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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1부 글리벡 Glivec
2부 허셉틴 Herceptin
3부 여보이, 옵디보, 키트루다 Yervoy, Opdivo, Keytruda

에필로그

저자 소개 1

매드 사이언티스트

고려대학교 농화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생화학 전공으로 석사 학위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예일대학교와 펜실베이니아대학교에서 박사후연구원을 마치고 이후 충북대학교 농업생명과학대학 축산식품생명과학부 초빙교수로 근무했다. 현재 SLMS(Secret Lab of Mad Scientist) 대표 및 (주)오름테라퓨틱 기술 자문을 맡으며 과학 저술과 연구 컨설팅을 비롯해 구조 기반 신약 연구를 병행하고 있다. 다양한 플랫폼과 강연을 통해 생명과학에 관한 대중의 인식을 높이고자 노력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암 정복 연대기》, 《바이러스, 사회를 감염하다》, 《과학자가 되는 방법
고려대학교 농화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생화학 전공으로 석사 학위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예일대학교와 펜실베이니아대학교에서 박사후연구원을 마치고 이후 충북대학교 농업생명과학대학 축산식품생명과학부 초빙교수로 근무했다. 현재 SLMS(Secret Lab of Mad Scientist) 대표 및 (주)오름테라퓨틱 기술 자문을 맡으며 과학 저술과 연구 컨설팅을 비롯해 구조 기반 신약 연구를 병행하고 있다. 다양한 플랫폼과 강연을 통해 생명과학에 관한 대중의 인식을 높이고자 노력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암 정복 연대기》, 《바이러스, 사회를 감염하다》, 《과학자가 되는 방법》, 《세포: 생명의 마이크로 코스모스 탐사기》 등이 있으며, 공저로 《4차 산업혁명이라는 유령》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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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9년 11월 15일
쪽수, 무게, 크기
336쪽 | 113*188mm
ISBN13
9791196079338

책 속으로

이 책에 나온, 암을 치료하려고 기꺼이 무모한 싸움에 도전장을 낸 과학자들이 이루어낸 성과물은 아직 최종병기가 아니다. 암을 ‘불치병’에서 ‘관리 가능한 질병’으로 바꾸는 일은 아직 멀었다. 암을 좀더 정확하게 이해해야 하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방법과 전략을 계속 찾아내야 한다. 과학자들이 지금까지 치른 암 정복 연대기를 살펴보는 이유는, 남은 싸움에 어떻게 임할 것인지에 대한 영감을 얻기 위해서다. --- p.4

1960년대 중반이 되자 페이튼 라우스가 1911년에 처음 발견한 라우스 사코마 바이러스는 암의 발생 원인을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로 주목받았다. 페이튼 라우스는 세상을 떠나기 4년 전인 1966년에 라우스 사코마 바이러스를 발견한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 생리학상을 수상한다. 이때 페이튼 라우스의 나이가 87세로, 발견부터 수상까지 무려 55년이 걸렸다. 페이튼 라우스는 노벨상을 타기 위한 제1의 조건이 ‘성과를 인정받을 때까지 무병장수하는 것’이라는 속설을 증명하기도 했다.
라우스는 노벨상 수상 강연에서 암은 유전적 이상에 의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발견한 라우스 사코마 바이러스와 같은 감염원에 의한 것이라는 오랜 소신을 강하게 주장했다. 그러나 이후 인유두종바이러스(human papilloma virus)에 의해서 생기는 자궁경부암 등 일부 암 말고 인간에게 생기는 대부분의 암은 라우스의 주장과 달리 감염원과 관계 없는 이유로 발생한다는 점이 밝혀졌다. 역설적이게도 라우스가 발견한 라우스 사코마 바이러스를 이용한 암 연구는, 대부분의 암이 바이러스 등의 감염원에 의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유로 생긴다는 것을 밝히는 데 도움을 주었다. --- p.28~29

