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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 나의 클래식 인생
Chapter 1 - 작곡가 바흐-그 작고 깊은 샘 자유와 희망의 신호탄-내 인생의 영웅, 베토벤 음악이 그리는 죽음의 세계-나의 모비드한 쾌락 재즈와 클래식을 넘나들다-거슈인의 희망사항 Chapter 2 - 성악가 악보에 그려진 모든 음표를 노래하라-오페라와 내가 엮인 사연, 서덜랜드를 추억하며 벨칸토 오페라의 화려한 부활-디바의 원조 마리아 칼라스 그러므로 지금 너는 슬픔에 잠겨 있지만-로열웨딩 그리고 키리 티 카나와 그녀가 노래를 멈추는 순간 시간도 흐름을 멈춘다-메트로폴리탄의 프리마돈나 홍혜경 Chapter 3 - 연주가 음표와 음표가 만나 선율이 되다-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과 카잘스 행복한 내 어린 시절의 기념사진, 카라얀과 모차르트 작은 손으로 음악사를 새로 쓰다-신의 목소리를 닮은 연주 정경화 아쉬움에 남기는 글 슈만과 브람스 | 클래식 음악의 컬트가 된 말러 | 독일 오페라의 신, 바그너 | 독일 가곡과 슈베르트 | 내가 원하는 실내악 공연 | 플랑의 오페라 에필로그 - 그대여 음악에서 안식을 구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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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어에서 ‘바흐ein Bach’라는 남성 명사는 시냇물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바흐 이전의 서양 음악이 빗물이라면, 그 빗물이 모여서 거대한 강물을 이루는 시초가 바흐라는 작고 깊은 샘물이다. 나의 대학 시절 바이올린 선생님은 늘 바흐 이후의 서양음악은 바흐로부터 나왔다고 말씀하셨다. 그러기에 서양음악을 좀 더 알고 싶은 사람은 제일 먼저 바흐를 알아야만 한다. 그러나 이 샘의 깊이를 단번에 알 수는 없다. 모차르트를 듣다 돌아와 다시 듣고, 쇼팽을 듣다 돌아와 다시 듣고, 평생 바흐를 들으며 그 속의 수많은 이야기를 찾아내고, 그 맛을 음미해야 한다. 바흐는 음악사에 길이 남을 거장들에게조차 순례를 마치고 돌아가야 할 집이면서, 끝마치지 못한 숙제처럼 늘 가슴 한 구석에 남아있는 존재이다. --- p.53
영웅 교향곡의 첫 두 음은 아마도 신호탄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봉건 질서 아래 억압 받았던 민중에게 자유와 희망의 시대를 여는 신호탄일 수도 있고, 음악사적으로 보면 지금껏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음악이 탄생하는 신호탄일 수도 있다. 흔히 바흐를 수학자에 비유한다. 수학은 숫자를 쫓는 학문이지만, 그 숫자로 우주 삼라만상을 표현하는 무궁무진한 학문이다. 바흐는 음표만을 쫓았지만, 그 음표들로 수많은 단어들이 무색할 우주처럼 심오한 세계를 보여주었다. 바흐가 ‘음악의 수학자’였다면, 베토벤은 ‘음악의 철학자’이다. 음악이 순수한 음표의 아름다움을 쫓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처럼 감정을 갖고, 그 안에서 인간의 이상을 표현해 나가는 것이 베토벤의 음악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 신호탄이 의미하는 두 가지는 서로 일맥상통한다. 인류에게 자유와 희망을 주는 음악이 시작되는 신호탄인 것이다. --- p.63-p64 내가 조지 거슈윈의 곡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의 곡들이 갖는 장르를 초월하는 유연성 때문이다. 그의 음악을 클래식과 재즈, 뮤지컬로 나누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한 곡 한 곡이 연주자에 따라 클래식도 되고 재즈도 되고 그 중간의 어떤 것도 다 되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그의 유명한 오페라 《포기와 베스》에 나오는 〈서머타임〉을 예로 들면, 엘라 피츠제럴드 등 유명한 재즈 가수들이 부를 때면 영락없는 재즈이지만, 레온틴 프라이스, 캐슬린 배틀 등 클래식 발성법을 사용하는 오페라 가수가 부르는 〈서머타임〉은 오페라 아리아가 된다. 