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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과거
세계 최초의 신문은 언제, 어디서 발간되었을까? | 그리고 미국 최초의 신문은 언제, 어디서 발간되었을까? | 그렇다면 1600년대까지는 언론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일까? | 초기 신문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누가, 왜 시작하게 되었을까? | 식민지에서 초기 신문들은 어떤 모습이었으며, 누가, 왜 시작하게 되었을까? | 수정헌법 제1조는 어떤 의미일까? | 언론의 자유에 대한 미국의 전통은 다른 민주 국가들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 | 미국 헌법 제정자들은 어떻게 수정헌법 제1조를 승인할 수 있었을까? 또 신문에 대한 연방 보조금은 어떻게 지지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연방 정부를 비판하는 것을 범죄로 간주한 1798년 선동금지법은 어떻게 통과될 수 있었을까? | 19세기에 미국을 방문한 유럽인들은 미국 언론을 보며 왜 그렇게 자주 놀라워(그리고 때로는 두려워)했을까? | 신문은 어떻게 대중 매체가 되었을까? | 마르크스가 정기적으로 호러스 그릴리의 《뉴욕 트리뷴》에 기고한 것이 사실인가? | 링컨은 남북전쟁 중에 전신국에서 왜 그렇게 많은 시간을 보냈을까? | 최초의 인터뷰는 언제였을까? 그리고 인터뷰는 어떻게 취재의 표준 관행이 되었을까? | 19세기 후반 미국에 모여든 이민자는 무엇을 읽었을까? | 노예와 훗날 해방된 흑인은 어떻게 뉴스를 접했을까? | ‘황색 언론’은 정말 1898년에 미국을 스페인과의 전쟁으로 몰아넣었을까? | 19세기에 대부분 정당과 동일시되었던 미국의 신문들은 어떻게 ‘객관성’을 자부하게 되었을까? | ‘객관성’의 가치를 고수하는 것이 ‘전문적’ 언론의 핵심일까? | 만일 언론의 전문성에서 ‘객관성’이 핵심이 아니라면, 무엇이 (만일 그런 것이 있다면) 핵심일까? | 마크 트웨인, 시어도어 드라이저, 스티븐 크레인, 윌라 캐더, 어니스트 헤밍웨이 등이 소설가로 유명해지기 전에 모두 기자였다는 것이 사실인가? | ‘폭로자(muckraker)’란 누구였을까? | 과거에 언론인은 일반적으로 어떤 교육을 받았을까? 언제(그리고 왜) 정규 교육이 도입되고 저널리즘 대학이 발달했을까? | 퓰리처상이란 무엇인가? | 언론인이 자기가 취재하는 대상과 친구이거나 친구가 되는 것은 비윤리적일까? | 라디오는 왜 신문을 없애버리지 않았을까? | 또 텔레비전은 왜 신문을 파괴하지 않았을까? | 많은 민주주의 국가들은 왜 방송에 공적 자금을 투자해 왔을까? | 정보공개법은 왜 존재하는 것일까? 그리고 유용한 것일까? | 신저널리즘이란 무엇이었을까? | 언론이 워터게이트 사건을 폭로한 것일까?(그리고 워터게이트 사건은 무엇이었을까?) | 저널리즘에서 ‘1960년대’의 유산이란 무엇인가? | ‘맥락적’, ‘분석적’, ‘설명적’, ‘해설적’ 뉴스라는 용어는 편향된 뉴스의 완곡한 표현일까? | 사람들이 언론을 신뢰한 적이 있기는 했을까? | 폭스 뉴스는 정파적 언론의 귀환에 관한 서막일까? 2장 현재 오늘날 뉴스란(저널리즘이란) 무엇일까? | 디지털 기술은 뉴스를(저널리즘을) 어떻게 변화시켜 왔을까? | 변하지 않은 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변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 오늘날에는 누가 뉴스를 위해 비용을 지불할까? | 신문은 죽었을까? 