1980년대 초반, 스위스 바젤에 있던 제약기업 시바-가이기에서도 단백질 인산화효소를 약물 타깃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 상상했던 연구자들이 있었다. 시바-가이기 소속 연구자인 스위스 출신 의사 알렉스 매터(Alex Matter, 1940-)도 197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쏟아져 나온 여러 단백질 인산화효소 연구에 관심이 많았다. 알렉스 매터와 시바-가이기의 생화학자 니컬러스 라이던(Nicholas Lydon) 등이 참여한 연구팀은 단백질 인산화효소를 억제하는 화합물 개발에 도전했다.
단백질 인산화효소를 특이적으로 억제하는 화합물을 만들려면, 먼저 시험관 안에서 단백질 인산화효소가 단백질에 인산기를 얼마나 붙이는지 정확하게 측정해야 한다. 이를 위해 대량으로 정제된 단백질 인산화효소와, 단백질 인산화효소의 활성을 확인할 수 있는 측정 방법(assay method)이 필요했다. 그래야만 수천 종류의 후보 물질 가운데 단백질 인산화효소를 억제하는 적당한 화합물을 찾아낼 수 있다. --- p.59~60

글리벡은 최초의 단백질 인산화효소 저해제이자 최초의 표적항암제다. 글리벡 개발을 주저하던 노바티스 경영진의 걱정대로, 만성 골수성 백혈병은 미국 기준 전체 암 환자의 0.5%에 불과한 희귀 암이다. 그러나 글리벡은 암에 나타나는 특이적인 분자 타깃을 억제하는 화합물을 이용하면, 큰 부작용이 없이 암을 치료할 수 있는 표적항암제가 가능하다는 것을 실제로 보여준, 개념증명(proof of concept) 사례가 되었다. --- p.74~75

에를리히의 곁가지 이론 이후 면역 현상을 설명하려는 여러 가설이 20세기 전반기에 나타났다. 단백질 나선 구조(alpha-helix) 모델로 노벨 화학상, 반핵 운동으로 노벨 평화상을 받은 라이너스 폴링(Linus Pauling, 1901-1994)은 여러 항원에 결합하는 다양한 항체가 우리 몸에서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설명하려고 1940년에 거푸집 가설(template theory)을 발표한다. 모양이 다채로운 항원을 인식하는 항체를 만들려면, 세포가 항원을 흡수해 항체 단백질을 만들 때 항원을 거푸집으로 이용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항원의 구조와 상보적인 항체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었다.
라이너스 폴링의 생각을 입증할 수 있는 구체적인 실험 증거는 없었다. 그럼에도 약 20여 년 동안 주류 이론으로 통용되었다. 단백질이 세포 안에서 만들어지는 과정을 이해하려면, 1960년대 말 분자생물학이 발전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에를리히의 곁가지 이론과 마찬가지로 폴링의 거푸집 가설도 현재의 면역학과 분자생물학 지식과는 거리가 있는 이야기다. 지금 우리가 교과서적 지식으로 받아들이는 면역에 대한 정보가 정립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많은 가설이 제시되어 믿어지다가 가설과 맞지 않는 실험 결과 때문에 폐기되거나, 수정되는 과정을 되풀이하면서 과학 지식이 확립된다. 면역계에 대한 지식, 항체에 대한 지식도 이런 과정을 거치며 20세기 후반에 이르러 지금 우리가 배우는 교과서적 과학 지식으로 정립되었다. --- p.102~103

분자생물학 연구의 도약을 가능하게 한 재조합 DNA 기술은 신약 개발에서도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재조합 DNA 기술이 등장할 때 분자생물학 연구에 큰 변화를 일으킬 것을 예상했던 학자들이 드물었던 것처럼, 재조합 DNA 기술이 실용적인 (돈이 되는) 산물을 만들어낼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드물었다. 그러나 진핵생물의 DNA를 세균에서 복제하는 것 이외에 DNA로부터 만들어지는 산물인 단백질을 세균에서 생산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상상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DNA 재조합 기술의 실용적 응용은 전통적인 학계와 산업계의 경계면에서 싹트기 시작한다. 그리고 스탠퍼드 대학 생화학과 연구실의 ‘공유 문화’가 이 모든 시작을 가능하게 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 p.133~134

