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1. 정주영의 코리언 미션 임파서블
미션 1. 거북선의 부활 봉이 정선달을 믿은 그리스 선박왕 조선소와 동시에 완성한 유조선이 없다? 있다! 대한민국의 보증수표 *정주영의 성공법칙 1 : 남과 다르게 생각하라! 미션 2. 조랑말의 질주 결별 이태리 노트? 이 대리 노트! 한국 자동차의 할아버지 ‘포니(PONY)’ 조랑말의 질주 *정주영의 성공법칙 2 : 도전하라, 시련에도 불구하고 도전하라! 미션 3. 20세기 최고의 티켓 해외 시장 개척 사막의 오아시스, 주베일 입찰권을 잡아라! 모래 바람, 돈 바람 대양 악천후 바닷길 수송 작전 *정주영의 성공법칙 3 : 긍정의 힘을 믿어라! 2. 존경받는 부자의 행복 공식 공식 1. 주머니를 열 때는 화끈하게 연다 부유한 노동자 회장님은 구두쇠 정주영의 나눔 *정주영의 성공법칙 4 : 돈은 가치 있는 곳에 써라! 공식 2. 글로벌 기업이 뛰면, ‘코리아’는 난다! 올림픽 흥하고 망하는 것은 마음먹기 나름이오! 쎄울 꼬레아 달려라 호돌이, 날아라 대한민국! *정주영의 성공법칙 5 : 글로벌 기업가가 되려면 ‘코리아’의 가치를 ‘업그레이드’하라! 공식 3. 기업가는 기업 활동으로 애국애족한다 돈이 되지 않아도 지도를 바꾼 이유 남북을 잇는 마지막 끈 *정주영의 성공법칙 6 : 꿈을 진화시켜라! 3. 정주영 할아버지, 질문 있습니다! |
|
사람들은 그가 이룬 수많은 일들을 ‘기적’이라 불렀지만, 그는 평생 기적을 바라지 않았다. “기적은 종교에서 가능한 일이요, 기업 경영에서는 오직 신념, 도전 그리고 결과가 있을 뿐입니다.” 정주영, 그는 기적을 믿지 않았기에 기적을 만들 수 있었다.
--- 「본문 중에서」 |
|
청소년이여, 세상에 쫄지 말자
도전 종결자, 정주영 할배가 왔다! 전경련의 출판자회사 FKI미디어(www.fkimedia.co.kr)가 ‘대한민국을 바꾼 경제거인 시리즈’ 제1탄으로 『정주영처럼- 빈곤과 굶주림의 나라에서 선진 산업국으로』을 펴냈다. 이 시리즈는 우리나라 경제사에 있어 놀라운 성취를 이룬 경제거인들의 삶을 청소년들에게 소개함으로써 그들이 더 큰 꿈을 품을 수 있도록 응원하고자 기획되었다. 이에 그 시리즈의 첫 번째로 펴낸 책 『정주영처럼』은 1915년부터 2001년까지 거의 1세기 가까이를 살아오면서 우리나라 근ㆍ현대 경제 발전사에서 놀라운 성취를 이룬 정주영의 삶을 청소년의 눈높이에 맞춰 소설 형식을 빌려 흡입력 있게 재구성하였다. 청소년판 『정주영처럼』은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대기업 회장님’에 대한 고정된 이미지를 깨끗이 부순다. 첫째, 정주영은 이윤만을 추구하는 경영인이 아니었다. 그는 이윤보다 신용을 우선으로 여겼다. 1953년 남북이 휴전 협정을 하고 나서 대구와 거창을 잇는 고령교 복구 공사를 맡았을 때 120배가 넘는 물가 폭등으로 엄청난 손해를 보면서도 공사를 끝까지 마쳤다. 이때 진 빚을 갚는 데만 꼬박 20년이 걸렸다. 그러나 정주영은 사업은 망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지만 신용은 한 번 잃으면 끝이라며 이를 묵묵히 감내하였다. 둘째, 정주영은 어린아이의 눈을 지닌 사람이었다. 그는 엄동설한에 유엔군 묘지에 잔디를 입히는 일을 의뢰받고는 곧 겨울에도 푸른 보리 포기를 입힐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서산 간척지를 만들 때도 바다를 꼭 돌로 메워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버리고 고철로 쓰려던 유조선을 가져다가 메웠다. 탄탄한 이론들에 비해 다소 허술하고 황당해 보이던 이 방법은 ‘정주영 공법’이라고도 불리며 뉴스위크와 타임지에 소개되었을 정도로 탁월했다. 셋째, 정주영은 무식했지만 무식하지 않았다. 보통 경영인들이 유복한 환경에서 자라나 최고의 학력을 쌓은 반면, 정주영은 초등학교 졸업이 학력의 전부였다. 가난한 농부의 8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나 먹고 사는 일이 먼저였기 때문이다. 그는 가방끈으로만 보면 무식했지만 들여다보면 현명한 사람이었다. 학교 밖에 있는 정주영은 자신이 머무는 모든 곳을 학교로 삼았다. 그는 빈대한테서도 배울 줄 알았고, 정규 교육 과정을 밟은 사람은 할 수 없는 독창적인 발상을 했다. 그는 학교 밖에서도 충분히 배우고 익혔던 것이다. 넷째, 정주영은 아티스트였다. 1998년, 정주영은 소떼를 몰고 민간인 최초로 휴전선을 걸어서 넘어 북한으로 갔다. 소떼를 몰고 갈 때 반드시 판문점을 통과해서 가겠다는 조건을 내건 사람도 정주영이었다. 분단의 장벽을 허문다는 뜻을 전 세계에 보여주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정주영의 소떼 방북’이라고 불리는 이 사건은 미국 CNN을 통해 전 세계에 생중계됐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프랑스의 문명비평가 기소르망은 ‘20세기 마지막 전위예술’이라고 평하기까지 했다. 정주영은 ‘평화’라는 가치를 자신의 몸짓으로 창조적으로 구현하여 세계인들에게 상기시킨 아티스트였다.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된 국토 위에 고속도로를 세우고, 그 위를 달릴 최초의 우리나라 자동차 포니를 만들고, 세계 최초로 조선소와 배를 동시에 만들어낸 개척자! 아산사회복지재단을 만들어 자신의 성공을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에게 기쁨으로 돌려주고, 민간인 신분으로선 최초로 소떼를 이끌고 판문점을 걸어서 넘어 남북한의 화합을 이끄는 것과 같은 위업을 이룬 단 한 사람, 정주영! 그는 대한민국에서 여태껏 출현한 적이 없었던 새로운 기업인이었으며, 쌀가게 배달직이라는 낮은 자리에서 시작하여 차근차근 자신의 신화를 써내려간 진짜 영웅이었다. 21세기 대한민국은 “안될 놈은 안된다”라는 패배주의에 젖어 있다. 청소년들 역시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을 극복하고 넘어갈 생각보다는 체념하고 환경의 제약 속에 갇히는 편을 선택하고 만다. 지금 우리 청소년들에게는 정주영과 같은 인물이 필요하다. 정주영은 어떤 후광도 없이 자기 인생에 스스로 빛을 비춘 사람이었다. 『정주영처럼』을 통해 청소년들이 패배주의를 극복하며 호연지기를 갖고 험난한 세상에 도전하길 소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