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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 글
뜨거웠던 삶의 현장으로 초대되어 자유종을 울려라 아흔아홉 칸 요람|엄부자모|자유종을 울려라|고집 센 아이|‘출가’ 싫어 ‘가출’을|기독교를 만나다|새로운 기회를 살리기 위해|자유로운 신학 풍토에서|전쟁 중에도 삶은 계속되었다 학교 안에서 한국 사람은 캐나다 닭보다 가난하구나|우정 때문에|모교에 부임하여|장공 김재준|안방 지키기도 힘에 부칠 듯한|여교수, 그 존재만으로도|다 있니?|막역하다 못해|제자들의 존재감을 키운 뜰|그때도 여성운동을 했다|강의실 밖에서 더 많이 가르친‘우리 선생님’|헬라어 학자|물의를 일으키다|한국신학대학, 젊음의 가운데 토막을 태운 곳|평생 가장 힘들었던 시간 학교 밖에서 하느님의 선교|교회여성 연합조직을 만들다|집도 절도 없지만|1970년의 피에타|‘개털’ 때문에 밑 모를 어둠 위로 나는 기득권자였다|저항의 시작, 남산 사건|기생관광으로 외화 버는 국가라니!|서울여자대학교 교수로|한국은 아직 해방되지 않았다|박종석 히다치사 입사투쟁|한국인 원폭피해자 실태를 알리다|유신 반대 조직을 빨갱이로 만든 민청학련 사건|그 방, 한국기독교회관 301호|개신교 앙가주망의 한가운데로|구속자 가족과 함께한 목요기도회|어머니 같은 지사|작은 거인|자유언론투쟁, 그리고……|교회기구에 여성을 참여시켜라 더 낮은 계곡으로 기로에서 폭풍의 언덕을 향해|3.1 민주구국선언|잠 안 재우는 것도 고문인가요|이우정 입 보험 들자|구속자 가족들의 숄 짜기, 그리고 연대의 물결|맨손으로라도 싸워야 한다|투쟁하는 바보에게 준 상|돈 좀 걷어 보내라|여성노동자들의 어머니|투쟁현장의 첫 번째 방문자|나를 이용하라|노동자에게 삶을 배운다|여성의 인간화 투쟁하는 공동체 구춘회|구미혜|디아스포라 지하조직, 국제 민주동지회|골방 모임, 국내 민주동지회|한빛교회, 교인들 형량만도 2백 년 아프로디테를 깨우고 제자들을 불러내다|혼자 살지 말고 결혼해!|함께 일하기 좋은 여성? 여성신학 속절없는 시간|광주|거기서 샤워 못 해요|다시, 여성의 눈으로|운동은 이우정이 깨닫는 지점에서|밟힌 자에게서 시작하는 여성신학|여성 존엄성 억압하는 세력은 사탄|남성 중심 서구 교회로는 안 된다|신학보다 먼저 일어나는 삶 봄이 사라지고 미국은 우리에게 누구인가|수레바퀴 아래서|깨끗하게 늙고 싶다|해방 후 처음 연 3.8 여성대회|노선이 무엇이기에|여성, 통합할까 따로 갈까|권인숙|혈루병 앓는 여자|한국여성단체연합 초대회장 대답 없는 신 민주화운동, 정오에 이르다|아직은 척박한 광야인데|나는 의견을 밝혔다|김대중 유세에 나서다|설교 중에 울었다 분신의식 내 문제인데 맘대로 할 수 없다|진보 여성운동, 전성기를 열다|그 많던 대책위원장은|혈연을 넘어선 모성|가족 정치, 변신인가 남성 지배적 교회에서|몸은 가라앉고 열정은 타오르고|내 변신, 나도 이해 안 된다|골고루 돌아가게 하는 정치|진흙탕 속으로|핵심 짚는 외통위원|성폭력 방지법이라니?|여성특위 초대위원장|여성의 정치참여 확대를 위하여|국회 여직원 처우를 개선하다|정치인 이우정 통일 길을 내자 광주 후 세계를 보다|반핵평화운동으로|한국 여성운동은 민족문제 포함해야|문익환을 호위하러 가다|여성이 통일의 노둣돌 되자|‘심장 속에 남은’ 서울 토론회|평양 토론회|다시 길이 막히다 참나무 한 그루를 심다 평화 ‘만들기’|적이라도 살려놓고 봐야|함께 참나무를 심다 한 사흘 앓다가 쓰고 나서 이우정이 깨달은 지점에서 운동은 새 장을 열었다 주석 이우정 생애 연표 참고자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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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신대 교수로서 안일한 삶에 파묻혀 무슨 ‘탈출’이니 하는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런데 내게 큰 충격을 준 사건이 있으니 그것은 전태일 씨의 분신사건이었다. …… 그때 나는 내 가슴을 짓누르는 무게를 감당할 수 없었다. 그 무거움은 노동자들 특히 여성노동자들에게 ‘빚진 자’라는 죄책감으로 몰아갔다.”---p.129