아니면 신문 중 일부는 더 이상 신문이 아닌 것일까? | 텔레비전 뉴스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 지역 텔레비전 뉴스는 왜 그렇게 똑같아 보이는 것인가? | 디지털 기술은 텔레비전 뉴스를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을까? | 라디오 뉴스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 공영방송은 왜 미국의 뉴스 보도에서 더 큰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일까? | ‘디지털 네이티브’ 뉴스란 무엇일까? | 블로그는 무엇일까? 그리고 블로그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 소셜미디어는 저널리즘과 어떤 관계일까? | 오늘날 무엇이 뉴스인지는 누가 결정할까? | 그렇다면 이제 모두 언론인인가? 수용자 참여란 무엇인가? | 비영리 언론이 세상을 구하게 될까? | 대학이 단순 교육을 넘어 저널리즘을 생산하는 것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 언론사 간 협업이란 대체 무엇일까? 그들은 항상 경쟁 상대가 아닌가? | 저널리즘의 객관성 가치는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가? 신뢰도가 더 중요한 목표일까? | 책무 저널리즘이란 무엇이며, 오늘날 언론 매체에서 그 역할은 무엇인가? | 그렇다면 주창 저널리즘은 무엇이며 오늘날 그 역할은 무엇일까? | 왜 언론인은 때로 익명의 정보원을 쓸까? 언론은 ‘기밀 누설’에 얼마나 의존하고 있을까? | 그렇다면 언론과 정부의 관계는 적대적이거나 협조적일까? | 이제 개인회사들은 뉴스를 어떤 방식으로 관리하고자 할까? | 언론사와 언론인은 책임이 얼마나 있을까? 그들이 얼마나 유명한지가 중요할까? 3장 미래 신문은 언제 완전히 사라지게 될까? 텔레비전 뉴스와 라디오 같은 뉴스 매체는 어떻게 될까? | 이런 전통 매체의 ‘새로운 사회적 역할’은 무엇이 될까? | 미래 저널리즘의 모든 수익 문제를 해결해 줄 특효약은 존재할까? ‘페이월(Paywall)’은 뉴스를 살릴 수 있을까? | 수백만 개의 신문과 잡지가 유료 모델을 도입했다던데, 거의 대부분의 언론이 그럴까? | 왜 그럴까? | 그렇다면 그런 다른 모델은 무엇일까? 미래의 수익 성장을 위한 다른 선택지에는 무엇이 있을까? | 뉴스를 위한 공적 기금은 언론사 수익 위기를 어느 정도 해결해 줄 수 있었을까? | 미래의 언론계에서는 비영리 언론사가 주전 선수가 될까? | 비영리, 영리, 공공 매체 간의 구별은 얼마나 더 어려워지고 있을까? | BBC처럼 다른 국가의 공공 매체 기관은 어떻게 될까? | 동영상 스트리밍은 일반적으로 어떻게 될까? 그것이 뉴스를 접하는 방식으로서 점점 더 인기를 끌게 될까? | 이 문제에 대해서는 즉답을 피해온 것 같다. 신구 언론을 아우르는 사업 모델은 무엇일까? | 저널리즘의 미래에 ‘모바일의 등장’은 무엇을 의미할까? | 뉴스의 미래에 관해 지역 보도와 전국 보도는 큰 차이가 날까? | 향후 몇 년간 지리적 위치 기반의 뉴스는 덜 중요해질 것 같다. 정말 그럴까? 그렇다면 뉴스 보도에서 지역 차이 이외의 다른 선택지는 무엇이 있을까? | 미국 내 소수민족 매체나 영어 이외의 언어를 사용하는 매체, 특히 스페인어 사용 매체는 어떻게 될까? | 그렇다면 이것이 뉴스가 계속 세분화될 것이라는 뜻인가? | 그렇다면 뉴스의 세분화는 나쁜 것일까? | 2장에서 논의했던 유형의 뉴스 협업은 지속될까? 