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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 글...담다 걷다 짓다 잇다 하나, 나로부터 시작된 평화 양말과의 대화 새벽, 평화명상 뉴질랜드 화장실 사건 그럼에도 제 삶을 사랑합니다 신호등과 일체유심조 생각의 탄생 또또와 다롱이 현충원과 인절미 폭력에 대한 최초의 기억 ............................................................ 시선 하나... 유아 평화교육의 개척자, 마리아 몬테소리 둘, 개벽에서 배우는 평화 나를 이끌던 따뜻한 손 나의 정신개벽은 안녕하십니까? 엄마의 눈 시작과 끝은 어디입니까? 어린이는 평화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을 위한 작은 실천 원불교?대재와?평화 백기를 게양한 교도소 다시, 정신개벽?서울선언문 ............................................................ 시선 둘...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경제학자, 무함마드 유누스 셋, 거리에서 깨우친 평화 거리의 목탁이 되고자 한 까닭 해원·상생·치유·화합의 둥근 빛으로 다시 오소서 소성리는 평화다 3평의 평화 청와대 앞 1인 시위 광화문의 촛불에서 평창의 촛불까지 현장에?답이?있는 국제구호활동 막연함으로는 평화를 이룰 수 없다 모두를 살리는 정당한 불편함 『인생의 밀도』를 읽고 ............................................................ 시선 셋...실험실 밖의 평화과학자, 라이너스 폴링 넷, 은혜로 연결된 평화 이제는 다시 못할 아버님과의 대화 노랑부리소등쪼기새는 기린의 겨드랑이에서 잠든다 나에게 유일한 영웅은 국민이다 노무현 대통령?8주기를 보내며 사무사, 신영복 선생님께서 주신 친필을 떠올리며 평화 마라토너?강명구와 1만 6천 킬로 사무여한과 두 교무의 단식 ............................................................ 시선 넷...용서와 화해의 평화조정자, 넬슨 만델라 다섯, 이웃종교와 통하는 평화 1111, 한?몸?평화의?날 부처님 오신 날 가톨릭의 뜻을 아십니까 늦봄 통일상과 원불교 통일은?언제?오는가 『자유를 위한 투쟁』 운산 김관석 목사 평전을 읽고 ............................................................ 시선 다섯...인간의 본성을 평화로 사유한 사상가, 함석헌 여섯, 건축으로 만나는 평화 한강과?원불교소태산기념관 왜?집을?짓는가 기초공사의?중요성 안전이 평화다 콘크리트?타설, 첫 날의?기쁨 원불교 새백년, 햇빛달기의 약속 『건축왕, 경성을 만들다』를 읽고 오늘도 힘차게 돌아갑니다 모두의?집과?이토?도요 건축현장의 안전을 위한 나의 주문 ............................................................ 시선 여섯...인간을 위한 현대 건축의 거장, 르코르뷔지에 나가는 글...앞으로의 평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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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사람들은 그 고요함이 마음에 있음을 알고 마음을 법당삼아 공부했는데,
요즘 사람들은 마음을 놓고 고요한 법당만을 찾는 것은 아닐까요. 평화 명상을 이야기하며 소태산의 무시선無時禪, 어느 때나 선, 무처선無處禪,어디나 선방에서 멈추고 선禪을 묵상합니다. 시끄러운데 처해도 마음이 요란하지 않고 욕심 경계를 대하여도 마음이 동하지 않는 것이 무시선입니다. 평화 명상은 평화와 일심으로 연결하여 내적으로 마음의 힘을 기르고, 또한 밖으로는 정의와 연결하여 불의를 제거하여 그 속에 피어나는 맑은 향 같은 것입니다. [새벽, 평화 명상] 중에서 저는 제 삶을 사랑합니다. 저는 제 인생을 있는 그대로 사랑합니다. 우주에 성주괴공이 있듯이 소우주인 제 몸에도 생로병사가 존재합니다. 계절에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있듯이 제 삶은 희로애락이 흐르고 있습니다. 변화의 길을 지나갈 뿐 절망이라고 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제 삶을 사랑합니다] 중에서 오늘도 내 판단들을 돌이켜봅니다. 지혜를 담았는가? 생각을 소비했는가? 우주의 별이 작은 꽃으로 지구에 내려온 것이 나란 존재인데, 저의 작은 역할이 다하면 다시 우주의 본래로 합해지는 돌고 도는 삶의 연속, 오늘도 제 기도는 상생과 평화, 그리고 생명을 살리는 일에 하나가 되고자 서원합니다. 