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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놓는 글 5
Ⅰ. 우선 세태에 시비를 걸어보자 1. 누구나 제 몸이 최첨단이다 20 2. 내 안의 야성을 해방시켜라 26 3. 신화의 그물을 벗어나야 자유인이다 29 4. 자연 오염, 주범과 종범을 따지랴 31 5. 상실감은 최첨단 도구로 보상될 수 없다 34 6. ‘오래된 미래’에서 풍요와 활력을 찾는다 37 Ⅱ. 수렵어로, 문화인가 악성공격인가 7. 사냥본능과 악성공격 47 8. 풍성한 세상, 더 이상 양성공격이 아니다 51 9. 온생명을 위해 손익 계산을 잘해야 한다 54 Ⅲ. 개구리와 메뚜기, 자연 풍요의 대표 종 10. 와해전술로 인간에게 대응했다 65 11. 걸작이라서 오히려 슬프다 69 12. 개구리도 감정을 가지고 울까 73 13. 흔하다고 마구 대하다니 77 14. 개구리를 얼마나 죽였을까 80 15. 개구리를 먹느냐고 83 16. 개구리도 제 설움에 겨운가 86 17. 시작은 실로 창대하나 끝은 미미하니라 90 18. 뱀에 대한 원한을 지렁이에게서 푼다 93 19. 무당개구리는 왜 낯설까 94 20. 개구리매의 기습 96 21. 개구리 양식, 그물과 전구면 된다 97 22. 개구리에 뱀 따르는 것이 자연의 질서 101 23. 물방개의 유혹, 뱀의 양성 공격을 받다 103 24. 업구렁이를 건드리지 마라 107 25. 방카공사장의 간식, 뱀 구이 109 26. 독사의 독, 인간의 입 111 27. 개구리는 뱀에게 하늘이다 113 28. 메뚜기는 늘 풍년이었다 116 Ⅳ. 수렵, 사냥본능은 그칠 줄 모르고 29. 사냥, 결국 제 마음만 쏘고 128 30. ‘소경 제 닭 잡아먹기’, 사육 사슴 사냥 131 31. 오소리, 인간집단에 제압되다 135 32. 토끼, 앞다리가 짧아서 137 33. 까치 덕분에 족제비를 잡다 140 34. 야생은 가축으로 투항당하고 144 35. 사냥 없이 전리품만 챙겨 146 36. 청설모, 미워할 수 없는 악동처럼 149 37. 다람쥐, 재주를 보려다 죽여 152 38. 두더지 고기를 먹었다고? 155 39. 새, 날개가 있어도 어쩌랴 158 40. 꿩, 약삭빠르고도 멍청한가 160 41. 꿩의 놀라운 객기 163 42. 꿩에겐 혈투가 없다 165 43. 맨손으로 꿩을 잡다 168 44. ‘꽁’과 꿩은 수직과 수평으로 투신 172 45. 산비둘기를 먹으면 남매밖에 못 둔다? 173 46. 콩새의 열반, 꿩처럼 비류직하 177 47. 가장 원시적 도구로 ‘눈감 땡감’ 180 48. 참새고기도 고기라고 182 49. 주맹증 올빼미의 선물 185 50. 술 취한 새를 보았는가 187 51. 새를 강제로 입양하다 190 Ⅴ. 어로, 그물을 던져도 삶은 건지지 못하고 52. 둠벙을 품어라, 농한기의 시작 200 53. 장차 자연주의자가 되리라 201 54. 미꾸라지, 새우가 지겹도록 많았다 204 55. 겨울, 동면 미꾸라지를 잡다 208 56. 막고 품는 일처럼 신날까 211 57. 쌀방개 똥방개, 물방개 낚시 213 58. 팔결다리, 고기잡이들의 경연장 216 59. 팔결의 괴물고기 218 60. 그물을 던져도 삶은 빠져나가고 220 61. 투망, 결코 겸손할 수 없는 특기가 되어 227 62. 쏘가리는 뵙기 힘들다 230 63. 잉어는 영물일까 234 64. 누치만 눈치가 빠를까 237 65.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240 66. 끄리, 그 힘차고 불쌍한 놈들 243 67. 떡붕어, 탐스런 몸집이 애를 생기게? 249 68. 끄리 : 피라미, 뱀장어 : 열대어 251 69. 연어, 송어, 은어를 보았나 253 70. 피라미, 물속의 민중? 257 71. 돌로 고기의 등을 간지럽혀라 261 72. 빙어를 찾아서 263 73. 미꾸라지, 모기 애벌레를 소탕해봐 265 74. 제비고기를 미끼로 한다고? 268 75. 가물치는 탐나고, 잡히지는 않고 272 76. 뱀장어 소굴을 보다 276 77. 자라, 아니 용왕님 뵙기 280 78. 