미래에는 어떻게 변하게 될까? | 페이스북과 언론사는 일부 보도 기사를 생산하기 위해 점점 더 함께 일하고 있다. 뉴스 산업에서 협업 및 공동 작업의 또 다른 사례인 것일까? | “언론인은 고유의 개인적인 브랜드를 구축해야 할 것”이라고들 말한다. 무슨 뜻일까? | ‘기업가형 저널리즘’은 무엇일까? 실리콘밸리 같은 것일까? | 기업가 정신은 여러모로 나쁜 것이 아닐까? 저널리즘이 이제는 생계유지가 어려운 수단이라는 사실을 저항 없이 받아들이기만 하는 것이 아닐까? | 언론인은 단순히 박학다식한 것과는 다르게 특정 주제에 대해 더 잘 알아야 할까? | 이렇게 새로운 언론인을 양성하기 위해 저널리즘 대학은 또 어떻게 변하게 될까? | ‘데이터 저널리즘’에 대해 더 말해달라. 모든 언론인이 컴퓨터 코드 사용법을 배워야 한다는 뜻일까? | 그렇다면 데이터 저널리즘의 미래는 정말로 기존의 사회과학 지향적 저널리즘의 확장일 뿐일까? | 저널리즘의 스토리텔링 기능이 사라지게 될 것이라는 뜻일까? | 하지만 로봇이 뉴스 기사를 쓰게 되리라는 것은 정말 사실일까? | 언론 체계의 변화가 미국 사회에서 정치적 양극화를 부추기는 것일까, 아니면 단지 이용할 뿐일까? 또한 정치적 양극화는 앞으로 계속 증가하게 될까? | 언론과 민주주의의 관계는 앞으로 어떻게 변하게 될까? |
C.W. Ander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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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세계 최초의 신문은 언제, 어디서 발간되었을까?
A.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우리가 무엇을 ‘신문’으로 정의하느냐에 따라 다르다. 우리가 여기서 말하는 신문은, 주제 면에서는 현재 중심적이고, (수기로는 훨씬 더 어렵고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일반적인 유통을 가능하게 해주는) 인쇄물의 형태이며, (추가 발행에 대한 약속이나 기대가 없이 특정 행사에 관한 뉴스를 전달하기 위해 발행하는 광고지와는 달리) 주기적으로, (개인적 서신과는 달리) 발행인들은 모를 수 있는 사람들이 다수 포함된 불특정 다수의 대중에게 배포하는 것을 목적으로 출판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가정해보자. 최초의 신문은 독일 슈트라스부르크의 인쇄공 요한 카롤루스(Johann Carolus)가 1605년에 만들었다. 이후 곧 비슷한 신문들이 잇따라 등장했다. … --- p.19 Q. 마르크스가 정기적으로 호러스 그릴리의 《뉴욕 트리뷴》에 기고한 것이 사실인가? A. 맞다. 카를 마르크스(Karl Marx)는 1853년부터 1861년까지 약 350개 칼럼을 기고했으며 프리드리히 엥겔스(Friedrich Engels)(혼자 125개 글을 썼다)와 함께 약 12편의 글을 같이 작성하기도 했다. 《트리뷴》의 편집인 찰스 데이나Charles Dana가 독일을 여행하던 1848년 퀼른에서 마르크스를 만나면서 이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그 당시 마르크스는 엥겔스와 함께 저술한 『공산당선언Communist Manifesto』으로 상당히 알려진 인물이었는데, 데이나는 그와의 만남에서 깊은 인상을 받게 되었다. 몇 년 후 데이나는 마르크스에게 프랑스의 1848년 혁명이 독일에 미친 영향에 관한 기고문을 요청했고, 이것이 《트리뷴》과의 인연으로 이어졌다. 