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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꽃반지 · 7
고추잠자리 · 40 멧새 한 마리 · 121 부록│인명 및 고유명사 풀이 · 214 해설│김동춘 김성동의 특별한, 그러나 ‘위험한’ 제문祭文 · 231 |
KIM, SUNG-DONG,金聖東, 호:시은(市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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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디 갔다가 인저 오셨대유”
“예에? 뭔 말씸을 이렇게 허신대유, 시방.” 김씨는 어이가 없어 같은 말만 되풀이하는데 어머니가 고개를 쳐들었다. 그리고 눈물주머니가 그렁그렁 매달린 눈으로 김씨를 올려다보는 것이었다. “픵양 있다 오신규? 아니먼 지리산 있다 오신규?” “어머니!” “박동무넌 픵안허시구, 리흰상 슨상님두 강령허시쥬?” “왜 이러신대유, 증말.” 김씨는 울상이 되었는데 어머니는 자꾸 붙잡고 있는 바지 자락을 흔들었다. “인저 저허구 사넌 거쥬? 우덜 시 식구 하냥 사넌 거쥬? 유자생녀 만수다복 향복허게 하냥 사넌 거쥬?” “어머니, 절 물러유? 아들두 물러본단 말유? 시바앙!” 김씨는 안타깝게 소리치며 움켜잡힌 바지 자락을 빼내려고 하였는데, 별꼴. 이제 달포만 있으면 망백望百이 되는 그 늙은 여자는 두 팔을 높이 치켜올리며 이렇게 소리쳤다. “죄선공산당 만서이!” --- 「민들레꽃반지」 중에서 새악시와 하냥 넘던 산길이었다. 홍성군 홍동면 개여울에 있는 처가에 가려고 새악시를 조랑말 태워 넘던 자양길이었다. “하이구, 곱기두 헤라.” 날옥수수를 박아놓은 듯 똑고른 잇바디를 보이며 조개볼 짓는 새악시 귀밑머리에 녹백색으로 활짝 핀 애기나리꽃 한송이를 꽂아주는 새서방이었다. “꽃버덤 새악시가 더 곱소.” “아이, 물러유우.” 귀밑을 붉히며 고개를 외로 꼬는 새악시는 기품 있는 얼굴이었다. 어글하니 총민한 눈빛에 톡 찬 이마가 서늘하게 넓어 잘생긴 얼굴이었고 늘씬하게 고운 몸매였으니, 일색一色이었다. 그러나 꽃처럼 어여쁘다기보다는 끼끗한 기상으로 잘생긴 얼굴과 몸매여서 함부로 범접하기 어려운 위엄이 있다고나 할까. “워 워!” 견마줄 당겨 조랑말 세운 새서방이 “그래 월매나 아팠소” 갖춰 신은 새악시 옥색고무신 벗긴 새서방은 버선발을 주물렀고, “아아, 아아……” 한 걸음 한 걸음 옮길 때마다 새하얀 버선에 고무신 갖춰 신고 오이씨 같은 발이 보일 듯 말 듯 해야 된다는 시속時俗이었다. 발이 아파 네 방구석을 바자윌만큼 꼭 끼게 신어야 하였고, 살이 보이지 않게끔 옷깃을 여미고 또 여며야 되는 홍색짜리였다. --- 「고추잠자리」 중에서 남편이 진득하게 집에 붙어 있었던 것은 혼례를 치른 두어 달 남짓이었고, 언제나 밖으로만 돌았다. 언젠가 해준 남편 말마따나 묵돌불가금으로 신 벗을 틈이 없었던 것이다. 혼례를 치른 것은 해방 그러께 봄이었는데, 한밭이 남편 운동마당이었다. 도청 무슨 양정과糧政課라는 데 이름을 걸고 있다 하였으니, 이른바 ‘가장취업’이었다. 남편이 집에 들른 것은 해방이 되고도 서너 달이 지난 뒤였는데, 옛살라비 전배이기도 한 박동무 견마잡이를 하는 것 같았다. “이정댁과는 담배 반 대 전거리두 안 더니라.” 시아버지 말씀이었는데, 정작으로 남편이 가르침 받는 것은 물장수라고 하였다. 집에도 몇 차례 들른 적 있는 그 혁명가는 엿장수 차림이었다. 박동무라고 불리우던 어른은 뵌 적이 없지만 엿장수 말고도 집에 들렀던 이로는 이진사라는 어른이 있었다. 전주이씨 왕손이라서 이진사로 불리우던 그 어른은 전라도 금산사람이라고 하였는데, 다부진 얼굴이면서 눈매가 여간 매서운 것이 아니었다. 몇 달에 한 번, 어떤 때는 해가 지도록 한 두어 차례나 집에 들렀는데, 그때도 골방에 틀어박혀 무슨 서류뭉치를 뒤적이며 서울과 한밭에서 내려오는 무슨 레뽀들과 만나느라 내외간 정분을 나눌 수도 없었다. --- 「멧새 한 마리」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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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정권과 미 제국주의의 폭력성을 고발하다!
