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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12
습작시 7편(1962~1964년) 아가에게·28 엄동·30 남대문 시장·32 봄날의 비감悲感·34 항아리·35 낮은 목소리·37 난타·38 연가·40 제1시집 우울한 샹송(1969년) 강변에서·42 이 세상에서·43 가을에·44 금과 은·45 사랑이 주고 간 대화·47 꽃·49 종소리·50 분위기·51 거미·52 겨울나무·53 성냥개비·55 우울한 초상·56 남은 비가·57 겨울 초상·58 암실에서·60 활·62 목소리 4·63 목소리 7·65 목소리 8·67 목소리 10·69 목소리 11·70 초인종·71 거울·72 저 슬픈 허밍은·73 벌·74 말·76 우울한 샹송·77 새들의 비가·79 편지·81 고별·82 제2시집 야간열차(1978년) 젊은 사자獅子의 추억·86 우뢰·87 봄에 앓는 병·88 소나기·89 가을 언덕·90 교감·91 고목·92 해변·93 거울 앞에서·95 싸늘한 빛·96 연꽃·97 출항 이후·98 무제·100 꽃불놀이·101 인상·102 바다에 내리는 눈·103 묘·104 눈이 내릴 때·105 갈대·106 칠석·107 야간열차·108 불춤·109 불길·110 어느 겨울 바다의 인상·111 통화·112 열창·113 비밀·114 왕의 슬픔·115 역습·116 부두·117 종말·119 화가 천경자·120 마릴린 먼로·121 가을산 1·122 가을산 2·123 주점에서·124 구름에게 말한다·125 촛불·126 사모·127 선인장·128 사진사·129 변화·130 토르소·131 제3시집 슬픔의 핵(1983년) 고압선·134 그 시절·135 슬픔에 대하여·136 정사·137 소지燒紙·138 원·139 울음·140 빈 컵의 노래·141 투계·142 인디언 마을·143 장미·144 지뢰밭·145 해당화·146 절정·147 가을 서시·148 다비의 불꽃·149 겨울비·150 안개꽃·151 세월·152 자화상·153 장작 패기·154 천지창조·155 우기 1·157 우기 2·158 호롱·159 관계·161 열쇠·162 손·163 철새 풍경·164 슬로 비디오·165 해일海溢·166 여름 사냥·168 불면·169 회상·170 털·171 과수원·172 묘비명·173 깊어진 병·174 결빙의 아버지·175 비현실·176 아무도 모올래·177 공사장에서·178 공복·179 뉘앙스·180 아내의 빨래·181 모래내·182 기억·183 제4시집 단순한 기쁨(1986년) 바다·186 방울소리·187 구겨진 종이는 슬프다·188 라디오·189 순결·190 황홀한 착란·191 달빛 체질·193 팽이를 보면서·195 이웃·196 봄날에 1·197 봄날에 2·198 이름을 지우면서·199 단순한 기쁨·200 어린 나뭇잎에게·201 마약·202 우물 긷기·203 그날의 초상·204 헤어지기 연습·205 포옹·206 아파트·207 삭아서 아름다운·208 진달래·209 목숨·210 여름 바다·211 그 다음에 이어질 이야기·212 수몰지구·214 편지·215 나에겐 병이 있었노라·216 버리기·217 어느 절망하는 산의 기도·218 또 다른 꿈·219 빛과 그림자·220 폭설·221 비, 또는 술·223 한 잔의 기쁨 위에·224 불타는 열차·225 고통의 뼈·226 가봉·227 추모특집·228 사막 1·229 사막 2·230 사막 3·231 사막 4·232 사막 5·233 사막 6·234 사막 7·235 사막 8·236 사막 