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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목차

엮은이의 말 - 루쉰선집을 펴내며

『외침』 / 서문 나의 절열관(節烈觀) / 지금 우리는 아버지 노릇을 어떻게 할 것인가 / 노라는 떠난 후 어떻게 되었는가? / 등하만필(燈下漫筆) / ‘페어플레이’는 아직 이르다 / 『무덤』 뒤에 쓰다 / 수감록 39 / 수감록 40 / 56. ‘온다’ / 57. 현재의 도살자 / 62. 분에 겨워 죽다 / 65. 폭군의 신민 / 작은 일을 보면 큰 일을 알 수 있다 / 비평가에 대한 희망 / 문득 생각나는 것 (1~4) / 전사와 파리 / 문득 생각나는 것 (5~6) / ‘벽에 부딪힌’ 뒤 / 문득 생각나는 것 (7~9) / 문득 생각나는 것 (10~11) / 고서와 백화 / 꽃이 없는 장미(2) / ‘사지’ / 류허전 군을 기념하며 / 샤먼 통신 (3) / 바다에서 보내는 편지 / 혁명시대의 문학 / 유헝 선생에게 답함 / 서언 / 소리 없는 중국 / 종루에서 / ‘취한 눈’ 속의 몽롱 / 통신 / 나와 『위쓰』의 처음과 끝 / 좌익작가연맹에 대한 의견 / 망각을 위한 기념 / 도망에 대한 변호 / 풍자에서 유머로 / 추배도 / 중국인의 목숨 자리 / 글과 화제 / 깊은 이해를 추구하지 않는다 / 밤의 송가 / 밀치기 / 중·독의 분서 이동론(異同論) / 가을밤의 산보 / 기어가기와 부딪히기 / 귀머거리에서 벙어리로 / 번역에 관하여(상) / 번역에 관하여(하) / 차 마시기 / 황화 / 여자가 거짓말을 더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 친리자이 부인 일을 논하다 / 독서 잡기 / ‘대설이 분분하게 날리다’ / ‘음악’? / ‘중용 지키기’의 진상을 말하다 / 잡담 / 러시아 역본 「아Q정전」 서언 및 저자의 자술 약전 / 뜬소문과 거짓말 / 문예와 정치의 기로 / 중산 선생 서거 일주년 / 『근대목각선집』(1) / 소인 식객문학과 어용문학 / 올 봄의 두 가지 감상 / 상하이 소감 / 파악성론 / 무제 / ‘일본 연구’의 바깥 / 아녀자들도 안 된다 / 사지(死所) / 삼한서옥에서 교정 인쇄한 서적 / 책의 신에게 올리는 제문 / 가져오기주의 / 웨이쑤위안 군을 추억하며 / 류반눙 군을 기억하며 / 아이 사진을 보며 떠오르는 이야기 / 중국 문단의 망령 / 아프고 난 뒤 잡담 / 풍자에 관하여 / 쉬마오융의 『타잡집』 서문 / 그렇게 쓰지 말아야 한다 / “사람들의 말은 가히 두렵다”에 관해 / 문단의 세 부류 / 나의 첫번째 스승 / 깊은 밤에 쓰다 / “이것도 삶이다”… / 죽음 / 타이옌 선생으로 하여 생각나는 두어 가지 일 / 먼 곳에서 온 편지 2 / 먼 곳에서 온 편지 8 / 먼 곳에서 온 편지 73 / 먼 곳에서 온 편지 112

주석
『루쉰 잡문선』 수록작품 출처

저자 소개 2

魯迅,본명 : 저우수런(周樹人), 자 : 위차이(豫才)

중국의 문학가, 사상가, 혁명가이자 교육가. 본명은 저우수런이고 자는 위차이이다. 중국 현대 문학의 창시자로 여겨지는 루쉰은 당대의 중국 예술과 화에서 다른 어떤 작가와도 비견될 수 없는 위치를 차지한다. 중국 공산당이 국민적 영웅으로 찬양한 루쉰은 중국혁명의 지적 원천으로서 추앙받아 왔으며, 마오쩌둥을 위해 사상적 기반을 마련한 인물이기도 하다. 저장성 사오싱(紹興)의 지주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조부의 하옥, 아버지의 병사 등으로 어려서부터 고생스럽게 살았다. 청년시대에 진화론과 니체의 초인철학, 톨스토이의 박애사상의 영향을 받았다. 1898년 난징의 강남수사학당에 입학,
중국의 문학가, 사상가, 혁명가이자 교육가. 본명은 저우수런이고 자는 위차이이다. 중국 현대 문학의 창시자로 여겨지는 루쉰은 당대의 중국 예술과 화에서 다른 어떤 작가와도 비견될 수 없는 위치를 차지한다. 중국 공산당이 국민적 영웅으로 찬양한 루쉰은 중국혁명의 지적 원천으로서 추앙받아 왔으며, 마오쩌둥을 위해 사상적 기반을 마련한 인물이기도 하다.