허셉틴의 탄생 과정은 시간에 대한 이야기다. 1970년대 중반 탄생한 단일클론항체가 신약으로 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최소한의 현실 가능한 이야기가 되기까지 약 20년이 넘게 걸렸다. 특정 기술이 기초연구 분야에서 개발되었다고 하더라도, 실제 응용 분야에서 의미 있는 영향력을 지니려면 해결해야 할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학계에서 태동한 수많은 가능성들은대부분 이 과정에서 여러 장벽을 넘지 못하고 사라진다. 반대로 말하면 학계가 발표하는 초기 수준의 기술에 대해 지나치게 기대하는 것도 곤란하다.
한편 허셉틴 같은 혁신적인 신약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기업의 장기적인 연구 개발이 필수적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기존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개념의 물건이 나와서 혁명적인 변화를 일으키려면, 장기적인 연구개발 투자가 필수적이라는 것을 항체신약의 개발 과정은 정확하게 보여준다. 제넨텍이 HER2 연구를 시작한 것은 1970년대 말에서 1980년대 초였다. 첫 성과인 HER2 유전자가 클로닝된 것은 1985년, HER2와 악성 유방암과의 관계가 밝혀진 것은 1987년이다. 여기서 HER2를 억제하는 항체가 등장하고, FDA 승인을 받기까지는 10여 년이 더 지나야 했다. 허셉틴이 초기 단계 유방암 치료제로 널리 사용되기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했다. 연구를 시작하고 무려 30년이 지나서야 허셉틴은 진정한 의미의 신약이 되어 환자를 치료할 수 있었다. --- p.187~188

로버트 갤로는, 자신이 의도했던 엡스타인-바 바이러스에 감염된 B세포를 골수세포에서 분화해 분석하는 기술 대신, T세포를 선택적으로 체외에서 배양하는 기술을 우연히 개발했다. (이후 골수에서 T세포를 배양하는 기술로 T세포에 감염되는 레트로바이러스인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uman immunodeficiency virus], 즉 AIDS의 원인 바이러스를 최초로 분리하는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갤로가 발견한 ‘T세포 성장인자’는 T세포뿐만 아니라 NK세포나 B세포 등의 다른 면역세포 성장도 촉진한다는 것이 나중에 밝혀졌다. T세포 성장인자보다 좀더 특징을 잘 설명할 수 있는 새 이름도 필요했다. 백혈구(leukocytes) 사이(inter)에서 성장 신호를 전달한다는 의미로 인터루킨(interleukin)이라는 이름이 제안되었으며, 갤로가 발견한 단백질은 인터루킨-2(IL-2)라는 이름을 얻었다. --- p.234

오랜 시간과 노력을 들여 PD-1 유전자를 쥐에서 제거하고 분석한 연구자 입장에서는 실망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끈기 있는 연구는 새로운 사실을 알려주었다. PD-1 유전자가 제거된 채 갓 태어난 쥐는 건강해 보였지만, 태어난 지 6개월이 지나 나이를 제법 먹은 PD-1 유전자가 제거된 쥐에서는 여러 장기나 조직이 동시에 손상되는 루프스(lupus)나 자가면역성 확장성 심근병증(autoimmune dilated cardiomyopathy) 등의 질병이 나타났다. 이 질병들은 모두 자가면역과 관련이 있다. 자가면역질환에 걸리면 면역시스템이 지나치게 활성화되어 정상 세포를 공격한다. PD-1은 CTLA-4와 마찬가지로 T세포 활성을 조절하는 단백질이었던 것이다. PD-1 유전자를 발견하고 7년이 지나 알게 된 사실이었다.
PD-1과 CTLA-4는 모두 T세포의 기능을 억제하지만 차이가 있었다. CTLA-4는 T세포의 CD28이 항원전시세포의 B7 단백질과 결합해 T세포 활성화를 개시한 직후, T세포 활성화 단계에서 활성화를 조절한다. PD-1은 이미 활성화되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의 T세포 활성을 조절한다. PD-1을 발견한 혼조 다스쿠도 자동차 비유를 사용했다. CD28과 CTLA-4는 주차장에서 차를 빼거나 주차할 때 사용하는 엑셀러레이터와 주차 브레이크라면, 이미 활성화된 T세포에서 작동하는 PD-1은 도로에서 달리고 있는 차의 속도를 조절하는 엑셀러레이터와 브레이크다. --- p.264~265

