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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성란 저
이룸 2012.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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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저자 소개 1

Seong-nan Ha,河成蘭

깊은 성찰과 인간에의 따뜻한 응시를 담아낸 섬세한 문체로 주목 받아온 작가다. 1967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하였다. 199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풀」이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하였다. 탁월한 묘사와 미학적 구성이 묵직한 메시지와 얼버무려진 작품을 쓰며, 평소 일상과 사물에 대한 섬세한 관찰과 묘사가 뛰어나다는 평을 받는다. 자신의 대답을 적어 내려가는 노란 메모 노트를 늘 인터뷰 시에 지참한다. 이러한 습관을 통해 작품 속 작은 에피소드에서도 깊이 생각할 수 있는 내용들을 담아낸다. 거제도가 고향인 부친이 서울에 올라와 일군 가족의 맏딸
깊은 성찰과 인간에의 따뜻한 응시를 담아낸 섬세한 문체로 주목 받아온 작가다. 1967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하였다. 199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풀」이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하였다. 탁월한 묘사와 미학적 구성이 묵직한 메시지와 얼버무려진 작품을 쓰며, 평소 일상과 사물에 대한 섬세한 관찰과 묘사가 뛰어나다는 평을 받는다. 자신의 대답을 적어 내려가는 노란 메모 노트를 늘 인터뷰 시에 지참한다. 이러한 습관을 통해 작품 속 작은 에피소드에서도 깊이 생각할 수 있는 내용들을 담아낸다.

거제도가 고향인 부친이 서울에 올라와 일군 가족의 맏딸이기도 한 그녀는, 부친의 사업 실패로 인문계 고교 진학을 포기하고, 여상(女商)을 졸업한 뒤 4년 동안 직장생활을 하면서 청춘의 초반부를 보냈다. 뒤늦게 서울예전 문예창작과에 진학해 소설을 쓰면서 '언젠가는 그 소설의 울림이 세상의 한복판에 가 닿는다고 믿는 삶'을 꿈꿨다.

습작시절, 신춘문예 시기가 되면 열병을 앓듯 글을 쓰고 응모를 하고 좌절을 맛보는 시기를 몇 년 간 계속 겪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1996년 그녀가 스물 아홉이던 해, 첫 아이를 업은 상태에서 당선 소식을 받았으며, 1990년대 후반 이후 늘 한국 단편소설의 중심부를 지키고 있다.

일상과 사물을 세밀하게 묘사하는 스타일로 '정밀 묘사의 여왕'이란 별칭을 얻으면서 단편 미학을 다듬어온 공로로 동인문학상(1999)·한국일보문학상(2000)·이수문학상(2004)·오영수문학상(2008)을 잇달아 받은 중견작가이다. 그녀의 소설은 지나치게 사소한 일상에 몰두하다 보니 사회에 대한 거시적 입장이 약하다는 지적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인간 심리와 사물에 대한 미시적 묘사를 전개하면서 특유의 섬세한 문체로 곰팡내 나는 쓰레기 더미 속에 숨어 있는 존재의 꽃을 찾아간다'는 1999년 동인문학상 심사평은 여전히 하성란 소설의 개성과 미덕을 잘 말해준다.

대학 동문인 부군과 함께 운영하는 출판기획사에서 일하면서 창작활동도 병행하고 있다. 이 곳은 그녀에게 생긴 첫 작업실이기도 한 셈인데, 그 전에는 부엌과 거실 사이에 상을 하나 펴놓고 새벽녘 텔레비전에서 계속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글을 썼다. 어느 대학 기숙사에 방을 얻어 한 달 동안 글 쓰겠다고 들어간 적이 있었는데, 결국 한 줄도 쓰지 못하고 나왔다고 한다. 2009년부터 방송대학TV에서 '책을 삼킨 TV' 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으며, 얼마 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심사위원으로 작품을 심사하기도 하였다. 현재 살아있고 같이 활동하고 있는 작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받으며, 특히 '권여선' 작가의 글을 좋아한다.

