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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마을 하늘 어금니 여름 빗속에서 시퍼런 테러리스트 기다릴 것도 없는 8월이라며 잃어버린 계절 가을 여행 창공의 중심에서 조어(鳥語)의 가을 전설이문(傳說異聞) 희미한 전언 두개의 옥수수 녹스는 풍경 여름 그후 겨울 이토록 멀어져버리고 나뭇잎 한장 뛰다 겨울의 보금자리 구멍 수국의 싹 사람은 흩어지고, 쌓인다 그림자는 자라고 봄 이 무명(無明)의 시각을 귀향 바람에 날려 저 멀리 목련 이어지다 언젠가 누군가 또 4월이여, 먼 날이여 봄에 오지 않게 된 것들 시인의 말 옮긴이의 말 |
金時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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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민망해서 그만두기는 했지만, 생각 같아서는 ‘김시종 서정 시집’이라고 이름 붙이고 싶던 시집이다. 일본에서는 특히 그렇지만, 서정시라고 불리는 것의 대부분은 자연에 대한 찬미를 기조로 노래해왔다. 여기에서 ‘자연’은 자신의 심정이 투영된 것이다. ‘서정’이라는 시의 리듬도 거기에서 흘러나오는 정감을 가리키는 것이 보통이고, 이렇듯 서정과 정감 사이에는 어떠한 간극도 없다. 정감이 곧 서정인 것이다. 이 시집도 춘하추동 사계절을 제재로 하기에 당연히 ‘자연’이 주제를 이루는 것처럼 보이지만, 적어도 자연에 심정의 미묘함을 맡기는 것 같은 순정(純情)한 나는 그것으로부터 떠난 지 오래이다. 분명 그랬을 터였다. 식민지 소년인 나를 열렬한 ‘황국(皇國) 소년’으로 만들어낸 예전의 일본어와 그 일본어가 자아내던 음률의 서정은 삶이 있는 한 대면해야 할 나의 의식의 업(業)과 같은 것이다. 일본적 서정에서 나는 제대로 벗어난 것인지 어떤지. 의견을 주시면 감사하겠다. (…) 나는 일본 근대 서정시에 엄청난 영향을 받으며 자랐기에 사계절에 대한 관심 또한 누구 못지않게 강렬했다. 그만큼 계절이나 자연은 내 서정의 질을 검증하는 근거가 되어 지금에 이르렀다. 이제껏 내가 지녀왔던 과제에 대한 답안을 지금, 두려운 마음으로 독자에게 건네는 것이기도 하다. 2009년 12월 김시종 옮긴이의 말 이 시집에 붙인 ‘사시(四時)시집’이라는 부제는 사계절을 따라 자연과 인간의 서정을 노래하려는 듯한 인상을 준다. 그러나 이 시집에서 읽게 되는 것은 사계절로 상징되는 자연과 인간의 삶을, ‘잃어버린 계절’이라는 제목처럼 시간을 거스르며 ‘잃어버리고’ 이미 잃어버린, 그러나 잊을 수는 없었던 멈춘 시간을 통해 계절의 시간을, 자연 또는 인간을 다른 어떤 것으로 대면하려는 시적 긴장이다. 자연스러운 서정의 내부로 들어가 그 서정을 멈추고 교란하려는 반서정적 서정시이다. (…) 『잃어버린 계절』은 평상시에는 거기에 있는지 누구도 모를 만큼 작은 존재에 시선을 던지면서, 동시에 생활의 장을 그 밑바닥까지 내려가는 수직의 시선을 통해 아득하지만 인접한 거리를 바로 ‘내’가 서 있는 그곳에서 보여준다. 매우 가까운 곳에 있는 아득한 것, 혹은 아득히 멀리 있는 가까운 것의 역설적 감각은 있어도 보지 못하는 것, 또한 보지 못해도 있음이 분명한 것들을 지각하는 감각을 준다. 그것은 수직적 시간의 경험과 더불어 우리의 삶을 밑바닥에서 흔드는 것이다. 2019년 여름 이진경․카게모또 쓰요시 책 속에서 소리 없이 소리 내야 할 목소리 밑바닥에서 배어나오는 계절. 생각할수록 눈앞이 아찔하여 조용히 눈 감아야 하는 마음의 밑바닥 계절. 누구인지 입에 올리지 않고 남몰래 가슴에 품는 추모의 계절. (…) 여름은 계절의 시작이다. 어떤 색도 바래지고 마는 터질 듯이 하얀 헐레이션의 계절. ―「여름」 부분 고향도 연고도 잃은 새가 쓰레기밖에 주울 게 없는 일본에서 나의 말을 모이로 살아가고 있다. 나는 점점 까악까악 외칠 수밖에 없는 새가 되어가고 있다. 곧 입술이 붉게 물들 것이다. 묵묵히 있을 뿐인 새를 올려다보니 검은 그림자가 그날 그대로 무심하게 나를 보고 있다.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자는 언제나 빛 속에서 검어진다 ―「조어(鳥語)의 가을」 부분 진흙처럼 녹아 있고 싶은 잠이다. 떨어져 가라앉아 밑바닥에서 얼어붙어 그대로 굳어버리고 싶은 밤이기도 하다. 정처 없는 거처의 등받이가 멋대로 삐걱거리고 교신 없는 화면이 여전히 빛을 발하며 명멸한다. (…) 자멸이다. 어떻게 되든 덤벼드는 것이다. 하이에나가 희미하게 눈을 뜬다. 철책 우리 안에 웅크린 자신이 보인다. 빠져나가려고 해도 나갈 수 없는 남자에게 이미 추방의 시간이 닥쳐오고 있다. ―「겨울의 보금자리」 부분 소생하는 계절에 올 것이 오지 않는다. 필 것이 피지 않는다. 날아드는 것도 좀처럼 찾아오지 않는다 (…) 그래도 화창하게 바람은 건너가 끝나가는 무언가가 봄 안개 저편에서 어른거린다. 이렇게 우리는 매일 무언가 잃어버리고 있다. 결코 미미하다 할 수 없다. 저 멀리 분명히 끝나가는 것이 보인다. ―「봄에 오지 않게 된 것들」 부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