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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백 문집
시의 신선 이백 글을 짓다
박문사 2019.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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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1. 부賦
1) 대붕을 읊은 부 및 서문
2) 한스러움을 읊은 부를 본뜨다
3) 남은 봄을 아쉬워하며 지은 부
4) 따뜻한 봄을 근심하며 지은 부
5) 맑은 가을을 슬퍼하며 지은 부
6) 검각에 대해 읊은 부
7) 명당을 읊은 부 및 서문
8) 황제의 사냥을 읊은 부 및 서문

2. 표表
1) 오왕을 대신하여 행재소로 가는 일이 지체된 것을 사죄하는 표
2) 송 중승을 대신하여 금릉을 수도로 할 것을 청하는 표
3) 송 중승을 대신하여 스스로를 추천하는 표

3. 서書
1) 수산을 대신하여 맹 소부의 이문에 답하는 편지
2) 안주 이 장사께 올리는 편지
3) 가 소공에게 주는 편지
4) 선성태수 조열을 대신하여 우상 양국충께 드리는 편지
5) 형주장사 한조종께 드리는 편지
6) 안주 배 장사께 올리는 편지

4. 서序
1) 늦봄 강하에서 동도로 가는 감승 장조를 보내며 지은 서문
2) 도화원을 찾으러 가는 열일곱째 어르신과 스물넷째 어르신을 받들어 전별하며 지은 서문
3) 강하에서 형산을 노닐러 가는 임 상인을 보내며 지은 서문
4) 금릉에서 여러 어진 이와 함께 권소이를 보내며 지은 서문
5) 봄에 고숙에서 더운 지방으로 유배 가는 조씨를 보내며 지은 서문
6) 가을에 경정산에서 여산을 노닐러 가는 종질 이단을 보내며 지은 서문
7) 장 사군을 알현하러 파양으로 가는 황종을 보내며 지은 서문
8) 이른 봄 강하에서 운몽의 집으로 돌아가는 채씨를 보내며 지은 서문
9) 가을 태원 남책에서 천거에 응해서 장안으로 가는 양곡현 왕 찬공과 가 소공, 석애현 윤 소공을 전별하며 지은 서문
10) 형산으로 돌아가는 대씨를 보내며 지은 서문
11) 이른 여름에 장군인 숙부의 댁에서 강남으로 가는 부씨를 여러 형제와 함께 보내며 지은 서문
12) 겨울 용문산에서 부모님을 뵈러 회남으로 가는 친척동생 경조부 참군 이영문을 보내며 지은 서문
13) 강하에서 한동으로 돌아가는 천공을 보내며 지은 서문
14) 광릉으로 군대를 이동시키는 부사 이장용을 전송하며 지은 서문
15) 가을밤에 안주에서 도읍으로 돌아가는 맹 찬부 형님을 보내며 지은 서문
16) 겨울밤 수주 자양선생의 손하루에서 선성산으로 은거하러 가는 연자 원연을 보내며 지은 서문
17) 여름날 사마 무공을 모시고 여러 어진 이와 함께 고숙정에서 연회를 열면서 지은 서문
18) 여름에 여러 친척 동생과 여주 용흥각에 올라서 지은 서문
19) 봄날 밤에 친척 동생들과 복숭아꽃이 핀 정원에서 연회를 열며 지은 서문
20) 『택반음』의 서문
21) 『북두연생경주해』의 서문

5. 기記
1) 임성현 관청의 벽에 쓴 글

6. 송頌
1) 조공서후신정을 칭송하는 글
2) 숭명사 『불정존승다라니경』을 새긴 경당을 칭송하는 글 및 서문

7. 찬讚
1) 이 당도현령의 초상화에 쓴 찬문
2) 금릉의 고승 균공 어머니의 초상화에 쓴 찬문
3) 이 거사에 관한 찬문
4) 안길현 소부 최한의 초상화에 쓴 찬문
5) 선성 녹사참군 오씨의 초상화에 쓴 찬문
6) 벽에 그려진 푸른 매 그림에 쓴 찬문
7) 방성현 장 소공의 청사에 있는 사나운 사자 그림에 쓴 찬문
8) 우림장군 범씨의 초상화에 쓴 찬문
9) 금가루와 은가루로 그린 서방정토 변상에 쓴 찬문 및 서문
10) 강녕현령 양이물의 초상화에 쓴 찬문
11) 금향 소부 설씨의 관사에 있는 학 그림에 쓴 찬문
12) 지공의 초상화에 쓴 찬문
13) 금에 쓴 찬문
14) 주허후에 관해 쓴 찬문
15) 차비가 교룡을 베는 모습을 그린 그림을 보고 쓴 찬문
16) 지상보살의 불화에 쓴 찬문 및 서문
17) 노군의 섭 화상에 대해 쓴 찬문