9·237 사막 10·238 사막 11·240 여자 1·241 여자 2·242 여자 3·243 여자 4·244 망자의 노래·245 봄을 기다리며·246 단오·247 약속·248 골목길·249 2월과 3월 사이·251 균열·253 아틀리에 소묘·254 이국의 새·255 겨울 안개·256 해동·258 말복 이후·259 전야·260 유쾌한 풍경·261 명지 쪽을 바라보며·262 지오콘도·263 제5시집 그리고 너를 위하여(1988년) 호수는 조용히 있고 싶어 한다·266 그리고 너를 위하여·267 풀 뽑기·268 일기 쓰기 1·269 자화상·270 새·271 관능·272 상처·273 천재·274 술 한 잔·275 진주의 노래·276 숲을 바라보며·277 불꽃잔치·278 바닷가 이중섭·279 장사의 꿈·281 비천飛天·282 화석채집·283 불에 대한 상상력·284 어둠 속에서·285 잊혀지자고·286 난처한 사랑·288 구례를 지나며·289 명공名工의 노래·290 제6시집 아득한 봄(1991년) 이제는·292 벚꽃 지다·293 회고懷古·294 돌 속에·295 저수지에 관한 명상·296 뿔·297 석류·298 유등제·299 저 흙 속에·301 적·302 알 1·303 알 2·304 파도를 보며·305 남향·306 고대도시를 찾아서·307 박제호랑이를 대신하는 변명·308 검은 서정·310 직선·311 차라리 눈부신 슬픔·312 비극의 형식·313 겨울 판화·314 저녁 무렵·315 아득한 봄·316 여름 일기·317 서행·318 공포·319 투포환 선수·320 복서·321 힘·322 즐거운 세상·323 폐쇄회로를 통해 보는 영상·324 동행·325 무제·326 강자를 위하여·327 12월 14일 하늘을 보며 어제까지·328 멸망을 꿈꾸며·329 꿈속의 새·330 적빈·331 물안개·332 잃어버린 바다·333 봄밤·334 석정 스님·335 위대한 선사인·336 맹수를 키우는 마을·337 새·338 사랑을 앓고 있는 이들에게·339 투신·341 수화樹話의 달·342 나의 고향은·343 신부의 방·344 제7시집 푸른 추억의 빵 (1995년) 폐가·346 벌레·347 등나무·348 무릎·349 추락을 꿈꾸며·350 승천·351 신神의 생각·353 계림을 지나며·354 누란·355 그리움에 기립하다·356 그리운 악마·357 로데오·358 물이 풀리면·360 중심의 역학·361 유배일기·362 그리운 밀림·363 일본 여자·364 집중·365 만주 아이·366 뉴스 시간·367 넋·368 음악·369 물속의 그림·370 섬·371 꽃·372 움직이는 정글·373 옛집·374 바다의 표정·375 취객처럼 잠들다·376 개화·377 권태·378 숲의 하루·379 코뿔소를 위하여·380 시간에 대한 기억·381 여름 영산홍·382 비단옷 입고 슬픔과·383 생명·384 폐차장에서·385 침묵의 중량·387 부산 갈매기·388 누더기·389 하늘에는 슬픔이 없다·390 목포의 눈물·391 마지막 허영·392 근황·393 못·394 어둠 속에서·395 허무의 축제·396 깨끗한 풍경·397 손·398 영웅 세냐·400 서글픈 사랑·402 역사 속으로·403 고백·404 부끄러움·406 구전·407 테러리스트를 꿈꾸다·408 너는, 그럴 수 있다·409 신神의 계절·410 가을편지·411 대낮 유인원·412 우주 쓰레기·413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414 철거·415 흔들리는 가을·416 제8시집 눈부신 마음으로 사랑했던(2000년) 한 번 만의 