저장성 사오싱(紹興)의 지주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조부의 하옥, 아버지의 병사 등으로 어려서부터 고생스럽게 살았다. 청년시대에 진화론과 니체의 초인철학, 톨스토이의 박애사상의 영향을 받았다. 1898년 난징의 강남수사학당에 입학, 당시의 계몽적 신학문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1902년 졸업 후 일본에 유학, 고분학원을 거쳐 1904년 센다이의학전문학교에 입학하였으나, 문학의 중요성을 통감하고 의학을 단념, 국민정신의 개조를 위하여 문예 활동에 힘썼다.

1905~1907년 혁명당원의 활동에 참가하고, ‘마라시력설’, ‘문화편지론’ 등 논문을 발표하였다. 그 무렵 유럽의 피압박민족 및 슬라브계 작품에 공감하여 1909년 동생 저우쭤런(周作人)과 ‘역외소설집’을 공역하는 한편, 망명중인 장빙린(章炳麟)에게 사사하였다. 1909년 귀국하여 고향에서 교편을 잡다가 1911년 신해혁명이 일어나자, 남경임시정부와 북경정부의 교육부원이 되어 일하면서 틈틈이 금석 탁본의 수집, 고서 연구 등에 심취하였다. 1918년 문학혁명을 계기로, 처음으로 ‘루쉰(魯迅)’이라는 필명을 사용, 중국현대문학사상 첫번째의 백화소설인 ‘광인일기’를 발표하여 신문학운동의 기초를 다졌다.

5·4운동 전후 ‘신청년’ 잡지의 일에 참가하여 ‘5·4’ 신문화운동의 선봉이 되었다. 1918년에서 1926년에 이르는 동안 창작을 계속하여 소설집 ‘눌함’, ‘방황’, 논문집 ‘분(墳)’, 산문시집 ‘야초’, 산문집 ‘조화석습’, 잡문집 ‘열풍’, ‘화개집(華蓋集)’, ‘화개집 속편’ 등을 출판하였다. 이 중에 ‘공을기(孔乙己)’, ‘고향’, ‘축복’ 등을 발표하여 중국 근대문학을 확립하였는데, 1921년 12월에 발표된 중편소설 ‘아Q정전(阿Q正傳)’은 중국현대문학사상 불후의 대표작으로 세계적 수준의 작품이다. 많은 외국 작가의 작품을 번역하였고, 1920년 이후에는 베이징대학, 베이징여자사범대학 등에서 교편을 잡았다.

1924년 저우쭤런과 어사사를 조직하고, 1925년 청년문학사와 미명사(未名社)를 조직하였으나, 1926년 8월 베이양 군벌의 문화 탄압과 격돌한 베이징 학생애국운동 지지로 말미암아 베이징을 탈출, 아모이대학 중문과 주임으로 부임하고, 1927년 1월 당시의 혁명 중심 광저우(廣州)에 이르러 중산대학의 교무주임이 되었다. 1927년 가을 상하이의 조계에 숨어 쉬광핑(許廣平)과 동거하며 문필생활에 몰두하는 한편, 창조사, 태양사 등 혁명문학을 주창하는 급진적 그룹 및 신월사(新月社) 등 우익적 그룹에 대한 논전을 통하여 매우 전투적인 사회 단평(短評)의 문체를 확립하였다.

한편 소비에트 러시아 문학작품을 번역하여 소개하기도 하였다. 1930년 전후하여 중국자유운동대동맹, 중국좌익작가연맹과 중국민권보장동맹에 참가하여 국민당 정부의 독재 통치와 정치 박해에 항거하였다. 1931년 만주사변 뒤에 대두된 민족주의 문학, 예술지상주의 및 소품문파(小品文派)에 대하여 날카로운 비판을 가하였다. 1927년부터 1936년까지 역사소설집 ‘고사신편’을 출판하였고, 대부분의 작품과 잡문은 ‘이이집’, ‘삼한집’, ‘이심집’, ‘남강북조집’, ‘위자유서’, ‘준풍월담’, ‘화변문학’, ‘차개정잡문’, ‘차개정잡문 이편’, ‘차개정잡문 말편’, ‘집외집’과 ‘집외집습유’ 등에 수록되었다.

