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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w are you? 이순신
우리 시대의 이순신을 말하다
혜문
작은숲 2012.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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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하나, 이순신 동상의 진실
· 광화문 이순신 동상의 5대 의혹
· 보론1 친일파가 만든 국회의사당의 이순신 조각상
· 보론2 이순신 동상과 일본 해군 발상 기념비
· 보론3 이순신 동상에 대한 문제 제기, 그 후
· 반론 이순신 장군이 오른손에 칼을 짚고 선 까닭은·

두울, 사라진 이순신의 자취를 찾아서
· 난중일기가 사라졌다
· 이순신 장군의 쌍룡검은 어디에·
· 인터뷰 나는 왜 쌍룡검을 찾고 있는가·
· 행방불명된 이순신 공신 교서
· 이순신의 투구와 보관함을 찾아서

세엣, 우리들의 일그러진 현충사
· 이순신 영정, 다시 제작해야
· 현충사에 심어진 일왕의 상징을 말하다
· 박정희 기념 식수는 누가 뽑았나·
· 일본식 조경을 보고 깊은 시름에 잠기다
· 현충사의 이순신기념관 - 나의 존재를 사람들에게 알리지 마라

네엣, 짝퉁 이순신 사기 사건
· 국보 274호 가짜로 밝혀지다
· 보론 보물 864호 금고도 가짜
· 이순신 함경도일기는 가짜였다
· 짝퉁 거북선 사건
화보 - 무엇이 무엇이 똑같을까·

저자 소개 1

1998년 경기도 봉선사에서 철안 스님을 은사로 출가, 봉선사에서 월운스님께 불경을 공부했다. 2004년 교토 유학 중 고서점에서 우연히 발견한 청구사초라는 책에 『조선왕조실록』이 도쿄대학교에 소장돼 있다는 것을 본 뒤 문화재 제자리찾기 운동에 뛰어들었다. 2006년 도쿄대학교 소장 『조선왕조실록』 47책 반환, 2011년 일본 궁내청소장 『조선왕실의궤』 1,205책 반환, 2013년 LA 카운티 박물관 소장 문정왕후 어보 반환결정을 이끌어냈으며 2014년 한미 정상회담 시 오바마 대통령이 직접 대한제국 국새 포함 조선왕실인장 9점을 반환하게 하였다. 수상 KBS 감동대상
1998년 경기도 봉선사에서 철안 스님을 은사로 출가, 봉선사에서 월운스님께 불경을 공부했다. 2004년 교토 유학 중 고서점에서 우연히 발견한 청구사초라는 책에 『조선왕조실록』이 도쿄대학교에 소장돼 있다는 것을 본 뒤 문화재 제자리찾기 운동에 뛰어들었다. 2006년 도쿄대학교 소장 『조선왕조실록』 47책 반환, 2011년 일본 궁내청소장 『조선왕실의궤』 1,205책 반환, 2013년 LA 카운티 박물관 소장 문정왕후 어보 반환결정을 이끌어냈으며 2014년 한미 정상회담 시 오바마 대통령이 직접 대한제국 국새 포함 조선왕실인장 9점을 반환하게 하였다.

수상
KBS 감동대상 아이러브 코리아상(2011년)
국민훈장 목련장(2012)
다산대상 문화예술부문 대상(2013)
대한민국 협상대상(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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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2년 11월 26일
쪽수, 무게, 크기
264쪽 | 484g | 140*210*20mm
ISBN13
9788997581139

