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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산 권재규의 학문과 사상
양장
김준형 등저
술이 2012.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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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명학연구총서

책소개

목차

간행사

論文
구한말, 일제시대의 사회변화와 강루리 안동권씨의 대응 - 김준형
松山 權載奎의 蘆沙學 繼承과 嶺南地域에서의 活動 - 김봉곤
松山 權載奎의 講學活動 - 鄭基敏
松山 權載奎의 현실인식과 20세기 유교지식인의 형상 - 함영대
松山 權在奎 성리학의 구조와 실천윤리사상 - 孫炳旭
松山 權載奎의 漢詩 硏究 - 이재숙
1930년대 江右儒林의 蕭寺同遊와 遺民意識全丙哲

附錄
松山 權載奎의 生涯 家系 師友 및 作品槪要 - 정기민
而堂 權先生 行狀
松山 權載奎의 年譜
系譜圖

품목정보

발행일
2012년 10월 31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286쪽 | 153*224*20mm
ISBN13
9788993382389

출판사 리뷰

이 책은 송산(松山) 권재규(權載奎)의 학문과 사상에 관한 학술대회에서 발표한 논문과 부록으로 이루어져 있다.
송산 권재규 노백헌에게 수학하여 노사의 연원에 접맥하였고, 이로 말미암아 그는 노사의 학문을 계승한 강우(江右)지역의 대표적 인물 중 한 분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송산은 1870년 서구열강과 일제의 조선에 대한 침략이 노골화되던 시기에 태어나 1952년 6.25 전쟁이 한창 진행 중이던 때에 돌아갔다. 83세를 사는 동안 벼슬에 나아가지 않고 학문과 후학 양성에 힘을 기울였다.
송산은 어려서는 계남(溪南) 최숙민(崔淑民)에게 수학하였고, 20세가 되어서는 노백헌을 찾아가 배알하였다. 그는 스승 노백헌을 좇아 일제에 항거하는 논의와 행동에 참여하기도 하였으나, 1911년 노백헌이 세상을 떠난 뒤에는 더욱 학문에 정진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1916년 46세 되던 해부터는 교육에 힘을 기울이게 되는데, 마을 뒤 샘 위에 소천정을 짓고 그곳에서 기거하면서 문생들을 가르쳤다. 1930년 회갑이 되던 해에는 송사(松沙) 기우만(奇宇萬)의 문집인 [송사문집]을 교정하기 위하여 전남 장성의 담대헌(澹對軒)에 여러 달 머물렀다. 1935년 65세되던 해에는 소천정이 협소하여 인곡서당을 건립하여 문생들을 가르치며 생을 마쳤다.
이처럼 송산은 조선 후기 나라의 안위가 풍전의 등화와 같고, 유학이 존폐의 기로에 있을 때, 이 어려움을 극복하는 길이 유학에 있다고 보고, 평생 유학을 공부하고 후학을 양성하는 데에 힘을 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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