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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결론이 담긴 머리말 늘 청소만 하고 사는 호페 부인 수잔네 종이 울리면 아흐터만 박사의 무심한 치료 행복을 주는 올리브기름 붐붐 칵테일과의 결별 두려움, 비닐과 솜 안에서 5월의 비는 아름답다 베커-로데 여사의 소중한 질문 엄마와 감자 팬케이크 인터메조I -옛 삶이 끝나다 고마운 잔소리꾼 모니 카타리나의 선물 가족의 조건, 슈펫츨레 요리 레겐스부르크의 카우보이들 최고의 운동 줌바댄스 대화로부터의 치유 수많은 돌이 모여 다리가 된다 인터메조II -변화 랑에 박사의 치료 바트 사흐사로 떠난 첫 여행 만능 문제 해결사 마리 안나 이모의 비밀 가난은 즐겁지 않다 4월에 핀 오월방울꽃 신은 모든 걸 가능하게 한다 사고뭉치 베르크만 부인 즐거운 호 나로 카니발에서 고백하면 소통할 수 있다 고집불통 요르크와의 추억 내겐 너무 어려운 일본어 인터메조III -피해의식에서탈출하다 50번째 생일, 나를 위하여 휴가, 노르트제의 바람 이제는 자유롭다 나를 살린 사람들 용기에도 노력이 필요하다 살고자 하면 요리하라 배낭 하나 짊어지고 에필로그 1년 후 _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 옮긴이의 글 _ 당신은 죄인이 아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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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가장 도움이 된 것은 이 모든 상태가 언젠가는 반드시 지나간다는 확신이었다. 비닐과 솜의 장막이 항상 재현되었지만, 매번 지나갔다. 그리고 다시 그리고 다시 그리고 또다시……. 이런 느낌은 사라졌고 나는 이성도 잃지 않았다. 이것은 고통스러웠고 공포심을 자아냈지만 정상이었다. 비정상적인 삶의 상황에서는 비정상적으로 반응하는 게 정상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느낌을 그 누구한테도 설명할 수 없으며 해서도 안 된다는 내생각도 도움이 됐다. 누가 이런 상황을 이해할 수 있을까? “요즘 건강이 좋지 않아요”라는 문장은 다급하면 어느 정도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그밖에 다른 말을 덧붙인다면 건강한 사람들에게는 무리한 요구가 아닐까? 그들은 어쩔 수 없이 이해하는 척만 할 뿐 과연 얼마만큼 날 이해해줄 수 있을지! 결과적으로 이러한 모든 과정으로 나와 나의 공황장애가 해결되고 극복될 수 있었다. --- p.51
“희생자란 말은 왠지 굴욕적으로 들려요. 도움을 받으려고 해도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속수무책을 의미하는 것도 같고요.” “그렇게 들릴 수도 있을 거예요.” “희생자라는 단어만 들어도 속이 메스꺼워요. 난 희생자가 되고 싶지 않아요.” “당신이 뭐라고 부르든 간에, 그건 그렇게 중요하지 않아요.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당신이 굴욕감을 느낀다는 것, 도움을 받지 못할 것 같은 절박함을 느낀다는 거죠. 당신은 누군가의 보호가 필요한데 말이죠. 희생자란 말이 당신에게 적합하건, 적합하지 않건 간에 당신이 희생자인 것만은 틀림없어요. 당신이 다른 단어를 사용한다고 해서 지금 상황이 변하지는 않을 테니까요.” --- p.62 K는 내 숄로 몸을 단단히 묶었다. 먼저 내 목을 감다가 입 위까지 다 감았다. 그러고 나서는 턱을 사정없이 누르더니 내 입을 강압적으로 힘껏 벌렸다. 숄을 입속까지 밀어 넣으려는 속셈이었다. 나는 죽을 것만 같은 공포감을 느꼈고 숨을 쉴 수 없었다. 컨디션도 안 좋아져서 어지럼증을 느꼈다. 그의 마지막 희생자가 이렇게 묶인 채로 질식해 죽었다는 사실이 문득 떠올랐다. K는 다른 접착제 한 병과, 기다랗고 아주 얇은 주삿바늘이 있는 플라스틱 용기를 보여주었다. 