8. 명銘
1) 화성사 대종에 관해 지은 명문
2) 천문산에 관해 지은 명문

9. 비碑
1) 율양현 뇌수에 살던 곧고 의로운 여인의 비명
2) 한동 자양 선생의 비명
3) 천장절에 세운 악주자사 위공의 덕정비 및 서문
4) 무창현령 한군의 거사송비 및 서문
5) 우성현령 이공의 거사송비
6) 비간의 비문

10. 제문祭文
1) 두 소사를 대신하여 지은 선 화상의 제문
2) 송 중승을 대신하여 지은 구강의 제문

11. 잡문雜文
1) 시서
(1) 역양의 장사 근사제 장군을 기린 노래와 서문
(2) 숭산의 초 연사에게 주는 시와 서문
(3) 무악에게 주는 시와 서문
(4) 황산의 호공에게서 백한을 구하며 지은 시와 서문
(5) 왕옥산으로 돌아가는 왕옥산인 위만을 보내며 지은 시와 서문
(6) 고 중승께 알현하러 가는 장 수재를 보내며 지은 시와 서문
(7) 여러 공들과 함께 형양으로 돌아가는 진 낭장을 보내며 지은 시와 서문
(8) 친척 조카인 중부 스님이 옥천사의 선인장차를 준 것에 답하며 지은 시와 서문
(9) 면주성 남쪽 낭관호에서 배를 띄우고 지은 시와 서문
(10) 술을 대하고 하지장 비서감을 그리워하며 지은 2수의 시와 서문
(11) 영양에 있는 원단구의 산속 거처에 쓴 시와 서문
(12) 숭산의 은자 원단구의 산속 거처에 쓴 시와 서문
(13) 구자산을 구화산으로 이름을 바꾼 뒤 이어가며 지은 시와 서문
2) 서첩書帖

저자 소개 3

李白,태백太白, 이한림李翰林,청련거사靑蓮居士

시선(詩仙) 이백(李白, 701∼762)의 자는 태백(太白), 호는 청련거사(靑蓮居士)이고 이 한림(李翰林)이라고도 부른다. 별칭으로 적선謫仙이라 불리기도 했다. 두보(杜甫)와 함께 ‘이두(李杜)’로 병칭되며 1000여 편의 작품을 남겼다. 이백의 출생과 어린 시절은 명확하지 않다. 전해지는 바로는 조적(祖籍)은 지금의 간쑤성 톈수이(天水) 부근의 농서현(?西縣) 성기(成紀)였으나, 수나라 말기에 부친이 서역으로 이사해 서안도호부 관할이었던 중앙아시아에서 이백을 낳았고, 부친이 다시 사천성 면주(綿州) 창륭현(昌隆縣) 청련향(靑蓮?)으로 옮겨 옴에 따라 이백 또한 이곳에서 어린
시선(詩仙) 이백(李白, 701∼762)의 자는 태백(太白), 호는 청련거사(靑蓮居士)이고 이 한림(李翰林)이라고도 부른다. 별칭으로 적선謫仙이라 불리기도 했다. 두보(杜甫)와 함께 ‘이두(李杜)’로 병칭되며 1000여 편의 작품을 남겼다. 이백의 출생과 어린 시절은 명확하지 않다. 전해지는 바로는 조적(祖籍)은 지금의 간쑤성 톈수이(天水) 부근의 농서현(?西縣) 성기(成紀)였으나, 수나라 말기에 부친이 서역으로 이사해 서안도호부 관할이었던 중앙아시아에서 이백을 낳았고, 부친이 다시 사천성 면주(綿州) 창륭현(昌隆縣) 청련향(靑蓮?)으로 옮겨 옴에 따라 이백 또한 이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전해진다.

