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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사
박서영의 작품 세계 _ 4 -유한근(문학평론가, 서울문화대학교 교수) 작가는 작품으로 말한다 _ 6 -이영철(소설가, 한국문인협회 이사) 작가의 말 _ 8 욕망의 혀 _ 14 블로홀 _ 46 가면무도회 _ 84 야바위꾼 _ 118 모래 위의 정원 _ 164 17.5페이지 _ 196 위험한 동거 _ 222 거미집 _ 2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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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 잠들어 있던 새벽녘이었다. 탁. 탁. 매우 둔탁한 소리였다. 집 안 어딘가를 두들기는 것도 같았다. 탁. 탁. 가만히 귀를 열고 들어보니 지팡이로 방문을 두들기는 소리였다. 이봐요. 문 좀 열어봐요. 신 씨였다. 신 씨는 뭣엔가 쫓기는 듯 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떨림이 가미되어 있었다. 올 것이 왔구나 싶어 봉숙은 벌떡 일어났다. 이런 시간 신 씨가 정신줄을 놓지 않고서는 남의 방문을 두들길 여자가 아니었다. 어둑한 허공에는 시커먼 보자기를 뒤집어 쓴 형상이 앉아 있었다. 휠체어에 앉은 검은 형상은 허공에 대고 지팡이로 노를 젓고 있었다. 왜요? 무슨 일 났어요? 봉숙은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는 대신 검은 형상에 대고 질문부터 던졌다. 죽었나봐. 좀 가 봐. 신 씨는 남이 먼저 말을 걸 때는 반말로 대꾸를 하다가도 본인이 말을 걸 때는 어정쩡한 존댓말을 썼다. 상황 설명을 더 듣지 않아도 사태를 파악한 봉숙은 이불을 제치고 황 씨 방으로 내달렸다. 검은 허공에서 분리된 신 씨는 휠체어를 굴리며 봉숙의 꽁무니를 따라 붙었다. 얼굴을 벽 쪽으로 돌린 황 씨는 침대에 푹 엎어져 있었다. 할아버지! 할아버지! 봉숙은 오렌지색 티셔츠를 잡아 흔들었다. 한 번, 두 번, 세 번. 아무 반응이 없었다. 어서 미화한테 연락을 해봐요! 신 씨는 휠체어를 굴리고 다니며 허둥대고 있었다. 119에 연락 안했어요? 답답하긴! 119에 신고부터 해야지. 황미화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헝클어져 있던 옷장의 옷들이 말끔하게 정돈된 것 같다고나 할까. 그러한 반응은 의외였다. 심호흡을 깊게 하고 난 봉숙은 119를 눌렀다. 여기요. 사람이 쓰러졌어요. 빨리 도와주세요. 다급한 이쪽에 비해 저쪽에선 짜증날 만큼 침착했다. 7분쯤 걸린다는 119구급대원의 말을 떠올리며 봉숙은 황 씨의 오렌지색 등판을 담담한 표정으로 내려다보았다. 바닥에 깔린 한쪽 볼은 보이지 않았으나 다른 한쪽 표정은 확연히 눈에 들어왔다. 죽은 사람을 봤다는 사람들이 “꼭 자는 것 같더라.” 하고 한결같이 말하던 것이 생각났다. 황 씨는 정말 자는 듯 했다.
아파트 입구에 한 여자가 스쿠터를 몰고 나타났다. 여자는 시동을 끄더니 한눈에도 꽤 묵직해 보이는 장바구니를 가볍게 옆구리에 끼고 현관으로 들어섰다. 도어록의 비밀번호를 누르고 집 안으로 들어온 여자는 할머니 할아버지를 교대로 불렀다. 안에서는 아무 기척이 없었다. 여자는 대꾸가 있거나 말거나 개의치 않는 듯 콧노래를 부르며 장바구니를 풀었다. 그때 신 씨가 휠체어를 밀면서 나타났다. 뒤이어 지팡이를 짚으며 황 씨가 거실로 나왔다. 어제 미화가 반찬을 한 보따리 해 갖고 왔는데, 장을 또 봐 갖고 왔어? 이렇게 카드를 긁어대면 무슨 수로 당해내? 황 씨가 볼멘소리를 했다. 여자는 눈을 흘기며 대꾸했다. 딸내미가 해 갖고 온 반찬이 한 보따리면 뭐해? 한 젓가락도 안 먹는데. 그 반찬은 할아버지만 먹잖아? 할머니는 내가 만든 반찬만 좋아 하신다고. 솔직히 할아버지는 먹성이 좋으셔서 매일 이만큼씩 장을 봐와도 금방 없어지고. 감당이 안 되는 걸 잘 아시면서 또 잔소리를 해. 황 씨의 잔소리를 받아치며 주방으로 들어가는 여자의 머리에는 아직도 헬멧이 얹혀 있었다. 미화가 뭘 해갖고 왔는지 풀어봐 봐. 지들 안 먹는다고 여태 열어 보도 않아? 황 씨가 소파에 털썩 드러누우면서 말했다. 봉숙은 냉장고에서 황미화가 가져온 반찬들을 끄집어냈다. 그중에 하나를 들어내 뚜껑을 열었다. 푸른 것이 취나물 무침 같았다. 봉숙은 손가락으로 나물을 집어 고개를 젖히고 입에 넣었다. 아니 나물에도 설탕을 넣다니. 반찬들이 달아도 너무 다네. 이 양반 설탕하고 원수졌나? 달긴. 난 달아야 좋던데. 황 씨가 미화의 역성을 드는 동안 신 씨는 입을 삐쭉거리며 봉숙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었다. 할머니 입 좀 벌려 봐. 봉숙은 취나물을 집어 신 씨에게 내밀었다. 신 씨는 머리를 흔들며 손사래를 쳤다. 나 미화 반찬 못 먹어. 달아서. 단 것 좋아하는 저 영감이나 주라고. 