책 속으로

1. 광화문 이순신 동상의 5대 의혹
이순신 장군은 과연 항복하는 장군의 모습인가? 이 문제의 핵심은 칼을 오른손에 들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왼손잡이가 아닌 이상 칼을 뽑을 수 없는 모습이고 이는 항복한 장수로 오인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순신 장군의 칼은 일본도인가? 이순신 장군의 칼이 일본도라는 지적에 대해 (동상을 제작한) 김세중 측은 “현충사의 칼은 일본도가 맞습니다. (중략) 동상의 칼은 현충사 칼을 모델로 했지만 실제 비율보다 축소한 것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중략) (김세중 측의 의견은) 현충사의 이순신 장군이 지닌 본연의 의미, 일본을 물리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 강조되어야지 일본도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다.
이순신 장군의 갑옷은 중국 갑옷인가? 조선식 갑옷은 두루마기처럼 입는 형태로 만들어지고, 중국식 갑옷는 덮어쓰는 형태로 만들어진다. 어깨 부분이 조작으로 덮여져 있는 갑옷 모양을 볼 때, 이순신 동상의 갑옷은 조선식이 아니라 중국식 갑옷인 것이 명백하다.
이순신 장군의 얼굴은 왜 표준 영정과 다른가? (이순신 장군 동상의 얼굴이 조각가인 김세중과 비슷하다는 주장에 대해) 그의 아내인 김남조 시인은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다빈치가 그린 모나리자가 다빈치를 닮았다는 이야기가 있지요. 예술가들은 얼굴을 그리거나 조각할 때 은연중에 자기 얼굴과 비슷하게 한다고 하지만 작가와 닮았다는 말을 가족 입장에서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나라의 큰 인물과 비교할 수 없지요.”라고 대답했다.
이순신 장군이 지휘하는 북은 왜 누워 있는가? 광화문 동상 앞의 북은 뉘여져 있다. 따라서 이순신 장군이 전투를 지휘하는 모습이 연상되지 않는다. 이는 전장을 독려하고 군사를 호령하여 불패의 신화를 만들어 낸 용맹한 이순신의 이미지와 정면으로 배치된다.

2. 사라진 이순신의 자취를 찾다
1967년에 난중일기가 도난당한 적이 있다? 사라져 버린 을미일기의 행방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난중일기가 도난당한 적이 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발견했다. (중략) 대통령이 직접 담화를 발표한 뒤 난중일기를 찾아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확산되었고, 청와대 민정비서실과 경찰 등에 제보가 쏟아졌다. 익명의 제보에 의해 덜미가 잡힌 절도범들은 난중일기가 도난된 지 10여 일 만에 모두 검거되었고, 도주했던 공범 중 하나는 수사망이 좁혀오자 부산의 한 산기슭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훔쳐 간 난중일기는 비닐에 쌓인 채 공범의 집 고추장 항아리에서 발견되었다.
이순신 장군의 쌍룡검은 어디에? 이순신 장군이 실전에서 사용했던 칼인 쌍룡검은 1910년까지 조선 왕실의 궁내부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었으며, 1910에 간행된 조선미술대전에 이순신 장군의 칼이란 이름으로 사진까지 수록되어 있다. (중략) 그러나 언제인지 이 칼은 사라지고 말았다. 일본이 가져가거나 폐기했을 가능성이 점쳐지기도 하고, 광복 이후 6.25에 이르는 사회적 혼란기에 분실되었다고 추정하기도 한다. (중략) 세상에 어떤 나라이든 잃어버리면 안 되는 물건이 있다. 이른바 신물이라고 하는 것이다. 신물은 자신들의 정체성과 관련된 것이고, 자신의 신분을 증명해 주는 물건이기 때문이다. 옥새가 없는 왕, 반지가 없는 신부, 붓이 없는 선비처럼 신물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기가 죽는다. 그것은 정상적이지 않은 상태임을 반증한다.
?이순신의 투구와 보관함을 찾아서 2010년 가을, 나는 야스쿠니 신사 유수관에 있었다. (중략) 거기서 뜻밖에 조선 시대 최고의 군 통수권자가 착용한 ‘용봉문 투구와 갑옷’을 발견했다. 투구에는 금으로 용과 봉황을 조각했으며, 이마 가리개에는 최고 통수권자를 지칭하는 원수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중략) 일본 제국주의의 심장인 야스쿠니 신사에 조선군 최고통수권자의 원수의 투구와 갑옷이 인질처럼 유폐되어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3. 우리들의 일그러진 현충사
이순신 영정 다시 제작해야 현충사 본전에 걸려 있는 이순신 영정은 월전 장우성 화백이 그린 국가 표준 영정이다. (중략) 1943년 6월 16일자 매일신문에 의하면 그는(월전 장우성은) 조선미술전람회 시상식에서 “감격에 떨리는 목소리로 총후 국민예술 건설에 심혼을 경주 매진할 것을 굳게 맹세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와 같은 친일 행적으로 월전 장우성은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하기 위해 정리한 친일인명사전 수록 예정자 명단 미술 부문에 선정되었고, 서울대학교 출신 친일 인물 1차 12인 명단에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런 그의 친일 행적이 밝혀지자 그가 그린 유관순의 표준 영정을 교체해야 한다는 주장이 일어나기도 했다. 영정의 모습이 순수하고 의기에 찬 18세 여고생의 모습이 아니라 수심에 가득 찬 40대 중년 여성의 모습이라는 지적도 함께 제기되었다. 논란이 확대되자 2007년 2월 2일 문화관광부 산하 동상영정심의위원회는 윤여환 충남대학 회화과 교수가 제작한 유 열사의 전신 영정을 새 표준 영정으로 지정하는 안건을 통과시켰다.
현충사에 심어진 일왕의 상징을 말하다 박정희 대통령은 ‘현충사 성역화’의 완공을 기념하기 위해 직접 현충사를 참배한 뒤 한 그루의 나무를 기념 식수했다. 그런데 이 나무는 일본 왕실 혹은 일본 무사도를 상징하는 일본산 특산종 금송이었다. 더 황당한 것은 이 나무가 일제의 조선 강점 후 총독 관저에 일본 관료가 심었던 나무에서 파생되었다는 점이다.
노태우 대통령이 철거시킨 현충사 일본식 석등 (박정희) 대통령 내외가 참배를 마치고 내려가는 모습을 촬영한 사진에는 정재훈 교수가 언급한 석등 두 개가 현충사 본전 앞에 나란히 배치되어 있었다. 석등은 원래 우리 전통 양식에는 사찰이나 능묘에 단 1기만 세워질 뿐, 사당에는 석등이 배치되는 경우가 없다. 현충사에 불교적 전통에서 파생된 석등을 배치한 사실도 우습거니와 일본 신사나 일본 사찰처럼 2개의 쌍등을 배치했다는 점이 경악스럽기까지 한 일이었다.