그는 이 물건으로 곧장 정맥을 찌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고는 “내 말이 무슨 말인지 알겠죠?”라고 다시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 p.77 K가 P씨의 조건들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받아들이는 모습을 본 나는 황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그렇게 현실적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나는 두려웠다. 결국, 완전히 정신이 나간 것은 아닌지 싶어서였다. 그가 한순간이라도 다시 결정을 뒤집을 수 있을 것 같아 두려웠다. 그러면 결국은 그가 날 죽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끔찍하게도 무서웠다. 그리고 얼마쯤 시간이 흘렀을까! K가 문 앞에 쳐놓은 바리케이드를 제거하기 시작했지만, 문은 열지 않았다. 옷을 다시 입은 나는 마치 로봇처럼 가방에 물건들을 챙겨 넣었다. K는 방 밖으로 나가기 두렵다고 말했다. K의 지시에 따라 나는 칼을 집어 들었다. K가 왜 내게 칼을 내주었을까? 지금도 난 이해할 수가 없다. --- p.83 나는 남편의 손을 꽉 부여쥔 채 조용히 앉아 있었다. 사람들이 많았다. 나는 맞은편에 앉아 있는 그자를 아주 조용히 바라보았다. 나 자신 안에서 뭔가 변화가 생긴 것이다. 물론 한참 후에야 이런 변화를 깨닫게 되었지만, 그 당시에는 그가 시선을 피했다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기소장이 낭독되었다. 법률학은 수공업이라고 누군가 말해준 적이 있다. 그 말을 해준 사람은 아마도 자신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고 있었을 것이다. 법 소송은 특정 규칙에 따라 사회적인 갈등을 해결하는 것이다. 여기서 감정 따위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그자는 내 시선을 피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나는 남편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 p.130 “안나 이모한테 그 일이 일어났을 때 나는 다락방에 숨었어. 여동생과 함께 다락방의 가파른 계단으로 올라갔지. 그러고는 입을 꽉 다문 채로 서로 바짝 붙어 앉아 있었어. 그 당시에는 여자아이들도 더 없고 성인 여자들도 없었어. 우린 두려웠어. 혹시나 그들이 우릴 찾아낼까 봐 너무 무서웠던 거야. 다락방 위에서는 마른 돼지고기 소세지와 빨래냄새가 코를 찔렀지. 난 이 냄새를 평생 잊을 수가 없단다. 우리는 안나 이모가 자지러지게 소리치는 것을 들었어. 군인들이 들이닥친 거야. 미군들이었지. 흑인도 있었어. 우리는 그때까지 흑인을 본 적이 없었던 터라 더 무서웠어. 그날 일어난 사건에 대해 다 알지는 못한단다. 그들이 안나 이모를 성폭행했다는 것 밖에는. 그 당시에 사람들은 ‘더럽혀졌다’고 말했어.” --- p.170 요르크도 자신의 옛 삶과 결별했다. 우리가 함께 일해 온 사회-치료부가 그 사건 이후에 해체될 위기에 처했다. 기초 자체가 흔들렸던 것이다. 한 사람이 일을 그만두었으니 말이다. 우리가 함께했던 힘든 시절에도 우리는 바이에른 주에서 일하고 싶은 ‘25가지이유 ’를 목록으로 만들었다. 이 이유에는 정말 소소한 것들도 포함되었다. 예를 들어 맥주가 맛있다거나, 사투리가 재미있다거나, 날씨가 좋다거나……. 그리고 이와 비슷한 이유를 더 많이 찾았다. 우리는 이런 이유를 찾는 데 무척 보람을 느꼈는데, 이 이유는 시간이 갈수록 점점 많아졌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갑자기 이런 이유가 없어져 버린 것이다. 