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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도시의 주인은 누구인가
일상을 바라보는 관찰자적 시점 정지와 움직임의 공간, 지하철 현실이 소설이고 소설이 현실이다 2장 도시의 목소리들 어떤 날의 얼굴들 구경꾼과 구경거리 섬세한 고양이 같은 그 이름, 여성 ‘다움’에 대한 고정관념 공장에서 태어난 아름다움 3장 도시 속의 나와 너 시름시름 앓는 청춘 그곳에 사람이 살고 있다 감정, 욕망, 멜랑콜리로 연결된 트라이앵글 과거를 찾습니다 천사는 죽음을 어루만지네 세상 모든 것과의 교감 작가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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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체리 향기」는 인생의 여러 가지 의미를 생각하게 한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 바디는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 의미를 모른 채 세상과 결별하려 한다. 그러다 우연히 만난 한 노인으로부터 ‘체리 향기’에 대한 얘기를 듣는다. 노인은 불행한 결혼 생활 끝에 자살을 시도하려다 달콤한 체리 나무의 열매 때문에 마음을 돌린 자신의 경험담을 이야기해준다. 죽으면 체리 향기도 맡을 수 없다는 노인의 말에 바디가 삶에 대한 애착을 느낀다는 내용이다. 「체리 향기」는 이처럼 일상의 사소한 것에서 즐거움을 느낄 줄 알아야 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생존(生存)의 의미를 연명(延命)한다고 비참하게 생각하기보다 인생에서 사소한 즐거움을 찾고 즐길 수 있는 넉넉한 여유를 가져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다.
부디 『플라스틱 라이프』가 기계화·거대화된 도시생활자들의 낮과 밤에 체리 향기가 되어주길 기대해본다. --- 「저자의 말」중에서 문득 몇 년 전 일본에 갔다가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창밖으로 내려다본 지상의 풍경이 떠오른다. 미니어처 세계처럼 낯설고 신기한 세상. 도시의 불빛, 건물, 자동차, 야산 등이 과연 내가 살고 있는 곳이 저곳인가 의심이 날 정도였다. 하지만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그토록 생경하게 느껴지던 풍경은 다시 내가 속한 일상이 되고 말았다. 사진 속 풍경은 그런 의미에서 과거에 경험했던 시각적 낯섦과 즐거움을 일깨워주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지상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일종의 위안을 제공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삶에 지치고 힘들 때 내가 속한 세상을 마치 미니어처처럼 내려다보면 세상이 괴로움만으로 가득 찬 곳이 아니라는 것, 살 만하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재현된 걸리버 여행기」 중에서 J는 사람들이 수증기에 별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안다. 만약 행인들이 매일매일 일기예보와 함께 수증기를 지켜본다면 수증기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될 것이다. 하지만 도시 사람들은 그럴 만한 여유가 없다. 그러나 수증기를 계속 지켜본 J는 알았다. 그날 기온과 풍속, 풍향에 따라 수증기의 형태가 달라진다는 사실을. 날씨가 추워지면 전기 사용량이 늘고 발전기 가동률이 높아지면 방출되는 수증기의 양도 덩달아 는다. J는 풍향에 따라 시시각각 모습이 달라지는가 하면 나타났다 또 금방 구름 속으로 사라지는 수증기의 모습을 지켜보며 인간의 삶을 생각했다. 그리고 왠지 서글퍼졌다. ---「수증기를 계속 지켜보다」 중에서 이발기로 뒷머리부터 서서히 깎기 시작하다 앞머리가 밀려나갈 때의 묘한 기분은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은 알 수 없는, 오직 군대를 다녀온 남자들만 공유할 수 있는 감정이다. 바닥으로 우수수 떨어지는 머리카락을 바라보는 여자친구와 그녀의 얼굴을 거울로 바라보던 내 눈이 마주쳤을 때의 느낌이란, 쑥스러운 듯도 하고 어색한 듯도 하고 슬픈 듯도 하고……. 한마디로 표현하기 힘든 묘한 감정을 주고받으며 우린 둘 다 멋쩍게 웃었다. 미용실을 나온 후에도 무슨 얘기를 해야 할지 몰라 한참을 말없이 앉아 있던 기억이 생생하다. ---「측은한 신병의 얼굴」 중에서 사실 기업들이 환경문제나 나눔 등 공공의 이익을 높이는 일에 참여하며 ‘착한 기업’이라는 좋은 이미지를 얻고 이를 통해 기업 이익 또한 높이겠다는 의도는 새삼스러울 것이 없다. 이상민의 의도 또한 같은 맥락이니 그가 찍은 영상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아프리카나 아시아 등 가난한 제3세계 국가 사람들의 고통스러운 삶의 모습은 보는 이에게 이중적인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하나는 불쌍하고 힘든 사람을 도와야 한다는 당위성이다. 그런가 하면 고통의 당사자가 ‘나’가 아닌 ‘너’라는 데서 오는 안도감도 있다. 이는 문명국가에 사는 사람으로서는 상상도 못할 가난과 비극의 당사자들인 제3세계의 가난한 사람들을 대상화하게 한다. 그리하여 그들을 혹은 그들의 삶을 우리 주변에서는 흔히 보기 힘든 ‘이색적인 구경거리’로 만들어버린다. 극단적인 표현을 쓰자면 마치 동물원의 동물을 보듯 하게 된다. ---「타인의 고통을 즐길 수 있는가?」 중에서 --- 본문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