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가의 말
1 창업은 수성을 부르고 나라를 세웠으면 이름을 지어야지 - 조선왕조 천도가 급하다 - 계룡산에서 한양으로 이미 술에 취하여 덕에 배부르고 - 경복궁 위패에 적은 이름이 '묘호' - 종과 조 잘 못 된 후계자 지명 - 왕자의 난 모든 악명은 내가 짊어지고 - 태종의 유신 병권만은 내줄 수 없다 - 대마도 정벌 2 문민정치와 창조의 시대 조선조 여인의 아름다운 이름 - 잘 못 배운 역사 수물 두 살의 지성 - 청년 세종 세종 시절의 국민투표 - 임금의 자질 정승의 집은 초가삼간 - 고불 맹사성 프라하 광장의 천문시계 - 장영실의 흠경각 옥체는 병고에 시달리고 - 훈민정음의 창제 임금도 처복이 없으면 - 내명부의 동성애 3 위기를 헤치는 난세의 칼 소년 단종 - 세종의 유언 수양이 뽑아 든 난세의 칼 - 계유정란 압구정동 엘레지 - 칠삭동이 한명회 윤씨 부인의 죽음 - 숙주나물과 신숙주 시신은 물 위에 뜨고 - 단종의 자살 청상과부의 야망 - 인수대비 내시들의 미인 아내 - 부와 세도의 축적 4 사림시대의 막이 열리고 대비의 수렴청정 - 성종은 아직 어리고 관직의 꽃, 정랑의 자리 - 공직자의 프라이드 집에서 학교에서 조정에서 - 선비가 가는 길 임금님의 과외공부 - 경영관의 기질 폭군이 남긴 시 - 시인 연산군 쿠데타의 도덕적 규범 - 한반정군의 두령들 한 많은 선인문 - 창경궁 이야기 5 전란의 상처가 꽃을 피우고 가라쓰야 나고야 성 - 풍신수길의 광태 일본에 끌려간 조선인 포로 - 살아남은 자의 고통 도산신사의 청화 기둥 - 도조 이삼평 조선 막사발의 비밀 - 숨 쉬는 도자기 이도다완 고향을 어찌 잊으리까 - 조선도공 14대 심수관 노래가 된 '간양록' - 일본 유학의 시조 모시고 싶다, 배우고 싶다 - 조선통신사 6 환황녀의 가슴에 피멍이 들고 찢는 사람 줍는 사람 - 남한산성에서의 마지막 날 삼전도의 삼 배 구 고두 - 인조의 피 눈물 화냥년을 용서하라 - 궁여지책 아버지는 아들을 죽이고 - 아, 소현세자 스승과 제자의 싸움 - 노론과 소론 아름다운 이름 청백리 - 조선조의 고위관직 죽어서 이름을 남기고 - 졸기 7 20세기, 사회진화론의 덫 조선이여 장사를 하자 - 제너럴셔먼 호 증인에게라도 배워야 산다 - 선각자의 신분 사연 많은 강화도 - 운양호 사건 왜국 승려의 미인계 - 조선국포교일기 빛나는 사토페이퍼 - 정신적 근대화의 과정 선각의 젊은이와 4평짜리 서당 - 호연지기 이웃나라의 몸부림 - 메이지유신 8 아름다운 삶, 노래로 남고 작전명령은 '여우사냥' - 명성왕후 시해 후회는 통한에 사무치고 - 순종황제의 유서 행동하는 지식인의 모습 - 면암과 매천의 경우 아버지의 득죄, 아들의 속죄 - 우장춘의 선택 오가사하라 섬에서 - 김옥균의 고행 조선인을 위해 죽은 일본인의 의리 - 요시나리 히로시 왜, 국사를 가르치지 않는가 - 정체성을 살리려면 |
辛奉承
신봉승의 다른 상품
|
8월 20일(양력 10월 8일) 새벽 3시.
일본인 낭인들이 경복궁 담장을 뛰어넘는 범궐을 감행하였다. 경복궁의 수비대는 대장 홍계훈과 군부대신 안경수의 지휘로 출동한 시위대와 힘을 합쳐 총격전을 벌이며 사투하는 듯 했으나, 홍계훈이 일본 경찰이 쏜 총탄에 맞아 쓰러지고, 안경수마저 도망하자 대원들은 순식간에 뿔뿔이 흩어지는 오합지졸이 되고 만다. 이때, 민 황후의 침전은 경복궁 북쪽 끝자락인 건청궁의 곤령합이었다. 광기로 뒤엎인 왜인들의 발길이 여기를 놓칠 리가 없다. 처음 얼마 동안 민 황후는 상궁들에게 섞인 채 방 안에 있었으나, 천만다행으로 침전을 유린한 일본 낭인들은 누가 민황후인지를 판별하지 못하였다. 에워싸고 있는 상궁들의 기지로 민 황후는 곤령합을 빠져나오는 데까지는 성공한다. 이어 사력을 다해 대궐을 벗어나려 했으나, 옥호루 앞에서 인본인 낭인들에게 발각된다. 무도한 낭인들은 장검을 휘둘러 민 황후를 시해하였다. 통한의 최후가 아닐 수 없었다. 향년 44세였다. --- p.34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