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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익中
국내에서 공식적으로 첫 출간된 강익중 화집 『마음에 담긴 물이 잔잔해야 내가 보인다』에는 강익중이 뉴욕으로 간 1984년 이후부터 2022년 현재까지 했던 주요 작품들의 이미지, 작업하는 모습과 작품 설치하는 현장을 담은 사진, 작가 인터뷰, 작업 노트 등 지난 38년 동안 작가의 작품과 삶이 들어있다. 1994년 미국 휘트니 미술관에서 백남준과 2인전 《멀티플/다이얼로그》를 할 때 사진처럼 역사에 남은 현장을 보여주는 사진도 있고, 작가의 가족 및 지인들과 찍은, 작가 개인의 역사에 의미 있는 사진도 있다. 강익중의 대표적 스타일인 ‘3인치 캔버스’를 처음 그릴 때인 1985년 당시 작업하는 사진도 실려 있다. 이 책은 시간과 공간 작품의 연결성 등은 염두에 두지 않고 재배치했다. 강익중 작가의 삶과 작품을 해체하고 재구성한 셈이다. 따라서 500쪽짜리 이 책에는 목차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가만히 책장을 넘기다보면 배열에 어떤 흐름이 있음을 알게 된다. 3인치 작품 사진에서 여러 명의 인물로, 인물에서 구 형태의 작품들로 이어지다 강물이 되어 흐른다. 또한 여러 번 넘기다보면 볼 때마다 새로운 것을 발견하게 된다. 백남준 선생과 함께 찍은 사진이 보이기도 하고, '배가 고프면 나도 모르게 화가 난다' 같은 〈내가 아는 것들〉 전시의 재미난 문구도 눈에 띈다. 먼지 가득한 작업실에서 목재를 자르는 작가도 보이고, 영국 런던 템스강에 띄운 거대하고 아름다운 설치 작품에 감탄하게 된다. 그 가운데 백미는 천진하고 단순하면서도 깊이 있는 강익중 시 모음이다. 툭툭 꺼낸 듯, 서로 닮은 시와 미술작품 강익중 작가는 스스로를 ‘시인’이라 부르지 않지만, 평생 시를 2700점 정도 썼을 정도로 시 쓰는 것을 좋아한다. 이미 2018년에 첫 시화집 『달항아리』를, 2019년에 두 번째 시화집 『사루비아』를 출간했다. 지난 5년 동안 작가의 개인 인스타그램을 통해 시 2000여점을 공개했고, 그 중 101점을 이 책에 실었다. 영어로 쓰기도 하는데 이 책의 후반에는 영어로 쓴 시 30점도 실려 있다. 시를 왜 쓰냐고 물으면 작가는 〈시〉라는 제목의 자작시로 답한다. “나는 시를 새벽에 쓴다/꿈에 본 걸 쓰려고/나는 시를 낮에 쓴다/낮에 본 걸 쓰려고/나는 시를 늦은 밤에 쓴다/오늘 본 걸 쓰려고/나는 시를 쉰 넘어 쓴다/살며 본 걸 쓰려고/아니다/나는 시를 그냥 쓴다/나는 시를 아무 때나 쓴다/그림처럼/나는 생각없이 쓴다” 작가는 뉴욕 맨해튼 차이나타운에서 아내와 아들, 그리고 진돗개 두 마리와 함께 산다. 뉴요커들이 모두 그렇듯, 작가도 거의 매일 뉴욕 시내를 걸어 다닌다. “매일 최소한 1만보 이상은 걸어요. 걸어 다닐 때, 문득 자연을 바라보았을 때, 시가 많이 떠오릅니다. 저녁에 샤워하고 가만히 쉬다가 떠오를 때도 있어요. 저는 시인과 화가가 아주 다른 직업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시는 마음에 그림을 그리는 일이니까요.” 작가가 아직 발표하지 않은 〈시 그림 인생〉이라는 시(툭툭 나온 시가/좋다/짜고 짜낸 시보다/쓱쓱 그린 그림이/좋다/욕심이 숨은 그림보다/살살 사는 인생이/좋다/꽉 채운 인생보다)처럼, 강익중의 미술작품과 시는 안간힘을 쓰지 않고 툭툭 자연스럽게 만들어낸 듯한 매력이 있다. 이 책에서는 40년 가까이 이런 일관된 세계관으로 국제무대에서 한국을 빛내고 있는 강익중 작가의 작품세계와 시가 얼마나 서로 닮아 있는지 감상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