또 1931년부터 판화 운동도 지도하여 중국 신판화의 기틀을 다졌다. 루쉰의 일생은 중국 문화사업에 지대한 공헌을 이룩하였다. ‘미명사(未名社)’, ‘조화사(朝花社)’ 등 문학 단체를 영도하고 지지하였으며, ‘국민신보부간’, ‘망원(莽原)’, ‘어사(語絲)’, ‘분류(奔流)’, ‘맹아(萌芽)’, ‘역문(譯文)’ 등 문예잡지를 주편하였고, 청년 작가를 열성적으로 적극 배양하였다. 외국의 진보된 문학 작품을 번역하는 데 힘쓰고, 국내외의 저명한 회화, 목각을 소개하였으며, 대량의 고전문학을 수집, 연구, 정리하고, ‘중국소설사략’, ‘한문학사강요’를 저술하였으며, ‘혜강집’을 정리하고 ‘회계군고서잡록’, ‘고소설구침(古小說鉤沈)’, ‘당송전기록’, ‘소설구문초’ 등등을 집록하였다. 죽기 직전에는 항일투쟁 전선을 둘러싸고 저우양(周揚) 등과 논쟁을 벌이기도 하였으나, 그가 죽은 뒤에는 대체로 그의 주장에 따른 형태로 문학계의 통일전선이 형성되었다.

그의 문학과 사상에는 모든 허위를 거부하는 정신과 언어의 공전이 없는, 어디까지나 현실에 뿌리박은 강인한 사고가 뚜렷이 부각되어 있다. 1936년 10월 19일 폐결핵으로 말미암아 상하이에서 세상을 떠나고 민중 만여 명이 자발적으로 공제(公祭)를 거행하여 훙자오만국공묘에 묻혔다. 1956년 루쉰의 유해는 훙커우공원에 이장되었다. 1938년 ‘루쉰전집’ 20권이 출판되었다. 그를 혁명의 모범이자 사상의 근원으로 여긴 마오쩌둥에 의해 20세기 내내 중국을 지배한 개혁과 혁명적 변화의 선동가로서 거의 신적인 존재로까지 추앙받았다.

인민정부 성립 후, 루쉰의 저서는 분야별로 나뉘어 ‘루쉰전집’ 10권, ‘루쉰역문집’ 10권, ‘루쉰일기’ 2권, ‘루쉰서신집’이 간행되었고, 루쉰이 편교(編校)한 고적(古籍) 여러 종류도 다시 간행되었다. 1981에는 ‘루쉰전집’ 16권이 출판되었다. 베이징, 상하이, 사오싱, 아모이 등지에는 전후하여 루쉰 박물관, 기념관 등이 건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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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9년 10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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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용량
EPUB(DRM) | 44.61MB ?
글자 수/ 페이지 수
약 32.7만자, 약 10.4만 단어, A4 약 205쪽 ?
ISBN13
9791190216159
KC인증

출판사 리뷰

“雜”이 주는 혼종의 위안-
모두를 위한,
그러나 어느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닌 루쉰의 잡문(雜文)



“잡문”이라는 말은 낯설다. 어쩐지 낮춰 부르는 말도 같고 멸시하는 말 같기도 하다. 루쉰 역시 “‘잡감’이라는 두 글자가 뜻과 취향이 높고 속세를 초월한 작가들에게 혐오감”을 준다는 말, 자신을 ‘잡감가’로 부름으로써 “고등 문인들 안중에서 멸시한다는 것을 뚜렷하게” 드러낸다는 말을 통해 루쉰 스스로 '잡감'을 쓰는 자신을 인식했다. 『루쉰 잡문선』은 평생토록 소설 이외에도 비평, 번역, 평론, 토론, 광고, 편지 등 다양하고 방대한 글을 써온 루쉰의 '잡문' 중 95편을 추렸다.


시대의 불편함을 읽어낸 사람, 루쉰

루쉰은 남성과 여성에게 다르게 가해진 사회적 무게를 보아내고 그것을 비판한 사람이다. 남편이 죽고, 수절을 지켜야 하는 여성의 삶을 말하며 절을 지키지만 점점 가난해진다는 지적을 하는 글 「나의 절열관」에서 루쉰은 다처주의인 남성들이 과연 여성의 절열을 평가하고 표창할 자격이 있기는 있는지를 묻는다.

절열이라는 이 두 글자는 예전에는 남자의 미덕으로 간주되었는데, 그래서 ‘절사’(節士), ‘열사’(烈士)라는 명칭이 있었다. 그렇지만 오늘날 ‘절열을 표창한다’는 것은 오로지 여자만을 가리키고, 결코 남자는 포함하지 않는다. 오늘날 도덕가의 견해에 따라 구분해 보면, 대략 절節은 남편이 죽었을 때 재가하지도 않고 몰래 달아나지도 않는 것을 말하는데, 남편이 일찍 죽으면 죽을수록 집안은 더욱 가난해지고 여인은 더욱 ‘절’을 잘 지키게 된다. (「나의 절열관」)

또 무턱대고 통용되는 “여자가 남자보다 거짓말을 더 많이 한다”는 말에 대해 멈춰 생각해 볼 여지를 주면서 실제로 그렇다기보다는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편견임을 주장한다.