725년(25세) 촉 땅을 떠나서 장강을 따라 삼협을 거쳐 강남 일대를 유람했으며 산동, 산서 등지를 떠돌며 도교(道敎)에 심취했다. 742년(42세) 도사 오균(吳筠)의 추천으로 한림공봉(翰林供奉)에 제수되었으나, 자신의 정치적 포부를 실현할 수 없자 3년 만에 관직을 버리고 장안을 떠나 다시 방랑의 길로 들어선다.
755년(55세) 안녹산이 난을 일으켰을 때 이백은 안휘성 선성(宣城)에 있었다. 57세에 황자(皇子) 영왕(永王) 인(璘)의 막료가 되었으나, 영왕이 권력 투쟁에서 패하고 숙종이 즉위하자 이백도 역도로 몰려 강서성 심양(尋陽)에 투옥되었다. 송약사(宋若思)가 구명해 그의 막료가 되었으나 끝내 귀주성 야랑으로 유배되었다. 야랑으로 가는 도중, 삼협을 거슬러 무산에 당도했을 때 특사를 받아 강릉으로 내려가며 「조발백제성(早發白帝城)」을 지었다.

이후 노쇠한 이백은 금릉과 선성을 오가다가 당도(當塗) 현령으로 있던 친척 이양빙(李陽?)에게 몸을 의탁했다. 762년 병이 중해지자 이백은 자신의 원고를 이양빙에게 주고 「임종가(臨終歌)」를 짓고는 회재불우의 한 많은 한평생을 끝마쳤다. 우리에게는 당도에 있는 채석기(採石磯)에서 노닐다 장강에 비친 달그림자를 잡으려다가 익사했다는 전설이 훨씬 더 익숙하다.

이백은 굴원 이후 가장 뛰어난 낭만주의자로 꼽힌다. 그는 당시의 민간 문예뿐 아니라 진한(秦漢)과 위진(魏晉) 이래 악부 민가를 이어받아 자신만의 독특한 풍격을 형성했다. 더구나 그는 도가에 심취해서 그의 시는 인간의 세계를 초월한 환상적인 경향 또한 짙다. 이백의 문장은 거의 모든 문장 형식을 망라하고 있어 그가 다양한 종류의 글에 능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자신을 대붕大鵬에 비유하며 기상을 떨치고자 하였지만 결국 실패하고 쓸쓸히 세상을 떠났다. 그의 시에는 호방하고 높은 기상이 빛나며 타고난 상상력으로 불후의 작품을 많이 남겼다. 그가 남긴 시는 중국뿐만 아니라 한국의 문인들에게도 영향을 많이 미쳤으며 지금도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그의 시를 애송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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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금속공학과를 졸업하였으며, 영남대학교 중문과를 거쳐 서울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서울대학교에서 강의를 하고 있으며 지역사회에서 한시를 가르치기도 한다. 공학을 전공하고 기업체 부설 연구소에서 연구 활동에 매진하였다. 퇴사를 하고 중국어를 배우고자 수능시험에 응시한 뒤 중문과에 입학하여 수학했다. 그 중 1년은 중국 천진에 머물렀으며 중국의 남부와 서부를 두루 여행하였다. 그중 운남의 매리설산을 소중히 기억하고 있다. 대학원에 진학하여 당시를 재미있게 공부하였으며 이백의 인생살이에 관해 학위논문을 썼다. 한시창작집으로 『오리는 잘못이 없다』가 있으며, 학술
서울대학교 금속공학과를 졸업하였으며, 영남대학교 중문과를 거쳐 서울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서울대학교에서 강의를 하고 있으며 지역사회에서 한시를 가르치기도 한다. 공학을 전공하고 기업체 부설 연구소에서 연구 활동에 매진하였다. 퇴사를 하고 중국어를 배우고자 수능시험에 응시한 뒤 중문과에 입학하여 수학했다. 그 중 1년은 중국 천진에 머물렀으며 중국의 남부와 서부를 두루 여행하였다. 그중 운남의 매리설산을 소중히 기억하고 있다. 대학원에 진학하여 당시를 재미있게 공부하였으며 이백의 인생살이에 관해 학위논문을 썼다.

한시창작집으로 『오리는 잘못이 없다』가 있으며, 학술저서로 『쫓겨난 신선 이백의 눈물』이 있다. 역서로 『이태백시집』(총 7권), 『두보전집 - 기주시기시역해1, 2』, 『한유시선 - 고래와 붕새를 타고 오리라』, 『이태백문집』, 『협주명현십초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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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9년 10월 15일
쪽수, 무게, 크기
276쪽 | 598g | 188*257*15mm
ISBN13
97911892924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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