거슈윈이 1920년대에 파리로 건너가 그 당시 유명한 작곡가였던 모리스 라벨의 가르침을 받고자 했을 때 라벨은 “오히려 내가 한 수 배워야겠다”며 거절했는데 거절의 이유 중 하나가 “자신의 가르침을 받으면 거슈윈의 음악 속에 흐르는 재즈의 느낌이 사라질 것 같아서”라고 말했다. --- p.101 칼라스의 목소리는 매끄럽고 예쁜 것도 아니고, 때론 꺽꺽거리는 소리지만, 그 목소리가 서러운 여주인공의 마음을 더 없이 서럽게 노래할 때면, 듣는 이도 함께 꺽꺽거리며 울게 된다. 호소력이 있는 목소리를 지닌 칼라스는 그 목소리를 무기로 사용할 수 있을 만큼 뛰어난 연기력을 지닌 배우였고, 목소리로 모든 감정을 표현해 내는 재주를 지니고 있었다. 칼라스가 15분 정도 길이의 ‘광란의 장면’을 노래하는 것을 들으면, ‘걸어 다니는 목소리 박물관’이라는 말이 머릿속에 떠오를 정도로 희한한 여러 가지 목소리를 낸다. 그리고 순간순간 요동치듯 변하는 감정의 폭이 정신을 차릴 수 없다. 그게 바로 칼라스의 마술이고 그 마술에 한 번 빠진 사람은 소리가 별로 곱지 못해도, 오히려 그 소리에 반해 반복해서 듣게 되는 것이다. --- p.137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이야기를 하려면 스페인이 낳은 불멸의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가 없다. 바흐는 생전에 작곡가로 이름을 떨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오르간 연주자로 유명했기 때문에 그의 작품들이 사후에 많이 잊혀졌다. 멘델스존, 슈만 등 낭만시대 작곡가들이 본격적으로 바흐의 음악을 되살리려는 움직임이 활발히 있었으나, 그래도 무반주로 연주하는 첼로는 여전히 찬밥 신세였고, 슈만은 여기에 피아노 반주를 만들어 붙일 정도였으니 이 위대한 독주 음악에 대한 이해가 얼마나 부족했는지 놀라울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카잘스가 10대 시절 한 고서적 상에서 바흐의 악보를 발견한 것은 하나의 사건이었지만, 그때는 카잘스 자신도 이렇게 큰 파장을 몰고 올지 몰랐을 것이다. --- p.196 나는 정경화를 마녀, 호랑이, 불꽃 등의 강렬한 단어들을 사용하여 부르거나, 젊은 시절과 근래의 음악 세계를 이분하여 공격적인 젊은 시절과 부드러워진 근래의 음악이라고 단정 짓는 이야기들을 매우 싫어한다. 그녀의 음악은 공격적이면서 따스하고, 불꽃같으면서 달콤하다. 물론 젊은 시절에 비해 소리가 부드러워진 느낌이 없지는 않으나, 그 정도 변화는 나이가 들면서 많은 연주자에게 일어나는 변화라고 할 수 있다. 그녀의 음악은 한두 개의 단어로 설명이 힘들 만큼 복합적이고 언제 어느 모습이 분출될지 모를 만큼 변화무쌍하다. 그녀를 ‘마녀’ ‘호랑이’에 비유하는 것은 그녀의 음악 세계를 한정하는 행위이며, 그녀의 작은 손이 일궈낸 넓고 깊은 예술 세계에 어울리지 않는다. --- p.258-259 킨리사이드는 어려서부터 운동에도 소질을 보여 운동으로 단련된 몸으로 고난도의 스턴트를 곁들인 연기도 서슴지 않는데 그가 잘츠부르크에서 모차르트의 《마술피리》의 파파게노로 출연했을 때는 자전거를 타고 가며 노래를 하다가 그것도 모자라 넘어지고 부딪히는 연기를 곁들여 관객들의 입이 벌어지게 만들었다. 《겨울 나그네》 전에도 그는 트리샤 브라운 무용단과 여러 차례 다른 공연을 했는데, 한 번은 무용수들과 공중으로 휙 뛰어 올랐다가 내려와서 노래를 시작해야 하는 것을 너무 높이 날아 공중에서 첫 음을 시작했고, 트리샤 브라운 단장은 공연 후 그에게 농담반 진담반으로 “무용수보다 높이 뛰지 마세요”라고 주의를 주었다. 이런 그이기에 그냥 서서 불러도 힘든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 전곡을 춤을 추며 부를 수 있었다. --- p.27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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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살 때부터 바이올린을 배워 삼형제 트리오로 무대에 오르고, 대학에서 오케스트라 바이올린 섹션의 리더로 활약했으며, 미국 동네 작은 음악회 무대에 20여 년 이상 오른 바이올리니스트이자 현직 변호사 이철재가 쓴 클래식 에세이 『나도 바흐를 즐길 수 있을까』가 도서출판 이랑에서 출간되었다.