학교 밖으로 나오자 이우정의 눈에는 주변부 삶이 또렷하게 들어오기 시작했다. ‘뒤늦게’ 깨달은 것은 자신이 지금껏 평탄하게 살았으며, 그 평탄함이야말로 특권에 속한다는 것이었다. 전태일과 같은 노동자들이 애매하게 고통당하며 비참하게 사는 것은 자기 같은 사람이 이 특권을 인식하지 못하고 무심코 누리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이우정은 가까운 이들과 정을 나누고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이들이 비극적 삶을 초래하는 사회구조를 보지 못해 불의를 방관하고 나아가 악을 조장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기와 같은 평범한 이들의 침묵이 아무 잘못도 없이 찔리고 상처받은 이들을 더 비참으로 몰아넣는다는 것을. 생각 없이 평탄하게 사는 것은 악으로 가는 길이었다.---p.139 “창세기에 보면 하나님께서 인간을 하느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셨다고 했습니다. 여기 형상대로 창조했다는 원어는 큰 것에서 작은 것을 떼어냈다는 말입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자기의 분신으로 만드셨다는 뜻입니다. 예수께서 ‘내가 네 안에, 네가 내 안에 있다’고 하신 말씀, 또 ‘하나님이 내 안에, 내가 하나님 안에 있다’ 하신 말씀은 서로가 연결된 분신이라는 뜻입니다.” “우리에게 이런 분신의식이 생길 때 우리는 서로의 아픔을 느끼고, 이 아픔을 느낄 때 책임의식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몸이 병들어도 아픔을 느끼지 않으면 몸은 점점 썩어 결국은 성한 부분도 다 썩어버립니다. …… 이 아픔이 예민하게 내 신경에 반응해오지 않으면 나도 분명히 병이 든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되지 않게 하기 위해 자주자주 진단을 해야 합니다. 그것은 아픔을 당하는 현장을 골고루 찾아보고 그 아픔이 내 아픔으로 아프게 느껴질 때만 가능합니다.”---pp.402~403 생전에 이우정 선생님께 붙은 명칭은 셀 수 없이 많다. 교수, 재야민주인권운동가, 여성운동가, 여성노동자의 대모, 평화통일운동가, 정치인 등등. 선생님이 감당했던 직책들도 일일이 거론하기 어려울 정도다. 세상이 선생님을 부른 숱한 이름은 하느님이 당신을 불러낸 장소와 사건을 가리킨다. 선생님은 시대의 부름에서 동시에 하느님의 부름을 들었고, 선생님이 감당했던 일들은 부단히 하느님 뜻을 묻는 기도 끝에 일으킨 행동이었다. 그런데 하늘이 불러낸 곳은 남에게 부러움 살 만한 고아한 자리가 아니었다. 하느님이 세상의 구원과 해방을 위해 예수라는 몸으로 내려온 그곳, 후미지고 고단한 지대였다. 누구나 피할 수만 있다면 피하고 싶어 할 고난과 위험이 기다리는 곳이었다.---pp.505~506 타인의 아픔과 고난을 인식하는 것과 그것에 반응하는 것은 별개다. 생각이 있어도 마음과 행동이 기꺼이 따라가기가 쉽지 않다. 세상에서 가장 먼 거리를 머리와 가슴이라고 하지 않나. 세상의 신음과 비명을 듣고도 그것이 들리는 곳에 달려나가기까진 머리에서 가슴까지 내려올 때보다 더 긴 시간이 걸릴 수 있다. 그래서 예수도 제자들을 향해 마음은 원하지만 육신이 약하구나, 안타까워했던 거다. 이우정 의식의 진보가 1970년대 이후 여성운동의 변화와 일치하는 것은 머리·가슴·발이 경계 없이 작동하는 삶이 그를 시대의 끝이요 시작에 서게 했기 때문이다. ---p.5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