쉬리, 부분 멸종을 확인하다 287 79. 우렁이의 깊은 속내 289 80. 다슬기, 반딧불이를 위해 293 81. 가재는 전기를 싫어하나 294 82. 방류·방생도 화근, 물고기가 줄고 있다 297 83. 투망 보조수론, 훈수꾼들 299 Ⅵ. 채집, 채집할 수 없는 이유나 채집할까 84. 곤충채집, 부익부 빈익빈 310 85. 반딧불이, 마음을 밝혀라 315 86. 쇠똥구리, 작은 지구를 굴려라 318 87. 벌, 단 것이 마약이다 322 88. 식물채집, 약초 아닌 게 어디 있으랴 326 89. 청설모, 잣 수확에 동원되다 330 90. 일 능이, 이 송이 332 91. 도토리 줍기는 필수과정 335 Ⅶ. 현대인, 야만이 깊어졌나 92. 마지못해 먹고 할 수 없어 산다 343 93. 온생명, 평화롭게 살아야 한다 344 94. 자연, 제발 내버려두면 된다 346 95. ‘필요한 최소’의 도구, 온몸으로 살아야 348 □ 미주 354 □ 《도움을 받은 책》 36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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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힘이 무섭다’고 했는데 맞다. ‘사람의 욕심이란 굽 빠진 항아리라’고 했는데, 틀림없다. 끝없는 욕심과 지칠 줄 모르는 추진력으로 세상을 인공낙원으로 만들어 가는 것을 보면 기가 막히다. 아직 식주의(食住衣)조차 해결 못하는 사람들을 헤아릴 수도 없다. 온 생명의 환경이 오염되어 위기에 처해 있다. 그런데도 냉정히 외면하고 유희적 세계를 향해 서둘러 가는 세태를 보면 안타깝고도 두렵다. ‘사람 영악한 것은 범보다 무섭다’고 했는데, 범 정도가 아니다. ‘사람이 많으면 하늘을 이긴다’더니 맞다. 숱한 사람들의 영악한 발명품으로, 신(神)의 영역을 넘보는 정도가 아니라 성큼성큼 들어가고 있다.
‘사람 일이 다 먹자고 하는 것이다’ 했는데, 아니다. 이 세상은 일부 사람들에게 이미 주지육림이다. 생명체에 끝없이 개입해서, 우유를 계속 내놓는 소를 만들고 달걀을 계속 낳게 하는 닭을 만들었다. 인간 주변을 온통 가축으로 성(城)을 만들어 놓았다. 농약으로 강산을 청소하고 유전자 조작으로 생명력이 강화된 곡물, 채소가 산을 이루고 있는 현실이다. 먹을 것을 해결하고도 뭔가 일을 계속 꾸미니, 다만 먹자고 하는 일이 아니다. 먹고, 놀고, 신선이 되려나보다. 동물복제는 물론, 사람의 몸 부분 부분을 거의 모두 인공품으로 또는 이종(異種) 장기로 대체할 수 있으니 신, 또는 자연의 역할을 즐겨 맡겠다는 포부다. 일부 인간들이 첨병(尖兵)으로 나서서 최첨단으로 향하는 길로 방향을 잡아가고 있다. 대부분의 인간들이야 어리석은 것이 장기(長技)니, 무조건 환호한다. 편리하니까. 이상향(理想鄕), 유토피아, 대동(大同)세계를 향한 인간의 염원이야 무슨 죄가 있으랴. 누구나 행복할 권리가 있는 바에야. 그런데 낙원에 대한 생각이 달라도 너무 다른 것이다. 자연의 원리를 배척한 낙원이 지속가능할 수가 있겠는가. 사물인터넷과 인공지능, 가상과 증강현실, 자율주행과 스마트 팩토리와 같은 것들이 서비스로 제공되는 5G시대를 열었단다. 4G가 1차선이었다면 5G는 10차선으로 길이 넓혀졌다고 비교하며 호들갑이다. 대단히 장한 일이다. 이렇게 통신 서비스가 증강되는 것처럼, 인간의 몸도 증강되고 있다. 병과 노화로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오장육부의 부분 부분을 인공이나 다른 동물의 부품으로 교체하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해지고 있다. 인간 몸뚱이도 10차선으로 급속한 전환이 가능할 태세다. 예컨대, 최소한만 먹고 똥, 오줌을 거의 배출하지 않는 육체증강, 죽음을 대신 죽어주는 대체수명 증강이 가능하겠다. ‘저승 길과 변소 길은 아무도 대신 가지 못한다’는 난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 같다. ‘먹지 않고 잘 걷는 말 없다’, ‘먹지 않고 일 잘하는 사람 없다’는 문제를 해결할 정신증강과 신체증강이 점차 가능할 것 같다. 