2019년 현재, 면역관문억제제를 조합하고, 면역관문억제제와 화학요법, 표적항암제 등을 여러 방식으로 조합하는 약 700여 건 이상의 임상시험이 진행되고 있다. 면역관문억제제로 면역체계를 이용해 치료제를 개발하는 것이 항암 치료제의 중심이 되었다는 점을 보여준다. 콜리의 독소 이래 약 100년 동안 가능성이기만 했던 면역항암 치료법은 항암 치료의 주류가 되었다. 이런 변화는 불과 몇 년 사이에 벌어진 극적인 것이었다. 2018년 10월, 제임스 앨리슨과 혼조 다스쿠는 2018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가 되었다. 두 사람의 노벨상 수상은 이들이 발견한 면역관문억제 단백질과 이를 억제하는 항체가 암 치료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물론 면역항암 치료가 암을 치료하는 길에서 넘어야 할 산은 많다. 면역관문억제제인 CTLA-4나 PD-1 억제제에 반응하는 환자는, 사용이 허가된 암을 앓고 있는 전체 환자의 30% 내외에 불과하다. 30%는 적은 숫자가 아니다. 그러나 아직 70% 정도의 환자는 면역관문억제제의 치료 효과를 보지 못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좀더 많은 암 환자가 면역항암 치료로 생명을 구하려면 CTLA-4와 PD-1/PD-L1 이외의 새 면역관문 타깃을 찾아야 한다. 이를 위해 많은 연구자가 면역체계를 운용하는 조절 단백질 쌍을 발굴하고 있으며, 새 면역관문 타깃을 억제하는 다양한 항체들도 개발 중이다.

--- p.302~303

출판사 리뷰

암과 싸우는 가장 큰 무기는
과학자의 매일 펼치는 평범한 용기


과학자의 대단함은 그들이 새로운 과학적 사실을 밝혀내고, 그것이 우리의 삶을 좀더 나은 방향으로 바꿔주는 데에만 있지 않다. 과학자의 대단함은 자기 연구가 어떤 결과를 낼지 심지어 연구가 성공할지 실패할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매일매일 연구를 이어간다는 점에도 있다. 이 책 『암 정복 연대기-암과 싸운 과학자들』에 이름이 한 번이라도 나오는 70여 명의 과학자들과, 무슨무슨 연구팀이라는 이름으로 뭉뚱그려 소개된 더 많은 과학자들도 마찬가지였다.

만성 골수성 백혈병을 치료해 표적항암제라는 개념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 글리벡(Glivec, 성분명: imatinib), 말기 유방암 환자들의 생명을 구하고 있는 항체의약품 허셉틴(Herceptin, 성분명: trastuzumab), 암 환자 진료 차트에 ‘완치’라고 적어도 되는 상황을 만들어주기 시작한 면역항암제 여보이(Yervoy, 성분명: ipilimumab), 옵디보(Opdivo, 성분명: nivolumab), 키트루다(Keytruda, 성분명: pembrolizumab)는 이들 70여 명의 과학자들과 이름 없이 등장하는 연구팀에 속한 과학자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매일 분투한 결과다.