4. 짝퉁 이순신 사기 사건
국보 274호 가짜로 밝혀지다 해전유물발굴단 자문위원이기도 한 신씨는 지난 1986년 4월 나카무라라는 일본인으로부터 총통과 갑옷 등 청동 공예품을 제조해 달라는 부탁과 함께 별황자총통의 그림과 규격이 담긴 복사본 채가 1권을 건네받아 총통 제조에 착수했다는 것이다. (중략) 황동환 대령 등은 1989년 창설된 해전유물발굴단이 별다른 발굴 실적이 없어 해체될 것을 우려한 나머지 이충무공 연구가인 해군사관학교 박물관장 조성도 교수와 공모하여 이같은 조작극을 벌인 것으로 드러났다. (중략) 이 총통은 (유물 발굴) 발표 3일 만인 8월 21일 30분 만에 국보로 지정되었다. (중략) 1996년 6월 30일 국보 274호는 지정 해제되었고, 국보 274호는 지금까지 빈 번호로 남아 있다. (중략) 이순신 장군의 후예인 해군 고위급 중 이 사건으로 처벌받거나 퇴임한 사람은 더 이상 없었다. 사람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모두 이 사건을 잊었다. 국민의 혈세가 수십 억이나 투입되었던 가짜 국보 사건은 그렇게 종결되었다.

---본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2012년 대한민국의 이순신을 말하다

2012년 12월은 「조선왕실의궤」를 일본으로부터 되찾은 지 꼭 일 년이 되는 달이다. 민간의 노력으로 일제가 강탈해 간, 민족의 혼이 담긴 국보급 문화재를 되찾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언론을 비롯한 시대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일본을 상대로 어떻게 「조선왕실의궤」를 되찾아올 수 있겠느냐며 회의적 시선을 거두지 않았던 사람들은 ‘문화재제자리찾기’가 일본 정부로부터 「조선왕실의궤」을 되찾아온 것을 기념하여 열자고 제안한 ‘조선왕실의궤 환수 기념 대국민 환영행사’를 허락하지 않았다. 일본의 눈을 의식해서일까? 「조선왕실의궤」 환수 행사는 오대산 월정사에서 비교적 조용히 치러졌고, 언론과 정치권은 이를 애써 외면했다.

