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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화가이고 누가 시인인가
화가 강익중은 왜 시를 쓸까? 그에 대해 열심히 고민한 흔적이 시집 곳곳에 남아 있다. “마음을 챙기려고” “잊지 않으려고” “뭐가 뭔지도 모르고” 시를 써본다(詩). 그럼 그림은 왜 그리는 걸까? “잊지 않으려고” “시간을 보내려고” “시간을 아끼려고” “날이 좋아서” “날이 나빠서” “그냥 그림을 그린다”(그림을 그린다). 그림을 그리는 이유, 시를 쓰는 이유가 다르지 않다. 영역 침범에 대한 쓴 소리를 들은 적이 있는 걸까? 가능하면 시인은 되지 말라는 어느 시인의 충고에 대해 “어제 그림을 그렸으면 지나간 화가/ 지금 그림을 그리고 있으며 누구나 화가/어제 시를 썼으면 지나간 시인/ 지금 시를 쓰고 있으면 누구나 시인”(누가 화가이고 누가 시인인가?)란 답을 내놓는다. 그러면 그 완성도는? “내가 달을 사랑한다고/달이 나를 사랑할 필요는 없다”(사랑) “우리는 볼 수 있는 것 까지만 본다/갈 수 있는 곳 까지만 간다/ 느낄 수 있는 것 까지만 느”끼기 때문이다. 왜 쓰는가? 왜 그리는가? 답은 명확하다. 그냥. 어떻게? 내가 보고 느끼는 대로. 언제? 지금. 그럼 그냥 보고 느끼는 대로 지금 그리고 쓰는 나는 누구인가? “바로 이 순간/ 일어나는 이 마음/ 바로 이 순간/ 일렁이는 이 생각/ 바로 이 순간 들숨과 날숨 사이”.(나는 누구인가) 3인치 조각보 같은 시 1984년 유학 첫해 그는 하루 12시간의 아르바이트를 해가며 학교를 다녔다. 그림을 그릴 시간이 없던 그는 작은 캔버스를 여러 개 만들어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오가는 지하철 안에서 작업을 하였다. 이것이 지금의 그를 있게 한 3인치 작품의 시작이다. 객차 안의 군상들, 일상의 단편, 영어단어 암기 등 작은 캔버스 안에는 그의 하루가 문자나 기호, 그림으로 기록되었다. 이 3인치 작품들은 하나하나 완성된 그림이지만 수천 날 수만 시간 동안 그려진 수만 개의 3인치 작품들이 모일 때 비로소 그 의미를 얻는다. 작은 천 조각을 이어 붙여 지은 보자기처럼 수많은 시간과 공간과 생각과 감정과 경험이 담긴 그림들이 이어져 한 덩어리의 의미를 탄생시킨다. 강익중의 시 역시 3인치 그림을 닮았다. 짧고, 쉽고, 이어져 있다. 어떤 시에는 질문을 어떤 시에는 해답을 어떤 시에는 익살을 어떤 시에는 그리움을 담았다. 그리고 이 시의 조각들은 모여 ‘강익중’이라는 한 예술가의 삶을 보여준다. 강익중 세계를 구성하는 조각 모음 시집 『사루비아』를 통해 강익중의 조각을 모아보자. 가장 좋아하는 건 텅 빈 달항아리. 순수하고 당당해서이다. “순수 당당”은 가장 예쁜 말, 내가 좋아하는 말, 닮고 싶은 말, 달항아리 같은 말, 가장 큰 말이다.(순수 당당) 좋아하는 음식은 비빔밥, 비빔국수, 라면. 비빔밥 중 으뜸은 돌솥비빔밥인데 일을 안 하고 논 날은 염치 상 그냥 비빔밥으로 간다.(돌솥 대 그냥) 뉴스를 보지 않고 주로 앞날에 대해 이야기하며 어리다고 함부로 대하지 않으며 자주 웃는다. 그래서 동안을 유지하는지도 모른다.(다시 어려지는 법) 유리병에 고추장을 담을 때 고추장이 넘치지 않도록 조금 남겨 두고, 손톱을 깎을 때도 조금 남겨둔다.