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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한계를 벗어나 앞서 달리는 자는 언제든 나타난다. 숨은 턱에 차고 발은 꼬이고, 이기려면 발을 걸거나 옷자락을 낚아채 끌어내려야 한다. 발밑의 것들은 미리미리 추락시켜 놓아야 한다. 신경 곤두서고 예민해지는 일이다. 미치지 않으면 다행이다. 함께 사는 방법이 있기나 했는지 기억도 희미하다. 세상의 가치는 정신없이 변하고, 무엇을 버리고 잡아야 하는지 혼란스럽다. 어른들이 이럴진대 아이들이야 오죽할까.
세상에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면 언제든 내게도 가능하다. 입장은 한순간에 바뀐다. 내가 처하지 못할 입장은 없다. (……) 구르는 돌은 그저 풍경이다. 바쁜 행인의 걸음에 차이는 돌멩이는 조금 귀찮은 쓰레기다. 그러나 그것에 걸려 넘어지는 순간, 돌부리는 내게 현실이 된다. 돌멩이는 돌멩이일 뿐인데 말이다. --- 작가의 말 중에서 “누구 없어요? 거기 누구 없어요?” 나는 놈이 종일 부르짖었을 속울음을 놈의 귓속에다 절절하게 불어넣는다. 하루에도 몇 번씩 나는 그 누군가를 찾아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아무도 없었다. 울음소리가 커질수록 내가 주변이라고 알았던 것들은 멀어졌다. 세상을 향한 두드림은 결국 내 연한 가슴을 때려 단단한 벽을 만들었다. 그 벽이 가둔 건 내 영혼이었다. (……) “엄마가 뭘 알아요? 모르면 그냥 계세요.” 형은 맹수처럼 튀는 눈빛을 누르지 못했다. 엄마가 놀라며 소리를 질렀다. “아니, 뭘 잘했다고 쏘아봐? 저러니 선생님이 야단이시지.” “지들이 뭘 알아요? 미쳤어요. 제가 왜 수업시간에 교실을 나가게요? 알아나 봤어요? 모르잖아요!” “그게 무슨 말이야” “엄마가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에요.” “알아야 해결을 하든 말든 할 게 아니야” 형은 방문을 닫아걸었다. “씨발! 죽어봐라. 니들은 몰라!” 형은 어린아이처럼 울었다. (……)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등지느러미까지 너덜너덜 떨어져 나갔는데 그 떨어져 나간 조각들이 보이지 않았다. 균형이 잡히지 않아 한쪽으로 기우뚱 기울어진 붕어는 힘없이 흔들렸다. 그때였다. 흔들리는 지느러미 곁으로 빨강 붕어가 다가갔다. 그러고는 너덜거리는 붕어의 눈을 쪼아대기 시작했다. 나는 급히 주먹으로 어항을 마구 두드렸다. 이럴 수는 없었다. 어쩌자고……. 먹이를 받아먹던 귀여운 아가미였다. 아무도 모르게 친구를 물어뜯는 깡패일 수는 없었다.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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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하지 못할 입장은 없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 사회에서 당연한 진리처럼 여겨지는 생존법칙이 있다. 약육강식이다. 승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 승리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을 짓밟는 일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여긴다. 그리고 이런 사회와 기성세대 틈바구니에서 우리 아이들이 자라고 있다. 협동보다 경쟁을 더 중요시하면서 우리 아이들은 친구들과 상생할 수 있는 방법을 찾지 못한다. 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은 약한 자들의 개소리일 뿐이다. 그러나 무엇 하나 제 손으로 할 수 있는 게 없다. 학교도, 학원도, 심지어 진로까지고 엄마의 몫이고, 아빠의 몫이다. 권력을 가지라고는 하지만 갖고 있는 권력이 없다. 그래서 아이들은 스스로 권력을 갖고자 한다. 약한 자를 남을 밟고 일어서는 것, 그것이 설사 폭력이라 해도 문제될 것이 없다. 《돌멩이》는 우리의 이야기다. 생활력하고는 인연 없는 남편이 그나마도 죽어버린 후 결손가정이라는 사회적 멍에를 짊어진 채 두 아들을 키우는 엄마, 두려움 때문에 찐의 여자친구 노릇도 마다하지 않은 건이, 놀림에 돌대가리로 맞장을 뜬 현이, 남자에게서 해방구를 찾을 수밖에 없는 이혼녀와 독신녀. 길거리에 아무렇게나 차이는 돌멩이일 뿐이다. 가진 것만으로 군림의 지위를 획득한 찐, 주먹을 휘두르고 무리에 속해 있는 것에서 자존감을 찾는 꼬붕들, 그리고 나만 아니면 그만일 뿐이라는 냉소의 우리들……. 이제 돌멩이는 이들에게 무기가 된다. 학교 폭력은 더 이상 아이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대한민국 최고의 철밥통을 지키기 위한 교사들 몸부림은 그저 모른 척하는 것뿐이다. 부모도 제 자식이 맞고 다니지만 않으면 누군가의 머리를 향해 야구방망이를 휘두르든 벽돌을 내던지든 상관없다. 이들 역시 무언의 돌멩이를 내던지고 있다. 폭압은 그것을 헤쳐 나갈 힘이 없는 이들에게는 심장을 겨눈 칼이 된다. 그들이 그 공포에서 벗어날 방법은 적어도 현실에서는 없다. 사회도, 학교도, 부모도, 친구도 등을 돌린 상태에서 그 공포와 맞설 용기는 없다. 그렇지만 죽음으로도 그들의 아픔은 현실이 되지 못한다. 사회는 끝까지 잔인할 뿐이다. 《돌멩이》가 외면하고 싶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돌멩이는 흔하다. 누구에게도 관심 받지 못한 채 뒹굴리다가 누군가에 의해 던져진다. 개구리가 죽을 수도 있고, 유리창이 깨질 수도 있다. 아니면 재수 없게 지나가던 누군가의 머리가 터질 수도 있다. 그야말로 재수 없게! 그렇다. 우리는 학교 폭력에 견디지 못해 죽음을 선택하는 아이들을 보며 ‘재수 없게’ 당했을 뿐이라고 한다. 나는 아니라고, 내 아이는 그렇지 않다고 위안하면서 말이다. 그 아이는 우리에게 단지 ‘재수’가 없었을 뿐이었다고 말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이미 잘 알고 있다. 어제 주먹을 날리던 아이가 오늘은 또 다른 주먹에 희생될 수도 있는 세상에 살고 있다. 내가 처하지 못할 입장은 없는 것이다. 《돌멩이》는 말한다. 학교 폭력은 아이에게 신체적인 상처만을 남기지 않는다고 말이다. 그리고 아이, 하나에서 그치지 않는다고, 정신이 망가지고, 때로는 죽음을 선택하기도 한다. 그로 인해 가정의 소소한 일상이 붕괴되어 버린다. 그런데도 아무도 없다고 외친다. 도와줄, 도움을 줄 누구도 없노라고 《돌멩이》는 처절하게 외치고 있다. 오늘 이 아침, 교복을 입고 종종걸음을 치는 아이들을 보면서 죄스러워지는 것은 나 역시 방관자이기 때문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