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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취도 바람 곰의 나라 비 맞는 여인 경매 이웃 모래와 모래 사이 새 향 유기농의 사랑 늘 보는 그 사람 영원한 방 회오리 돌을 나르는 사람 악어 숲 우산 금욕 마법의 의자 역에서 분서 이불 가지 자르기 사랑의 힘 제품의 효용 지혜의 문 불륜 벌레 사라의 문 어느 턱시도 사나이를 위한 발라드 담배의 해독 새벽의 사람 마그리트 풍경 비 환상지 뻐꾹아씨, 뻐꾹귀신 신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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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할 무렵에는 저들끼리 죽네사네 하던 사이다. 그 틈에 끼어 심심치 않게 얻어먹은 복지리니 파스타니 스테이크 따위를 곰곰 생각하고 본즉, 값보다는 그 향기가 더 짙다. 이럴 수가 없다 싶어 며칠 뒤에 나는 K에게 이메일로 일필을 초했다.
- ‘사랑에 살고 노래에 살고’라는 아리아가 있잖아. 누가 그 아리아를 부르든 그네를 타면 그것을 흔드는 것은 노래요 그것을 멈추는 것은 사랑일세. - 낙타가 한 마리가 있다고 치세. 앞 등에 튀어나온 혹이 노래라면 뒷등에 붙은 혹은 역시 사랑일세. - 정밀한 눈금의 자가 한 개 놓여 있네. 처음 눈금이 노래라면 끝의 눈금은 어쩔 수 없이 또 사랑일세. 더 무엇을 설명하리. 재고하소. 대충 이런 내용의 편지였는데, 한 주일이 더 지나 K에게 서 온 답장은 과연 요령부득의 것이었다. --- pp.9-10 “도대체 뭘 확인하겠다는 거야?” 드디어 화가 치밀어 올라 나는 그녀를 닦아세우기 시작했다. “떠나고 난 뒤에도 모두들 당신을 생각하고 있다고 상상했다면 그건 오산이야. 한 번 어긋나면 그만야 이놈의 서울이란 데는. 아니 이놈의 세상이란 데는……. 더구나 사내놈들을 그런 식으루 유장하게 봐서는 안 돼. 믿어서두 안 되구. 설령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나타나 봐. 모두 그때뿐이지. 스치고 나면 곧 잊어버린단 말야. 몇 시간을 줄창 한 여자만 생각하고 있을 수 있는 놈팽이가 있다면 내 당장 절을 올리지.” 그녀는 화가 난 듯한 단호한 눈빛으로 빤히 나를 올려다보고 있더니 결심한 듯이 이윽고 이를 악물었다. “그래요 우리 한 군데만 더 가요.” --- pp.153-154 응축된 사지의 긴장을 풀어 버리기 위해 오랜만에 도장엘 들렀다. 모두들 반가워해 주었다. 나보다 한 수 높은 녀석을 2단 옆차기로 보기 좋게 메다꽂았다. "좋긴 한데…… 어쩐지 난해. 어디 나하고 한번 겨뤄 볼까?" 라고 도수님이 말했다. 그가 자세를 잡으려고 돌아서기 직전에 나는 몸을 솟구쳐 공중을 날아 벽공치기로 늙은 도수의 목을 걷어차 버렸다. 시멘트 벽에 부서져라 머리통을 들이받고 나가떨어져 뒹구는 도수님에게 달려가 나는 그 어깨를 부축했다. 도수님은 실신한 듯이 멍하니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이로써 이 도장도 끝장이다. 만약 다시 여길 오면 늙은 도수님의 주먹치기와 돌려차기에 내 어개와 등뼈는 남아나지 않으리라. --- p.256 저승사자는 아파트의 정문을 좋아하지 않는다. 떄가 되기도 전에 찾아오는 그 반갑잖은 손님이 처음 모습을 드러내는 곳은 후문 쪽이다. 옛날에는 깊고 음습한 숲속이거나 이끼 내음 풍기는 늪 변두리 같은 데가 그 현현처이자 회귀장소로도 알려져 있었으나 요즘 세상에 그런 '전설의 고향'을 믿을 사람은 아무 데도 없다. 