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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만남
그 남자의 여자 꼬시는 방법 무너진 이미지 복구하기 그의 말 못한 과거 함께하는 행복한 시간들 지니의 옛 남자 뉴욕의 홀리데이 상실의 시간 시간이 흐른 후 재회를 위한 사고 뉴욕애(New欲愛, 새로운 사랑을 갈망하는 이들) Writer's Cu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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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렌스가 현관문을 열기 위해 열쇠를 집어넣자 벌써부터 그녀는 애가 닳기 시작했다. 간절히 그를 원한다는 발놀림, 거친 숨소리.
“끄으응 으으으응 끄으으으응.” “알아, 벨라! 네가 날 얼마나 원하는지. 조금 만 더 참아, 조금만 더.” “끄응, 으으 으응. 왈왈! 왈왈왈!” 테렌스가 문을 열고 들어가자 백 파운드(45Kg)의 황금빛 덩어리가 그를 덮쳤다. “헤이, 벨라 Quiet!(조용히 해)” 조용한 아파트를 쩌렁쩌렁 울리는 골든 레트리버 벨라의 울부짖음에 테렌스는 그녀에게 주의를 주고 다시는 짖으면 안 된다는 의미로 입을 두 손으로 꼭 잡았다가 놔 주었다. 테렌스는 그녀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 주고 코트를 벗어 의자 위에 던졌다. 그런 후 손을 닦기 위해 화장실을 향해 걸어갔지만 벨라는 아직도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테렌스의 주위를 빙글빙글 맴돌며 얼굴을 그의 다리에 비벼댔다. “오늘은 Dog Walker(개 산책을 해 주는 뉴욕의 특색 있는 직업) 아줌마랑 어떤 재미있는 곳엘 다녀왔어?” 손을 씻고 냉장고에서 에비앙 한 병을 꺼내 마신 테렌스는 그제야 벨라와 얘기할 준비가 되었다는 듯 소파에 앉아 애견을 안아주었다. 그러다 문득 이주 전에 바뀐 독 워커 생각에 빙그레 웃는다. 그의 개를 5년 간 봐주던 제이슨이 결혼을 위해 한국에 두 달간 들어가야 했다. 제이슨은 임시로 벨라를 봐줄 수 있는, 그가 잘 안다는 여자를 소개했다. “좀 띨띨한데 개라면 환장해요. 아마 벨라도 좋아할 거예요. 어떨 땐 정신 수준이 개랑 비슷한 것 같기도 하거든요. 하하!” 그렇게 제이슨이 농담처럼 소개한 여자는 기대 이상의 즐거움을 그에게 가져다주었다. 그녀는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벨라의 일거수일투족을 찍어 그날 있었던 일들을 재미있는 일기 형식으로 꾸며 식탁 위에 놓고 가곤 했다. 뿐만 아니라 벨라를 소호 그랜드 호텔(Soho Grand Hotel)에 있는 Dog Restaurant(레스토랑에 개의 출입을 허가하고, 개 전용 메뉴도 있다)로 데리고 가 벨라의 남자친구도 만들어 주었다. 센트럴 파크에서 벨라가 다람쥐를 쫓는 모습도 순간 포착 사진으로 남겨 그에게 큰 웃음을 남겨 주는 훌륭한 독 워커였다. 그런 그녀 덕분에 벨라 또한 이전보다 더 활기차고 건강해진 것 같았다. 일주일에 두 번씩은 꼭 목욕을 시켜주는 독 워커 덕분에 벨라의 털은 더욱 윤기 있고 전보다 아름다워졌다. 유일한 가족이자 외로운 싱글 라이프를 위로 해주는 친구였기에 테렌스는 벨라를 애지중지했고, 그런 벨라를 아끼며 돌보아주는 새로운 독 워커도 무척이나 고마웠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언제부턴가 옷장 안에 걸리는 옷들의 순서가 바뀌고 있는 것도 그는 눈치챘다. 그는 지금껏 재킷은 재킷대로 셔츠는 셔츠대로 따로 분리해서 걸어 놓았는데, 이 새로 온 독워커가 그의 드라이클리닝한 옷을 받아 주고부터는 슈트와 셔츠가 한 옷걸이에 걸리기 시작했다. 게다가 그녀의 코디는 제법 세련된 편이었고, 덕분에 그는 아침마다 특별히 고민하지 않고 옷을 입을 수 있었다. 딩동! 밤늦은 시각에 울린 초인종 소리에 테렌스는 의아해 하며 현관으로 나갔다. 그가 문을 열기도 전에 불쑥 현관으로 들어온 사람은 그의 절친 중 한 명이자 아래층에 사는 이웃사촌 데이비드였다. “웬일이야? 이 시간에?” 