마르크스는 데이나가 《트리뷴》을 떠날 때까지 정기적으로 글을 기고했다. 그 무렵, 이 신문은 노예제 폐지에 대한 확고한 입장에서 한 발짝 물러섰으며, 미국의 독자들은 남북 전쟁으로 유럽 뉴스에 대한 관심이 이전만 못했다. … --- p.42~43 Q. 최초의 인터뷰는 언제였을까? 그리고 인터뷰는 어떻게 취재의 표준 관행이 되었을까? A. 인터뷰는 사실 19세기까지 저널리즘에서 크게 중요한 부분은 아니었는데, 이는 비단 미국만이 아니라 거의 대부분의 나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최초의 인터뷰는 제임스 고든 베넷(James Gordon Bennett)이 (자신이 소유주이자 편집인이며 기자이기도 했던 페니 프레스) 《뉴욕 헤럴드(New York Herald)》를 위해 1836년에 벌어진 헬렌 주잇(Helen Jewett) 사건에서 형사이자 기자로서 사건을 취재하며 진행했던 인터뷰일 것이다. 아니면 호러스 그릴리(Horace Greeley)가 1859년 모르몬교 지도자인 브리검 영(Brigham Young)을 인터뷰해 《뉴욕 트리뷴(New York Tribune)》에 질의응답 형식으로 게재한 것일지도 모른다. 당시 이런 형식은 상당히 낯선 것으로, 그릴리는 서두에 인터뷰 형식에 대해 다음과 같은 설명을 남겼다. … --- p.45~46 Q. 황색 언론’은 정말 1898년에 미국을 스페인과의 전쟁으로 몰아넣었을까? A. 많은 교과서가 오랫동안 그렇게 기록해 왔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황색 언론(yellow journalism)’이라는 이름은 미국에서 선정적 신문을 이끈 두 인물, 조지프 퓰리처와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William Randolph Hearst)가 각각 소유한 《뉴욕 월드》(퓰리처가 1883년에 인수)와 《뉴욕 저널(New York Journal)》(허스트가 1895년 인수)이 둘 다 연재했던 만화 ‘옐로 키드(Yellow Kid)’에서 비롯되었다. 퓰리처와 허스트는 대중을 두고 치열한 경쟁을 벌였고, 대중의 이목을 끌기 위해서라면 선정적인 기사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들은 쿠바에서 벌어지는 스페인 정부의 잔혹한(혹은 잔혹할 것으로 추정되는) 행위에 대한 뉴스를 부풀리곤 했다. 그러나 여전히 의문은 남는다. 즉, 이들 신문이 과연 미서전쟁 발발에 어떤 영향을 주었던 것인가 하는 점이다. 몇몇 관련 사실들을 한번 살펴보자. … --- p.53~54 Q. 언론인이 자기가 취재하는 대상과 친구이거나 친구가 되는 것은 비윤리적일까? A. 정치인에 관한 기사를 쓰는 기자나 칼럼니스트가 그 정치인과 저녁을 같이 먹는 것은 괜찮을까? 터치풋볼을 같이 하는 것은? 그들에게 조언을 하는 것은? 그들의 연설문을 작성하는 것은? 대답은 해가 지나면서 바뀌었다. 19세기에는 워싱턴을 취재하는 기자들이 한 군데 이상의 언론사와 미국 의회에서 동시에 소득을 얻으면서 일상적으로 의회 내 위원회의 서기 노릇을 했다. 이는 표준적인 관행이었다. 더 드물게는 일부 서기와 기자의 역할을 하면서 동료 기자에게 기밀을 팔아 추가 수익을 얻는 경우도 당시에는 널리 알려져 있었다. … --- p.80 Q. 폭스 뉴스는 정파적 언론의 귀환에 관한 서막일까? A. … 라디오와 케이블 텔레비전에서 정파적 경향성은 중요하지만, 현재는 19세기 미국의 매체들을 지배했던 정파 언론과 같은 것을 재생산하지는 않는다. 폭스(우파)와 MSNBC(좌파)는 열렬한 추종자들을 보유하고 있으며 모호한 영향을 미친다. 