2012년은 임진년으로, 임진왜란이 발발한 지 420년이 되는 해이다. ‘임진년’ 하면 생각나는 사람이 바로 이순신 장군이다. 임진왜란이라는 누란의 위기에서 민족을 구한 인물이 바로 이순신이기 때문이다. 특히 박정희 군사 정권 시절에 ‘민족의 성웅’으로 추앙되어 국가적 차원의 성웅화 작업이 진행되었고, 그 결과 현충사, 광화문 이순신 동상, 난중일기, 거북선 등은 온 국민의 머릿속에 이순신의 표상으로 각인되어 왔다.
그 덕택(?)으로 그 표상들을 통해 우리는 이순신을 기억해 왔다. 초등학교 수학여행의 필수 코스가 현충사였을 만큼 국가적 차원의 교육이 병행되었으며, 이순신은 6-70년대 내내 대한민국 사람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 1위였다. 그렇게 국가 권력에 의해 표상화된 이순신의 모습을 우리는 진짜 이순신으로 믿고 살아왔다. 1960-70년대에 학교를 다닌 사람들이 마치 대한민국에 대통령은 박정희 대통령 오직 한 분이며 그 분이 영원히 대통령일 것으로 믿고 지냈던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이순신의 표상화에는 어떤 문제가 있었던 것일까? 그 엄혹했던 군사 독재 시절에도 표상화의 내용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언론사가 적지 않았다. 그러나 문제를 해결할 만큼의 여론을 형성해 내지 못했다. 엄혹했던 군사 독재 시절이었다. 그 후 이순신 장군을 민족의 성웅으로 만든 박정희 대통령이 김재규 중정부장의 총탄에 쓰러지면서 성웅화 작업은 주춤하는 듯 보였으나 이순신 장군은 여전히 가장 존경하는 인물 1위를 고수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정치, 경제, 문화의 일번지인 세종로(광화문대로)의 맨 앞을 지키고 있는 것이 아직도 이순신 장군 동상이고 보면, 더 이상의 성웅화 시도가 없더라도 이미 대한민국 국민의 가슴속에 이순신 장군은 민족의 영웅 그 이상으로 기억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런 상황에서 감히 이순신 장군의 표상에 대해 의심을 품은 사람이 있다. 그가 바로, 잘못된 것을 바로잡기 위해 노력하는 ‘문화재제자리찾기’ 대표 혜문 스님이다.

이순신의 표상에 관한 연구와 이를 바로잡기 위한 실천의 기록

일제에게 강탈당했던 「조선왕조실록」과 「조선왕실의궤」를 되찾아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했고, 그 공로로 2011년 KBS 감동대상을 수상하기도 한 혜문스님(문화재제자리찾기 대표, 봉선사)은 「빼앗긴 문화재를 말하다」를 통해 해외로 불법 반출된 우리 문화재의 환수와 그에 얽힌 비밀을 밝혀 독자들로부터 신선한 호응을 받은 바 있다. 그 이후에도 문화재 제자리 찾기 운동을 멈추지 않고, 창덕궁 앞 일본식 석등 철거, 지하철 3호선 경복궁 역 일본식 석등 철거, 청와대 정문 일본식 석등 철거 요구, 레이건 미대통령이 심은 국회 1호 가짜 기념식수 철거, 환구단 일본식 조경 철거 등의 다양한 활동을 했던 혜문 스님이 신간 「How are you? 이순신」을 출간했다.
이 책은 오랫동안 이순신의 표상에 관해 연구하고 제자리 찾기를 위해 저자가 몸으로 말한 기록이다. 혜문 스님은 왜 이순신에 대한 연구하기 시작했을까?

“그동안 알고 있었던 내 마음속의 이순신은 순간 의심의 대상이 되었고, 뭔가 규명해야 할 숙제, 서슬퍼런 지성의 칼날로 해부해 봐야 할 대상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촛불집회는 이순신의 허상을 일순간에 무너뜨렸다.”
- 들어가며 중에서

저자가 이순신의 표상에 관해 본격적으로 관심을 기울인 것은 2008년 촛불집회 때부터였다. 이른바 ‘명박산성’으로 알려진 바리케이드 위에서 촛불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을 부릅뜬 눈으로 내려다보던 광화문 이순신 동상에서 이상한 느낌을 받은 저자는 그때부터 이순신의 표상에 관한 자료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광화문 이순신 동상, 이순신 장군 표준 영정, 거북선, 난중일기, 현충사에 심어진 금송, 이순신기념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형식으로 표상화된 상징물들에 관한 사료, 언론기사를 샅샅이 뒤지고 직접 발로 확인하는 과정을 거쳤다.

그 과정에서 ‘광화문 이순신 동상의 5대 의혹’에 관한 문제 제기(한겨레신문), ‘사라진 이순신 장군의 쌍룡검을 찾아서’(SBS 그것이 알고 싶다) 등의 기고와 프로그램을 통해 문제를 제기하는 한편, ‘도산서원 금송 이전 청구 소송’, ‘현충사 금송 이전 청구 소송’을 진행하는 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적극적인 실천 활동을 진행하였다. 연구를 통해 알게 된 사실을 밝히는 데 그치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적극적인 실천 행위를 병행한 것이다.
이 책에는 이순신 표상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의 증거들뿐만 아니라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몸으로 뛰어다닌 실천의 기록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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