그것이 우주에서 지구로 내려온 제 삶의 존재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생각의 탄생]중에서 지금 세태는 교육, 환경, 가족, 건강, 정치 등 예전에는 속하지 않았던 삶의 모든 영역까지 시장가치로 평가하고 돈만 있으면 거의 모든 것을 살 수 있는 물질개벽(물질만능)의 시대로 변했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 분명히 존재합니다. ‘무엇이 정말로 소중한 것인가?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가?’라는 근원적 질문에 몸으로 응답하는 작은 실천들이 모여 정신개벽의 작은 한 걸음은 시작된다고 믿습니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을 위한 작은 실천]중에서 광화문 3평 평화교당은 르 코르뷔지에가 살았던 4평의 오두막집처럼 소박하지만 꿈이 있습니다. 이곳은 넬슨 만델라가 40년간 살았던 2평의 교도소만큼 작지만 진실의 솥이 될 것입니다. 용기와 단결이 필요한 우리들에게 버팀목이 되어 줄 것입니다. 어쩌면 평화와 인권은 원래 발바닥에서 나와서 거리에서 힘을 얻었고 희망으로 꽃을 피운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3평의 평화] 중에서 현장에 직접 다니면서 구호 활동을 해본 경험으로 현장의 상황을 매우 중요시합니다. 즉 발바닥으로 뛰면서 얻은 민심을 믿고, 현장의 바람이 온몸으로 들어왔다 빠져나갈 때 비로소 모든 활동 경험은 제 것이 된다고 확신합니다. [현장에 답이 있는 국제구호활동]중에서 종교인이자 평화운동가로서 저의 화두는 ‘인간의 본능’ 그리고 ‘평화’ 그 자체에 대한 묵상입니다. 학습이나 경험에 의하지 않고 동물이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이미 갖추고 있는 행동 양식이나 능력을 뜻하는 본능. 인간의 원초적 모습을 찾아가면, 분명 화합과 협력의 유전인자가 있다고 확신합니다. 소태산 대종사님은 우주 만유의 원초적 에너지를 ‘은혜’로 해석해 주셨는데, 다시 말해 인간의 본능은 양육강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경쟁 중심의 적자생존의 법칙은 인간이 욕망을 채우려는 잘못된 학습의 결과입니다. [막연함으로는 평화를 이룰 수 없다]중에서 약간의 불편함을 감수, 나와 우리가 보다 안전하고 쾌적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면 그 불편함은 정당합니다. 그러한 정당한 불편함은 모두를 살리는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시작입니다. 이제 우리에게 서로를 파괴하고 죽이는 부당한 편안함을 거부할 수 있는 삶의 자세 전환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우리 모두를 살리는 용기이기도 합니다. [모두를 살리는 정당한 불편함]중에서 “민주주의의 최후 보루는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다”로 상징되는 대한민국 16대 노무현 대통령. 특권과 반칙이 없는 정의로운 세상을 꿈꿨던 노무현 대통령의 삶. 그 뒤를 따르려는 많은 시민들이 함께했습니다. 그 분은 분명 진급되는 삶으로 다시 우리 곁으로 올 것입니다. 강물은 바다를 포기하지 않듯이, 바다인 국민들의 품으로 다시 부활할 것입니다. [노무현 대통령 8주기를 보내며] 가톨릭의 보편성에 조응할만한 원불교 사상으로는 원만 圓滿을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다. 원만圓滿의 개념은 원불교 어느 한 쪽으로 기울지 않는 중도의 길을 걷는다는 뜻입니다. 원만함이 정의를 만났을 때의 힘은 사사로움이 아닌 공정함이 되고, 폭력과 파괴가 아닌 두루두루 잘사는 평화가 되고, 상생의 자연 법칙이 됩니다. 원만함은 보편적이며 상식적인 생명의 기본에 충실하는 수행인 것입니다. 그것은 지식을 낳은 지혜로 복귀하는 것이고, 상대를 억지로 이기는 것이 아닌 서로 협력하여 생명을 탄생시키는 벌과 꽃 같은 세상으로, 원만함은 적당한 타협이 아닙니다. 두려움 때문에 도망가는 것도 더더욱 아니고 나 혼자 살겠다고 요란함을 피우는 행위는 결단코 아닙니다. [가톨릭의 뜻을 아십니까?] 중에서 ‘왜 짓는가’의 첫 번째 물음에 이어 ‘어떻게 지을 것인가’의 두 번 째 대답은 ‘건축은 과학이다’라는 명제에서 알 수 있듯이 빈틈없는 치열한 현실입니다. 철근 한 조각, 시멘트 한 포, 흙 한 줌이 있어야 할 자리에 정확하게 자리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왜 집을 짓는가?]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