한 사람이 일을 그만두었으니까! --- p.221 당신이 어떤 감옥에 가든지, 어떤 환경에서 남은 인생을 보내게 될지 나랑 상관없어요. 고발하는 희생자들의 눈빛이 당신을 지켜보고 있을 테니까요 . 당신에게 속고 실망한 수많은 사람들의 말 없는 질문은 언제나 계속 될 겁니다. 살아있는 사람이거나 죽은 사람이나 할 것 없이. 어디로 가든지 당신의 이야기는 당신보다 한발 먼저 가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가망 없어 보이지만 만일 감옥에서 나온다고 해도 당신은 잊지 말아야 할 거예요. 언제, 어디서든 상관없이 당신이 저지른 일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을 거예요. 절대로 잊지 마요, K. 어떤 시간도 어떤 장소도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 p.2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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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앞둔 4월의 어느 봄날, 평온했던 내 삶은 끝났다.
그러나 무자비한 일곱 시간의 성폭행도 영혼까지 짓밟지는 못했다! 2009년 4월의 어느 날, 독일 스트라우빙 교도소 심리치료실에서 벌어진 충격적인 성폭행 일곱 시간 동안의 악몽으로 송두리째 사라진 한 여자의 행복 그 시간 동안 누구도 그녀를 구원할 수 없었지만, 누구에게도 그녀를 파괴할 권리는 없었다. 피해자가 죄의식을 느끼는 성범죄 앞에, 우리는 모두 가해자였다 나날이 잔인해지고, 상상을 뛰어넘는 가공할 성범죄로 얼룩진 2012년 대한민국! 매년 늘어나고 있는 성폭행 피해자만 수십만 명에 달한다. 피해를 숨기고 살아가는 이들까지 포함한다면 주변에 성폭행의 상처를 지닌 사람들의 수는 더 늘어날 것이다. 2011년, 이십만 명(추정치)의 성폭행 피해자 중 정부 차원의 심리치료를 받은 이는 6퍼센트에 불과하다. 죄인처럼 고개 숙여 살아가야 하는 수많은 성폭행 피해자들을 위해 우리는 과연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가? 언론에 공개되는 범죄자들의 인권도 중요하지만, 정작 그늘에 숨어 헤어 나오지 못하는 피해자들에 대해 관심을 독려하는 시선은 많지 않다. 대중들은 단순히 자극적인 사건 자체에만 몰두할 뿐, 내 일이 아니면 이내 잊어버린다. 피해자 보호에 대한 책임은 우리 모두에게 존재한다. 물론, 국가 차원의 물리적 지원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피해자에 대한 왜곡된 시선을 거두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2차 피해를 막기 위해서라도 정신적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기본적인 관심이 우선이다. 《4월, 그날의 일곱 시간》의 저자 수잔네 프로이스커는 2009년 4월, 본인이 경험한 성폭행의 기억을 용기 내어 수면 위로 끄집어냈다. 사건 이후, 그녀는 폐쇄공포를 비롯해 충격과 후유증에서 헤어 나오기 어려웠다. 그러나 희생자에 대한 편견을 거둔 사랑하는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고통스러운 기억에서 따스한 일상을 되찾아간다. 이 책은 사건 이후, 안정을 되찾아가는 수잔네 프로이스커의 일상과 내면 치유 과정을 잔잔하게 따라간다. 《4월, 그날의 일곱 시간》이 전하는 가장 끔찍했던 일곱 시간 이후의 생존기 독일 스트라우빙 교도소의 심리치료사 수잔네 프로이스커는 결혼을 열흘 앞둔 2009년 4월의 어느 날, 4년 넘게 치료해오던 범죄자로부터 일곱 시간 동안이나 무차별 성폭행을 당한다. 당시 사건은 많은 독일 언론의 조명을 받았고 최근까지도《WDR방송》다큐멘터리 「고통의 일곱 시간」에서 재조명되기도 했다. 