만 가슴에 깃들어 퍼덕이는 충동은 너무나 생생하여 금방이라도 그의 손가락을 뭉텅 베어버릴 정도였다. 연희는 그 아침의 행위가 지난 이틀 동안의 것과 전혀 다른 차원의 것임을 알아차렸다. 지난 이틀 동안의 행동이 긴장, 공포, 불안, 발작 같은 감정들과 관련이 있었다면 그 아침의 행위는 안정감, 친밀감, 애착, 배려 같은 감정들과 관계있었다. …… 오래도록 그와 성을 나누어온 듯 자연스럽고 익숙한 동작, 그의 몸을 전부터 잘 알고 있었던 듯 편안하고 스스럼없는 태도……. 저 한심하고 바보퉁이 같은 인간 같으니라구……. 산속의 모든 생물들은 서로에게 포식자와 먹이의 관계이고, 생물들이 내는 소리는 한가한 노래가 아니라 간절한 종족 보존의 욕망이고, 생물들이 산속을 오가는 것은 유람이 아니라 먹을거리를 얻기 위한 노동이고, 먹이는 주워 먹는 게 아니라 무서운 투쟁 끝에 얻는 거라는 점을 말해줘봤자 알아듣지도 못할 것이다. 사실 박새는 인간들이 자신과 기러기를 한데 묶어 암수의 금술이 좋고 죽을 때까지 일부일처제를 유지한다고 추앙할 때부터 그 사실이 우습고 불편했다. 아니나 다를까, 어느 때부턴가 사람들은 태도를 바꾸어 자신들을 비난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박새와 기러기 새끼들의 유전자를 검사해서 절반 이상이 아버지와 다른 유전자를 가졌다는 사실을 밝혀냈다고 했다. …… 그런 때 박새는 인간들이 안쓰러웠다. 어떤 생물의 본성에도 맞지 않는 일부일처제라는 제도를 만들어놓고 야생의 생물들에게 그 잣대를 들이대는 행위는 일종의 보상심리나 히스테리처럼 보였다. ---본문 중에서 |
|
폭설로 우연히 강원도의 외딴 귀틀집에 찾아 든 연희와 세중은 이곳에서 세 구의 시체를 발견한다. ‘남자’, ‘사내’, 그리고 ‘여자’로 각각 명명된 시체들, 그리고 누군가 써내려 간 공책 한 권. 그 공책의 주인공인 남자는 세계일주의 꿈을 안고 북한에서 남으로 귀순한 인물. 그 꿈은 이룰 수 없는 환상이지만 바로 그 환상이 남자를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어느 날 귀틀집에 아내에게 버림받은 고아 출신의 사내가 찾아든다. 사내의 꿈은 스위트홈과 일확천금. 여기에 산간마을에서 태어나 도회를 떠돌던 여자가 한 지붕 아래 살게 된다. 여자는 세 사람이 한 부부처럼 뒤엉켜 살면서도 따스한 공동체가 가능하다고 믿는 휴머니스트로 그려진다. 그러던 중 여자의 임신으로 공동체는 여지없이 깨지고 만다. 여자와 아기를 포기할 수 없다는 소유욕은 급기야 유혈극으로 번져 세 사람은 비명횡사하고 마는데……. 작가는 ‘귀틀집’이라는 실험실에 이들 3명을 초대한 뒤 사랑과 유토피아, 그리고 각자의 꿈이 빚어내는 심리적 갈등 구조를 탐색해 나간다. 폭설의 숲 속, 세상과 차단된 외딴집, 처참하게 버려진 세 구의 사체, 그리고 이어지는 광기에 가까운 성에의 탐닉. 치명적인 사랑을 담은 소설.