꽃·418 오래된 기억·419 다시 보는 나무·420 어쩌다 한 번씩 달과 마주치면·421 사막의 꽃·422 증인·423 절벽·425 강물에 취하다·426 나목裸木의 노래·427 밥보다 더 큰 슬픔·428 죽은 자의 노래·429 깃발은·430 꽃잎처럼·431 여름산·432 자물쇠 소고·434 산수화·435 단조·436 17년 만의 여름·437 조문·438 천년의 사랑·439 전생 체험·440 저녁 무렵의 시·441 느티나무·442 끗발·443 우리는·444 비탈거미·445 합수·446 폭설의 이유·447 연탄·448 국경의 도시·449 애월·450 억새·451 여의도 적송·452 완성·453 겨울, 저 연못·454 어느 날의 샹송·455 절필·456 지상에 붓 한 자루·457 노인 1·458 노인 2·459 오리, 혹은 오리가 되지 못한·460 달과 구름·461 꿈꾸는 저녁·462 거인의 잠·463 불탄 집·465 침묵의 언어·466 5월 나무처럼·467 성급한 알피니스트들에게·468 태엽을 감으면·469 붉은 혀·470 파도가 저렇게 밀려오는 이유·471 알바트로스를 기다리며·472 달의 기억·473 초당 한 채·474 파파라치에게·475 돌의 비애·476 흑백·478 아득한 거리·479 언제쯤·480 멀어지는 풍경·481 제9시집 꽃나무 아래의 키스(2007년) 오체투지·484 백야몽·485 별이 뜨는 이유·486 임종·487 아직 우리는 말하지 않았다·488 예불·489 길일吉日·490 당신의 천사·491 바다의 혀·492 들끓는 고요·493 빈집·494 드라마, 드라마처럼·495 박수근의 나무·496 늙은 여자·498 배후는 따뜻하다·499 결핍도 때로는 눈부시다·501 내 마음 안에 구릉이 있다·502 흐느낌·503 틈·504 자화상·505 끝·506 내가 보고 싶은 눈·507 풍경을 읽다·508 열애·509 꽃나무 아래의 키스·510 구절초·511 폐허의 노래·512 어느 밤의 누이·513 늦은 날·514 적과 동지·515 견인되다·516 사랑의 기쁨·517 그리움·518 노예가 사는 법·519 상처와 만나다·520 동창생·521 일몰의 노래·522 빙하의 표정·523 희고, 둥근 하품·524 이따위, 라고 말하는 것들에게도·525 길고양이·526 또 다른 생각·527 다디단 비밀·528 회전문·529 늪이 잠시 흔들렸던 기억·530 삼각관계·531 전철은 마침 낙성대역을 지나고·532 아득한 추모·533 손·534 껍질은 속보다 더 깊다·535 불꽃의 시간·536 나쁜 피·537 파열·538 꽃은 부드럽지 않다·539 비몽사몽·540 죽은 자에 대한 예의·541 누가 제트기를 보았는가?·543 가는 세월·544 수색역·545 어떤 기도·546 뉴 타운·547 제10시집 처음으로 사랑을 들었다(2010년) 쇠재두루미 떼를 따라 날다·550 간월암·552 고양이 엘르·553 용서할 수 없는 자·555 처음으로 사랑을 들었다·556 두렵지 않다·557 로드 킬road kill·558 물 폭탄이 왔다·560 생가·561 나무에게 말 걸기·562 꺼져라, 봄·563 숯·564 위로 솟구치는 꽃들·565 사하라, 사하라·566 옛 향기·568 적을 누르는 법·569 붉은 말·570 연극처럼·571 날자, 지옥같이 눈부신 천지·572 가면처럼 슬픈·574 반닫이·575 말할 수 없는 슬픔·576 갑자기 실명처럼·577 선택·578 피어오를 때·580 전쟁·581 이상한 나라·582 비둘기를 만드는 법·584 바보처럼·586 긴밀한 접촉·587 앰뷸런스·588 따뜻한 밥 한 그릇처럼·589 밀려와서, 