저서로는 소설집 『루빈의 술잔』, 『옆집 여자』, 『푸른 수염의 첫번째 아내』, 『웨하스』,『여름의 맛』 장편소설 『식사의 즐거움』, 『삿뽀로 여인숙』, 『내 영화의 주인공』, 『A』, 사진산문집 『소망, 그 아름다운 힘』(공저) 등이 있다. 최근 동료 여성작가들과 함께 펴낸 9인 소설집 『서울, 어느날 소설이 되다』에 단편 「1968년의 만우절」을 수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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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2년 10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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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용량
EPUB(DRM) | 6.93MB ?
글자 수/ 페이지 수
약 13.9만자, 약 4.6만 단어, A4 약 87쪽 ?
ISBN13
9788987905235

책 속으로

친애하는 고스케에게
며칠동안 불길한 꿈을 꾸었다. 내가 계획하는 것은 하늘을 속이는 일이다. 나는 아주 조용히 이 일을 계획하고 있다. 우린 쌍둥이니까 생각보다 일이 쉬울 수도 있을 것이다. 자전거 경주에서 진명이를 따돌릴지는 자신할 수 없다. 그애는 자전거로 외줄타기도 할 수 있는 아이다. 하지만 열심히 페달을 밟을 것이다. 이 일이 성공하면 이 편지가 너에게 보내는 마지막 편지가 될 것이다. 늘 행운이 함께 하길.
이선명.

--- p.245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는 환자들의 몇은 침묵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그곳에 감금된 것인지도 모른다. 무엇을 이야기해야 하고 무엇을 말하지 않아야 하는지쯤은 잘 알고 있었다. 꽁치구이를 담을까, 샌드위치를 담을까. 접시에 무엇을 담을 것인가에 대해선 얼마든지 이야기해도 되지만 순식간에 날아왔다가 사라진 접시 모양의 비행 물체에 대해선 침묵할 줄 알아야 한다.

--- p. 52

잠에서 깼을 땐 이미 깊은 밤이었다. 윤미래는 없었다. 그리고 윤미래의 소지품이 모두 없어졌다. 내 것뿐인 방안을 둘러보다 허겁지겁 외투를 입었다. 마침 달려오는 빈 택시를 발견했고 손을 흔들며 도로로 뛰어들었다.

--- p.222

'이진명이라고 불러봐. 진명아, 하고 불러보란 말이야'

얼굴이 실내복 상의에 묻혀 있었지만 윤미래가 당황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천을 통해 나온 목소리는 그것을 숨기지 못했다.

'내가 네 이름도 모를까봐?'

--- p.209

유리창으로 내 얼굴이 고스란히 반사되고 있었다. 아주 오랫동안 방치해 둔 것처럼 내 얼굴은 나조차도 낯설었다. 어두운 실내 탓도 있었겠지만 내 얼굴은 마흔 살이 넘은 여자처럼 고단해 보였다. 네가 이진명이니? 잠시도 떠들지 않으면 못배기던 그 아이니? 나는 유리창에 비치는 내 얼굴이 익숙해질 때까지 그곳에 서 있었다.

--- p. 156

'아무도 없다. 지금쯤 아이들은 식당에 모여 춤을 추고 있을 거다. 살짝 빠져나왔는데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벽은 온통 낙서투성이다. 아주 오래된 낙서도 보인다. 낙서를 남긴 아이들 중의 몇은 아버지가 되었을 거고 몇은 군에 가 있을 거고 몇은 프레스 기계 앞에서 졸며 야간 근무를 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불행한 몇은 울고 있을 거고 행복한 몇은 웃고 있을 것이며 몇은 사랑하는 여자와 밤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몇은 다리가 부러지거나 가벼운 교통사고로 병원에 있을지도 모른다. 바라건대 그 모든 이들의 생이 이 낙서들처럼 가볍고 유쾌하기를...'

--- p.200

선명이의 사고 후에도 여전히 밥을 먹고 잠을 잤으며 한 문제라도 더 맞히기 위해 서점을 들러 요점정리가 된 문제집을 사들였다. 선명이가 죽었는데도 학교는 계속 문을 열었고 은행과 공공기관들은 정시에 일을 시작하고 정시에 문을 닫았다. 구청의 국기 게양대의 꼭대기에는 태극기가 힘차게 펄럭이고 있었다.