연구에 따르면, 폭스 시청자는 폭스를 시청하지 않는 사람보다 훨씬 더 보수적인 견해를 갖는다는 것이 분명히 나타나는 반면, 보수적인 시청자들이 폭스 뉴스를 찾는 것인지, 아니면 다양한 정치적 신조를 가진 시청자들이 폭스를 시청하면서 더 보수적이 되는 것인지는 분명하지가 않다. 전자는 확실히 맞지만, 후자는 일부의 이야기일 뿐이라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 … --- p.108~109 Q. 디지털 기술은 뉴스를(저널리즘을) 어떻게 변화시켜 왔을까? A. … 하지만 디지털 기술은 오랫동안 대부분의 뉴스를 생산해 오던 언론사를 와해시키고 언론의 표준을 새로이 만들어나가고 있다. 디지털 매체는 수용자를 파편화했으며 한때 잘나가던 신문과 텔레비전·라디오 방송국의 광고 기반 경제 모델을 약화시켰다. 뉴스 취재를 효과적으로 뒷받침하던 광고 수익이 계속해서 감소하자 미국의 다수 언론사들은 뉴스편집실 직원 숫자와 임금 액수를 과감하게 줄여서, 다시 말해, 너무나 많은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언론사로서의 야망마저 내려놓은 채 비용 절감에 나서고 있다. … --- p.120 비록 신문사 대부분이 혹독한 비용 절감을 통해 흑자 전환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현재의 형태로는 매력적인 장기 투자 대상으로 보기 어렵다. … 하지만 선별된 신문을 특가로 인수한 최근 인수자 중에는 신념 있는 억만장자도 있다. 투자가 워런 버핏은 2011년과 2012년, 2013년에 그가 이미 소유한 41개의 신문사에 중소도시의 28개 신문사를 추가했다. 아마존 설립자인 제프 베이조스는 2013년에 《워싱턴 포스트》를 인수했다. … --- p.131 Q. 신문은 죽었을까? 아니면 신문 중 일부는 더 이상 신문이 아닌 것일까? A. 미국에는 여전히 거의 1400개의 일간지가 있다. 실제로 몇 안 되는 신문들이 최근에 폐간했는데, 폐간율이 가장 높은 신문은 덴버, 시애틀, 투산처럼 두 신문사가 경쟁하는 도시에서 구독률 2위인 신문이다. 하지만 많은 일간지가 광고를 최소한만 판매한 날에는 인쇄 및 배달 비용을 아끼려고 매주 한 차례 이상 발행을 중단했다. … --- p.138 Q. 공영방송은 왜 미국의 뉴스 보도에서 더 큰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일까? A. 미국인들은 공영방송을 상대적으로 적게(예컨대, 정부 기금과 사적 기부금을 합쳐 1인당 대략 4달러) 지원한다. 의회가 매해 공영방송에 책정하는 약 4억 달러는 미국 시민 1인당 1.30달러에 해당하는데, 이에 비해 캐나다에서는 정부가 공영방송에 1인당 약 22달러를 들이고, 영국에서는 약 80달러, 덴마크와 핀란드에서는 100달러 이상을 들인다. 미국 연방 정부의 자금은 준독립적인 공공방송협회(CPB)에 들어간다. … --- p.167 Q. 오늘날 무엇이 뉴스인지는 누가 결정할까? A. 무엇이 뉴스인지 결정하는 과정에는 홍보 담당자, 공무원, 언론에서 정보를 얻으려는 사람부터 그런 정보의 뉴스 가치를 평가하는 기자에 이르기까지 항상 다양한 요인이 관여한다. 변한 것은 이 과정이 훨씬 더 복잡해졌고 더 많은 사람과 새로운 기술이 관여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대중이 무엇을 뉴스로 보고 듣는지에 관해 일차적인 ‘게이트키퍼’였던 편집장과 방송 뉴스 제작자는, 부분적으로 웹 트래픽 책임자와 디지털 미디어의 소비자로 대체되었다. … --- p.183 Q. 