저자는 이 책의 내용을 작곡가, 성악가, 연주가의 3장으로 나눈 뒤, 명곡을 탄생하기까지 고뇌하고 방황한 음악가의 삶을 들여다보고, 무대에 오른 연주자들의 작은 몸짓, 목소리 하나에서 음악사가 새롭게 쓰여진 순간을 탐구하며, 한국과 미국의 크고 작은 음악회를 찾아다니며 느낀 악흥의 순간을 이야기하고, 직접 바이올린과 비올라를 연주하는 사람으로서 느낀 클래식 음악의 매력을 들려주고 있다. 바이올린을 배우던 어린 시절의 모차르트를 추억하다가, 오래전 찰스 왕세자의 결혼식 중계에서 호주의 성악가 키리 티 카나와를 만난 장면을 기억하며, 10대 시절 인생의 영웅이었던 베토벤의 음악을 재조명하기도 하고, 미국의 대학에 홀로 진학한 뒤 조안 서덜랜드의 노래에서 위로를 받았던 순간을 떠올리기도 하고, 온 미국이 나락으로 빠져들었던 9·11 당시 포레의 '레퀴엠에서 깊은 위안을 받았던 순간을 떠올리기도 한다. 또한 음악의 순례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다시 들어야 할 곡으로 바흐의 '나단조 미사'를 꼽고, 지금 이 순간을 더 잘살기 위해서 들어야 할 곡으로 여러 작곡가들의 '레퀴엠'을 소개하고 있으며, 가장 아끼는 명반으로 정경화의 '콘 아모레'앨범을 주저 없이 선택하고 있다. 이밖에도 ‘살아 있는 목소리 박물관’이라고 불렸던 칼라스의 노래에서 받은 감동, 음표와 음표가 만나 선율이 된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과 이 곡을 발굴한 카잘스를 소개하고, 카라얀과 모차르트 삶을 흥미진진하게 풀어놓고 있다. 『나도 바흐를 즐길 수 있을까』는 클래식 음악가와 명반, 명연주자의 공연 및 음반을 소개한 친절한 클래식 입문서이자, 클래식의 매력에 푹 빠진 한 예술 옹호자의 클래식 예찬이다. 음악으로 치유하고, 음악으로 행복하라! 『나도 바흐를 즐길 수 있을까』에서 저자는 클래식 음악의 품격과 매력을 시종일관 이야기한다. 저자는 “음악은 개개인의 가슴에 다가와 우리 인생에 작게, 혹은 크게 변화를 주기도 한다”고 말한다. 미국의 메조소프라노 타티아나 트로야노스Tatiana Troyanos의 이야기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그녀가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케스트라의 출연계약을 줄줄이 취소하고 유방암으로 투병하며 병원 침상에 누워 지내던 어느 날 아침, 주사 바늘을 주렁주렁 단 채 암병동 복도에 나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던 일화이다. 30여 분 계속된 그녀의 노래가 끝나자 어느 틈에 하나 둘씩 모여들어 듣고 있던 환자들이 다가와 그녀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어떤 사람은 “항암 치료를 시작하고 고통을 잊어 본 건 오늘이 처음”이라고 했고, 또 어떤 사람은 “당신은 꼭 완쾌하여 뉴욕 메트로폴리탄에서 노래하는 오페라 가수가 되어야 해요”라며 그녀에게 용기를 주었다. 그리고 그날 늦은 오후 트로야노스는 5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트로야노스의 음악을 들은 암 환자들은 그 음악으로 통증까지 잊을 정도로 큰 감동을 받았겠지만, 그중 가장 행복했던 사람은 생의 마지막을 노래로 장식한 트로야노스가 아니었을까? 이처럼 클래식 음악은 인간의 희로애락을 표출하는 도구로 쓰이기도 하며 아픈 마음을 위로하는 처방전이 되기도 한다. 또한 음악은 열린 마음과 귀를 가지고 다가오는 모두에게 마음의 안식을 준다는 것이 저자의 지론이다. 저자는 “클래식은 고상한 사람들이나 듣는 지루한 것, 가요나 랩은 재미있는 것” 이렇게 편을 가르는 것 또한 옳지 않다고 얘기한다. 들어보고 적성에 맞는 것을 고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듣지도 않고 이건 아니다라고 하는 것은 인생에 큰 즐거움이 될 수 있는 씨앗을 죽이는 일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클래식 음악의 역사를 살펴보면, 연주자나 작곡가가 오늘날처럼 대접받으며 생활한 것이 얼마 되지 않았고, 그나마 오늘날도 극소수의 선택된 음악가만이 그런 대접을 받으며 살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이든 같은 악성도 헝가리 시골 영주의 궁정악사로 있을 동안에는 하인들과 한자리에서 밥을 먹었고, 작곡가들은 궁정악사로 들어가 귀족들을 위한 음악을 작곡하기도 했지만,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 <마술피리>, 로시니의 <세빌리아의 이발사>, 비제의 <카르멘> 등 민중을 위해 작곡한 음악도 많다는 것이다. 클래식 공연이 너무 길거나 혹은 예의범절 때문에 클래식 듣기를 망설이는 사람에게 저자가 권하는 팁이 있다. 예매한 연주회에서 들을 음악을 CD를 사거나 혹은 유튜브를 통해서 먼저 한두 번 들어보라는 것이다. 『나도 바흐를 즐길 수 있을까』에는 저자가 직접 보고 들은 명연주, 명반의 소개와 함께 유튜브에서 손쉽게 찾아 들을 수 있는 연주자와 공연이 많이 소개되어 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클래식 음악은 고고한 사람들만이 듣는 음악이 아니며, 음악은 그것을 듣는 우리가 전문가가 아니라고, 최고가 아니라고 차별하지도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