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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의 말
한국어판 서문 프롤로그 | 학자들의 천국 1. 우주의 성직자들 물리학의 교황 찬양받는 신비의 지배자 보라, 이 모양을 2. 이단자들 유쾌한 지니 님-님-님 선생 3. 통찰의 극한 거품 우주를 본다 빛을 들고 나아가다 진리란 무엇인가 4. 생명, 우주, 만물 자연 자신의 소프트웨어 볼 수 없는 것을 넘어서 고등학술연구소는 지금 | 물리학의 혁명은 계속된다 옮긴이의 말 참고문헌 찾아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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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소의 과학자들은 자연의 산등성이에 진을 치고 가장 높은 창조의 산봉우리에서,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추상적 원리를 사유하는 사람들이다. 순수하고 아주 고상한 이들은 형태를 가진 제품을 만드는 게 아니며 실험도 하지 않는다. 생애의 모든 목적은 단지 이해하는 것, 그뿐이다.
- 본문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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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의 교황, ‘지식인의 호텔’에 머물다
아인슈타인은 인생의 마지막 22년을 고등학술연구소에서 보냈다. 1905년에 특수상대성 이론을, 1915년에 일반상대성 이론을 발표했고 여기서도 이 이론들을 계속 연구했다. 하지만 그가 죽을 때까지 매달린 문제는 양자에 관한 것이었다. “일반상대성 이론보다 양자 문제에 대해서 백 배는 더 고민한 것 같다”고 말할 정도였다. 아인슈타인은 보리스 포돌스키, 존 폰 노이만, 쿠르트 괴델, 오스왈드 베블렌 등의 다른 고등학술연구소 동료들과 함께 ‘학자들의 천국’에서 연구에 몰두했다. 우울증 환자 ‘미스터 왜’ 괴델은 어릴 때부터 우울증 환자였다. 그는 생각이 깊고 호기심이 많아서 태양 아래 있는 모든 것에 관해 질문을 던지곤 했는데, 부모는 그를 ‘미스터 왜’라고 불렀다. 그는 수학자이자 논리학자였는데 고등학술연구소에서 연구했던 주요 주제는 연속체에 관한 것이었다. 사람과 어울리지 못하고 늘 혼자만의 사색에 잠겨 있는 괴델이었지만 아인슈타인과는 가장 친한 동료였다. 이들이 함께 산책하는 광경은 연구소에서는 아주 일상적인 풍경이었다. 괴델은 아인슈타인과의 토론 과정에서 일반상대성 이론에 관해 연구했고 「아인슈타인의 중력장 방정식에 대한 새로운 형태의 우주론 해」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발표하기도 했다. 유쾌한 자니, 컴퓨터를 만들다 존 폰 노이만은 아인슈타인과 같은 대기만성형이 아니었다. 여섯 살 때 이미 여덟 자리 수를 여덟 자리 수로 나누는 계산을 암산으로 해냈고, 이 년 뒤에는 미적분에 손을 댔다. 한번은 그의 어머니가 바느질을 하다가 잠시 허공을 바라보자 옆에 있던 어린 폰 노이만은 “엄마, 뭘 계산하고 계세요?” 하고 물었다는 일화가 전해지기도 한다. 컴퓨터의 기원을 누구에게 두든 프로그램 기억 방식이라는 아이디어를 실용적인 시스템으로 발전시킨 사람은 폰 노이만이었다. 그가 프로그램 기억식 컴퓨터를 만들겠다고 나선 것은 고등학술연구소 시절이었다. 순수 이론 학문의 천국에서 ‘기계’를 만든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지만, 폰 노이만은 예외였다. 프린스턴에서 가장 성대한 파티를 열어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고, 스포츠카와 농담을 즐기며, 시끌벅적한 분위기와 멕시코 음식, 고급 술에 돈도 좋아하는 유쾌한 사람을 미워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그는 게임 이론과 같은 완전히 새로운 수학 분야를 창조한 천재였는데, 컴퓨터와 세포 자동자에 대한 뛰어난 연구도 그의 전 생애 업적에 비하면 5분의 1도 안 된다. 