|
|
■ 인간의 마음을 가장 탁월하게 그리는 작가, 김형경의 ‘소설 풍경’
제1회 국민일보문학상에 '새들은 제 이름을 부르며 운다'가 당선되며 공지영, 신경숙 등과 한국문학의 르네상스를 이끌었던 김형경의 소설이 새로운 모습으로 출간된다. 이 작업은 2012년 말까지 3차분에 걸쳐 진행되는데, 단순히 출판사를 옮겨 개정판을 내는 관행과 달리 현재에 어울리는 교정교열과 최고의 북 디자이너가 참여해 외장의 통일?연속성은 물론 각 권이 고유한 아름다움을 가진 컬렉션이 될 것이다. 1차분으로 ‘인간의 마음을 가장 탁월하게 그리는’ 김형경의 대표작 2종 3권('내 사랑은 그 집에서 죽었다',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 1, 2)이 7월 태풍처럼 귀환한다. 이후 김형경이라는 이름을 세상에 알린 예술과 젊음, 사랑에 관한 따뜻하고 가슴 시린 모든 청춘의 교과서 '새들은 제 이름을 부르며 운다'(전2권), ‘그 아이에서 그 여자까지’ 김형경의 내밀하고 뜨거운 고백인 '세월'(전3권)이 10월 말경 2차분으로, 3차분으로 꿈을 향해 제 이름마저 잃어버린 뜨거웠던 청춘을 향한 거대한 갈채 '피리새는 피리가 없다'(전2권), 김형경 소설의 시원이자, “이 작가에게 소설은 하나의 숙명”이라 평가받았던 10편의 단편소설을 담은 '단종은 키가 작다'와 소설가에 앞서 시인이었던 김형경, 그 거대한 흐름의 시작을 알리는 58편의 짧고 깊은 숨결들을 복원한 '모든 절망은 다르다'까지 출간될 예정이다. 이 작업은 200만 독자를 열광시켰으나 그동안 절판돼 아쉬웠던 기다림을 해소하는 특별한 컬렉션이자, 무엇보다 가장 취재에 치열하고, 인간심리를 탁월하게 그리는 큰 작가의 귀환으로 소설을 읽는 재미를 회복할 수 있다는 데 그 기다림의 의미가 클 것이다. 가장 빛나던 사랑의 맹세는 왜 지켜지지 않는가 사랑은 환상이지만, 무덤처럼 죽음 이후에도 기념되는 것 폭설에 갇힌 내 마지막 사랑, 사랑의 감옥에 스러진 세 구의 시체, 가장 아름다워 지독했던 그 겨울의 사랑 삶과 죽음, 현실과 자연이 서로를 탐닉하며 벌이는 환상의 진혼굿 사람풍경이 ‘김형경의 소설풍경’으로 내놓는 첫 책은 '내 사랑은 그 집에서 죽었다'(이하 '내 사랑')이다. 2004년 '성에'라는 이름으로 출간된 이 책은 그해 동인문학상 최종심에 올라 “굉장히 센 물결을 만난 것 같다. 한꺼번에 다 읽었다.”(2 박완서)라는 평가를 받았고, 이후 고은, 최인훈, 오정희 등의 책과 함께 미국 달키 아카이브 출판 선정도서가 됨으로써 문학적으로 탁월한 성과를 인정받았다. 하지만 무엇보다 '내 사랑'은 김형경의 소설 중 가장 큰 시간과 사건, 다양한 시점 등 내면과 실험의 소설에서 등 돌린 독자를 불러 세울 만큼 고전적인 품격과 재미를 갖추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현재의 두 연인과 일기, 그리고 자연의 의인법으로 다양한 시점과 풍요로운 묘사가 집중도를 높이고, 인간의 깊이를 짚어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새로운 제목과 많은 문장을 손질하면서 기존의 「성에」라는 제목이 주는 한정성에서 벗어나 김형경의 장기인 에로스와 유토피아 등 인간의 마음을 지배하는 환상과 사랑에 관한 근원적인 모색을 따라 책을 덮는 순간, 한여름의 폭염이 사라질 정도로 어느 빈집의 성엣장 같은 충격과 감동이 심장을 그을 것이다. “몰입의 즐거움을 느끼게 하는 야심작” 「경향신문」 “사랑의 실체와 모순을 파헤치는 역작” 「동아일보」 “사람들의 흉곽을 가로지른 늑골의 빗장을 풀고, 그 속에 숨겨진 환상의 정체를 해부한다.” 「한겨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