베란다 홈통에는 등하교 때 타고 다니던 자전거가 묶여 있었다. 자전거를 이곳에묶어둔 후 어머니는 열쇠를 베란다 밖으로 내던졌다. 자전거를 타는 대신 버스로 학교에 갔다. 버스는 늘 만원이었다. 정류장에 서 있던 중고등학교 학생들과 직정인들은 지각하지 않기 위해 채 서지도 않은 버스를 향해 하루살이처럼 달려들었다. 나는 늘 더뎠고 뒤로 처졌다. 자꾸 버스를 놓쳤다. 학교까지는 버스로 여덟 정거장이었다. 책가방을 가슴에 안고 학교까지 전력질주했다. ....

체육 선생이 앉은 철제 의자는 낡은 것 같았다. 몸의 중심이 흔들릴 때마다 넘어질 듯 기웃뚱거렷다 선생은 중심을 잡기 이해 양다리를 45도 각도로 벌리고 앉아 있었다. 개고한 지 45년이 된 이 사립 학교에서 낡지 않은 것이라고는 딱 두 개 뿐이었다. 새로 부임한 고장 선생님의 책상과 등받이가 긴 안락의자였다. 내가 썼던 책상에만 해도 15년은 넘었음직한 낙서들이 남아 있었다. 지금쯤 아이의 엄마가 되어 있을 그 학생은 시험 시간에 필요해서 교과서의 내용들을 일부분 베껴놓은 것 같았는데 이미 우리가 쓰던 교과서에 없는 내용이었다.

체육선생은 모의 체력장의 오래 달리기에서 과속을 했던 날 기억하고 있었다. 늘어진 테이프처럼 난 뛰고 싶다는 말만 되풀이했고 좀 흐운했다. 그는 참을성 있게 내 이야기를 끝까지 들었다. -중략- '오래 달리기를 할 때야 너라는 걸 알아봤다. 참 이상도 하지. 가까운 곳에서는 못 알아보다가 먼 곳에 잇을 때야 알아볼 수 있는 것들이 있으니까. 아이들을 제치고 그렇게 먼저 튀어갔으니 눈에 띄지 않을 수 없었지. 너 때문에 뒤에서 뛰던 아이들도 덩달아 속도를 내더구나. 종종 사고가 있던 종목이라 난 널 말려야 했다. 너 때문이 아니라 널 쫓아 달리는 아이들 때문이었다. '

한참 뜸을 들인 후 선생은 어렵게 이야기를 꺼냈다. 뭔가 생각할 때면 장갑 틈새를 누르는 게 습관인가 보았다. '그리고 네가 그 쌍둥이 중의 한 명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 성의 없이 발끝으로 차대는 축구공은 자꾸 운동장을 벗어나 관람석 쪽으로 달려갔다. 오합지졸이었다.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될 수 없다는 것 안다. 외려 그런 말들이 너에겐 가지가 되 거라는 것도 잘 안다.' 선생이 관람석 쪽에 눈을 두었다. 바람은 작은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지나갔다.

--- p.

빌딩의 회전문에서는 너무 서둔 나머지 다른 사람이 들어가 있는 칸에 들어가버리고 말았다. 황당했는지 내게로 향한 중년 사내의 뒷목덜미가 붉게 달아올랐다. 로비에 들어서고도 그 남자에게 사과의 말 한 마디 건넬 수 없었다. 마침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고 전속력으로 달려가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키가 잘닥막하고 정수리까지 머리가 벗어진 중년 사내가 손수건을 꺼내 넓은 이마의 땀을 훔치는 것이 보였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혔을 때에야 비로소 숨을 고를 수 있었다. 블라우스의 겨드랑이가 땀으로 푹 젖었다. 이마에 달싹 달라붙은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빗어올렸다. 일레베이터 걸이 조용히 웃으면서 날 지켜보고 있었다. 낯선 얼굴이었다. 새로 입사한 직원인가보았다. 마네킹처럼 자그마한 얼굴에 계란만한 광대뼈 두개가 도드라져 있었다. 머리카락이 플러내리지 않도록 머리 곳곳에 여러개 의 실핀이 꽂혀 있었다. 새로 입사하셨군요. 15층 부탁합니다. 기계음처럼 단조로움 목소리로 여자가 속삭였다.