(남겨둔다) 잔을 다 채우지 않고, 짐가방에 물건을 너무 채우지 않고, 화단에 예쁜 꽃만 채우지 않으며, 마음에 걱정을 채우지 않는다.(채우지 않는다) 생각의 마당에 내가 넘치지 않도록 조심한다.(조심) 행복한 날은 아무 일 없는 날, 특별하지 않은 날, 너무 기쁘지 않는 날(행복한 날)이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날이 행복한 날, 괜찮은 날, 운 좋은 날이다.(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날) 그에겐 별일 없는 일상의 나날이 가장 소중한 날이다. 그러면 소중한 일상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뉴욕에서 인천까지 14시간 20분. 식사 두 번 간식 한 번. 지루한 비행도 지나고 나면 순간이다.(뉴욕에서 인천까지) 인생이 이럴진대 작은 행운 한 번에 “럭키!” 외치며 즐거워하는 게 이득이다. 예를 들어 하늘이 유난히 파란 날, 신호등이 계속 뚫리는 날, 머리를 잘 깎은 날, 길을 걷다 무지개를 본 날, 왠지 설레는 날, 달걀 껍데기가 잘 까지는 날, 꿈을 잘 꾼 날. 그리고 그렇지 않은 날도 있음을 알아둔다.(그런 날이 있다) 이것이 “한순간을 한평생처럼 의미 있게, 한평생을 한순간처럼 단순하게”(시간) 사는 방법인지 모른다. 지금 행복해지려면 그는 ‘지금 행복해지는 법’을 많이 알고 있는데, 누구나 당장 실천할 수 있는 간단한 것들이다. 삼겹살을 깻잎에 싸먹기. 쓰레기통을 비우고 밀린 설거지하기. 내 것은 원래 없다 말하기. 이웃에게 인사하기, 숨을 들이쉬고 내쉬기, 무작정 걷기. 그리고 하하 웃기.(지금 행복해지려면 연작) 그리고 좋은 것을 무작정 좋아하기. “소낙비는 소낙비라서 좋고/뙤약볕은 뙤약볕이라서 좋고…나뭇잎은 나뭇잎이라서 좋다/그리고 너는 너라서 좋다.”(여름엔) 좋아하는 걸 열심히 하다보면 좋아하는 대상이 좋아하는 것까지 좋아하게 된다. 사루비아를 맘에 두지 않았지만 벌새가 사루비아를 좋아한다기에 나도 사루비아를 좋아하기로 했다 -『사루비아』 전문 많이 이루고 많이 얻은 사람의 소망은 무엇일까? 어떤 이는 더 큰 성공을 추구하고, 어떤 이는 사라진 목표에 방황하고, 많은 이는 가진 것을 지키려 아등바등한다. 그리고 강익중 작가의 경우 그냥 성실하게 매일의 작업을 해나간다. 그 동력은 무엇일까? 본질에 관한 탐구와 집착과 채움을 경계하는 마음 때문이 아닐까. 큰길보단 좁은 골목 스파게티보단 짜장면, 된장 현미밥 참기름 상추쌈을 최고의 사합이라 여기는 소박한 삶을 지향하며, 너무 많은 것은 없는 것이라 여기며 채우지 않고 내려놓기를 주문처럼 외는 자기성찰. 칠성신을 모시는 제주무당이 칠성사이다 한 병만을 놓고 굿판을 벌이듯 내 안에 우주가 있고 우주 안에 내가 있다는 것을 알고 형식과 절차를 넘어서는 것. 오늘도 그는 차이나타운 작업실에서 하루치의 그림을 그리고 하루치의 시를 쓴다. 꿈을 꾸는 목적은 꿈만 꾸지 않기 위해서다 연습을 하는 목적은 연습만 하지 않기 위해서다 생각을 하는 목적은 생각만 하지 않기 위해서다 일을 하는 목적은 일만 하지 않기 위해서다 -「목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