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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장을 열며 대중음악을 어떻게 나누면 좋을까 트로트는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신민요와 함께 보기 미군부대 음악과 드디어 유행하기 시작하는 미국 가요: 195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편하게 즐겼던 노래, 이지리스닝(스탠더드 팝) 노래들 드디어 포크와 록으로 한국 포크 음악의 시작 1970년대 대중가요계의 독특한 움직임에 대해 1980년대 록 음악 1990년대, 드디어 서태지가 등장하다 2000년 이후 가요계의 분위기 한국 대중가요 순례를 끝내며 나가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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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이처럼 대중음악에 큰 관심을 갖고 산 남자가 자신의 60년 인생에서 음악이 차지하는 위치를 얘기할 뿐만 아니라 그 음악을 통해 우리 사회가 어떻게 변화해왔는가를 나누고자 하는 의도로 쓴 것이다. 그러니까 대중음악 자체를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국은 그것을 통해서 우리 사회와 우리 자신을 이해하자는 것에 주목적이 있다 하겠다. 우리 대중음악은 사회가 변천하는 과정에 발맞추어 끊임없이 변해왔기 때문에 대중음악을 잘 이해하면 우리가 그동안 살아온 수십 년의 세월을 이해할 수 있다. --- p.16
남강: 사실 미국 노래야말로 우리가 학교 다니면서 가장 많이 불렀던 노래 아닙니까? 솔직히 말해 우리가 젊었을 때는 지금까지 보았던 트로트는 거의 무시하고 이 미국 노래만 부르지 않았습니까? 우리가 이 트로트에 다시 눈을 돌린 것은 50세가 넘어서이고 그전까지는 팝송 혹은 팝송을 흉내 내어 만든 노래만 불렀지 뭡니까?걸최: 맞아요. 그때는 트로트가 어쩌면 그렇게 촌스럽게 보였는지 몰라요. 리듬은 단순하기 그지없었고 소리는 ‘꺽꺽’대는 것 같기만 하고 노상 고향 타령이나 하는 것 같고…. 좌우간 그때는 그랬습니다. --- p.78 걸최: 물론 나도 이해합니다. 미국 문화에 경도되면 한국적인 것은 촌스럽게 생각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우리의 트로트 음악이 촌스러운 이미지로 바뀐 것은 바로 이 미국 팝송이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미국적인 것 아니면 다 촌스럽게 생각했기 때문에 음악에서 첫 희생타가 된 것이 트로트입니다. 남강, 재미있지 않습니까? 이 트로트가 일제기에는 민요와 비교되어 아주 모던한 음악으로 간주되었는데 1960년대가 되면서 촌스러운 음악이 되는 게 말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상대적인 것이니까 어쩔 수 없는 것이지만요. --- p.86 남강: 그다음 해인 1972년에 나온 노래가 아마 「아름다운 강산」일 겁니다. 이 노래는 아주 대작인데 뒷이야기가 있습니다. 소문에 의하면 박정희 정부가 신 선생에게 대통령 찬가를 만들어달라 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신 선생은 음악이 그런 데에 이용당해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 거절했다고 하지요? 그러면 결과는 뻔합니다. 정부가 여러 가지로 신 선생을 음해했겠지요. 그래서 선생은 그것을 무마하기 위해 알아서 이 체제 찬양적인 노래를 만들었다는 거예요. 나도 우리 강산을 아름답다고 찬양하고 있으니 그만 좀 괴롭히라 정도의 메시지가 담긴 노래라고나 할까요?걸최: 나도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때 신 선생은 별 생각 없이 자신은 대통령 찬가처럼 한 사람을 위한 찬가가 아니라 온 국민이 같이 부를 수 있는 건전가요를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는데 사실 여부는 잘 모르겠습니다. 심지어 어떤 이는 이 노래를 신중현 식의 애국가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 p.164 걸최: 그런데 이들이 해체된 이듬해인 1970년에 낸 첫 번째 음반이 재미있어요. 왜냐하면 수록된 곡이 열두 곡인데 전부 번안곡으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남강: 특히 「하얀 손수건」과 「웨딩케익」은 가장 인기를 많이 끌었고 지금도 여전히 사랑을 받는 곡이지요.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 곡들이 원곡을 넘어서 마치 원래부터 트윈 폴리오의 곡이었던 것 같은 느낌을 준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번안을 잘한 건데, 원곡과 비교해보면 전주나 반주 전체가 다 달라졌을 뿐만 아니라 가사도 완전히 달라져요. 그래서 완전히 새로운 곡으로 느껴지죠. --- p.190 남강: 나는 이런 분들이 천재라고 봅니다. 대중은 무의식적으로 어떤 것을 갈구하지만 그게 무엇인지 확실히 모릅니다. 그때 이런 천재적인 예술가가 나와 대중의 갈망을 구체화해 예술로 표현해줍니다. 시대를 풍미하는 음악가나 작가들이 바로 그런 분들입니다. 이분들을 굳이 표현한다면 하나의 안테나라고나 할까요? 대중의 마음을 읽고 그것을 표현해서 다시 대중에게 음악이나 문학 작품으로 선사하니 말입니다. 대중은 이런 분들을 통해 무의식적인 갈증을 해갈하게 됩니다. --- p.2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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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배경음악은 무엇입니까?