흠흠·590 길은 죽음을 욕망한다·591 궁극·592 총알은·593 명검·594 그 순간·595 발다로의 연인·596 때를 놓치다·598 즐거운 날·600 한 잔만 더,·601 아슬아슬한 포도밭 풍경, 그 안과 바깥·602 반항·603 평화를 위해·604 늦은 점심·605 벽화·606 여항산·607 당신을 지우려고·608 사람의 그늘·609 침묵·611 하루·612 따뜻한 입술·613 산해이용원·615 휘적거리다·616 봄에게 붙들리다·618 죽변항 어부 김씨의 취언·619 자만심·621 노인의 방·622 당신의 욕망·624 귀가 간다·625 사랑은 달라·626 어느 날의 화두·627 제11시집 천년의 강(2013년) 천년의 강·630 아득한 새벽·631 새로운 놀음·632 악령을 위하여·633 사무치다·634 갈대는·635 깍두기·636 그날 밤·637 충격을 넘어서·638 악어의 시詩·639 움직이는 시장·641 이 나이쯤의 편애·643 소나기·644 화음·645 짐·646 수도·647 앞·648 젊은 시인에게·650 당신의 힘·652 잘 가라, 안녕·653 엄마가 들어 있다·654 죽음의 정면·655 오, 그리움·657 도서관·658 엎드려 사는 여자·659 드디어 풍경은 사라진다·660 고독한 관계·661 새들은 끝없이 떠오른다·662 문·664 그 절간·665 벙어리·666 저리도 붉은 협곡·667 봄밤·668 저 바다 위에 당신의 이마를 떨어뜨려라·669 원류를 찾아서·671 찬물에 손을 씻다·672 희디흰 고요·673 코브라·674 음담패설·675 없는 너·676 숭고한 슬픔·677 사나이의 순정·679 찬란하게·680 봄빛 세상·681 벗겼다·682 잔혹한·684 무늬·685 나는 고요히, 소용돌이칠 것이다·687 나의 하얀 손·688 못다 한 슬픔·689 절교·690 처음·691 못을 뽑다·692 새를 찾아서·693 지금·694 저 푸른 힘이 자라서·695 아프다·697 얼음산의 노래·698 무사 1·699 무사 2·700 동화·701 단추 하나·702 어느덧 가을·703 7월의 아침·704 홈런, 이라고 말할 때·705 제12시집 침묵의 여울(2016년) 그만큼의 높이, 드론·708 닫힌 입·710 다락방·711 이륙·712 건축학 개론·713 견고한 뼈·714 비밀을 보이다·715 아가위나무·716 흑백영화·717 불꽃, 끝없이 타오르는·718 그날은 가고·719 참새·720 침묵에 대하여·721 나를 던지리라·722 멍청하게 바보처럼·723 핏자국·725 슬픈 리얼리티·726 유리의 기억·728 붉은 고지·729 가족사의 이면·730 두꺼운 침묵·731 낙과落果의 이유·732 깊은 관계·734 피로 물들다·735 검은 비닐봉지·736 자유·737 유영遊泳·738 불덩어리·739 우범지대·740 사라지는 책들·741 엄마, 사랑해·742 흘러가는 뼈·743 흙의 심장·744 쩡, 쩡, 소리치며 울리는 저 얼음 속에·745 두개골 X·747 하얀 목련·749 환희를 넘어·750 돌멩이처럼·751 둘레·752 살아 있다·753 나무들 일어서다·754 불침번·755 독락獨樂·756 나보다도 더 시인 같은·757 그리워서 아프다·758 분수·759 어머니·760 낙석·761 가슴이 뛴다·762 아프리카 사랑·763 풍뎅이·764 당신의 찻잔·765 입춘 무렵·766 최초의 기억·767 멍텅구리·768 한 잎 플라타너스·769 이수익 연보/연구서지硏究書誌·776 |
