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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봄날
문언희
로담 2012.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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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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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2년 11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424쪽 | 128*188*30mm
ISBN13
9788997253616

책 속으로

“어머, 윤 대리. 얼굴이 왜 그래? 퉁퉁 부었어.”
아침에 눈을 떠 거울을 보자마자 두 눈을 의심한 터다. 개구리 왕눈이가 아로미로 착각할 정도로 눈두덩이 가관도 아니었다. 짧은 시간 냉찜질을 하며 난리 아닌 난리를 쳤지만 그다지 효과는 없었다.
“무슨 일 있어? 울은 얼굴인데?”
눈치껏 그냥 넘어가면 좋으련만 박 대리가 끈질기게 물어왔다.
“아하하. 그게 어제 영화를 한 편 다운받아서 봤는데요. 어찌나 슬프던지 펑펑 울었거든요.”
“윤 대리 시간 많나 봐? 기획안 작성하기도 바쁠 텐데 영화 볼 시간도 있고.”
뼈 있는 박 대리의 말에 지운은 그저 웃어 넘겼다. 사실 틀린 말도 아니다.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어도 될까 말까인데 이런 심신 상태로는 벅찬 게 사실이긴 했다.
“윤 대리님, 좋은 아침이요.”
시름 걱정 따위는 없어 보이는 호준이 경쾌하게 인사를 건넸다.
“응. 좋은 아침. 그런데 어떻게 어제보다 더 부은 거 같아? 병원 가야하는 거 아니니?”
“괜찮아요. 사나이가 뭐 이런 걸로 병원을 갑니까?”
“여자친구가 알아? 너 얼굴 이렇게 된 거?”
지운이 미안한 얼굴로 조심스럽게 물었다. 입장 바꿔 자신이 여자친구였다면 때린 놈 데려오라고 난리를 쳤을 거다.
“흐흐. 이거 덕분에 어제 여친이랑 아주 아름다운 밤을 보냈답니다.”
호준이 승리의 브이를 그리며 히죽 웃었다.
“아프다고 막 엄살 부렸더니 집에 안 가던데요? 흐흐.”
“에그, 남자들이란.”
꿀밤을 먹이는 지운을 뚫어지게 쳐다보던 호준이 그답지 않게 쭈뼛거리며 다가왔다.
“대리님, 어제는 죄송했어요. 저는 좋은 의도로 했던 일인데, 뭔가 실수한 거 같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서…….”
“남호준 씨. 그대 얼굴이나 잘 챙기세요.”
지운이 웃고 나서야 비로소 가슴을 쓸어내린 호준이 다시 톤을 높였다.
“대리님, 입술 밑에 움푹 들어간 데 있잖아요. 거기를 꾹 누르고 있으면 눈 붓기가 빨리 빠진대요. 증명된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여친이 자주 그러고 있더라고요.”
“그래?”
호준이 시키는 대로 붓기 빼기에 열중하고 있던 지운은, 이제 막 사무실로 들어서는 이헌과 눈이 마주쳤다. 어제 밤새도록 연습한 대로 방긋 입매를 올리며 인사를 건넸고, 그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고개만 까딱하며 지나갔다.
“후우.”
쉽지가 않았다. 아무렇지 않은 척 한다는 게.
앞으로 계속 이렇게 어색하게 지낼 수는 없었다. 피한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란 것쯤은 알고 있다. 많은 대화가 필요하다는 것도.
그럴 리가 없다는 강한 부정 끝에 남은 건, 오히려 확연히 드러난 진실뿐이었다. 그냥 이대로 모르는 척 지나가고 싶기도 했다. 솔직한 심정이 그랬다.
하지만 그에겐…… 너무나 잔인한 형벌이 되겠지.
지운은 밤새 고민하고 또 고민한 문제를 다시 떠안았다.
그럴 리가 없는데 언제부터였을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럴 리가 없는데, 함께한 시간이 한두 해도 아닌데 도대체 언제부터였을까. 아무리 표현에 인색한 그라도 전혀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감춰 왔다는 게 믿기지가 않았다. 그래서 더 이 모든 게, 잠시 뒤면 깨어날 꿈만 같다.
“저기, 대리님.”
심각한 얼굴로 생각에 잠겨 있던 지운을 걱정스럽게 쳐다보던 호준이 살며시 끼어들었다.
“제가 주제넘은 줄은 알지만, 한 말씀만 드릴게요. 솔직히 제가 정 팀장님이었다면, 방금 전 대리님 인사에 되게 가슴 아팠을 거 같아요. 분명 자신의 감정이 어제 다 드러나 버렸는데, 대리님은 그걸 인정하지 않는 거잖아요. 평소처럼 아무렇지 않게 인사하셨잖아요. 대리님도 당황스럽겠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지금 대리님 상황이, 자신의 마음이 어떤지 파악할 그럴 정신이 없는 건 알아요. 하지만 일단 상대의 마음은 인정해 주는 게 맞는 거 같아요. 그게 죄도 아니고, 친구가 친구를 좋아했다기보다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거잖아요. 그게 먼저잖아요. 팀장님 성격에 지금 얼마나 괴롭겠어요. 독사가 아니라 즉사하게 생겼어요. 낯빛이.”
한숨이 나왔다. 호준의 말이 다 맞다. 당황한 자신보다도, 그가 더 괴롭고 힘들 거다. 그 역시 삼총사의 균형을 깨지 않으려 지금까지 숨겨온 거겠지.
“그리고 어제 제가 드렸던 말, 정말 흘려듣지 말고 곰곰이 되새겨 보세요. 팀장님에 대한 대리님 마음이요. 이번 일을 계기로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면, 오히려 이건 고민이 아니라 큰 축복일 수도 있잖아요. 친구를 잃지 않아도 되고, 오히려 사랑까지 얻었으니.”
지운은 어떻게든 좋은 쪽으로 해결을 봐 주려고 노력하는 호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신경 써 줘서 고마워. 오랜 세월을 우정으로 알고 지내왔는데 하루 만에 감정이 바뀐다는 건 어려운 일인 거 같아. 그래도 피하면 안 된다는 것쯤은 알아. 오늘 끝나고 얘기 좀 해 보려고 해. 네 말이 많은 도움이 됐어. 고맙다.”
애써 웃으며 다시 파티션 안으로 고개를 돌리는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좋은 아침입니다.”
“네, 본부장님. 좋은 아침입니다.”
직원들과 인사를 나누며 언제나처럼 밝게 웃고 있는 욱이 보였다. 어제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원래 알고 있던 욱의 모습 그대로였다.
“좋은 아침이에요, 윤 대리.”
그가 먼저 인사를 건네 왔다.
“좋은 아침입니다. 본부장님.”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는데 곱게 접은 쪽지 하나가 툭 떨어졌다.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펼쳐 본 지운은 피식 웃고 말았다.

나 무단침입 하는 거 엄청 좋아해.
어제 고마웠다.

어제보다 한결 나아 보여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여전히 안타까웠다. 오랜 시간 자리 잡아 온 그의 아픔을 다독여 줄 손길이 필요했다. 친구가 해줄 수 있는 건 한계가 있다. 외로운 마음을 치유해 주기 위해서는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연인이 필요할 거다. 하루 빨리 반쪽을 만나야 상처가 아물 수 있을 텐데.
지운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많은 생각에 정말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어느 것 하나 마음이 편한 게 없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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