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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강 창조적으로 철학하다
제2강 통합으로 가다 제3강 삶과 죽음의 가운데 길로 가다 제4강 하루를 영원처럼 살다 제5강 밥 철학과 깨끗한 삶 제6강‘가온 찍기’로 무등(無等) 세상을 열다 제7강 생각 : 존재의 끝을 불사르며 위로 오르다 제8강 숨은 생명과 얼의 줄 제9강 우리 말과 글로 철학하다 제10강 예수와 함께 그리스도로 살면서 제11강 기독교 유교 불교 도교의 회통 제12강 하나로 돌아가다(歸一) 제13강 동서정신문화를 융합하다 종합 - 다석 유영모의 철학과 사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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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석 유영모(多夕 柳永模, 1890-1981)는 천문?지리?서양철학?동양철학?불경?성경 등에 능통한 대석학이요 현자(賢者)요 한글 철학자이다. 16세에 세례를 받고 기독교인이 되었으며, 32세에 조만식 선생의 뒤를 이어 오산학교 교장이 되어 그곳에 정통 기독교 신앙을 전하였다. 40대에는 월남 이상재의 뒤를 따라 YMCA의 선생이 되어 30년이 넘도록 연경반 강의를 하였다. 교회에는 나가지 않았지만 평생 동안『성경』을 읽고 예수의 가르침을 받들어 실천하였다. 예수를 절대시하고『성경』만이 진리라는 생각을 버리고 여러 성인을 모두 좋아하였으며, 노자를 알리는데 큰 공을 이루었다.
순수한 우리말과 글을 사랑하여 우리말이 들온말(외래어)에 밀려 없어지거나 푸대접 받는 걸 몹시 언짢아하였다. 160센티미터가 못 되는 체구에 서민적 모습이었으나 그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위엄이 있었다. 눌변도 달변도 아닌데 한 말씀 한 말씀이 예지가 번뜩이는 시문(時文)이요 진언(眞言)이었다. 얇은 잣나무 판에 홑이불을 깔고 목침을 베고 누워서 잠을 잤으며, 새벽 3시면 일어나 정좌하고 하느님의 뜻이 어디 있는지를 깊이 생각하였다. 하루에 한 끼씩 저녁에 식사를 하였는데, 세 끼를 합쳐서 저녁을 먹는다는 뜻에서 호를 다석(多夕)이라고 했다. 항상 무릎을 꿇고 앉았으며, 맨손체조와 냉수마찰을 평생 동안 했다. 일생 무명이나 베로 지은 한복에 고무신을 신고 천으로 만든 손가방에 명상의 일기 공책을 들고 다녔다. 시계도 차지 않았지만 시간을 어기는 일이 없었다. 사람은 제 먹거리는 제가 장만해야 한다면서 북한산 밑으로 이사하여 직접 농사를 지었으며, 남에게 잔심부름 시키지 않는 것을 생활신조로 지켜 밥상을 손수 부엌 마루에 내놓았다. 걸어다니기를 즐겨 북한산에 자주 올랐고 강의하러 갈 때도 쾌 먼 거리를 걸어서 다녔다. 새벽마다 지구를 사타구니 밑에 깔고 우주를 한 바퀴씩 돌면서 우주 산책을 한다면서 세계의 명산, 깊은 바다의 이름과 높이?깊이를 모조리 기억하였으며, 지구와 별들과의 거리도 외웠다. 나이를 햇수로 계산하지 않고 날수로 하루하루 세었는데, 33,200일을 살았다. 가까이 따르던 사람으로는 김교신(金敎臣), 함석헌(咸錫憲), 현동완(玄東完), 이현필(李賢弼), 김흥호(金興浩), 류달영(柳達永) 등이 있다. 감탄할 만한 명문장가였는데도 평생 다석일지만 남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