저널리즘의 객관성 가치는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가? 신뢰도가 더 중요한 목표일까? A. ‘객관성’이란 종종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언론의 핵심 가치다. 너무나 오랫동안 이는 종종 기자들의 정보에 입각한 판단을 피하기 위해 ‘단지 사실’이나 ‘균형적인’ 뉴스 보도를 의미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CBS의 에드워드 머로(Edward R. Murrow)가 매카시즘을 공격한 것은 객관적이지 않았다. 《워싱턴 포스트》가 워터게이트 불법 침입 사건이 대통령을 끌어내린 고도의 정치적 범죄와 어떻게 연루되었는지 단호히 조사한 것 역시 객관적이지 않았다. … --- p.199~200 Q. 미래 저널리즘의 모든 수익 문제를 해결해 줄 특효약은 존재할까? ‘페이월(Paywall)’은 뉴스를 살릴 수 있을까? A. 그렇다면 유료화란 무엇일까? 이는 여러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지만, 그중 하나로 독자들이 온라인 뉴스 콘텐츠에 무료로 접속하지 못하게 하는 구독료의 담장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유료화 뒤에 있는 논리는 여러 측면에서 간단하다. 즉, 돈을 내지 않으면 신문이 매일 당신의 현관 계단에 나타나지 않는 것처럼(배달원이 실수로 신문을 배달하는 경우는 있겠지만!), 갈수록 비용을 들이지 않고서는 일부 온라인 언론사에 접속할 수 없게 된다. 하지만 유료화는 뉴스를 구해주지 못할 것이다. 유료화의 중요성은 커지고 갈수록 논란은 줄어들 것이다. 하지만 유료화가 특효약은 아니다. … --- p.222~223 A. 페이스북과 언론사는 일부 보도 기사를 생산하기 위해 점점 더 함께 일하고 있다. 뉴스 산업에서 협업 및 공동 작업의 또 다른 사례인 것일까? Q. 그렇다. 비록 일부 논평가들은 그것이 실제로 얼마나 동등한 협업인지에 대해 의심했지만 말이다. … 분명 앞으로 10여 년간 저널리즘에서 가장 중요한 발전 중 하나는 새로운 방향으로 미디어 혁신을 이끌기 위해서뿐 아니라 트래픽을 위해서라도 플랫폼에 대한 언론 기관의 의존도가 늘어날 것이라는 점이다. 이런 플랫폼들은 강력하다. 그들은 어떤 콘텐츠를 어떻게 관리할지에 관해 (종종 불투명한) 편집자적 판단을 내리던 것에서 더 나아가 발행자처럼 행동하기 시작할 만큼 언론 기관보다 더 강력하다. 다시 말해, 플랫폼은 더 이상 단순히 이용자가 중요하다고 여기는 뉴스 콘텐츠를 관리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저널리즘 사업 그 자체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 --- p.263~264 Q. “언론인은 고유의 개인적인 브랜드를 구축해야 할 것”이라고들 말한다. 무슨 뜻일까? A. 2013년 여름, 통계 마법사이자 인기 있는 538 사이트의 발명가, 2008년 대선과 2012년 대선을 정확히 예측한 점쟁이로 알려진 네이트 실버는 ESPN 기업 체제하에서 자신만의 538 사이트를 시작하기 위해 《뉴욕 타임스》를 떠나겠다는 폭탄 발언을 했다. 이전에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성공한 블로거로, 상대적으로 무명이었다가 《뉴욕 타임스》를 통해 갑자기 떠오른 뒤에 주요 기성 언론 매체에 계속해서 강력한 영향을 끼쳐온 그의 이야기를 고려할 때, 그 뉴스는 특히나 더 놀라운 것이었다. … 정확히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가? 