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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의 글
개정판에 부쳐 제1부 나의 두 다리와 너의 두 눈 여기는 촐라체 정상 죽음을 향한 여정 우리 사이, 마주 잡은 끈 하나 나의 두 다리와 너의 두 눈 살아 돌아갈 수 있을까 제2부 아직 엄지손가락이 남았다 신은 우리를 버리지 않았다 하늘로 날려 보낸 여덟 손가락 길이 있으면 가지 않는다 내 인생의 자일파티 아직 엄지손가락이 남았다 에필로그 다시 촐라체로 산악인 박정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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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식과 내가 5,300미터 빙하의 균열 속으로 빠져들었다면 우리들의 이 이야기는 300년쯤 후, 촐라체 ‘나(Na)’ 빙하에서 어느 알피니스트나 원주민들에 의해 미라로 발견되었을지도 모른다. 지구온난화로 히말라야의 빙하가 1년에 15미터씩 녹아내리고 빙하의 흐름이 방향을 바꾼다면, 그래 아마도 300년쯤 후에 세월 따라 내려오는 히말라야 여러 죽음 중 하나였을 것이다. 아니면 두 육신은 천 길 나락으로 떨어진 자리에서 갈기갈기 찢겨 까마귀밥이 되고, 한줌 흙과 먼지로 에베레스트의 물줄기 두드코시(Dudh Kosi) 강을 따라 흘러갈 운명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길고도 짧은 운명의 끈은 죽음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삶의 끈으로 우리를 다시 묶어 주었다. --- p.4
2005년 1월 16일 촐라체 북벽 하산 중에 조난을 당한 뒤, 나의 삶은 광속으로 질주하기 시작했다. 나에게 여덟 손가락은 아름다운 선율을 창조하는 피아니스트의 가냘프면서 힘 있는 손, 멋진 그림을 완성하는 화가의 붓처럼 없어서는 안 될 도구이자 존재의 이유였다. 그런 손가락을 잃고 나는 도전과 목표의 젊음을 떠나보냈다. 좌절과 방황의 산들을 넘었다. 죽음을 불사한 촐라체 원정보다 더 힘든, 삶의 에베레스트를 오르는 험난한 과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 p.8 해발 5,800미터 지점에서 바라보는 거대한 일몰은 시종일관 숨이 막힐 듯했다. 강식과 나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신음을 흘렸다. 자연이 보여 줄 수 있는 최고의 장관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우리의 오름짓은 어쩌면 이런 순간을 경험하기 위한 것인지도 모른다. 초오유, 로체, 에베레스트의 웅장한 자태 사이로 붉게 물든 노을이 실타래처럼 번져 나갔다. 햇빛을 받은 바위벽들은 정상부에 하얀 눈 모자를 뒤집어쓴 채 황금빛으로 달아올랐다. 천만금을 주고도 감상할 수 없는 초자연의 비경이었다. --- p.36 “강식아, 지금 올라오고 있나?” “예, 올라갑니다.” 강식은 두 팔을 이용해 있는 힘껏 기어오르는 중이었다. 두어 번 용을 쓰자 거짓말처럼 자일이 위쪽으로 끌려 올라왔다. 피켈을 이용해 체중을 벽으로 분산시킨 때문이었다. 나는 자일을 당길 때마다 가슴을 후벼 파는 통증과 싸워야 했다. 부러진 뼈가 내장을 짓누르는지 명치 부근을 송곳으로 찌르는 듯했다. 입에서 짐승처럼 ‘으으’ 신음이 흘러나왔다. 전기 드릴에 가슴을 내맡긴 듯 나는 몸을 연신 부들부들 떨었다. --- p.76 칼을 꺼내 자일에 대는 동작은 몇 초도 채 걸리지 않을 것이었다. 툭! 칼을 대는 순간, 체중이 실려 팽팽해져 있는 자일은 쉽게 끊어질 것이다. 그러면 모든 게 끝이었다. 강식의 고통도, 나의 고통도, 둘 사이에 처한 이 처절한 지옥의 순간도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쳤을 때 나는 갑자기 소스라치게 놀랐다. 내가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함께 등반을 떠나던 날부터 강식은 내게 있어 피를 나눈 형제나 다름없는 존재가 아니던가. 죽어도 함께 죽고 살아도 함께 살아야 하는 게 자일파티의 운명이다. 그런데 나는 지금 혼자라도 살겠다고 자일을 자를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세차게 머리를 흔들었다. 잠시나마 그런 생각을 한 나 자신이 극도로 혐오스러웠다. “강식아. 기운 내. 어서 줄을 타고 올라와!” 나는 속죄라도 하는 심정으로 구멍을 향해 소리쳤다. --- p.80 마취가 시작되기 전 나는 마지막으로 내 손가락들을 내려다보았다. 손가락 상태는 병원에 온 첫날보다 더 악화되어 있었다. 손톱은 금방이라도 빠질 듯 헐거웠고 괴사한 피부조직은 까맣게 범위를 넓혀 가고 있었다. 나는 양쪽 손가락을 들어 번갈아 가며 얼굴에 비볐다. 마지막 작별인사였다. --- p.16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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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헌은 후배 최강식이 크레바스에 빠졌을 때 서로 잇고 있던 줄만 끊으면 살 수 있는 상황에서 ‘함께 죽을 수도 있는 길’로 향했다. 그의 선택은 육신을 잇고 있던 끈처럼 인간과 인간의 심장을 연결하고 함께 뛰게 했다. 그리고 생명의 빛나는 가치를 일깨웠다. 9일간의 조난, 생명체 하나 없는 설산에서 사실상 죽음의 지대를 빠져나오는 이 과정은 그 어떤 영화나 드라마보다 극적이다. 사실이기에 더 감동적이다.
고산을 오르는 산악인에게 손가락은 생명과 같다. 심한 동상에 걸려 손가락 대부분을 잘라내고 삶의 목표 또한 송두리째 버려야 했지만 박정헌과 최강식의 방황은 길지 않았다. 그들은 멋진 산악인의 모습 그대로, 새로운 꿈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여전히 보이지 않는 끈이 그들의 삶을 더욱 단단하게 지탱해 주고 있다. 2005년 박정헌과 최강식 두 산악인의 촐라체 등정은 국내 산악계에 신선한 충격이었다. 히말라야 촐라체 북벽의 난도 높은 루트를 2인 1조로, 그것도 동계 등반하겠다니. 국내 산악계가 ‘8,000미터급 14좌 등정’ 등 높이 경쟁에 빠져 있던 시기였기에 이들의 도전은 더욱 돋보였다. 빙벽에 매달려 잠을 자고 눈을 뜨면 수백 미터씩 빙벽을 오른 지 사흘 만인 1월 16일, 박정헌과 최강식은 촐라체 정상에 섰다. 하산 길에 어떤 악몽이 기다리고 있을지 알지 못했던 그때, 그 눈부신 성취. 등정(登頂)주의에서 등로(登路)주의로, 한국 산악계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린 이들의 쾌거 또한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