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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각사의 꿈
두 수도자 또 다른 비밀 캘커다 인력거꾼 오! 밤열차여 인도의 길 부처의 그림자 영원 속으로 천불탑 작가 후기 |
무염(無染), 벽록檗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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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소설 『천불탑의 비밀』에서 인도를 여행하는 동안 체험한 가치를 얘기하고 싶었다. 또한 출가 수도승들의 고뇌와 번뇌가 무엇인지도 엿보고 싶었다. 과연 선승의 길에서만 부처를 만날 수 있는 것인가, 아니면 부처가 될 수 있는 다른 길도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흥미를 가지고 집필에 임했던 것이다. 작품이 끝날 때까지 인도에서 얻은 깨달음의 잣대로 가치가 어느 한편으로 기울어지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면서 전개하였는데, 독자들은 어떻게 공감할지 몹시 궁금하다. 현상(色)과 본질(空)을 둘로 나누지 않고 전체로 받아들일 때, 우리가 갈구하며 찾아왔던 마음의 자유와 평화가 있지 않을까 싶다. --- 작가 후기 중에서
용의 눈처럼 생긴 부처의 진신사리를 천불탑에 봉안해야만 비로소 탑은 생명을 얻는다고나 할까. 부처의 진신사리를 봉안 해야만 비로소 천불탑은 살아 있는 용이 되는 것이었다. --- p.37 책의 본문에서도 알 수 있듯이 부처님의 진신사리는 이처럼 탑을 만드는데 중요한 부분 중 하나이다. 하지만 우리는 요즘 사람의 외면만 보는 거처럼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시는 천불탑도 외면적인 것만 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캘커타는 혼돈과 무지의 도시가 아니라 부처의 진리가 적나라하게 펼쳐져 있는 바로 「반야심경」그 자체였다. 선과 악이, 빛과 어둠이, 부자와 거지가 백인종과 황인종이, 혼돈과 질서가, 삶과 죽음이, 깨끗함과 더러움이, 시간의 시작과 끝이 둘이 아니고 똑같은 가치로 공존하고 있었다. 한쪽의 편견에 떨어져 편 가르려 하지 않고 모든 생명을 다 받아들이고 키우는 대지와 같다는 깨달음이 절로 들었다. --- p.43 등신불(等身佛) 마음속에 솟은 그것은 분명 최림의 등신불이었다. 눈앞에 보이는 천불탑과 비록 형상은 같지만 결코 같다고 할 수 없는 마음속의 천불탑이었다. 지웅이 최림의 마음속에 씨를 뿌리고, 법상이 혼을 불어넣은 등신불이었다. 최림을 중얼거렸다. ‘내 마음 속의 천불탑은 지웅 스님과 법상 스님의 합작품인지 모른다.’ --- p.3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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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찬주 신작 장편소설 『천불탑의 비밀』은 이미 역사에서 사라진 신라시대의 ‘황룡사 9층 목탑’을 복원하고자 시작된 ‘천불탑’의 조성과정에서 탑 속에 봉안할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찾아 나서면서 그 이야기가 시작되고 있다.
‘탑의 조성과 부처님 진신사리의 봉안’이라는 사실을 앞에 두고 생각이 다른 두 수행자 지웅과 법상, 그 수행자 사이에서 갈등하는 천불탑의 설계사 최림, 수행을 점검받기 위해 법상을 찾아 헤매는 또 한 명의 수행자 적음, 사리를 찾아 떠난 인도에서 만난 유키코라는 인물을 통해 출가 수도승의 고뇌와 번뇌, 깨달음을 향한 방법 등에 물음표를 던지는 소설이다. 이야기가 인도와 한국을, 또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전개되고 몇 개의 의문점으로 출발한 시작으로 인해 추리소설과 같은 긴장감이 있다. 그래서 읽는 이들 스스로 천불탑을 설계하고, 돌을 쌓고, 풍경을 달고, 그 속에 어렵게 찾은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하여 마침내 완성된 탑에서 울려 퍼지는 풍경소리에 감동하고픈 일체감과 결말에서나 만날 수 있는 몇 가지의 수수께끼의 해답을 찾아내는 흥미와 더불어 불법을 향한 구도의 끝은 어디일까 하는 또 하나의 의문을 가지게 한다. 이 소설의 두 수도승 지웅과 법상은 같은 수도승들이지만 다른 생각과 성격을 가지고 있는 인물로 묘사되고 있다. 지웅과 법상이 천불탑을 조성하면서 추구하는 삶은 다르지만 무엇이 옳다고 정의 할 수는 없다. 독자들이 『천불탑의 비밀』을 읽어가면서 질서와 무질서, 깨달음과 어리석음 등 반대되는 두 가지의 공존하는 삶을 바라보는 것이다. 책의 본문에서도 알 수 있듯이 부처님의 진신사리는 이처럼 탑을 만드는데 중요한 부분 중 하나이다. 하지만 우리는 요즘 사람의 외면만 보는 거처럼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시는 천불탑도 외면적인 것만 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