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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 이 책을 쓰기까지
프롤로그 : 이 땅의 선생들은 자신의 영혼을 잘 돌보고 있는가? 제1장. 잠자는 학교 : 학교는 무너지고 선생은 좌절한다 ‘잠자는 학교’라는 증상 누가 학교를 재웠는가? 학교 수업은 자장가? 흥미로운 수업은? 아직 뭔가 부족하다 누구를 위한 수업일까? 분신술이라도 해야 할까? ‘진짜’ 너는 누구냐? 정말 대학에 가면 알게 될까? 현실의 역풍을 뚫을 묘수는? 잠자는 학교를 들여다보자 선생 먼저 눈을 뜨시게나 제2장. 선생 일을 할 준비가 되었나? : 선생의 일, 쉽지 않다 영광스러운(?) 직업선호도 1위! 먼지도 좀 묻혀보자 빛을 죽이는 세상 머리여, 가슴을 따르라 나의 역할도 가슴이 알려주리라 미래의 소망 = 현재의 재료 선생, 영혼으로 혁명을 이루는 사람 제3장. 지식과 감성, 그 너머 : 선생 일의 가장 깊은 부분 엄친아 = 엄마가 친히 인생을 계획해준 아이? 엄친아, 그 예쁜 가면 깨달음을 얻은 백정 숨은 개성 찾기 “이 아이는 병이 있는 게 아닙니다.” 모범생 콤플렉스는 저리 치우고 남과 다른 나만의 성장 프로그램 나의 길을 걸으며 ‘이유’를 만든다 선생은 선생으로서 행복해야 한다 행복한 선생의 원천 제4장. 선생, 멀티플레이어 : 시대가 선생에게 요구하는 것들 사실, 선생은 세다 엄격한 학자 오닐 교수와의 추억 프로페셔널한 선생상 그리고 조벽 교수 변화를 이끄는 지식인, 그리고 전교조 교육학계의 트렌드 선생의 리더십 제5장. 지식으로 가는 길을 가르치다 : 교육의 목적은 영혼의 성숙에 있다 노동자 vs. 성직자 서구화 vs. 현대화 퇴계와 공자, 동양의 선생을 말하다 “나는 설거지를 하기 위해 설거지를 합니다.” 서양의 선생들 루소, 서양의 선생을 말하다 퇴계, 공자, 루소는 동지? 선택은 선생의 몫이다 제6장. 오래된 미래 : 영혼의 성숙을 돕는 선생상 먼지를 걷어내고 오늘날을 살아가는 교사들 소명의식을 만드는 이야기 제7장. 행복을 향한 걸음 : 학생, 세상, 선생 자신의 행복 한 번에 한 명씩 달까지 가는 엘리베이터 SKY를 품다 6펜스로 달을 사는 선생 선생의 행복이란 에필로그 : 나는 영혼의 성숙을 돕는 선생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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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 우연의 산물인 것 같지는 않고, 그런 훌륭한 것을 손쉽게 차지하리라고 예상하는 건 도둑놈 심보일 게다. 자신을 바치고, 정성을 들이며 열심히 해야 이룩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부담스러운 자기성찰 같은 게 필요하다는 말이다. 자기성찰은 참된 자기를 알려는 시도다. 참된 자기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참된 자기가 아닌, 남들이 바라는 바에 의해서만 형성된 ‘나’가 어떻게 무엇이 자신을 진정으로 가장 행복하게 해주는지 알 수 있겠는가?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스티브 잡스도 “남의 인생을 살아주느라 귀한 삶을 낭비하지 마십시오.”라고 말했다고 하지 않나. 나의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진짜 나’를 알아내야만 한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이건 특히 학생들을 자기실현의 길로 인도해줘야 하는 모든 선생들에게 절실한 과제이다. 자신의 길도 알지 못하는 선생이 어찌 남들을 인도할 수 있겠나? 눈 먼 이가 눈 먼 이를 이끌면 둘 다 불행해질 게 뻔하다.--- pp.48-49
내가 미래에 이루고자 목적하는 바가 지금의 나를 만들어가고 있다면, 그런 목적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선생인 나는 무엇을 미래의 목적으로 삼아야 할까? 노후가 보장돼 안정된 삶을 누리고 있는 중진 교사? 어려운 여러 자격요건들을 충족시켜 장학사나 교장으로 승진한 교사? 잠자는 학교를 극복한 실력 있는 선생? 물론 다 괜찮을 것이다. 하지만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이고 상상에 돈이 드는 것도 아닌데, 보다 원대한 목적은 어떨까? 이를테면 ‘이 세상의 진정한 개선이라는 과업을 수행하는 변화의 주역’과 같은…….--- pp.74-75 나도 나 자신이 심히 부끄럽다. 내 제자의 행동과 태도만 보고, 그 영혼의 존귀함조차 까맣게 잊었던 일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게 의지하던 제자가 나의 일을 돕기로 약속했다가 사정이 생겨 약속을 취소해 내가 좀 곤란해졌던 적이 있다. 그 후 나는 더 이상 그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공부에 열성이었던 한 제자가 내가 가르쳐주는 내용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는 주제에 자꾸 아는 척을 하고 대든다 하여 가르치기를 그만둔 적도 있다. 또, 나를 잘 따르던 제자가 어쩌다 몇 차례 나의 조언을 망각하고 마음 내키는 대로 했다고 냉정하게 내쳐버린 적도 있다. 따르던 선생에게 내침을 당한 그들은 큰 상처를 입었을 것이다. 그런 주제에 이런 책을 쓰고 있다는 게 또 부끄럽다. 그러나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쓴다. 이것마저도 안 하면 이 세상에서 내 가치가 무엇이겠는가 싶어서.--- p.225 물론 선생도 사람이다. 따라서 아이들을 미워하거나 불신할 수도 있다. 나도 그랬다. 그러나 학생 내면의 참을 보려는 노력의 세월이 쌓임에 따라, 나도 조금씩 겉으로는 부정적이고 미워 보이는 학생들의 안에 담긴 참을 엿볼 수 있게 됐다. 