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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중 南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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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김벽선(金璧善) 여사 한평생
하 영감의 신나는 한평생
남중(南中)

저자 소개 1

소설가이자 문학평론가이다. 경희대 국문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문학평론으로 당선, 문학평론가의 길로 들어섰다. 문학과 인문학을 종횡하다가 2019년 자전소설 『남중南中』으로 독서계의 주목을 받았고, 이후 젊은 시절부터의 꿈이었던 대하역사소설에 몰두, 『사국지』(전 5권)를 완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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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9년 10월 15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176쪽 | 352g | 128*190*15mm
ISBN13
9788960787094

책 속으로

어떤 치기(稚氣)

나의 유년기는 매우 지루했다. 동네 조무래기들과 어울려 노는 게 그다지 재미있지도 않았다. 혼자서 떠가는 하늘의 구름을 보거나 마당 한쪽에 쪼그리고 앉아 개미들의 꼬물꼬물한 행렬을 구경하며 놀았다. 파리의 사체 같은 게 있으면 개미들은 자기 덩치의 수십 배나 되는 그 거대한 물체를 힘을 합쳐 자신들의 아지트로 끌고 들어가곤 했다. 가끔은 개미들끼리 전쟁이 일어나기도 했다. 그렇다고 늘 개미만 보고 있을 수는 없었다. 철둑에 가서 지나가는 기차를 구경하는 것도 재미난 일과의 하나였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부터는 책을 읽는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동화책 같이 스토리가 있는 글이 재미있었다. 이웃에 사는 인숙이라는 외가 쪽 친척 누나가 집에 놀러 올 때가 가끔 있었다. 스무 살 정도 되는, 소아마비로 한쪽 다리를 약간 저는 예쁜 누나였다. 그 누나가 오면 나는 내가 읽은 책의 스토리를 요약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인숙 누나는 내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주고 끝에는 꼭 이렇게 말했다.
“넌 어쩜 이야기를 그렇게 재밌게 하니? 나중에 소설가가 되겠구나.”
소설가가 무엇인지 몰랐을 때였다. 한 2, 3년 그렇게 내 이야기를 들어주던 누나는 서울로 시집을 가버렸다. 세월이 흘러 어머니 장례식 때 그 누나가 문상을 왔길래 그 이야기를 했더니, 누나는 그 일을 기억도 못했다. 나에게서 이야기를 들은 적도 없고 더군다나 자신이 그렇게 말한 적도 없다는 것이다. 내 기억의 혼선인지도 모른다.
--- p.8-9

“억울하다. 억울해.”
어머니는 늘 억울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셨다. 평범한 말이라도 같은 말을 여러 번 듣다보면 짜증이 나게 마련이다.
“뭐가 그렇게 억울하세요? 아들이 못해드리는 것도 아니고, 못 먹고 못사는 것도 아니고. 식구들 다들 건강하게 살고 있고…”
“그게 아이라 카이. 다른 할매들은 다 돈도 받고, 국가유공자고. 나는 청춘에 혼자되어 딸랑 니 하나 보고… 내 심정을 니는 모린다.”
내가 모를 리가 있나. 나도 50년을 더 살았다. 더군다나 문학을 전공했고, 평론 나부랭이를 쓰면서 인간의 궁극이 무엇인가를 꽤 열심히 탐구했다. 어머니가 왜 억울하다고 하는지도 잘 안다.
6·25 전쟁이 한창일 때 어머니는 시집을 갔다. 신혼 사흘 만에 군에 간 남편은 전사했다. 그 후 10년 정도의 세월이 흐른 뒤, 지나가던 영감탱이에게 몸을 허락해 낳은 아이가 나다. 그 그 영감탱이가 나의 아버지다. 어머니와 영감탱이가 같이 산 날은 일생을 다 합쳐봐야 채 몇 달 되지도 않는다. 그러니 당연히 인생이 억울하지.
--- p.16