李秀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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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 된 지 55년이 지났다. 1963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고별」 「편지」 등이 당선되면서 나는 그 길로 바로 시인이 된 것이다. 시인이 되어서 좋은 점도 많았고 또한 안 좋은 일도 있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좋은 점이 더 많았던 것 같다. 아마 이 나이쯤 되어서 인생의 경륜을 한번 헤아려보면 내가 시인이 되어서 이 세상에 남긴 몇 줄의 시가 화려하고 행복했던 지난날을 은은히 빛내 줄 공적이 아닐까 싶어서이다.
시집은 1969년 『우울한 샹송』을 펴냈고, 그 다음 『야간열차』 『슬픔의 핵』 『단순한 기쁨』 『그리고 너를 위하여』 『아득한 봄』 『푸른 추억의 빵』 『눈부신 마음으로 사랑했던』 『꽃나무 아래의 키스』 『처음으로 사랑을 들었다』 『천년의 강』 『침묵의 여울』 등 열두 권을 내었다. 회고하건데 나의 시세계는 아마 허무의 낭만주의로 압축될 것이다. 사랑과 죽음, 탄생과 파멸, 열정과 냉정이 함께 어우러지면서 허무 속의 낭만, 혹은 낭만 속의 허무를 짙게 껴안았던 것 같다. 처음 시단에 나왔을 때, 나에게 붙여진 이름이 ‘비애와 우수의 시인’으로 기억된다. 그 말에 매우 공감했다. 그리고 나이가 들면서 더욱 이미지를 선호하게 되고 정교한 언어에 집중하면서 나는 사물시에 대한 관심을 집중시키게 되었다. 차츰 세월이 지나면서 시에다가 인간의 현실적 삶을 그려내는 방법을 생각하게 되었고 시와 인간의 고뇌와 번민을 염두에 두기도 했다. 이렇게 지난 과정을 살펴보면 나의 시는 이미지와 정서, 그리고 관념이 하나로 묶여져 있음을 실감하는데, 관념은 후반기에 접어들면서 더욱 견고해졌다 그리고 나의 시선집 『불과 얼음의 콘서트』에서 밝힌 것처럼 허무의 낭만주의는 내 시작에서 ‘뜨거운 열망과 차가운 절제 사이’를 명료하게 짚어낸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서로 모순된 에너지끼리 상호 침투하면서 특유의 화음을 발생시키는 일이 내 시의 본질적 사명이므로, 허무의 낭만주의는 아직 젊고도 푸르다. 2019년 여름 이수익 --- 「서문」중에서 아가야, 새로 이빨이 났네 금환金環의 둥근 고리를 물 수 있게 물고서 엄마 품을 드나들 수 있게 유연한 살점에서 부끄럽게 보인 그것은 눈을 뜨는 생명의 웃음소리 자극하는 애정의 그리운 발화發火 고단했던 잠결의 자락을 떠나 아가야, 너는 요람 속에 안온히 누워 가물대는 손가락을 움직이면서 너는 혼자서도 웃는다, 거울을 보듯 그러나 아가야, 너는 모를 테지 떠나버린 사계四季의 음반 뒤에 남아 납빛 흐려지는 아버지의 우수를, 인간이 악무는 이빨 끝에서 유혈하는 인간의 살의 아픔을, 또한 그렇게 인간은 살아나감을 아마도 너는 모를 테지 아가야, 새로 이빨이 났네 영접迎接하는 생명의 프로필같이 보면 애틋한 네 이빨은 어두워라, 내 가슴에 파고들 때는 --- 「아가에게」중에서 하하하, 할아버지 수염은 우습더라 숨이 드는 코끝은 더 우습더라 떨기떨기 복사꽃 지는 달밤 계집과 소곤거린 볼의 뜨거움 그렇게 숨도 못 쉬는, 할아버지 위엄은 우습더라 제 때가 아니어도 빛나며 얼음이 터지는 소리 쩡쩡, 극極을 가르는 소리 그 아래 푸른 물 출렁거리고 피가 솟은 혈관을 햇살은 지난다 따사한 구들목엔 착한 사람 모여 사는 연방인데 오, 