사실, 처음부터 그녀가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두려움으로 집에서 500미터 거리의 가게에서 올리브기름조차 살 수 없었고, 낯선 사람과 대화할 수도 없었으며, 운전하는 것도 버거웠다. 심지어 그녀가 겪은 사건이 함께 일하는 동료에게 피해를 주었다는 비난에 시달려야 했다. 그러나 그녀는 ‘벗어날 수 있다는 용기’를 가지고 트라우마를 극복하려는 노력을 시작한다. 책을 집필하게 된 것도 그런 노력 중 하나였다. 이렇게 수잔네 프로이스커는 희생자로서 숨죽이며 살아온 여느 피해자들과 달리 폭행의 기억,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기까지의 일련의 기록을 담아냈다. 이 책에는 두려움을 극복하기까지 그녀와 함께해준 남편과 아들 그리고 지인들과의 평범한 일상의 편린들이 모자이크처럼 이어지고, 끔찍했던 그 사건의 생생한 기록, 사건 당시의 심리 상태와 재판 과정까지 드러난다. 그리고 오래된 친구부터 정신과 의사, 신에 대한 고백, 마음을 치유하는 요리법 등 저자가 불안을 떨쳐버리고 극복해낼 수 있도록 도와준 모든 것들이 회자된다. 그날, 나는 희생자가 아니라 생존자였다 《4월, 그날의 일곱 시간》은 성폭력의 고통에 공감하는 모든 이들에게 ‘희생자도 분명히 다시 예전처럼 건강하게 잘살 수 있으며, 우리는 고개 숙이고 숨어 살아야 하는 희생자 아니라 생존자’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그의 눈을 보고 싶었어요. 꼭 보고 싶었습니다. 나 자신을 위해서요. 내가 이대로 사라져버릴 거라는 생각은 하고 싶지 않았거든요. 그자를 판결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날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나는 사건 서류의 일련번호로만 남고 싶지 않아요. 결코, 이름 없는 희생자가 되고 싶진 않습니다. _본문 p126 중에서 독자들은 책 속에서 움츠러들지 않고 가해자에게 맞서는, 심리치료사 특유의 세밀한 심리묘사를 만날 수 있다. 일곱 시간 동안의 끔찍한 성폭행 사건, 재판의 과정, 피해의식에서 탈출하기까지의 이야기들은 3개의 ‘인터메조’ 로 구성하여 사건 이전의 삶과 사건 이후의 삶을 대비해 감정 변화의 과정을 보여준다. 아울러 단순히 사건 경험담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사건 생존자로서 그들의 마음을 절절하게 헤아리고 대변한다. 또한, 수잔네 프로이스커 주변의 인물묘사를 통해서 피해를 입은 생존자에게 어떻게 대해야 할지에 대한 문제의 해결책 또한 우회적으로 엿볼 수 있다. 사건의 생존자와 생존자를 지켜줘야 하는 주변 사람들의 노력은, 피해자가 그저 희생자로 살아가야 하는 한국사회에 전하는 작은 외침이다. 《4월, 그날의 일곱 시간》은 2011년 9월, 출간 당시 아마존 베스트셀러 순위에 진입했으며, 저자 수잔네 프로이스커는 최근 두 번째 책《행복이 꼬리를 흔들 때》를 펴내고 작가로서 거듭난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 영원한 건 없는 거야. 슬픔도, 고통도 언젠가는 지나가는 거야. 흘러가는 시간이 해결하도록 내버려두는 거야. 내 말을 들어봐. 더이상의 고통은 없을 거야. 새 아침이 밝아오고, 새날이 오고, 새해가 올 테니까. 고통이 널 속이더라도 이제 더는 아프지 않을 거야. 영원한 건 없는 거니까. _ 뵈제 옹켈츠 | 저자 인터뷰 | Q: 프로이스커 부인, 2009년 사건 발생 이후, 새로운 삶을 산 지도 이제 2년이 되었습니다. 요즘 어떻게 지내시나요? - 평범한 일상의 연속입니다. 행복한 날도, 슬픈 날도 있기 마련이지요. 슬픈 날에는 옛날이 그리워지지요. 하지만 비교적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적어도 1년 전이나 1년 반 전보다는 지금이 훨씬 좋아졌습니다. Q: 책은 숨기고 싶은 사생활에 관한 얘기가 대부분입니다. 왜 출판하려고 했지요? - 희생자가 된다는 것은 슬픈 일입니다. 