영감은 1899년생, 돼지띠다. 19세기의 마지막 해인 1899년은 대한제국 광무 3년으로 고종이 황제였고, 한반도 최초의 철도 노선인 경인선이 개통한 해다. 아동문학가 방정환이, 미국의 소설가 어니스트 헤밍웨이와 일본의 소설가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탄생한 해이기도 하다. 내가 1961년에 태어났으니, 영감은 환갑이 지나서도 성적 능력의 발휘를 멈추지 않았던 것은 확실하다. 비아그라도 없었던 시대이니만큼 영감은 자기 자신의 내적인 추동력으로 나를 탄생시켰다.
나이로 보면 영감은 나의 할아버지뻘이었으므로 내가 좀 자라서도 영감의 대화상대로는 내가 너무 어렸던 모양이다. 영감의 말 중에 기억나는 건 별로 없다. 말을 했지만 내가 어릴 때여서 기억을 못하는 건지, 아니면 영감이 내게 한 말이 없었든지 둘 중 하나일 거다. 하지만 영감의 나를 바라보는 애매한 눈길은 생각난다. 자애로우면서도 안타까운 눈길. 귀여운 녀석, 이런 감정과 함께 현실적으로 자신의 나이를 생각하면 애비도 없이 살아갈 어린 아들의 수많은 날들이, 아니 안타까울 수 없었을 것이다.
--- p.79

아까시 꽃이 지고난 뒤, 첫 휴가는 아직도 먼 어느 날 나는 점심을 먹고 변소에 쪼그리고 앉아 배설을 즐기고 있었다. 봄철이면 가끔 철원 산악지대에는 맑은 날에도 돌풍이 불 때가 있다. 배설이 클라이맥스에 달하고 난 직후였다. 갑자기 윙하는 바람 소리와 함께 돌풍이 변소 주위를 몰아쳤다. 시멘트 블록 벽이 들썩거렸다. 다시 바람 소리가 들리더니 우당탕 소리가 나고 변소가 순식간에 환해졌다. 돌풍이 변소 지붕을 날려버린 것이다. 지붕이 있었던 사각형의 공간으로 햇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쪼그리고 앉은 자세로 눈을 들어 위를 보니 푸른 하늘에 눈부신 태양이 빛나고 있었다.
이게 남중이다. 태양과 하늘과 내 입과 내 몸의 내장과 항문이 지구의 구덩이와 일직선으로 놓이는 그 통쾌한 순간이 바로 남중이다.

--- p.122

출판사 리뷰

남중은 삶의 순간적 황홀!
남중(南中)은 남자 중학교(男中)가 아니다. 태양이 당신 머리 바로 위에 위치한 바로 그 순간이 남중이다. 남중은 삶의 순간적 황홀이다. 우주적 질서 속에서 태양과 지구와 당신이 일직선상에 놓이는 절대적인 순간이다.

남중 때 삶은 찰라적으로 황홀하다. 연작소설 『남중』은 ‘나는 왜 태어났는가’와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소설적 통찰이면서, 혼란한 시대를 본능으로 관통한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삶을, 그리고 그들이 잉태한 한 생명이 무슨 생각으로 삶을 살아가는지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짧은 소설이되 많은 이야기를 담기 위해 옴니버스식 일인칭 소설의 형식을 빌렸다.

다시, 작가의 말
대저 글이란 다 같다. 사람을 울고 울리는 신기묘묘한 소설이나, 짧게 감명을 주어 이마를 뚫어 돌출하는 시나, 머리를 복잡하게 굴려 논리적으로 작품을 해명하는 평론 모두 글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한다는 점에서는 다 같다. 그때그때 우연이 작용하거나 세속이나 시류에 따라 혹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글의 양식이 달라졌을 뿐이다.