그런데 남는 문제가 심각하다. 가상현실과 현실, 육체를 증강해서 어디다 쓸 것인가. 수명을 길게 늘여, 그 여유수명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문제다. 그저 실컷 즐긴다? 일을 열심히 더 해서 생산성을 높인다? 인간들 일의 결과가 세상에 이롭다면 탓할 것이 없으리라. 그런데 끝내 별 볼 일 없는 성과로 남는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꾀를 내는 족족 죽을 꾀만 낸다’고, 인간 하는 일이 말짱 도로아미타불 되기가 십상이다. 철저히 유희적 인간을 만들어 잉여인간이 넘쳐난다면, 온생명에 누만 끼치는 일이 아닌가. 이렇게 환장하거나 환상적인 현실을 한시 바삐 즐기려는 첨병부대가 이리저리 쏠려 다니고 있다. 본대열(本隊列)은 그들이 잡아가는 방향에 따라 움직일 것이다. 세태는 그렇게 떼거리로 움직여 갈 것이다. 편리함과 재미에 마취되어, 가는 방향을 상관하지 않는 세상이 될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세태를 달가워하지 않는 사람들도 적지 않겠다. 이미 버려놓은 세상을 할 수 없이 최소한만 따라갈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일부 ‘촌놈’들에게는 여전히 수렵어로시대, 농경시대가 익숙하다. 최첨단의 기계를 외면하고, 제 잘난 몸뚱이를 최첨단에 내세워 세태에 저항하는 인간들도 분명 있다. 다만 그런 촌놈의 숫자가 점점 줄고 있다는 사실이 유감스러울 뿐이다. 나도 도시를 매우 꺼려하는 촌놈 중 하나다. 대부분 곡물과 채소로 살아왔고, 내 몸은 그런 것으로 이루어졌다. 수렵, 어로, 채집을 흉내 내며 많은 시절을 보냈다. 육고기나 물고기를 먹자고 한 짓이 아니었다. 삶이 단순했던 시절, 수렵어로, 채집이 그냥 생활방식이었다. 그래서 정신도 그렇게 이루어졌다. 최첨단으로 따라붙으려는 떼거리 속에서 나는 자꾸 수렵어로, 채집인의 추억을 되새김하고 있는 것이다. 내 몸으로 직접 부딪치는 것만이 최선이라는 생각으로 살고 있다. 작지 않은 밭을 여전히 호미로 다스리려고 애를 쓰고 있다. 수렵어로, 채집의 경험과 추억마저 없었더라면 내 인생은 무척 공허했을 것이다. 하찮은 일들이지만 그것들이 모이고 이어져 내 삶의 미세사(微細史)를 이루었다. 말이 거창해 수렵어로 채집이지, 소견이 트이지 않았던 시절에 시간을 보내기에는 최상의 놀이이자 삶의 방식이었다. 특히 소년기, 길고 긴 나날에 무엇을 할지 몰라 답답할 때 소박한 고기잡이와 채집, 사냥은 가장 쉽게 선택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사실 사냥의 경험은 아주 약소하다. 새 사냥 정도나 조금 경험했을 뿐이다. 사냥 대신 동물 기르기에 많은 시간을 썼고, 고기잡이는 평생에 걸쳐 틈틈이 원시로 되돌아가는 즐거움이었다. 즐거움이라 생각했던 수렵어로, 채집이 결국 살생이라고 각성한 것은, 모든 상품이 넘쳐나는 시대에 들어서다. 생존을 위해 살생을 한다면 죄를 따지기가 어렵겠지만, 삼시 세끼를 잘 챙겨먹고도 그런다면 살생한 죄를 면할 수 없는 일이 되겠다. 물론 어릴 적엔 간식은커녕 삼시 세끼를 제대로 찾아먹은 기억이 없다. 그렇다 하더라도 살생을 저지른 내 죄가 크다는 반성을 뒤늦게 한다. 여하튼 평생 살생을 많이 했으니 이젠 스스로가 그 죄를 추궁하고 성찰하며 다소간이라도 생태회복에 기여하는 일만 남았다. 헤밍웨이는 아프리카 대륙에서 사냥을 했다. 사자나 코끼리 같은 거대동물 위주였다. 바다에서도 큰 고기들을 상대했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단편소설 「프란시스 매코머의 짧고 행복한 생애」, 장편 『노인과 바다』같은 명작을 남겼다. 이에 비하면 나의 경험은 매우 하찮고 또 창작으로 이어가지도 못했다. 애당초 작은 경험을 키워 색다른 상상력을 창조해 낼 수 있는 배포를 타고나지 못했으니 어쩌랴. 허만 멜빌의 장편소설 『백경』처럼 스케일이 웅장한 상상력이라면, 제법 인간성을 확장시키는 데 기여를 할 수 있겠다. 