--- p.63

'버스에서 널 몇 번 보았다. 교복을 입었을 때는 먼 곳에서도 우리 학교 학생인지 아닌지 한눈에 알아 볼 수 있었는데 교복 자율화가 되고 부턴 도무지 알아 볼 수가 있어야지. 맨 처음엔 웬 사내 녀석 하나가 뛰고 있군. 했었다. 그 다음엔 사내 녀석이라고 하기엔 체격이 좀 작군, 했다. 몇 번 본 후에야 사내 녀석이 아니라는 확신이 섰다. 어쩐지 동작이 좀 어설펐거든, 대체로 여학생들은 두 손을 가슴 쪽으로 모으고 뛰는 습관들이 있는데 네가 그랬다. 버스 안에 있던 남자애들이 뛰고 있는 널 두고 이야기하는 걸 들었다. 우리학교 학생이라는 것도 그래서 알았다. 그 애들이 널 뭐라고 부르던데......'

야! 달리는 아이. 그게 네 별명이야 김동휘의 얼굴이 떠올랐다 3학년을 3년째 다니지 않는다면 그 애도 원서를 낼 대학을 고르고 있는 중일 것이다. 수업 시작종이 울리고.......

--- p.47-48

담임 선생의 호언장담과는 달리 대학엔 입학하지 못했다. 예상밖의 일이란 도처에 도사리고 있었다. 선생이 말했던 풀밭이 결코 안전한 곳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풀밭에도 엄연히 생존경쟁이 펼쳐지고 있었다. 사마귀는 개구리에게 개구리는 뱀에게 먹히게 마련이다. 선명이는 자전거로 정글 속을 달리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그 아이는 안전한 인도에서 한 번도 벗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따금 인도로 뛰어드는 트럭이 있었다.

--- p.53

달빛이 비추는 돌멩이를 따라가듯 기억을 더듬었다.단정하게 양복을 입고 서류가방을 든 사람들과 마주칠 때마다 가슴을 졸였다.시간은 걸렸지만 한 번도 틀리지 않고 그 카페를 찾아냈다.우리가 첫손님이었다. 김정인과 앉았던 그 자리에 윤미래와 앉았다. 유미래는 소파에 깊숙이 몸을 묻으면서 이곳 저곳을 둘러 보았다.

--- p. 109

'넌 불안해 하면서 선명이의 뒤에 숨어 있었지. 넌 그때 선명이가 되고 싶어했어. 자신에게 불만이 많았거든.'

선명이의 침착함이 부러웠었다. 그런 성격은 3분 먼저 태어난 누나인 내가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 p.211

남자를 만나고 생맥주에도 맛을 들이고 춤을 추러 가고 그런 일에 재미를 느낄 나이였다. 우리는, 윤미래는 한번도 날 이진명이라고 부른 적이 없었다. 벌떡 일어서 실내복의 상의를 벗는 윤미래를 향해 말했다.
"이진명이라고 불러봐. 진명아, 하고 불러보란 말이야"
얼굴이 실내복 상의에 묻혀 있었지만 윤미래가 당황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천을 통해 나온 목소리는 그것을 숨기지 못했다.
"내가 네 이름도 모를까봐?"
"그럴까? 그럼 왜 한번도 내 이름을 부르지 않니?"
외출복으로 갈아입은 윤미래가 머리를 동여맨 고무줄을 풀었다.
머리카락이 부스스 일어섰다. 책가방을 들고 문으로 향하던 윤미래의 등에 대고 난 하기 싫었던 말을 해야 했다.
"윤미래, 난 이진명이야. 똑똑히 봐두라구. 이 뺨에 상처 보이지? 난 선명이가 아니야. 선명이는... 선명이는 죽었어"
구두에 발을 꿰던 윤미래의 모이 정지 동작으로 굳었다. 잠시 후 거대한 보푸라기 같은 머리카락 너머에서 짧고 신경질적인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윤미래가 웃고 있었다.
"그런데 과연 네가 진명일까?"