네이트 실버와 538 사이트의 이야기에 대해 생각해 볼 한 가지 방법은 그것이 뉴스 산업에서 나타나고 있는 더 거대한 추세를 가리킨다는 것이다. 즉, 오래된 기업 브랜드는 이제 개별 언론인 각각의 브랜드보다 영향력이 작다. … --- p.264~265 Q. 언론 체계의 변화가 미국 사회에서 정치적 양극화를 부추기는 것일까, 아니면 단지 이용할 뿐일까? 또한 정치적 양극화는 앞으로 계속 증가하게 될까? A. 2014년 퓨리서치센터 저널리즘 프로젝트에서는 강한 보수 성향 혹은 강한 진보 성향의 정치적 관점을 가진 사람들이 특정 언론사를 선호하며 다른 매체를 멀리하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이들은 소셜미디어의 이용에서도 유사한 양상을 따른다. 퓨리서치센터는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렸다. “정치와 정부에 관한 뉴스를 놓고 보자면 진보파와 보수파가 각기 다른 세상에 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이 의존하고 신뢰하는 뉴스의 출처에서는 서로 겹치는 부분이 거의 없다.” … --- p.28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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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은 언제 완전히 사라지게 될까? 텔레비전 뉴스는?”
석학들이 직접 묻고 답하는 뉴스와 언론에 관한 거의 모든 ‘FAQ’ 뉴스는 세상에 질문을 던지고 그 답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런데 이번에 출간된 『뉴스를 묻다』는 그 역할을 바꿔 ‘뉴스’라는 인터뷰이의 삶과 철학, 꿈(?)을 꼼꼼하게 취재해 소개한다. 뉴스에게 무려 90가지 질문을 던지는데, 뉴스의 답변은 보통 한두 쪽, 할 말이 많을 때는 서너 쪽을 넘긴다. 요즘에는 기사를 인공지능이 알아서 쓰기도 한다지만, 물론 이 책에서 답변은 뉴스가 아니라 사람이 한다. 책은 ‘과거’, ‘현재’, ‘미래’ 세 장으로 나뉘는데, 각각 마이클 셔드슨(Michael Schudson), 레너드 다우니 주니어(Leonard Downie Jr.), 크리스토퍼 앤더슨(C.W. Anderson)이 맡아서 질문에 답한다. 일반인들에게는 낯설 이름이지만, 언론학계에서는 유명인들이다. 마이클 셔드슨은 언론학의 세계적 명문인 컬럼비아 대학 저널리즘 스쿨 교수로, 언론의 역사에 정통한 학자다. 그리고 레너드 다우니 주니어는 『워싱턴 포스트』에서 44년간 일하면서 편집장을 역임했고, 현재는 애리조나 주립대학교 월터 크롱카이트 저널리즘 대학 교수로 가르치고 있다. 『워싱턴 포스트』 편집장으로 재직하던 당시에 그 유명한 워터게이트 사건 취재에도 관여했고, 그가 편집장으로 있는 동안에 『워싱턴 포스트』는 25개의 퓰리처상을 받았다. 뉴스의 ‘미래’에 관해 답한 크리스토퍼 앤더슨은 셋 중 가장 어린 학자로, 현재 영국 리즈 대학에서 미디어와 커뮤니케이션을 가르치면서 디지털 시대의 뉴스 생산에 관해 연구한다. 질문과 답변은 과거부터 현재를 거쳐 미래에 이르기까지 뉴스와 그 생산·유통·소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주제로 충실하게 구성되었다. “세계 최초의 신문은 언제, 어디서 발간되었을까?”, “최초의 인터뷰는 언제였을까?”, “라디오는 왜 신문을 없애버리지 않았을까?”, “또 텔레비전은 왜 신문을 파괴하지 않았을까?”