휠체어를 굴리며 신 씨가 방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지켜보던 봉숙은 반찬통 뚜껑을 힘주어 닫고 냉장고 속에 집어넣었다. --- 「욕망의 혀」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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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책을 오랜만에 내놓게 되었다. 10년 전에 단편집을 냈는데 너무 부실했다. 그때의 아쉬움 때문일까. 남들이 책을 몇 권씩 내는데도 부럽지가 않았다. 책을 꼭 내야 하나 싶었다. 독자도 점점 줄어드는 추세인데. 하지만 결국은 내게 되었다. 그래서 그때 쓴 소설도 함께 수록했다. 인터넷에서 장난스럽게 쓴 소설이 있다. 「블로홀」이다. 꽤 야하다. 그래도 동서문학상까지 탔으니 야설은 아니라고 우기고 싶다. 한 편은 추리소설이라 할 수 있는 중편소설이다. 이 소설집의 표제인 「욕망의 혀」는 효도한 작품이다. 여러 곳에서 청탁을 받았고 돈도 되었다. 「가면무도회」는 근로자 문학상 은상을 받은 작품이다. 그렇게 8편이 수록되어 있다. 어느 것 하나 애착이 안 가는 것은 없다. 누가 묻는다. 소설을 왜 쓰냐고. 나도 내게 묻는다. 왜 쓰느냐고? 독자를 위해 쓴다고 할 수 있을까? 솔직히 나를 위해 쓴다고 말하고 싶다. 어릴 때 꿈이 뭐였냐고 물으면 순간 흠칫한다. 분명한 건 작가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연예인이라고 대답하기는 부끄럽다. 어릴 때는 누구나 한 번씩 꾸어보는 흔한 꿈 아닌가. 아버지가 동네 사람들 사주를 봐주고 그 끝에 나를 봐주면서 너는 외롭고 고독하게 살 팔자구나, 하시던 말씀이 내 기억에 남아 있다. 나는 처음부터 글을 쓸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던 것은 아닐까. 나는 작품에 들어가 남의 인생을 연기한다. 살인자가 되었다가 선한 소녀가 되었다가 탐욕스러운 여자가 되었다가 부자가 되었다가 가난뱅이가 되었다가. 그래서 나는 연예인의 꿈을 어느 정도 이뤘다고 자평한다. 다른 작가를 인터뷰하는 중에 내가 물었다. 소설, 시, 그림 다 하신다기에 묻는데 어느 것이 더 쉬우냐고. 다 같지는 않겠지만 그림이라고 했다. 소설 쓰기가 가장 힘이 든다고 했다. 공감한다. 소설 쓰기가 점점 힘이 든다. 모두 소설 쓰기는 중노동이라고 표현한다. 지구력과 싸워야 한다. 그것이 힘이 든다. 그러다가 막상 작품 속에 빠져 있는 동안은 아무것도 부럽지 않다. 곁에서 수억 로또를 맞았다고 환호성을 쳐도 들리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내게 소설은 종교 같은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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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박서영의 소설을 주목하는 이유는 인간이나 삶을 진지하게 탐색한다는 점이다. 이것이 이른바 잘나간다는 여류소설가와의 변별성이다. 그들은 인간의 관계양식과 존재 양식을 가볍게 터치한다. 하나의 놀이쯤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에 반해 박서영은 정교한 문체와 진지한 인간과 삶에 대한 탐색으로 한국 현대소설의 엄숙주의 환원을 시도한다. 그뿐 아니라 그가 다루는 소설적 모티프는 사랑과 이별, 돈과 섹스, 그리고 삶에 좌초한 인간 군상들의 편에서 그들의 삶을 조망한다. 정통적인 소설문법을 차용하고 있는 셈이다. 때로는 추리소설기법을 통해 독자를 흡입하고 때로는 부적절한 사랑의 정당화로 우리를 당황하게 하지만 그는 이를 통해 새로운 사랑의 지평을 제시하려 한다. - 유한근 (문학평론가, 서울문화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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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작가가 살아온 삶의 경험을 바탕으로 주변 인물과 시대적 상황을 소재로 한 씨줄과 작가적 상상의 허구라는 날줄로 직물을 엮듯 한 것이다. 이런 측면으로 봤을 때, 박서영 작가의 작품을 보면 인물의 묘사(캐릭터)들이 망원경적 시각과 현미경적 시각들이 작품의 근간을 이뤄 정교하게 교차하며 잘 그려내고 있다. 담대함과 예리함의 좋은 시각을 가진 것은 작가의 큰 장점이라 하겠다. 일반적인 시각에서 벗어난 뒤틀린 사랑조차도 작품을 읽다 보면 고개가 끄덕여지며 공감하게 만드는 것 또한 작가의 큰 역량이라 하겠다.
작가의 작품에 나타나는 주제의 스토리 라인 또한 매끄럽고 사건이 전개되는 공간적·시간적 의미(이야기 전개)를 단축하는 솜씨 또한 남다른 장점을 가지고 있다. 작가는 작품으로 말한다고 한다. 작품의 면면을 보면 작가가 허투루 살아오지 않고 치열한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곳곳에서 엿 볼 수 있다. 작품을 통해 일반적인 사람들의 상식적 관점을 비틀고 뛰어넘으려는 시각 또한 매우 긍정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녀는 작가이기 때문이다. - 이영철 (소설가, 한국문인협회 이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