나무여 숨죽인 나무들을 불러 서로 의지하라 머리카락 사이로 하늘을 올려보면 은밀해지는 지붕 아래 하하하, 할아버지 눈시울은 우습더라 둘러빠진 두 볼은 더 우습더라 --- 「엄동」중에서 새벽 다섯 시 남대문 시장은 국을 끓인다 그리고 칫솔로 골고루 이를 닦는다 이빨 사이로 햇빛, 찌르르 육감肉感하는 아침의 기운 남대문 시장은 상쾌하다 좀 있다 뜨거운 국물로 데우는 후각, 이제는 잠에서 깨어나 고개 흔드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남대문 시장은 방석을 깔고 앉는다 청과도 좋고 양말이나 내복 비누와 학용품, 또 새파랗게 숨이 넘어가는 생선도 좋다 남대문 시장은 넓은 무화과 잎을 뒹굴며 떨어지는 이슬의 예지로 거래하고 늘 분노에 찬 골목에 있다 그리고 분망했던 하루의 저녁, 다시 국을 끓이는 일곱 시경엔 아낙네들이 밀리며 욕설하던 가게에서 긴 이부자리를 편다 몇 번 동전이 떨어지는 쾌감에 웃다가 그림자 같은 제 목소리에 피곤해져 불시, 아득한 수면에 빠져든다 한 마리 거대한 짐승과도 같이 --- 「남대문 시장」중에서 어두운 데서 아이들은 밝은 곳으로 데려와서 눕히게, 아픈 상을 하면서도 입 밖에 아프다 하지 않는 이 아이들을 서늘한 등나무 의자 위에다 눕히게, 가장 지극한 평화와 안녕 속에서도 우리의 손은 떨리는 것이니 라일락꽃의 요동을 보아 알겠네 너무나 많은 설움이 한꺼번에 풀려와 아이들의 떨리는 손을 쥐어주게, 생환해 온 이 봄의 감격을 울어버리지 않게 꼬옥 쥐어주게, --- 「봄날의 비감悲感」중에서 오로지 떨어진 한 낟 밀알의 그리움으로 나를 보옵소서 다시는 율법으로 하여 제단에 들지 않게 하시고 남루한 전야의 영혼으로 나를 존재케 하소서 저리도 숲에서 살아나는 바람은 피의 광염, 또한 깊은 밤일수록 보답처럼 밝아오는 가로등엔 사설蛇舌로 나부끼는 수위 아아, 저 이웃의 고통을 믿음으로 눈떠 보게 하소서 오로지 떨어진 한 낟 밀알에의 애정이 스스로 주홍빛 꿀벌에서 꿈꾸지 말게 하시고 오늘은 근원으로 돌아가는 빗물의 어중간에서 어머니의 음성을 듣게 하소서 혹은 사치한 연회에서 내가 머물거든 절정, 그 황홀한 절정에서 진실로 나를 파괴하여 주옵소서 --- 「항아리」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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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처음 시단에 나왔을 때, 그에게 붙여진 이름이 ‘비애와 우수의 시인’으로 문단은 기억한다. 그 말에 문인들은 매우 공감했다. 그리고 그는 나이가 들면서 더욱 이미지를 선호하게 되고 정교한 언어에 집중하면서 저자는 사물시에 대한 관심을 집중하였다. 차츰 세월이 지나면서 시에다가 인간의 현실적 삶을 그려내는 방법을 생각하게 되었고, 시와 인간의 고뇌와 번민을 염두에 두면서 작업을 했다.
이렇게 지난 과정을 살펴보면 그의 시는 이미지와 정서, 그리고 관념이 하나로 묶여져 있음을 실감하는데, 관념은 후반기에 접어들면서 더욱 견고해졌다. 그리고 그의 시선집 『불과 얼음의 콘서트』에서 밝힌 것처럼 허무의 낭만주의는 시작에서 ‘뜨거운 열망과 차가운 절제 사이’를 명료하게 짚어서 걸러냈다. 서로 모순된 에너지끼리 상호 침투하면서 특유의 화음을 발생시키는 일이 이수익 시의 본질적 사명이므로, 허무의 낭만주의는 아직 젊고도 푸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