물론 내 처지와는 비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한, 전문계 고등학교에서 거친 사내아이들을 상대하는 선생들에게는 이런 말이 비현실적으로 들릴 수도 있겠다. 그러나 전문계 고교에서도 아이들을 믿고 다가가는 세월의 축적 속에서 아이들을 성공적으로 키워낸 훌륭한 선생들이 우리 사회에도 분명히 있다. 그런 소명의식이 있는 선생들의 결실은 눈에 보이는 성과를 가지고 평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을 거쳐 간 수많은 학생들의 내면에 소중한 씨를 뿌려놨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 p.2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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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스러운(?) 직업선호도 1위, 그러나…
2012년 2월 10일, 교육과학기술부가 학생과 학부모 4,000여 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고등학생들이 가장 선호하는 직업은 교사인 것으로 드러났다(11.0%). 또한 교육대학교의 경쟁률은 수십 대 일에 이르고 있다. 하지만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2012년 5월 9일부터 12일까지 초중고교 교사 3,27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교직만족도가 떨어졌다’고 답한 교사의 비율은 해마다 늘어 2012년에는 81.0%까지 치솟았다. 학생과 학부모들은 학교를 ‘졸업장 따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가는 수용소와 같은 곳’으로, 교사를 ‘수용소를 지키는 간수’로 여기기 시작했고, 고등학교까지 12년의 교과과정을 ‘일류 대학’에 입학하기 위한 수단으로만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교사들은 학교를 그저 돈 버는 곳으로, 학생들을 ‘졸업장 받으려고 나와 앉아 있는 아이들’로 여기는 것이 현실이다. 『선생이란 무엇인가』는 모든 교사 지망생에게 선생이 되고자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묻는다. 사회경제적 안정성과 혜택? 사회적인 인식? 부모님의 바람? 하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교사의 꿈을 심어준 이런 이유들이 선생의 행복을 보장해주지 못함을, 오히려 잠든 학교를 만드는 한 가지 원인이 될 수 있음을 저자는 지적한다. 선생, 잠든 학교와 함께 잠들 것인가 교육 개혁의 주인공이 될 것인가 교사가 직업선호도 1위로 꼽혔음에도 정작 현직 교사들의 대다수가 자신들의 직장생활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삶의 목표로 여기는 부와 명예 역시 지고의 가치가 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라’고 전했고 매슬로우가 욕구 5단계설에서 인간의 최상위 욕구는 ‘자기실현’이라고 말한 것처럼, 진정한 행복이란 돈과 명성 따위가 아닌 ‘진정한 자신을 찾는 것’에 있다. 교육이란 아이들이 진정한 자신을 찾도록 돕는 것이고, 학교는 이를 이루는 장이어야 하며, 선생은 학생들의 자기실현을 이끌어주는 존재여야 한다. 한석훈 박사는 『선생이란 무엇인가』에서, 학생들의 자기실현을 이끄는 존재가 되기 위해 선생으로서 성찰하고 갖춰야 할 것, 단순한 교수법이나 강의법을 넘어 ‘선생으로서의 자기성찰’에 대해 말한다. 이를 위해 서양의 몬테소리, 프뢰벨, 코메니우스, 페스탈로치, 루소를 비롯해 동양의 공자와 퇴계, 노자의 교육철학과 사상을 보여준다. 또한 저자는 이렇게 ‘학생의 영혼의 성숙을 돕는 선생’이 될 때 선생 자신도 자기실현을 할 수 있고 행복해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선생은 지식을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지식으로 가는 길을 가르치는 사람이다 저자인 한석훈 박사는 미국의 유명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던 그 순간을 “나의 지적ㆍ사회적 ‘허영심’이 완전히 충족된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내가 좇던 것들이 텅 빈 거품과 같은 것임을 알게 됐다.”고 고백한다. 자신이 그토록 좇던 것들이 덧없는 허상임을 깨달은 저자는, 그때부터 학생들이 내면의 참된 자신을 찾도록 돕는 것을 소임으로 삼는다. 이후, 선생님이나 선생이 될 사람들에게 단순히 지식을 가르치는 것을 넘어 지식에 이르는 길, 나아가 자기실현에 이르는 길로 인도하는 것을 자신의 사명으로 여기게 됐다. 연세대, 서강대, 이화여대, 경희대 등 여러 대학에 교육학 및 교육철학 관련 과목 시간강사로만 10년 이상 출강 중인 저자는, 비록 큰돈을 벌지도 못하고 변변한 직함 하나 없는 처지이지만 자신의 소임에 하루하루를 온전히 바침으로써 행복하고 활기찬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한다. 작가 한마디 아홉 살 때엔 내 몸이 나인 줄 알았다. 열일곱 살 때엔 내 마음이 나인 줄 알았다. 스물다섯 살이 되어선 내 무의식이 나인 줄 알았다. 서른다섯 살 먹고는 이 모든 게 다 나인 줄 알았다. 그런데 이것들 말고 ‘진짜 나’가 또 있다는 것을 마흔이 넘어서야 깨달았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알던 나보다 훨씬 큰 ‘영혼’이라는 것은 최근에서야 깨달았다. 이 땅의 선생들은 자신의 영혼을 잘 돌보고 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