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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chela Murg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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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나리아 부인이 아이에게 내준 방은 침대가 하나 있을 뿐, 온통 성스러운 분위기가 가득했다. 그곳에서 마리아는 천국
이란 결코 아이들을 위한 장소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마리아는 이틀 밤을 뜬눈으로 지내며 어둠 속에서 피눈물이 흐르지는 않는지, 빛이 번쩍이지 않는지 숨을 죽인 채 조용히 지켜보았다. 3일째 되는 날 밤, 손가락으로 성호를 그으 며 성심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버리려 하는데, 가슴 위로 힘차게 튀어 흩어지는 묵주 세 개의 무게가 위협적으로 느껴졌 다. 마리아는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 pp.8~9 누군가 손으로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울렸을 때 마리아는 잠들어 있지 않았다. 곧 어느 남자의 낮지만 격양된 목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너무 낮게 들려서 뭐라고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마리아는 붉은 빛을 띠는 그림자들 아래 이불 밑에서 꼼짝하지 않았다. 앞뜰로 난 문이 열리고 보나리아의 익숙한 발소리가 들렸다. 바닥에는 찬 기운이 느껴졌지만, 아이는 침대에서 맨발로 내려와 문을 향해 어둠 속을 더듬거렸다. 발이 요강에 부딪혔다. “아이가!” 입구의 그늘에 서 있던 남자가 낮은 목소리로 나무라듯 말했다. 그는 키가 크고 어깨가 넓었다. 분명하지는 않지만 낯익었다. 하지만 마리아는 그가 누군지 알아볼 겨를도 없었다. 보나리아가 방문 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녀는 교회에서 지정한 축제일에나 입는 모직으로 된 긴 숄 안에 검은색의 단정한 옷차림을 했다. 비쩍 마른 몸으로 그 사내가 마치 귀중품상자라도 되는 것처럼 가리고 서 있었다. 그가 누구인지 왜 왔는지를 감추려고 했다. “네 방으로 돌아가.” --- pp.20~21 “이 계집애를 낳지 말았어야 했어. 하늘도 무심하시지. 애가 셋이나 있는 걸 아시면서도 이 아이를 또 주시다니…….” 자신이 태어난 것이 실수였다는 이야기를 들어도, 마리아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마치 태어나지 않은 사람마냥, 대상이 자기가 아닌 것마냥 무표정했다. 아이가 입은 하얀 옷의 오른쪽 호주머니에서는 훔친 버찌가 번져 꽃처럼 피어나기 시작했다. 붉은색이 피어오르는 듯싶더니 넓게 번지며 몇몇 군데는 검게 물들었다. 오직 얼룩만이 아이의 몸에서 유일하게 변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혐오감을 불러일으켰다. 상점 주인은 그제야 도둑질당한 것을 깨달았다. “바구니에서 버찌를 꺼냈니?” 안나 테레사 리스트루는 딸의 옷 위로 번져나간 얼룩을 보고 손바닥으로 아이를 한 대 때렸다. 아이는 맞는 순간 눈을 감았다가 곧바로 뜨더니 바깥으로 드러난 얼룩이 더욱 번져나가도록 주머니에 손을 넣고 거칠게 문질렀다. --- p.2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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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애로운 ‘마지막 어머니’인가? 냉혹한 ‘영혼 파괴자’인가?
