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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낱말을 맛보다
끝과 통 / 앎 / 잠 / 꼭 / 근根 / 짝맞추기 / 안경 / 살아감과 사라짐 / 느긋과 지긋 / ‘읽다’를 읽다 / 삐뚜름히 / 하지만 / 절대로 / 이별 / 별것 / 이드거니 2. 예술을 읽다 헤세의 타자기 / 시와 시인 / 시와 사람 / 통탄痛嘆 / 길과 글 그리고 줄 / 어둠이 아닌 어둠 / 기적 / 배경을 생각하다 / 몰다우를 들으며 / 협주 / 오페라, 시로 읽다·1 / 오페라, 시로 읽다·2 / 오페라, 시로 읽다·3 / 오페라, 시로 읽다·4 / 명창 / 북소리 / 시국선언詩國宣言 / 시 읽고 취해? 3. 그리움을 던지다 호미로 그은 밑줄 / 맷돌 / 달무덤 / 우체국을 지나며 / 어두워지고 싶다 / 어떤 역설 / 그리움 한 개비 / 불자동차 / 봄날, 제주에선 / 청라언덕에서 / 돌꽃 / 단산지丹山池 / 그 여자 ·3 / 그 여자 ·4 / 그 여자 ·5 / 그 여자 ·6 / 그 여자 ·7 / 이사한 줄 모르고 4. 자연을 듣다 숲을 읽다 / 감나무에 대한 기억 / 복사꽃 앞에 서면 / 가을 구상화 / 외돌개 앞에서 / 대〔竹〕 / 꽃댕강나무 / 참꽃 / 먼나무 / 돈나무 / 새도 겨드랑이 긁는다 / 달개비 / 매미에게 / 시인의 계절 / 수박 / 가을바람에게 / 저녁 산 / 같은데 다르다 ? 5. 삶을 만지다 평사휴게소에서 라면을 먹다 / 비 오는 날의 신문 / 혼자 먹는 돼지국밥 / 산책길에서 / 걷다 / 욕 권하는 주소 / 가을 질문 / 길은 길을 알고 있다 / 객려客旅 / 산과 절 / 어이쿠 / 어느 가을날 / 신탄로가新歎老歌 / 달무리 / 폭설 오는 봄밤에 / 아픈 웃음 / 천변 학교 / 허허 |
문무학의 다른 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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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 없이야 어이 살 수 있으랴” 사는 일을 그리움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맞는 말일까? 틀린 말일까? 그럴 것 같기도 하고 그렇지 않을 것 같기도 하다. 문무학 시인의 여덟 번째 시집 『누구나 누구가 그립다』 는 그리움을 맛보고, 읽고, 던지고, 듣고, 만져본 시집이다. 시인은, 시인의 말을 통해서 “오늘을 산다는 건/ 내일의 그리움을 만드는 일// 내일, 나는 그 어떤 일이 아니라 그 누구를 그리워하고 싶다.” 고 썼다. 시집 제목과 ‘시인의 말’ 이 ‘그리움’ 이란 고리를 만들어 서로 붙들고 있다. 5부로 나누어 88편의 작품을 실었다. 그 작품들은 ‘삶 = 그리움’이란 등식을 만들어 그리워하는 삶이 최상의 삶인 것처럼 착각하게 만든다. 부를 나눈 제목들이 관념를 감각으로 변환시키려는 의도가 드러난다. 그래서 시인이 그리워하는 그리움이 삶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것들로 환치된다. 1부, ‘낱말을 맛보다.’ 에서는 ‘앎’이라는 낱말로, “ ‘앎’ 자는 ‘알아감’을 줄인 말 아닐까/ 사는 일 그것이 곧/ 알아가는 일일 텐데/ 살 만큼 산 듯도 한데 /왜 이리도 어둡냐.” 고 노래하여 말맛을 느끼게 한다. 2부 ‘예술을 읽다.’ 에서는 오페라를 시로 읽는 시도를 감행하기도 하고, 음악 뿐 아니라 미술 작품 등 예술품에서 그리움을 끌어내어 변주하고 있다. 그 그리움은 인간의 영혼을 위로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3부, ‘그리움을 던지다.’ 에서는 그리움을 물고 늘어졌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다. ‘우체국을 지나며‘ 라는 작품에서는 “써 놓은 편지 없어도 우표를 사고 싶”어 하고, 끝내는 “그리움 없이야 어이 살 수 있으랴.” 고 노래하기도 한다. 4부, ‘자연을 듣다,’는 자연 속에서 그리움의 목소리를 찾아내고 있다. ‘감나무에 대한 기억’ 에서는 “소쩍새 울음소리”에 그리움을 풀어놓기도 하고, ‘가을 구상화’에서는 “귀뚜리 울음소리”를 그리움에 얹기도 했다. 5부 ‘삶을 만지다.’ 에서는 먹거리를 통한 그리움을 만들기도 한다. 나들이를 하며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먹는 라면을 통해 “꾸불꾸불 라면 가닥 내 걸어온 길 같다.” 며 그리움에 연결시키고, 시장 통로 돼지 국밥 속의 비계덩이를 “씹어도 씹힐 것 없는 가벼운 내 삶 같다.”고 노래한다. 그리하여, 시인의 눈에 비친 모든 것들을 삶에 비유, 그 크기에 맞는 그리움의 옷을 정갈하게 입혔다. 여기에 이르면 그리워하는 것이 소중한 삶이란 걸 긍정할 수 있게 된다. 책 끝에는 발문을 대신하여 ‘한국 정형시의 주소를 검색하다.’를 실었다. 한국 정형시의 주소를 “문화국 예술광역시 문학구 시조로 3-6.” 이라는 객기를 부렸다. 그러나 정형시 주소 검색의 과정은 재미있고 의미 있다. 시인의 장르에 대한 애정이 얼마나 깊은지를 이 보다 달리 표현하기가 어려울 것 같기 때문이다. 고개를 끄덕이며 읽을 수 있는 시론이다. 사람이 사는 일, 그것은 그리워하는 것이다. 누구라도 그 누구가 그립지 않은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