그렇지만 내가 만났던 불행한 물고기들, 작은 짐승들은 추억으로만 남아 있다. 그래서 나는 더욱 소시민이고 원시적이다. 제 삶에 최선을 다하는 생명들 속에 뛰어들어, 그들의 삶을 방해하고 빼앗는 것은 분명 인간의 사냥본능이나 파괴본능 때문이리라. 그러나 인간에겐 측은지심도 있다. 만약 헤밍웨이가 지금처럼 생태계가 엉망이 돼버린 세상을 살았다면, 제 살생에 대한 반성의 작품을 남겼을 것이다. 고래 뱃속에서 비닐이 20여 킬로그램씩이나 나올 정도라면 낚시할 맛이 나지 않았을 것이 분명하다. 요즘이라면 반생태적인 행위로 비난을 받을 행위를 즐겨 저질렀던 내가, 이 시대를 달갑지 않게 여기는 것은 당연하다. 세상 곳곳이 오염되어 있어, 지난 시절 허용되었던 만큼의 원시적 행동이 더 이상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도시라는 공간이 한껏 세(勢)를 확장되는 시대, 기계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세태에 휩쓸려 자율적 인간이기를 포기하게 만드는 시대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풍요하고 편리한 시대를 언짢게 생각하며 어쩔 수 없이 휘말려 가자니 이런 부조화가 따로 없다. 이젠 인공지능이라는 또 다른 신화(神話)가 가속 페달을 밟고 있다. 인간 스스로가 더욱 촘촘하게 엮은 그물로 자신들을 옥죄고 있는 것이다. 자연에 대해 인간은 점점 높은 벽을 쌓아가고 있으며, 인공(人工)이 넘쳐나고 자리마다 생명체들은 한껏 오염되고 또 위축되고 있는 현실이다. 대부분의 인간들은 그런 인공 속에서 환성을, 또 다른 부류는 비명을 지르며 살아가고 있다. 자율적으로 살아가지 않고 ‘살아지고’ 있는 삶을 서로 다르게 인식하기 때문에 그렇다. 나처럼 수렵어로, 채집의 추억을 선명하게 지니고 있는 사람에게는 아무래도 이 최첨단의 시대가 낯설다. 무엇보다도 모든 것이 너무 편해서 불편하다. 사지(四肢)가 편하고 시간이 절약되면 뭔가 다른 뜻깊은 일을 해야 하는데, 세상사가 조변석개(朝變夕改)니 가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다는 생각이 앞선다. 한껏 발달되었다는 도구로 야단만 떨었지, 현대인이라고 자긍심을 가질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오로지 식탐, 재탐, 유희탐의 세상일 뿐이다. 현생인류가 원시인에 비해 별로 나아진 게 없다는 말이 사실인가보다. 그래서 나는 편해지고 싶지 않다. 손발을 최대한으로 움직여 불편함을 즐기고 싶은 것이다. 내 몸을 최첨단으로 여겨, 몸으로 부딪혀 사는 것이 진실로 좋다. 내내 원시인이고 싶은 모양이다. 인간은 먹는 것으로 제 몸을 이룬다. 그리고 하는 것으로 정신을 이룬다. 나는 모니터 화면을 통해서 세상을 보는 것 이상으로, 내 눈으로 세상을 본다. 기계나 도구를 통해 내 몸을 이루는 일을 꺼린다. 인간의 세상보다 자연세상을 훨씬 더 많이 본다, ‘사람 몸이 열 냥이라면 눈이 아홉 냥’이라는 말을 믿고 열심히 자연을 본다. 그리고 거기에 몸을 부린다. ‘죽으면 거름도 안 될 인생’, ‘죽으면 썩어질 몸’이라는 것을 아는지라 아끼지 않는다. 아무런 죄책감 없이 자연 속에서 수렵어로에 빠졌던 시절이 그립다. 잡고 또 잡아도 여전히 생명체들이 풍성했던 자연이 무척 그립다. 요즈음 사람들보다 우매함이 덜해, 자연을 더럽히지 않던 그 시절의 사람들이 그립다. 인공으로 생명체를 기르는 것보다 자연이 길러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우친 사람들이 그립다. 물과 공기가 한껏 혼탁해진 이 시대를 살면서, 수렵어로, 채집이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는 것에 안타까움이 크다. 갈수록 대자연이 고갈되고 병들어 가는 것이 안타까워, 내 지나간 삶의 미세한 사실들을 내밀어 이 세태와 견주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