신의 영역을 넘나들어야 했던 여인, 아카바도라의 삶이 펼쳐진다 사르데냐가 고향인 작가는 오래전 풍습처럼 전해 내려오는 아카바도라라는 인물을 주목한다. 사르데냐 방언으로 ‘끝을 내는 여인’이라는 뜻을 지닌 ‘아카바도라’는 고된 삶을 내려놓지 못하고 육체적인 고통을 연명해야 하는 병자가 편안하게 죽을 수 있는 마지막 안식을 선사하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죽음을 선사한다’는 사실 때문에 그녀의 존재는 필요악처럼 여겨진다. 정작 필요한 상황에서는 그녀를 찾지만, 평소에는 ‘아카바도라’라는 그녀의 존재는 철저히 배제된다. 넷이나 되는 딸이 있는 안나 리스트루에게 막내딸 마리아는 죽은 남편과의 사이에서 생겨난 실수에 불과하다. 이미 장성한 딸이 셋이나 있는 그녀에게 마리아는 마지막에 달린 혹과 같다. 어머니의 사랑을 느끼지 못하고 자란 여섯 살 배기 마리아는 도덕적 관습에 위배되는 금기를 아무런 거리낌 없이 저지른다. 아이의 돌발행동을 우연찮게 지켜본 재봉사 보나리아는 안나 리스트루에게 마리아를 양녀로 보내줄 수 있을지 문의한다. 사르데냐에서는 ‘영혼의 딸(혹은 아들)’이라 해서 양녀(양자)를 들이는 풍습이 있었는데, 보나리아는 이 풍습을 통해 마리아를 딸로 받아들인다. 재봉사인 어머니를 양육자로 받아들인 마리아는 성스럽기도 하고, 한편으론 이상한 기운이 감도는 보나리아의 집 안에 차츰 적응해간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의 옷을 만들어주거나 수선해주는 어머니는 가끔씩 밤에 예기치 않은 외출을 감행한다. 그리고 어느 날, 한밤 중 다급하게 움직이는 인기척에 잠자리에서 일어난 마리아는 낯선 남자의 독촉에 못 이겨 서둘러 집을 나가려는 보나리아와 맞닥트리게 된다. 놀란 어머니는 평소와 달리 완고하게 방에 머무를 것을 지시하고, 다음 날 아침에도 다시 한 번 주지시킨다. 그리고 마을에 살고 있던 나이 든 남자, 지아코모 리토라의 죽음을 알린다. 장례식장에 보나리아와 함께 온 마리아는 지아코모의 아들이 지난밤 보나리아를 찾아온 남자로 확신하며 어머니의 외출이 죽음과 연관이 있을 것이라는 의구심을 떨쳐내지 못한다. 작가는 독특한 모녀의 관계를 설정한다. 혈연으로 맺어지지 못했지만, ‘영혼의 자식’으로 인연을 맺은 보나리아와 마리아는 닮은 구석이 많다. 사회적인 금기 행동을 하고, 사랑의 결핍을 경험하고, 곱지 않은 마을 사람들의 시선을 이겨내야 하는 두 여인. 게다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예기치 못한 사건은 둘 사이의 갈등을 증폭시킨다. 그 가운데 ‘죽음’의 문제는 두 여성에게 첨예한 갈등을 불러일으키는데, 둘의 관계는 복원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과연 두 모녀가 이어온 사랑과 관용의 효용성은 어디까지 가능한 것일까? 신의 영역을 드나드는 아카바도라의 역할은 어디까지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일까? 작가는 어린 마리아의 눈을 통해 현실에 눈을 뜨는 섬세한 묘사와 함께 신화의 세계를 엿보는 듯한 특별한 드라마를 그려낸다. “죽음은 과연 신의 영역인가?” 인간의 영원한 화두를 신화의 세계로 끌고 간 섬세한 언어의 향연 이 작품은 한 여성이 다른 여성을 이해하고, 다른 여성이 그 여성을 마음으로나마 이해하기까지의 여정을 다룬다. 보나리아와 마리아가 지닌 은밀한 비밀, 즉 사회적인 금기는 사랑의 결핍에서 비롯되었다. 아이를 방치해 둔 친어머니와 달리 보나리아는 마리아에게 사랑과 애정을 쏟는 한편, 도덕적인 관습을 심어준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보나리아는 도덕적인 관습에서 용인될 수 없는 금기 행동을 일생 동안 이어나가야 하는 운명이다. 순진한 마리아의 눈에 서서히 드러나는 현실은 소설 속 배경과 극적인 대조를 이룬다. 마리아는 자애로운 보나리아의 이면에 감춰진 대조적인 모습에 혼란을 느끼고, 그녀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친다. 하지만 한 번 맺은 인연의 끈을 좀처럼 마리아를 풀어주지 않는다. 작가는 숭고하면서 동시에 혐오스러운 아카바도라의 존재와 행위에 대해 마리아를 통해 성찰한다. 한 인간이 다른 생명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사실은 인간에게 두려움을 안겨준다. 마치 한낱 조물주의 창조물인 인간이 신의 영역을 침범하는 듯한 느낌과 공포를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미켈라 무르지아는 그러한 두려움과 공포 뒤에는 인간이 저지르는 죽음의 문제를 넘어서는 신의 존재를 인정한다는 간절함이 뒤따른다고 역설한다. 이러한 작가의 역설은 기이하고도 아이러니한 인가의 운명을 일깨우는 결말에서 확인된다. 선과 악으로 분리될 수 없는 입체적인 인물의 심리와 폐부를 찌르는 듯한 날카롭고 예리한 언어들은 이야기를 풍성하게 하면서도 작품의 밀도에 촘촘함을 더한다. 독자들은 논리의 세계를 넘어서 신화의 세계를 들여다보는 듯한 희비극의 정수를 경험하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