이들 가운데 자기 연구가 암을 고치는 기적의 약으로 마무리될 것이라고 예측한 사람의 거의 없었다. 과학자들은 그저 오늘도 연구할 뿐이다. 과학자들의 모험에 가까운 연구들이 우여곡절을 겪고 나면 생명을 구하는 약으로 태어난다. 그러니 암과 싸우고 있는 과학자들은, 마지막으로 남은 모험가이며 탐험가라고 할 수 있다.

과학은 한 명의 천재가 완성하는 것도
하루아침에 되는 것도 아니다


『암 정복 연대기-암과 싸운 과학자들』은 천재 과학자의 위대한 업적을 따라가거나, 빈틈없이 꽉 짜인 내러티브로 채워져 있지 않다. 오히려 그런 것들과 정확하게 반대다. 과학자들은 잘못 예측해 엉뚱한 연구를 하는데, 연구한 결과는 전혀 의외의 곳에서 성과를 낸다. 이런 일들이 30~40년 정도 쌓이다 마침내 암을 치료하는 신약이 세상에 나온다. 단일클론항체(monoclonal antibody)에 대한 사연이 대표적이다. 허셉틴이 세상에 나오는 과정에 중요한 기여를 한 단일클론항체 이야기다. 정상적인 세포는 정상적인 속도로 성장하고 사멸한다. 어떤 세포에 이상이 생겨 빠르게 성장하기만 한다면 어떻게 될까? 비정상적으로 빠르게 자라는 세포로 구성된 조직은 제 기능을 못 할 것이다. 또한 빠르게 성장하기만 하는 세포가 영양분을 빠르게 써버리는 탓에, 몸의 다른 곳에서 쓸 영양분은 부족해질 것이다. 암이라고 부르는 병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그런데 몸속 여러 기능의 조절은 분자 단위 단백질의 화학적인 작용으로 이루어진다. 세포가 비정상적으로 성장하는 것도 세포 성장시키는 단백질에 이상이 생겼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단백질에 분자 단위로 결합해 화학적인 작용을 막는 물질을 환자에게 투여하면 암은 멎을 것이다. HER2는 세포를 성장시키는 역할을 해, 암을 일으킬 수 있는 단백질이다. 유방암 환자 가운데 HER2 단백질이 지나치게 많이 생기는 환자가 있다. 그리고 HER2 단백질에 결합해 세포 성장을 억제하는, 분자 단위 물질인 항체로 만든 약이 허셉틴이다.

허셉틴이 항체의약품이라는 것은, 항체를 잘 다룰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 몸속에는 무수히 많은 종류의 항체가 섞여 있다. 연구를 하려면 필요한 항체를 골라내고, 분석하고, 측정해야 하는데 어렵다. HER2 단백질이 문제라는 것을 알아도, 해결할 수 있는 항체를 분석할 수 없다면 치료 현장에서 활용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단일클론항체는 한 가지 항원에만 반응하는 항체다. 이를 대량으로 만들어내야, 항체의약품 개발이 가능해진다.

호기심은 연구로, 연구는 기술로
버텨내는 시간과 우연한 만남은 신약으로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 MRC-LMB(Medical Research Council/Laboratory of Molecular Biology)에서 연구하던 세자르 밀스타인(Cesar Milstien, 1927-2002)는 항체를 연구하고 있었다. 항체는 종류가 매우 다양한데, 도대체 어떻게 이렇게 다양한 항체가 만들어질 수 있는지 궁금했다. 그러나 연구는 쉽지 않았다. 다양한 항체가 복잡하게 섞여 있는 혈액에서, 연구하기 위한 항체를 분리해서 모으는 것부터가 문제였다.