(이상 ‘과거’), “오늘날에는 누가 뉴스를 위해 비용을 지불할까?”, “소셜미디어는 저널리즘과 어떤 관계일까?”, “오늘날 무엇이 뉴스인지는 누가 결정할까?”, “저널리즘의 객관성 가치는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가?”(이상 ‘현재’), “신문은 언제 완전히 사라지게 될까? 텔레비전 뉴스와 라디오 같은 뉴스 매체는 어떻게 될까?”, “미래 저널리즘의 모든 수익 문제를 해결해 줄 특효약은 존재할까?”, “저널리즘의 미래에 ‘모바일의 등장’은 무엇을 의미할까?”, “언론인은 단순히 박학다식한 것과는 다르게 특정 주제에 대해 더 잘 알아야 할까?”, “언론과 민주주의의 관계는 앞으로 어떻게 변하게 될까?”(이상 ‘미래’) 등 비교적 간단한 역사적 사실부터, 단순하지 않아 답변이 더 궁금해지는 가치 판단과 미래 전망의 영역까지를 아우른다. 그 밖에도, 카를 마르크스가 미국 신문에 정기적으로 기고했는지, ‘황색 언론’이 미서전쟁을 불러일으킨 것이 사실인지, 언론인이 자기가 취재하는 대상과 친구이거나 친구가 되는 것은 비윤리적인지, 인공지능이 뉴스 기사를 쓰게 될 것인지와 같은 질문에도 답한다. 책에 따르면, 실제로 마르크스는 『공산당선언』 발표 이후 몇 년 뒤 『뉴욕 트리뷴』에 거의 8년 동안 350개 칼럼을 기고했다. 당시 “마르크스는 『뉴욕 트리뷴』의 원고료가 너무 낮다고 불평하곤 했는데, 케네디 대통령은 이를 두고 『뉴욕 트리뷴』의 인색한 발행인이 원고료를 조금만 더 올려줬어도 공산주의와 관련한 엄청난 불화를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농담을 하기도 했다”(43쪽)고 한다. 언론학자들이라서 의식적으로 고려한 것은 아닐 테지만, 신문 기사의 짧은 리듬에 익숙한 상당수 독자에게는 한 꼭지당 기사 하나 정도 분량의 글들이 읽기 편하게 느껴질 듯하다. 하지만 내용은 언론학도나 언론인에게도 이 책 독서의 의미를 채워주기에 충분해 보인다. 뉴스 탄생과 발전의 역사적 발자취를 몇 꼭지에 걸쳐 소개하던 책은 앞서 소개한 상식, 호기심을 채우는 내용을 중간중간 넣어 호흡을 조절하면서도 “‘객관성’의 가치를 고수하는 것이 ‘전문적’ 언론의 핵심일까?”, “사람들이 언론을 신뢰한 적이 있기는 했을까?”, “언론과 정부의 관계는 적대적이거나 협조적일까?”, “신문은 언제 완전히 사라지게 될까?”, “언론과 민주주의의 관계는 앞으로 어떻게 변하게 될까?”라는 (인터넷에서 검색해도 제대로 된 답변을 듣지 못할) 질문들을 던짐으로써 독자들을 비판적 사고의 장으로 몰아붙인다. 더욱이 이 분야에서는 자타공인 세계적 권위의 학자들인 데다 이미 책을 여러 권 내봐서인지(레너드 교수는 신문사에서 44년간 일하기도 했으니) 글 자체도 하나하나 상당히 ‘모범적’이다. 세상은 빠르게 변한다. 뉴스 매체는 그처럼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을 보여주느라 정신없이 돌아간다. 뉴스를 통해 세상을 보는 이들도 그렇겠지만, 뉴스를 통해 세상을 보여주는 이들도 그런 세상의 속도에 치여 뉴스라는 매체가 어디서 왔는지, 어떻게 굴러가고 있는지, 잘못 돌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앞으로는 어떨지 진지하게 생각해 볼 여유가 있었던가. 뉴스와 언론의 역사와 현재, 본질적 가치, 미래 전망을 아우르는 핵심적이라 할 만한 주제들로 알차게 구성된 이 책이 그 질문을 대신 던져줄 것이니, 조금은 여유로운 마음으로 첫 번째 답변부터 함께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