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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_ 어떻게 주님 안에서 잘 믿을까?
Part I. 신앙의 주춧돌 놓기 1장 : 구원의 확신 1. 구원의 근거|2. 구원의 목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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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을 만난 이후 교회와 캠퍼스에서 많은 젊은이들을 만났습니다. 그들을 만날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습니다. 대부분이 신앙생활을 잘하고 싶은 바람은 있지만 완전히 뜨겁지도, 아예 그렇다고 아예 차지도 않은 마음으로 밋밋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본인들도 이런 상태를 답답해 하지만 별수 없이 하루하루를 살고 있었습니다. 이왕 믿었으면 잘 믿어야 할 텐데….
이 책은 이런 고민 속에서 쓰여졌습니다. ‘어떻게 하면 그런 사람들의 신앙을 새롭게 하고 자라게 할 수 있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신앙의 본질을 제대로 알고 바른 기초를 다시 세우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바울 사도는 유대인에게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롬 10:2)고 책망했고, 베드로 사도는 성도들에게 신앙 성숙을 강조하면서 “주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벧후 3:18)고 권면했습니다. 바른 지식 속에서만 바른 신앙 성숙이 있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물에 빠졌다가 주위 사람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졌다. “아휴, 하마터면 저 강물에 빠져 죽을 뻔했지 뭐야. 이제는 살았다. 만세!” 그러더니 그 사람이 집에도 가지 않고 아예 강가에 텐트를 치고서 봄, 여름, 가을, 겨울 1년내내 앉아 강물을 쳐다보면서, “하마터면 물에 빠져 죽을 뻔했는데 이렇게 살아 있다니,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세월을 보낸다면 어떨까? 죽을 뻔한 목숨을 건졌으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집에 돌아가서 정상적인 생활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아니 더 열심히 감사하며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물가에 앉아 한평생 목숨을 건진 그 날만 곱씹고 있다면 생이 더 주어진들 무슨 소용이 있는가? 그때 물에 빠져 죽으나 구조되어 30~40년 더 살다 죽으나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구원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은, “이제 지옥에 안 가게 되어 다행이다” 안심하는 수준에 머물도록 우리를 부르시지 않는다. 죄의 형벌에서 우리를 건져 내실 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의의 도구로 살아가도록 부르신다. 이것이 바로 구원이다. 구원이란 주님과 연합하여 의의 도구로 살아가는 것이며 남은 생을 주님을 위해 거룩하게, 멋있게 살아가는 것이다. --- 본문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