김성동 소설집 『민들레꽃반지』는 내용상 다음과 같은 중요 의의를 지닌다. 작가는 소설을 통해 이승만 정권이 보여준 빈민족성과 반민중적 만행을 드러내면서, 미국의 제국주의적 점령 행태와 주권 침해의 양상을 숨김없이 보여준다. 이 책에 실린 「민들레꽃반지」와 「고추잠자리」, 「멧새 한 마리」는 모두 작가 김성동의 개인사를 다룬 ‘자전(自傳)소설’이다. 세 작품 중 「고추잠자리」는 조선시대 명문가(名門家)의 후손으로 일제에 저항한 독립운동가였고, 해방 후 좌익 활동을 하다가 한국전쟁기에 충남 대덕군 산내면 골령골에서 8천여 명의 보도연맹원들과 좌익 인사들과 함께 학살당한 부친에 대한 애달픈 [제망부가(祭亡父歌)]다. 작가는 소설을 통해 전국농민동맹 충남본부 위원장을 지내신, 독립운동가이자 좌익운동가셨던 부친의 활동 모습과 당시 실제 기록물들을 함께 제시함으로써 현실성을 높이는 한편, 당시 부친의 좌익 활동이 개인의 영달을 위해서가 아닌 우리 민족의 인간다운 삶의 보장을 위한 필연적인 선택이었음을 말한다. 「고추잠자리」와 짝을 이루는 「멧새 한 마리」는 남편의 뜻을 좇아 여성해방의 이상을 실천하고자 충남 보령지역 남로당 여맹위원장을 지낸 모친의 시난고난한 생전의 삶을 되살린 [제망모가(祭亡母歌)]라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이 소설은 남로당의 충남 보령군 청라면 여맹위원장을 지냈던 어머니의 행적과 사회의식의 변화를 추적함으로써 한국문학사 최초로 해방 공간에서의 좌익계 여성해방운동가의 의식 세계를 엿보게 한다는 점에서 현대문학사의 한 화두가 되는 작품이라 하겠다. 「고추잠자리」와 「멧새 한 마리」 작가 개인의 비극적인 가족사를 넘어서는 의미를 지닌다고 볼 수 있다. 즉 작가의 개인사를 토대로 일제강점기와 ‘좌우’ 간의 대립 투쟁의 해방 공간을 거쳐 한국전쟁과 1950년대 이승만 정권에 의한 좌익 탄압 및 인민 학살이 자행된 비극적 한국현대사를 새롭게 쓴 ‘민중사’이자 특별한 ‘역사소설’이다. 철저한 사실주의 문학 의식을 바탕으로 한국현대사의 이면을 살핀다! 김성동 소설집 『민들레꽃반지』는 형식상 다음과 같은 중요 의의를 지닌다. 작가는 철저한 사실주의 문학 의식을 견지하면서도 동시에 규범적 사실주의의 소설 형식을 넘어서서 제의적(祭儀的) · 영적(靈的) 소설 형식까지 담아내고 있다. 그리고 한국전쟁 기간에 벌어진 미국의 제국주의적 한반도 지배정책과, 미국의 괴뢰정부인 이승만 정권의 반민족적 만행을 실증적 자료에 의해 깊이 파헤친 ‘고발문학’ 형식의 진경(珍景)을 보여준다. 학살당한 부친에 대한 애달픈 [제망부가(祭亡父歌)]인 「고추잠자리」와 남편의 뜻을 좇아 여성해방의 이상을 실천하다 온갖 고문과 투옥을 당하는 등의 파란만장한 삶을 마친 어머니를 기리는 [제망모가(祭亡母歌)]인 「멧새 한 마리」는 두 줄기의 제의(祭儀) 형식을 보여준다. 이 두 소설은 사실주의 문학을 넘어 ‘영적인’ 내적 형식을 은밀히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민들레꽃반지』를 통해 저자는 해방 전후와 한국전쟁의 어두운 이면사를 자신의 체험과 기억, 은폐된 기록물을 바탕으로 사실적이고 치밀하게 기록한 ‘다큐적 소설’ 형식을 보여준다. 「고추잠자리」와 「멧새 한 마리」를 통해 우리가 왜곡해왔던 좌익 운동의 진정한 목표와 이상향, 남한 정부가 실시했던 토지제도의 문제와 한계성, 한국전쟁 기간 동안 ‘빨갱이’라는 명목으로 죄 없는 민간인을 무자비하게 학살했던 과거 사실 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러한 저자의 목소리는 우리 역사 바로 알기의 차원에서도, 끊어졌던 우리 겨레의 민족성 회복에도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 「민들레꽃반지」는 소위 ‘빨갱이 집안’이라는 연좌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어렵게 