--- p.209

남대문 시장에서 윤미래와 헤어진 후로 또 2년이 흘렀다. 가끔 삿뽀로의 시계탑을 떠올렸다. 하지만 그곳으로 떠나려는 일은 자꾸 연기되었다. 마감에 맞춰 원고를 번역하는 일에 중독되어 있었다. 소설들은 계획된 오해와 화해 그리고 해피 엔드를 반복할 뿐이었다. 작은 거실 한 귀퉁이에는 여전히 토마의 밥그릇이 놓여 있었다. 가끔 그곳에 물을 따라두었다. 물 그릇이 비면 건조한 공기 때문에 증발한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누군가 와서 먹고 갔을 거라고 생각했다.

밤을 새워 작업한 원고를 출판사에 넘기고 돌아오는 전철 안에서 등산을 하고 돌아오는 등산객들을 마주칠 때가 있었다. 등산 장구로 가득 찬 커다란 배낭과 밑창이 두툼한 등산화, 땀 냄새가 전 등산복들을 볼 때마다 어디 갔다오느냐고 말을 붙이고 싶어졌다. 인파 속으로 사라지던 윤미래의 뒷모습이 떠올랐다.

--- pp.233-234

그때 나는 또 한 번 그 목소리를 들었다. 여전히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분명히 사람의 목소리였다. 단조로운 기계음이나 동물이 짖어대는 소리가 아니었다. 아주 짧은 동안이었고 목소리의 주인이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알 수 없었지만 폐와 황경막, 후두와 목젖, 혀끝을 거쳐 이끌려 올라온 울림이 있는 목소리였다.

--- p.12

"달리는 아이 맞지? 나야,나. 생각 안 나?"
그 남자가 집게 손가락으로 자신의 귀를 우스꽝스럽게 잡아당겼다. 김동휘였다. 내가 자신을 알아봤다는 걸 감지한 김동휘의 귀가 살짝 접혔다 펴졌다.
"넌 여전히 특이하구나. 중앙선에 서서 대체 뭘하고 있는 거냐? 설마 여기 서서 날 기다린건 아니겠지?"
김동휘는 대학생이 되어 있었다. 신호등을 가리고 선 차는 대학교 농구단을 태운 버스였다. 정체가 풀리기 시작했는지 버스가 조금 앞으로 움직였다. 김동휘가 창밖으로 상체를 내밀었다.
"네 이름좀 알자."
"내 이름은...."
버스가 다시 1미터쯤 앞으로 달려가 멈추었다. 김동휘가 버스 운전사에게 소리쳤다.
"아저씨, 잠깐만요. 일초면 된다구요."

--- p.55

"달리는 아이 맞지? 나야,나. 생각 안 나?"
그 남자가 집게 손가락으로 자신의 귀를 우스꽝스럽게 잡아당겼다. 김동휘였다. 내가 자신을 알아봤다는 걸 감지한 김동휘의 귀가 살짝 접혔다 펴졌다.
"넌 여전히 특이하구나. 중앙선에 서서 대체 뭘하고 있는 거냐? 설마 여기 서서 날 기다린건 아니겠지?"
김동휘는 대학생이 되어 있었다. 신호등을 가리고 선 차는 대학교 농구단을 태운 버스였다. 정체가 풀리기 시작했는지 버스가 조금 앞으로 움직였다. 김동휘가 창밖으로 상체를 내밀었다.
"네 이름좀 알자."
"내 이름은...."
버스가 다시 1미터쯤 앞으로 달려가 멈추었다. 김동휘가 버스 운전사에게 소리쳤다.
"아저씨, 잠깐만요. 일초면 된다구요."

--- p.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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