후문 쪽은 우선 제지하는 횟수가 적어서도 편리하겠지만, 세상이 아무리 달라졌다고 한들 그렇게 은밀히 스며들어 놀래켜 줄 정도도 못 되면 명부 염라왕의 질책과 뭇 동료 악귀들의 손가락질을 면키도 어려우리라. 사신 혹은 죽음의 전령이라고도 불리오는 그 저승사자는 한순간 말끔하게 아파트 주민의 하나로 몸을 바꾸고, 철책도 표지도 시늉뿐인 그 쓸쓸한 후문입구로 들어선다. --- p.2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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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 리얼리스트의 대열에서 삐어져나온 고독한 소설가
예술의 중심에서 시대의 예술사를 쓴 장인의 종합선물세트 1953년 제1회 학원문학상을 받고 1956년 《새벗》에 〈수정구슬〉이 당선되며 데뷔한 이제하는 스스로가 자신의 초기 작품들을 ‘환상적 리얼리즘’이라 일컬은 이래 계속해서 독특한 작품세계를 구축해 왔다. 또 가수 조영남이 부른 ‘모란동백’의 원곡자인 가수이자 화가, 시인, 소설가로서 등단 56년 동안 음악, 미술, 문학 등 전 방위 예술의 중심에서 활발한 예술활동을 펼쳐온 장인(匠人)이기도 하다. 때문에 이번 작품집은 독자들에게 이제하 예술의 진수를 어떻게 보다 잘 전달할 수 있을까 고심하였다. 이에 작가가 그간 천착해온 주제들을 중심으로 ‘이제하 문학’을 대표할 만한 작품들을 다듬어 수록했고, 거기에 화가로서 그림을 한 편씩 그려 붙였다. 더불어 초판한정으로 ‘이제하 노래모음’ CD를 붙였으니, 이제하 예술의 백미를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생동감 있는 문장들로 그려낸 마술적 리얼리즘의 절경 삶이라는 파도를 헤쳐 나가는 인간에 대한 찬가 평론가 김화영은 그의 평론에서 “이제하의 인물들이 불구상태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삶의 통속성, 문화의 진부함, 시대의 조촐성 때문이다. 본원적인 충동의 모습이나 동경의 모습은 뒤죽박죽된 무질서의 모습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김화영의 말에서처럼, 이제하의 작품에서는 소설기법의 틀을 깨거나 비일상적인 소재를 택해 무질서하게 느껴지는 세계를 만나게 된다. 곰과 사람이 공존하고 구름을 입속으로 빨아들이는 기이한 마술이 펼쳐지고 개와 사람의 환영이 한데 뒤엉키며, 심지어 10년 전 죽은 아내와 호텔에서 하룻밤을 보낸 이야기까지 등장해 우리의 눈과 귀를 어지럽게 한다. 현재와 과거, 환상과 현실의 경계가 사라지고 독자들의 머릿속에 정비돼 있는 일반 소설의 틀이나 법칙들이 한순간에 무너져버린다. 그런데 이러한 고의적 불편이 해묵은 안도감을 파괴하고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참다운 모습, 우리와 세계, 인간과 인간, 인간과 사물 사이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들춰낸다. 이에 독자는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신기한 상황에 매혹되며 호기심에 호기심을 더하게 된다. 그의 작품세계의 절정에 서 있는 이번 소설집《코》에는 작가 특유의 에로틱한 상상력, 자연 풍광의 서정적 재현, 사투리와 신세대 언어를 한데 아우른 노장의 능란한 기예와 실험정신이 깃들어 있다. 《코》에 실린 짤막짤막한 글들에 담긴 인간 군상의 다양한 감정과 행태에 ‘진짜 삶’이 녹아 있고, 이에 삶의 위대함을 실감할 수 있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