내 생각에, “여자가 남자보다 더 많이 거짓말을 한다”고 말하기보다는 차라리 “여자는 다른 사람들에 의해 ‘남자보다 거짓말을 더 많이 한다’고 이야기될 때가 많다”고 하는 것이 낫다. 그런데 이 역시 숫자상의 통계는 없다. (「여자가 거짓말을 더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늘 그래왔다는 이유로 반드시 따라야 하고, 옛 사람이 말했으므로, 성인이 말했으므로 주워섬기는 것에 대해 불편함을 느꼈기에 루쉰은 항상 사람들과 싸우고 다수와 반대되는 의견을 내세웠다. 그러나 그가 남긴 방대한 양의 글에서도 우리가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사람들의 비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는 오로지 글과 펜으로 자신이 자신일 수 있음을 증명했다.

이 모든 사사로움이 곧 삶임을

루쉰은 심지어 몸이 아플 때조차도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앓고 난 후에는 「아프고 난 뒤 잡담」이라고 글을 썼고, 병중에는 아픈 상태를 쓰면서 그 아픈 중에 자신의 눈에 들어온 벽, 모서리, 책장… 같은 것들이 다 자신 삶의 일부임을 깨닫는 글을 썼다.

“내게 물을 좀 주시오. 전등을 켜 주시오. 주변을 좀 둘러보고 싶소.”
“왜요? …” 그녀가 조금 당황하여 말했다. 내가 헛소리를 하는 것으로 여긴 것이다.
“살아야겠소. 무슨 말인지 알겠소? 이것도 삶이야. 주변을 둘러보고 싶소.”
(「“이것도 삶이다”…」)

「“이것도 삶이다”…」에서 루쉰이 광핑에게 하는 말, 주변을 둘러보는 아무것도 아닌 일 역시 삶임을 깨달은 자가 하는 말이다. “사실, 전사의 일상생활은 매사가 눈물겹도록 감동적인 건 아니다. 그러면서도 눈물겹도록 감동적인 부분과 관련이 있다. 그것이 실제의 전사이다”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모든 1분 1초가 다 소중하다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삶을 걸고 글을 쓰고, 가르치고, 자신의 생각을 표현해온 전사 루쉰에게는 자신이 가르친 학생의 죽음, 세상을 바꾸자고 뛰쳐나간 이름모를 젊은이의 죽음만큼이나 그들이 그 죽음을 통해서 지키고 싶던 ‘삶’의 일상성이 소중하다. 그는 마침내 그것을 깨닫는다.


“내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루쉰은 죽기 직전까지 글을 썼다. 그의 마지막 글은 중간에서 멈춰 있다. 꺼져가는 삶을 비통해하기보다는 있는 힘을 쥐어짜내 한 글자 한 글자를 써내려간 루쉰의 삶과 죽음은, 그 어떤 글보다 그 자신을 잘 말해준다. 루쉰 스스로 자신의 글이 잘못 실린 잡지에 대해 비평하며 “독자들이 그 잘못을 이해해주길 바랄 순 없다”고 냉정하게 판단하던 그는 세상을 향해 해부용칼(펜)을 든 것처럼, 자기 자신에게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잡문은 루쉰의 육체 그 자체”라는 말은 그가 통탄하며 쓰는 글, 피눈물을 흘리며 쓰는 글, 자조하며 쓰는 글, 웃으며 쓰는 글… 그런 글마다 루쉰이 배어 나오기 때문일 것이다. 루쉰은 대체로 세상에 대해 썼다. 그리고 자신에 대해 썼다. 지금, 무엇이 문제인지, 사람들이 어디로 잘못 가고 있는지, 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에 대해 소리를 높인 동시에 군중에 휩쓸려 잘못 살지 말기를, 조식을 잘 챙기고 연인을 보살피면서 하루하루를 잘 보낼 것을 당부했다. 세상은 자신이 인식하는 만큼 우리에게 그 비밀과 놀라움을 보여준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세상에 우리 ‘자신’을 보아내지 않으면, 개인이 잘 살아내지 않으면, 세상이 바뀐다 한들 개인적 차원에서는 무용하다는 것을 끊임없이 이야기했다.
지금 우리가 루쉰을 ‘잘’ 읽는다는 건, 세상을 똑바로 보고 그 세상에서 제대로 된 삶을 꾸려가라는 루쉰의 메시지를 받는 것이고, 그 메시지에 대한 응답으로 우리가 매일매일의 삶을 ‘잘’ 살아내는 것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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