우리와 함께했던 그때 그 노래 잊지 못할 히트송을 남겼으나 지금은 보이지 않는 가수를 찾는 프로그램이 인기다. 1990년대의 음악을 재조명하는 시도도 몇 년째 계속되고 있다. 이 열풍 속에서 당신은 어떤 시간을 떠올렸는가? 그 시절 당신의 배경을 장식했던 음악은 무엇이었는가? 우리는 왜 과거의 음악에 열광하는 걸까? 누구에게나 자신이 살았던, 그리고 살고 있는 시대를 장식하는 음악이 있다. 떠올리는 순간 자연스레 장면이 그려지고 흥얼거리게 되는 음악, 우리의 시간을 훨씬 빛나게 해준 그 음악은 주로 대중음악이다. 대중음악은 이렇듯 어렵지 않은 언어와 살가운 선율로 대중의 정서를 정확하게 반영하며 서민들 속으로 파고들어 왔다. 저자는 이것이 바로 음악의 힘이라 말한다. 음악은 모든 사람이, 혹은 모든 계층이 직접 행하고 즐기는 유일한 예술 장르이며 인간의 감성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공연히 업신여김당하는 우리 대중음악을 위해 『예순 즈음에 되돌아보는 우리 대중음악』의 저자 최준식은 전문 음악인이 아니다. 평론가나 가수도 아니다. 그저 한국학을 연구해온 평범한 60대 남성일 뿐이다. 그렇다면 그는 이 책을 어떻게 쓰게 된 걸까? 서문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첫 번째는 대중음악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서다. “「섬마을 선생님」은 도농을 막론하고 50대 이상이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고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희귀할 정도로 우리에게 익숙한 곡이다. 그런데 국민들은 법정의 수필보다 박춘석의 노래에 더 많은 위안을 얻었으면서 왜 박춘석에 대해서는 이렇게 박하게 구냐는 것이다. 이것은 잘못된 현실이다. 그래서 나는 이 책에서 박춘석 등과 같은 대중음악 작곡자들이 얼마나 위대한 작곡가인지 보여주고 싶었다. 더 이상 이런 천재 작곡가들을 이렇게 대접해서는 안 된다는 마음으로 이 책을 쓴 것이다.” _ 21쪽 “만일 그가 서양 고전음악을 하는 사람이었다면 사람들이 그렇게 무관심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가 대중음악을 하는 사람이라 이렇게 저평가되고 있는 것 아닐까? 어떻든 배호처럼 저평가 혹은 잘못 평가되고 있는 우리 가수들에 대해 알리고 싶은 것도 이 책을 쓰는 목적 중 하나이다.” _ 22쪽 저자는 우리의 전통문화가 그 진가보다 훨씬 더 낮게 평가되는 것처럼 우리의 대중음악 역시 그러한 상황에 있다고 본다. 「고향역」, 「물레방아 도는데」의 작곡가인 박춘석을 비롯해 길옥윤, 배호 등 수많은 예술가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현실을 안타까워한다. 대중음악은 우리의 삶에서 너무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데, 막상 그 음악을 누리는 이들조차 이 음악을 천시한다는 것이다. 자신과 사회를 이해하게 해주는 대중음악 내가 이 책에서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아주 간단하다. 우리에게 대중음악이 얼마나 중요한 존재였는가를 알리는 것이다. 대중음악이라는 게 그저 적당히 즐기고 마는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예술이라는 것을 알리고 싶다. …… 그뿐만이 아니다. 우리가 그동안 즐겼던 대중음악에는 어떤 것이 어떻게 있었는지 정리해보고 싶었다. 만일 이 작업이 성공한다면 근 100년 동안 우리 문화가 어떻게 진행되어왔는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대중음악을 통해 우리 자신을 이해해보자는 것이다. _ 11쪽 저자가 이 책을 쓴 두 번째 이유는, 대중음악을 통해 우리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서다. 우리 대중음악은 사회가 변천하는 과정에 발맞추어 끊임없이 변해왔기 때문에 대중음악을 잘 이해하면 지난 세월을 이해할 수 있다. 그때는 왜 그 노래가 인기 있었는지, 그 노래를 듣고 부르던 사람은 누구였는지 되돌아보며 중년을 지나온 이들은 자신의 청춘을 기억할 수 있고, 젊은이들은 아버지 세대를 이해할 수 있다. 