고등학술연구소 교수라는 사람이 한편으로 수학 이론을 정립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폭탄과 컴퓨터를 개발하고, 잡다한 경영 자문역까지 해가며 돈을 번다는 것은 참으로 경악스러운 일이었지만, 그것은 ‘유쾌한 자니’라 불리던 폰 노이만이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원자폭탄의 아버지’라 불리는 남자 오펜하이머는 과학자이자 원자폭탄의 창조자였다. 또한 그는 시인이자 단편소설 작가이기도 했다. 철학에도 조예가 깊었으며 어학에도 능통하여 8개국의 언어를 익혔다. 오펜하이머는 소립자물리학에 관해 10년 동안 연구한 후 천체물리학으로 방향을 바꾸더니, 별의 죽음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다. 일반상대성을 실세계의 현상에 적용하여 블랙홀이 물리학적 현실로 이 세계에 실재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람이 오펜하이머였다. 그는 고등학술연구소의 소장으로 일했는데, 위대한 과학자이자 관리 경영의 전설적 귀재였던 오펜하이머는 이 일의 적임자였다. 그는 소장이 된 뒤 에이브러험 파이스, 프리먼 다이슨, 리정다오와 양전닝 등의 젊은 물리학자들을 불러들였다. 과학자들은 이곳에서 어느 때보다도 많은 업적을 남겼는데 리정다오와 양전닝은 연구소에 온 지 이 년 만에 노벨 물리학상을 타기도 했다. 오펜하이머는 양전닝과 리정다오가 연구소 안을 돌아다니는 걸 보기만 해도 기분이 아주 좋았다고 말하곤 했다. 두 사람은 공동 연구의 좋은 본보기였지만, 고등학술연구소가 실제로 공동 연구를 할 수 있는 장소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다. 양전닝과 리정다오는 후에 논문 작업과 책 출간에서 서로 자신의 자존심을 세웠는데, 강연과 연설 원고 순서는 물론이고 신문 기사에 누구 이름이 먼저 나올 것인가 하는 문제로 다투기도 했다(양전닝은 자신의 부인이 리정다오의 부인보다 한 살 많다는 이유로 기사 앞에 실릴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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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과학의 대가들을 한 곳에서 만난다
2005년은 아인슈타인이 상대성이론을 발표한 지 백 주년이 되는 해이다. 이것을 기념해 UN에서는 올해를 ‘세계 물리의 해’로 선포하고 다양한 과학 이벤트를 마련하고 있다. 아인슈타인 서거 50주년과 맞물리는 올해를 기념하기 위해 전 세계적으로 벌이는 ‘빛의 축제’도 그 중 하나다. 미국 뉴저지 주 프린스턴에서 레이저 빛을 쏘아 미국 전역을 돌고난 후 한국에 처음 전달된다. 이 행사에는 세계인의 가슴에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의 핵심인 빛을 다시 생각하게 하고, 물리학자들간에는 국경을 초월한 협력 관계를 이루게 한다는 상징적 의미가 있다. 아인슈타인 사후에도 사라지지 않는 그의 절대적인 지위는 과학적 천재성, 역사적 상황 그리고 아인슈타인 개인의 카리스마 등이 겹친 독특한 것이다. 역사학자나 과학자들은 그런 것은 다시 반복될 수 없다고 말한다. 2004년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 데이비드 그로스는 “최고의 명석함과 물리학이 만나는 그런 위대한 일들 중의 하나가 실현된다는 것은 정말 독특하고도 특별한 겁니다. 아인슈타인 같은 인물이 다시 나올 일은 없을 겁니다”라고 말한다. 그럼, 세상에 다시없을 천재 과학자라고 일컬어지는 아인슈타인의 평소 모습은 어땠을까? 이 책은 아인슈타인이 인생의 마지막 22년을 보냈던 프린스턴 고등학술연구소의 모습을 속속들이 보여준다. 또, 아인슈타인뿐만 아니라 현대 과학을 이끌어가는 초끈 이론의 기수 에드 위튼까지 20명이 넘는 과학적 대가들의 평소 모습을 느낄 수 있다. 이 책은 진리를 갈망하고 과학에 중독된 천재 과학자들의 흥미진진한 무용담이다. ※ 이 책은 10여 년 전 국내에서 출간된 적이 있으나, '기적의 해' 백 주년을 맞아 아인슈타인과 고등학술연구소의 과학적 성과를 되짚어보고자 새롭게 단장하여 다시 출간하게 되었다. 원서가 첫 출간된 1988년 이후의 고등학술연구소의 변모 과정과 그 이후의 과학자들의 활동 모습을 정리한 저자의 ‘한국어판 서문’을 수록하였고, 고등학술연구소에서 1년여 동안 연구 활동을 해오고 있는 경북대 물리학과 안창현 교수가 쓴 고등학술연구소의 생생한 현재 모습을 담은 글도 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