사생활을 숨기고 자신을 부끄러워하며 두려움과 미래를 홀로 짊어지고 간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불행한 일입니다. 범죄와 그로 얻은 결과는 절대로 사적인 일이 아닙니다. 부끄러워할 사람은 희생자가 아니라 범죄자입니다. 모두가 나와 같은 생각을 하기를 바랄 순 없지만, 나에게 이런 생각은 아주 도움이 되었습니다. Q: 당신이 생존하는 데 무엇이 도움이 되었나요? - 하나의 그림을 이루는 모자이크처럼 날 도와주고 지지해준 것은 수없이 많습니다. 가족의 사랑과 인내, 친구들의 따뜻한 마음과 애정 그리고 종교적 믿음, 이 모든 게 날 지켜주었죠. 그뿐만 아니라 극기나, 절대로 포기하지 않고 물러나지 않겠다는 의지도 빼놓을 수 없어요. 그리고 물론 저를 돌봐준 정신과의사도 있고요. 이 밖에도 수없이 많은 것들이 날 유지해줄 수 있도록 단단히 묶어준 밧줄이었습니다. 나는 그다지 독실한 신자는 아니지만 그중 가장 단단한 줄은 역시나 믿음이었습니다. 신의 도움이 없었다면 이 모든 게 쉽지 않았을 거예요. Q: 심리치료사로 일했었는데, 혹시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데 본인의 직업이 도움이 되었나요? - 전혀 도움이 안 되지는 않았을 겁니다. 나는 내 증상에 대해 다른 사람들보다 더 쉽게 인지할 수 있었고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고 있었으니까요.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어떻게 해야 할지 알고 있었지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치료사였던 내가 이제는 환자로 ‘전락’했다는 점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어요. 그런 이유로 이론적인 지식이 공황장애와 같은 증상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해야만 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그렇듯이 나도 그들과 다름없는 고통과 절망과 그리고 아픔을 느껴야만 했어요. Q: 이 책을 쓰면서 당신은 어떤 경험을 했나요? - 책을 쓴다는 것은 다시 벗어날 수 없는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가는 것과 마찬가지였습니다. 나는 가끔 내 이야기에 빠져들었죠. 책이 완성되고 시간이 흐르고 나니 이 모든 것이 커다란 상자에 모두 포장해 넣은 것과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책을 완성하면서 내가 비로소 체험한 이야기와 어느 정도 거리를 둘 수 있게 되었어요. 지금도 내 글을 다시 읽어보면 놀랍기도 하고 슬프기도 해요.??이게 정말 나의 이야기인가? 내가 정말 이 모든 걸 이겨낸 걸까???하고 가끔 눈물을 흘리기도 합니다. Q: 미래에 대한 계획이 있다면 어떤 것입니까? - 이런 질문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다는 게 매우 기쁩니다. 내가 이런 질문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기쁜 거죠. 나한테 미래라는 것은 다음 날, 다음 주, 다음 달을 어떻게든 극복해나가는 것이었어요. 상당히 오랫동안 말입니다. 언젠가는 다시 심리학자로 일하게 될지, 누가 알겠습니까? 지금은 그저 책을 쓰고, 이야기를 서술하고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싶어요. 그리고 그들이 내 글을 읽고 다시 한 번 숙고해보고 웃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밖에 어떤 길이 또 있을까요? 한번 생각해보도록 하죠. 인생은 아름답기도 하지만 상당히 다채롭기도 하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