살아가는 주인공 ‘김씨’와 억울하게 학살당한 남편을 잊지 못하고 그리워하는 그의 어머니의 삶을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이를 통해 아직도 우리 사회에 뿌리박혀 있는 반공 이데올로기와 ‘연좌제’라는 끔찍한 폭력이 개인의 삶을 어떻게 파괴하는지를 그려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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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의 탈을 ‘친미’로 바꿔 쓰고, 한 손에는 태극기, 한 손에는 성조기를 들고, ‘좌익 독재 반대’를 외치면서 설치는 저 무리들. 그 가운데는 ‘유서 대필 사건’을 조작해서 애꿎은 젊은이를 감옥에 집어넣은 놈도 있고, 휴전선을 넘어갔다고 ‘빨갱이’ 혐의를 뒤집어씌운 ‘공안검사’ 얼굴도 보인다.
이 가증스러운 ‘무늬만 애국자’들에게 꼭 이 책을 읽어보게 해야 한다. 그리고 염불 삼아 아침저녁으로 읊조리게 해야 한다. ‘나는 대한 국민이 아니다. 나는 조선 인민도 아니다. 나는 우리나라 사람이다. 우리는 하나다.’ 평생을 독립 운동에 바쳤다가 빨갱이로 찍혀 죽어간 부모를 기려서 쓴 노작가의 피의 기록이다. - 윤구병 (농군·철학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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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속에 등장하는 박헌영, 이현상, 이관술, 정태식, 이재유, 박치우 등 남로당의 주요 인물들은 8 · 15 광복 직후에 청년기를 보낸 식자층이나 현대사를 조금 공부한 사람이라면 알 수 있는 매우 유명한 항일운동가이자 공산주의자들이었지만,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완전히 잊혔다. 이들은 일제 말 지하 혁명 조직 경성콤그룹 멤버이거나 국내에서 항일 투쟁을 했던 인물로, 1945년 8 · 15 광복 직후 장래 민족 지도자군 10위 안에 포함된 사람도 두 사람(박헌영과 이관술)이나 있었다. 하지만 미군정과 이승만 정부의 극심한 탄압 속에 월북하거나 지하로 들어가 활동하거나 빨치산 투쟁을 하다가 체포 또는 학살당했다. 일제 말 국내에서 지하 항일운동을 했던 좌익 인사들 중에서 1947년 이후 월북하여 김일성의 식객이 된 사람도 없지 않지만, 작가가 주목하는 인물들은 거의가 서울과 남한에서 버티다가 사라졌다. 그리고 오늘날까지 남한은 물론 북한조차도 그들을 기억하지 않는다. 몰론 8 · 5 직후의 이 혁명 전사들을 학살하고 처형한 사람들은 남한의 이승만과 친일 극우 세력들이지만, ‘미제의 스파이’라며 준엄하게 심판한 김일성과 북한 당국도 이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주요 가해 세력이었다. (……) 소설과 에세이의 형식을 빈 김성동 작가의 기록들은 이 시대의 사회운동사나 지식사회학이 아직 충분히 해명하지 못하는 한국의 정신사의 일부이자 지식인의 역사다. 그렇다면 우리는 좌우 이념의 잣대로 이들의 활동을 재단하기 전에 고려와 조선 시대 이래의 독서인의 수난사로서 현대사를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 김동춘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김성동의 특별한, 그러나 ‘위험한’ 제문祭文」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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