대중음악 이해에는 이렇게 중요한 의미가 있다. “걸최: 나는 이 트로트 메들리에서 다른 모습을 봅니다. 나는 이 음악을 들을 때마다 조금도 쉬지 않고 근대화나 산업화를 이룩하려고 달려온 우리의 모습이 보입니다. 우리의 선배들이 지난 수십 년 동안 어찌 일했습니까? 쉰다는 개념은 아예 그들의 뇌리에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그렇게 바쁘게 산 한국인들이 노래를 느긋하게 들을 여유가 어디 있겠습니까?남강: 그래서 이 메들리에서는 노래가 한 번 시작하면 수십 분 정도 계속되는 것이군요. 세상에 이런 노래가 또 어디 있을까 합니다. 좌우간 카세트테이프의 한 면이 다 돌아갈 때까지 노래는 한 번도 쉬지 않으니 말입니다. 노래를 하고 놀 때에도 일할 때처럼 하는 것이군요.” _ 107쪽 우리 대중음악을 통해 살펴보는 한국 근현대사 역사와 야사를 넘나들며 읽는 ‘우리’의 노래와 사회, 그리고 인생 대중음악은 개인의 이야기를 넘어 한 나라의 역사를 말해주기도 한다. 한국 대중음악이 탄생한 이후, 우리 역사에 큰 흐름이 몇 가지 있었다. 일제의 강점, 해방, 조국 분단, 군사독재… 그때마다 대중음악은 시대의 정서를 반영했다. “걸최: 남강이 말한 그대로입니다. 분단은 사람들에게 아주 큰 고통을 안겨다 주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등지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그런 것을 잠자코 보고만 있을, 민중의 슬픔을 외면할 트로트가 아니죠. 그래서 나온 노래가 박시춘 작곡의 「가거라 삼팔선」, 혹은 김기태 작곡의 「꿈에 본 내 고향」 같은 노래였습니다.” _ 75쪽 “걸최: 어떻든 이 노래는 이런 장엄함이나 청아함 때문에 1971년에는 건전가요로 선정됩니다. 그런데 웃기는 것은 1975년에 가수들을 억압하는 대마초 파동 일어날 때 이 곡이 금지곡이 되었다는 겁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죠. 아니 어떻게 건전가요로 선정된 노래가 몇 년 뒤에 금지가요가 될 수 있답니까? 당시는 정말로 코미디 같은 사회였습니다. 이때 금지된 노래가 굉장히 많은데 이 노래들은 1987년 전두환이 물러난 다음에야 풀리게 됩니다.” _ 210쪽 저자의 이야기는 꼭 노래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를 따라 시대별로 유행한 노래를 살펴보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우리는 그 시대의 생활상을 보게 된다. 가령 그때는 어떤 시대였는지, 그 노래가 등장한 전후에 나라의 분위기는 어땠는지를 알 수 있다. 대중음악은 한국 근현대사와 오롯이 함께해온 것이다. “남강: 미국 방송국 이야기하니 생각나는 것이 있습니다. 초기에 미군의 TV 방송은 채널 2번을 사용했지요. 우리나라에 방송국이 3개밖에 없던 시절, 그러니까 TBC(7번), KBS(9번), MBC(11번)밖에 없던 때에 미군 방송이 버젓이 2번에서 나오고 있었던 거예요. 그때는 그게 당연한 것으로 보였죠. 미국이 하는 건 다 옳게 보였던 터라 2번 채널에서 미군 아나운서가 나와 영어로 떠드는 게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습니다.걸최: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 생각해보면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습니다.” _ 84쪽 당신이 지금 듣고 있는 노래는 무엇인가? 당신의 삶에서 음악은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가? 예순을 지나온 이들이든, 바라보는 이들이든 당신과 우리 음악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일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우리의 대중음악을 찾아 떠나보자. 그리고 우리의 인생을 살펴보자. 그때 그 노래를 다시 들을 때 나와 시대를 이해할 수 있는 깊이가, 다시 살아갈 힘이 생길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