데이비드는 맥켈런 18년산(고급 싱글 몰트 위스키의 한 종류) 한 병을 들고 있었다. 그리고 말 안 해도 용건쯤은 알지 않느냐는 투로 장난스럽게 테렌스의 팔을 한번 툭 치고 주방으로 가 온더록스 글라스에 얼음을 담아 식탁에 앉았다. “지난번에 먹고 남은 볶은 김치 있어?” “자식! 그것 때문에 이 늦은 시간에 왔단 말이야?” “아니, 뭐 너랑 이런 저런 얘기도 하고 싶고, 벨라 공주님도 보고 싶고…….” 데이비드는 겸연쩍은 표정으로 벨라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식탁 위에 있는 폴라로이드 사진을 집었다. “이 독 워커 완전 센스 있네. 나이가 어느 정도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시대만 잘 타고 태어났으면 디자이너 같은 거 했어도 크게 성공했을 것 같은데?” 데이비드는 테렌스가 식탁 위로 내어놓은 볶은 김치를 포크로 하나 가득 찔러 입으로 넣으며 우물거렸다. 테렌스는 그가 따라 준 위스키를 한 모금 삼켰다. 그의 말에 이주일 전 이 황당한 여자가 일을 하기 시작한 즈음을 기억해내자 절로 피식 웃음이 새어나왔다. 그녀가 벨라를 봐주기 시작한 지 며칠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하루 종일 오늘은 벨라가 어떤 하루를 보냈을까 궁금해하며 퇴근한 그는 기대했던 폴라로이드 사진 대신 구구절절한 내용이 담긴 편지 한 장과 마주했다. 벨라의 주인님, 죄송해요. 저 일 냈어요T_T’로 시작된 편지는 너무나 많은 ‘죄송하다’는 말 때문에 사실상 내용을 알아보기가 거의 어려웠다. 어쨌든 내용인 즉, 그날 벨라를 데리고 Dog Park(개의 출입이 허용되는 공원)에 가서 놀던 중 그녀가 던진 공이 다른 개에게 맞았고, 화가 난 그 개의 주인이 벨라의 주인인 자신과 직접 통화하기를 원한다는 내용이었다. 조금은 늦은 시간이었지만 테렌스는 남겨져 있는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깐깐하게 들리는 목소리의 나이든 여자는 수화기 너머에서 조금은 과장되게 설명을 했다. 그녀가 말하길, 그날 아침 그의 독 워커는 전직 투포환 선수인 양 가공할 만한 힘으로 공을 여기저기로 던져댔고, 신이 난 벨라는 공을 집으러 미친 듯 온 공원 안으로 헤집고 뛰어다녔다고 한다. 둘은 그렇게 공원을 점령했고, 다른 개들과 개 주인들은 위화감에 공원 한구석에 몰려 이런저런 얘기를 하던 도중이었단다. 그때 정신 나간 벨라의 독 워커가 던진 힘찬 공이 움직임이 아둔한 그녀의 프렌치 불도그의 복부를 가격한 것이다. 비명을 지르며 그녀의 개는 그 자리에 쓰러졌다. 놀란 그녀와 테렌스의 독 워커는 동물 병원으로 우르르 몰려갔고, 다행히 그녀의 프렌치 불도그는 의사가 던져 준 개 껌 하나에 잃었던 정신을 되찾았다. 지금은 멀쩡하지만 정신적 피해 보상을 원한다는 것이었다. 수화기에서 들려오는 짜랑짜랑한 목소리에 집중하는 대신 자신이 고용한 독 워커의 힘찬 돌팔매질과 침을 흘리며 공을 쫓아 다녔을 벨라를 상상하며 피식 웃던 테렌스는 결국 상대편이 원하는 것이 돈이라는 것을 깨닫고 정신을 차렸다. 테렌스는 물론 그녀가 고소를 해온다 해도 돈 한 푼 안 물어줄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변호사다. 하지만 그 정도 사건의 소송에 낭비할 시간이면 수십 배에서 많게는 수백 배의 돈을 더 벌어들이기 때문에 간단히 돈으로 해결하기로 마음먹었다. 병원비 삼백 불에 위로금 조로 천 불을 주기로 제안하자 깐깐하던 목소리는 어느새 버터 녹는 듯한 소리로 바뀌었다. 마지막으로 그녀는 테렌스에게 독 워커를 바꾸는 게 좋을 거라는 충고도 잊지 않았다. 개랑 그렇게 미친년 널뛰듯 뛰어 다니는 독 워커는 처음 봤다며, 분명히 정신적으로 이상이 있을 거라고도 했다. 다음날 사건이 원만하게 해결된 걸 알게 된 그의 독 워커 아줌마는 또 다시 장문의 편지를 써서 남겨 놓았다. 이번 편지는 ‘고맙다’는 말로 도배가 되어 있었지만 중점적인 내용은 자신이 그가 지출한 보상금을 갚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얼마에 합의를 봤는지 조심스럽게 물었다. 물론 테렌스는 그녀에게 돈을 받고 싶은 마음이 추호도 없었다. 