세 편의 소설 중 두 편은 행장이라 이름을 붙여도 된다. 행장(行狀)이란 오래된 글 양식으로 자손이나 제자가 고인(古人)에 대한 여러 사항이나 살았을 적 언행을 기록한 글이다. 행장이 연장되면 전기가 되고, 역사가 된다. 가령 위대한 인물의 행장이라면 인류에게 지속적이며 고착적인 지혜의 보고로 칭송받는다. 『논어』나 플라톤의 『소크라테스의 변명』이나 부처의 가르침을 기록한 『숫타니파타』가 그런 경우다. 인류의 스승으로 칭송받는 그 분들의 위대한 행장과는 비교도 되지 못하는, 초라하고 졸렬하여 역사에 거의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한 두 사람의 행장을 굳이 세상에 내놓는 이유는, 그것대로의 미시적인 기록물로의 가치가 존재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김 여사나 하 영감과 같은 하찮은 사람들의 세속적인 인생을 기록하기에는 소설의 몸피가 가장 어울리는 것이다.

이 세 편의 소설은 따로 떨어져 있는 것 같이 보여도 내적으로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나’라는 화자가 동일 인물이기도 하려니와 내용상으로도 어느 정도는 맞물려 있다. 치열한 작가 의식이 없기도 하거니와 길게 여러 편 장편으로 쓰는 건 이미 유행이 지나버렸기에, 생략하고 빠뜨리고 하여, 뼈대만 앙상하게 남기고 서로 뼈 하나씩을 걸치게 하여 연작소설이라 우겼다.

자전소설이건 연작소설이건 간에 그 형식이 무엇이 중요하겠는가. 소설은 독자 입장에서 보면 재미를 생명으로 한다. 그렇기에 독자께서 이 책을 재미있게 읽었으면 좋겠다. 재미가 없다면 이 소설이 너무 고급스러운 탓이다. 그렇다고 해도 그 재미없음에 대한 책임은 저자인 나에게 있다. 문학 교육이 잘못되었다고, 너무 재미있는 정치 때문이라고 핑계를 댈 수는 없다.

문학적 상상력으로 맛보는 삶의 황홀경!

소설 「하 영감의 신나는 한평생」의 주인공 하 영감은 자전소설 「남중」의 ‘나’보다 더 작가 자신을 연상케 한다. 스스로의 내면과 뿌리를 돌아보고 환부와 흉을 세세히 살피는 일은 인지상정의 심적 저항을 불러일으키게 마련이다. 하지만 어쩌랴. 작가는 그것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을. 진정한 작가라면 주머니 속의 송곳처럼 자신의 천성이 피부를 뚫고 나올 때 그것을 가감 없이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그 과정마저 자세히 관찰해 글로 남기는 법이다. 자전적 소설인 「남중」에서 명옥헌의 배롱나무를 보면서 황홀경에 드는 장면은 ‘자연히 그리하지 않고서는 배길 수 없는’ 작가의 특성을 보여준다. 그런 자신에 대한 성찰과 보편적 자아로의 귀결이 좋은 소설의 몸을 이룬다.

평론과 낚시가 논리와 과학, 기술로 만들어졌다면 소설은 공감의 언어로 구성되어 있다. 구체의 언어이며 삶과 체험에서 길어 올릴 수 있는 살아 있는 언어이다. 공감은 감동과 공명을 불러온다. 그 설득력은 논리로 얻을 수 있는 것에 비할 수 없이 크다. 또한 따뜻한 생기가 있고, 생명력이 오래 간다.

「하 영감의 신나는 한평생」, 「김벽선 여사 한평생」을 통해 나는 하응백이 어떻게 해서 ‘생산자’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는지, 호탕한 웃음 속에 은은한 배음처럼 서려 있는 짙은 서정이 어디서 연유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그의 이야기에는 치우침도, ‘속임(僞)’도 없다. 속진의 통속성에 매몰되지 않는 진정한 삶, 세세한 성찰에서 우러나온 문장은 진진하며 진실하다. 이 울림은 쉽사리 잊히지 않을 것이다. _ 성석제(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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