그러던 어느 날 세자르 밀스타인은 B세포가 암이 된 골수종(myeloma)을 앓고 있는 환자에게 얻은 골수종세포가 한 가지 종류의 항체만 만든다는 연구 결과를 알게 되었다. B세포는 항체를 만드는 일에 참여하는데, 암세포가 된 골수종세포도 계속 항체를 만들었다. 암세포는 사멸하지 않고 계속 증식하니, 단일한 항체를 많이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었다. 가능성이 문을 열고 들어오면, 그 문으로 문제점도 따라 들어온다. 골수종세포가 만들어내는 항체가 단일했지만, 그 항체가 어떤 항원에 반응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물론 연구자가 필요로 하는 항체도 아니었다. 즉 연구자가 필요로 하는 항체가 만들어지도록 골수종세포를 처리하는 방법이 필요했다. 세자르 밀스타인은 연구실에 들어온 게오르게스 쾰러(Georges J. F. Kohler, 1946-1995)와 함께 원하는 항체를 대량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밀스타인과 쾰러는 B세포와 골수종세포를 혼합해 이 가운데 단일한 항체만 만들어내는 혼종 세포(hybridoma)만 골라내는 방법을 찾았다. 단일클론항체를 만들어낼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그러나 밀스타인과 쾰러는 다양한 항체가 어떻게 생겨나는지 연구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단일클론항체를 만드는 방법을 찾은 것이었다. 물론 단일클론항체 기술이 암을 치료하는 데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 예측한 것도 아니었다. 다만 연구를 했을 뿐이고, 그러다 허셉틴이 개발되는 과정에서 중요하게 활용되었다.

이 책 『암 정복 연대기-암과 싸운 과학자들』에 나오는 거의 모든 이야기는 밀스타인과 쾰러가 단일클론항체 기술을 개발하고 쓰인 사정과 비슷하다. 수많은 과학자들은 이론을 증명하고, 물질을 찾아내고, 기술을 개발하는데, 이런 것들이 얽히고설켜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를 불러온다. 고대 이집트 파피루스에 나올 만큼 오래전부터 존재를 알고 있었지만 마땅한 대책이 없었던 암을 고치는 ‘기적의 치료제’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글리벡, 허셉틴, 여보이, 옵디보, 키트루다
과학자들이 만들어낸 가장 앞선 암치료제들


『암 정복 연대기-암과 싸운 과학자들』에 나오는 과학자들의 고군분투를 따라가다 보면, 암과 싸우는 전선의 맨 앞에 서 있는 표적항암제, 항체의약품, 면역항암제의 메커니즘을 이해하게 된다. 과학을 이해하기 어렵다면, 앞뒤의 일을 정확하게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마치 복잡한 수학의 공식은 막무가내로 외워야 하지만, 공식이 나온 과정을 알게 되면 외우지 않고 이해하며 문제를 풀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글리벡이 탄생하는 과정을 다룬 1부에서는 초기 과학자들의 암을 어떻게 예측했으며, 예측에 따른 가설을 증명하고 반박해 수정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생명과학 태동기부터 과학자들은 암과 싸우기 위해 노력했고, 그 과정에서 예상치 못하게 AIDS와 같은 질병의 치료법 등을 찾기도 한다. 그리고 이 과정은 현대 분자생물학의 기초가 쌓여가는 과정이기도 했다.

허셉틴이 탄생하는 과정을 살펴보는 2부에서는 현대 생명과학과 생명공학의 바탕을 이루는 주요한 이론과 기술이 어떻게 태어났는지 엿볼 수 있다. 단일클론항체, 재조합 DNA 기술 등은 암과 싸우는 과정에 참여했던 과학자들의 이런저런 도전과 실패 속에서 확립될 수 있었다. 과학자들은 재조합 DNA 등의 문제 앞에서 생명과학 윤리를 고민하는가 하면, 역시 재조합 DNA 기술을 이용해 대량으로 저렴하게 치료용 인슐린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하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의 끝은 암 유전자가 일으키는 문제를, 재조합 DNA 기술로 만들어낸 항체로 해결하는 허셉틴의 개발이었다. 환자 자신이 가진 면역의 힘으로 암을 고치는 여보이, 옵디보, 키트루다 등 면역항암제의 탄생 이야기는 3부에서 다룬다. 면역은 생명과학 전공자들에게도 까다로운 분야다. 따라서 면역항암제의 탄생 이야기는 면역에 대한 기초적인 이론을 함께 설명하며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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