그녀가 잘못한 것이 있다면 그가 아끼는 개와 즐겁게 놀아주려 한 것뿐이다. 실수는 실수로 덮어 두고 싶었다. 테렌스는 편지를 접어 서랍에 넣다가 문득 든 생각이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 그 일이 터지기 며칠 전이었다. 테렌스는 그녀가 가져와서 먹은 것으로 보이는 도시락을 주방 한편에서 발견했다. 그는 무심코 ‘이게 뭔가?’하는 호기심에 그저 뚜껑을 열어 봤다. 그 사소한 행위가 큰 실수로 이어진 계기가 된 것은 나중에 깨달은 사실이었다. 자그마한 도시락 통 안에는 고소한 냄새를 풍기는, 참기름에 볶은 김치가 거의 손도 대지 않은 채 담겨 있었다. 테렌스는 오랜만에 맡는 볶은 김치의 강렬한 냄새의 유혹을 참지 못하고 맛만 보자는 핑계로 한 조각 집어 입에 넣었다. 순간 그의 미각이 환호를 내질렀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체면상 남이 싸온 도시락을 다 먹어 치울 수는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매콤하고 달달한 볶음 김치의 맛이 너무 아쉬워 그는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 테렌스는 미국에서 태어나 자란 2세 한국인이다. 그의 가족은 미국인 속에 섞여 살기는 했지만 항상 한국 문화와 음식은 생활속에 녹아 있었다. 그의 부모님은 테렌스에게 자신의 뿌리를 잊지 말라는 조언과 함께 예의 바른 한국인으로 키우려 애쓰셨다. 게다가 어렸을 적 그를 키워 주던 보모 역시 한국에서 막 이민 온 토종 한국인이어서 여러 가지 한국 음식으로 그의 입맛을 길들여 놓았던 것이다. 지금은 맨해튼에 혼자 살고 있어서 한국 음식을 접할 기회가 거의 없지만, 그의 입맛은 아직도 옛 맛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날 독 워커의 도시락으로 인해 잊고 있던 그의 한국적인 미각이 다시 깨어난 것이다. 염치없이 그녀에게 음식도 좀 부탁해볼까, 하며 이런저런 고민을 해왔던 테렌스는 오히려 구실을 찾아내게 해 준 이번 사건이 고마웠다. 결국 그는 처음으로 독 워커에게 편지를 썼다. 이번 사건은 별 무리 없이 해결되었으니 잊어버리고 정 자신에게 고마운 생각이 든다면 수고스럽겠지만 한국 음식을 좀 해줄 수 없겠냐는 내용이었다. 그녀는 여부가 있겠냐는 듯, 아니 마치 오히려 기다렸다는 듯이 다음날부터 볶은 김치 이외에 잘 재운 갈비와 밑반찬까지 냉장고가 가득 차도록 넣어 주었다. 그리고 테렌스는 벨라를 봐주는 수고비 이외에 음식 재료비 명목으로 적지 않은 돈을 매일 봉투에 넣어 식탁 위에 올려놓았던 것이다. “야! 우리 그녀에게 한국식당을 하나 차려 주자! 매일 가서 밥 좀 먹게.” 용건은 테렌스가 아니라 볶은 김치임을 이제 숨기지도 않는 데이비드. 그도 어린 시절 미국으로 온 이민 1.5세였고 테렌스 못지않은 한국 음식 추종자였다. 그래서 그는 제 친구에게 우연찮게 떨어진 행운이 덩달아 반가웠다. 테렌스는 냉장고에서 파이렉스 통 하나를 꺼내 열면서 데이비드에게 내밀어 보였다. “이거 읽어봐.” 파이렉스 반찬통 위에는 앙증맞은 글씨로 적힌 메모지가 한 장 붙어 있었다. [이 구아다 치즈 (Golda Cheese 젖소 밀크로 만든 오렌지 빛 노란색의 네덜란드 식 치즈)를 볶은 김치와 함께 싱글몰트 위스키(한 가지 곡류에서 증류한 브랜딩 되지 않은 고급 위스키)를 마실 때 같이 곁들어 보세요. 색다른 경험일 거예요.] 데이비드는 얼른 주사위 크기의 치즈를 볶은 김치로 싸서 입에 쏙 넣고 위스키 한 모금을 곁들였다. 그리고 이내 테렌스를 그윽한 눈길로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아, 그녀는 Hell’s Kitchen에 출연해서 고든 램지(성격 괴팍하고 욕잘 하기로 유명한 영국 출신 스타 셰프)의 뺨을 때리고 나올 수 있을 거야. 다음에 혹시 만나면 물어봐줘. 우리 집에도 와서 요리해줄 수 있냐고. 내가 보수는 두둑이 드리겠다고.” 테렌스는 친구의 예찬에 가지런한 하얀 이를 드러내며 만족한 웃음을 띠었다. 그리고 데이비드의 잔에 자신의 잔을 살짝 부딪치고 풍부한 위스키의 향을 한껏 맡으며 달게 삼켰다. --- 본문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