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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로운 나 생명수업의 목차>
프롤로그 : 신비로운 나 생명수업을 시작하며 ?8 “내게도 신비로움이 있을까?” Ⅰ.생명의 보배수업 ?14 ?? 당신이 가진 하늘의 보배 ?? 생명을 어떻게 볼 것인가 ?15 나를 신비롭게 느끼는 경험 ?24 생명의 하나됨(융합) ?39 생명의 나눔(분열) ?47 생명의 초월하는 본성 ?56 생명의 진선미 추구 본성 ?66 생명의 파동과 흐름 ?73 생명의 다양성과 단일성 ?88 “죽고 싶도록 괴로운 이 마음을 어이할까?” Ⅱ.생명의 감정수업 ?98 ?? 생명 이치와 마음 이치 ?? 생명의 현상으로서 수치심 ?100 생명의 현상으로서 열등감 ?112 생명의 현상으로서 분노 ?124 생명의 현상으로서 우울증 ?135 생명의 현상으로서 불안 ?147 홍시처럼 익어가야 할 마음 ?157 “늙어감이 은총일 수 있을까?” Ⅲ.죽음수업 ?161 ?? 죽음의 신비로움 ?? 죽음의 신비로운 면 ?162 늙음이 은총일 수 있을까 ?167 죽음을 망각한 사회 ?176 죽음을 초월한 거인의 삶 ?184 “지식 너머 궁극의 앎” Ⅳ.생명의 깨달음수업 ?203 ?? 마음의 벽을 허물어 자유로워지는 길 ?? 깨달음에 신비가 따르는 비의(秘意) ?206 자유에 이르는 길 무아 ?225 에로스의 황금사다리 ?237 아름다움의 바다 · 아름다움의 구원 ?246 “내 안에 정말 신이 있을까?” Ⅴ.생명의 신성수업 ?257 ?? 내 안의 신을 만나는 삶 ?? 정신(精神)에 신(神)이 들어간 뜻은 ?258 이 땅에 아침의 신비가 사라질 때 ?267 신의 저울과 문명의 역습 ?275 신성 충만의 사회 ?293 “생명의 눈은 어떻게 열리는가?” Ⅵ.생명 감수성수업 ?303 ?? 아이에게 주어야 할 제1의 것 ?? 어떻게 생명의 신비를 깨우칠 수 있을까 ?307 생명 감수성수업 ?325 삶의 만능감수업 ?335 욕망의 환승수업 ?346 “나라보다 큰 나란?” Ⅶ.생명의 실천수업 ?351 ?? 나라보다 큰 나 지구보다 큰 생명의 길 ?? 소로우 ? 생활실험 ?353 러스킨 ? 생명경제론 ?373 톨스토이 - 비폭력 무소유 ?392 간디 ? 진리실험 ?408 에필로그 : 생활철학으로서 생명미학 ?4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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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에게서 자녀에게로 전해져야 할 제1의 자산
저자는 11년 동안 여러 편의 생명관련 논문과 저서를 냈다. 생명의 각성은 막혀있고 갇혀 있던 예전의 내가 깨져나가는 희열에 찬 시간이었다. 한 생명이 태어나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성공수업, 최고의 자존감 수업이 생명수업을 통해 가능함을 알 수 있었다. 내 안의 보배로운 생명을 발견하는 것이니 당연한 결과였다. 『신비로운 나, 생명수업』은 생명의 심연을 볼 때의 희열을 세상과 나누기 위해 저술되었다. 생명에는 몸과 마음의 설계도가 비밀스럽게 내장되어 있다. 과거와 현재, 미래, 특히 4차산업혁명시대에 살아갈 길도 그려져 있다. 생명에는 한 인간이 상승하고 확장하며 살아가도록 하는 생존의 비의가 담겨 있다. 생명과 생존의 비의를 알고자 한다면 생명수업을 시작해야만 한다. 신비로운 나 생명수업의 신비로움 그것은 있어도 좋고 없어도 그만인 무엇이 아니다. 알고 보면 생사존망이 달린 문제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신비로운 나, 신비로운 생명의 자아 회복이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지 거의 인식하지도 못한다. 작가는 생명의 신비로움이 무엇인지, 신비로운 것과 신비롭지 못한 것의 차이는 무엇인지 일깨우고 명확하게 밝혀 준다. 더 나아가 신비를 회복하는 삶의 길도 제시한다. 요즘 어른, 아이 모두 미래를 불안해한다. 노인, 청년 모두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막막해 한다. 청년층과 장년층 모두 불안하고 우울하며 분노하는 것이 기본 정조라는 연구결과도 발표되었다. 4차산업혁명의 비전은 행복과 낙관이 아니다. 대다수에게 불안, 절망, 분노, 불확실성으로 다가온다. 인공지능, 로봇, 생명공학과 같은 문명은 생명을 억압하고 직업을 빼앗으며 환경적으로 역습하는 문명이기 때문이다. 미래를 불안해하고 절망하는 이에게 가장 필요한 한 가지는 생명 감수성 향상과 만능감의 회복이다. 우울한 내 아이에게 주어야 할 제1의 것은 삶의 만능감이다. 인공지능, 로봇을 이용한 만능감은 결코 나의 만능감일 수 없다. 그것은 결국 인간을 왜소하고 초라하며 불필요한 존재로 만들 뿐이다. 절망하고 왜소해진 생명의 생명력을 회복하는 수업이 생명수업이다. 생명수업을 통한 생명 감수성 향상은 생명의 자질 중에서 만능감을 일깨울 때 의미가 있다. 만능감은 내 생명의 보배를 발견한 자에게 당연하게 주어지는 자신감과 충만감이다. 저자는 만능감이 그 어떤 유산보다 행복의 근원이라고 한다. 만능감의 보배를 길러주는 자애로운 양육, 이것만이 부모가 할 일이고 국가가 책임져야 할 미래이다. 한반도는 북한의 위협과 미국, 일본, 중국 등 주변 강대국의 등쌀에 잠시도 편안할 날이 없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망국과 전쟁의 어두운 터널을 지나와 경제적으로 성공했으나 그 생명력과 신비로움을 점차 잃어가면서 왜소해지는 한국인에게 생존의 길을 생명수업에서 제시하고 한다. 즉 사회적 생존의 길도 제시하는 생명수업인 것이다. 저자는 환경오염, 청년실업, 출생률 저하, 자살, 비정규직문제. 빈부격차 등 사회의 반생명적 현상을 생명중심의 생태계 의식 회복으로 극복할 수 있다고 제안한다. 기존의 도구적 관념의 환경운동으로는 생태계를 회복하는 데 한계가 있다. 도구적 환경운동은 미래의 이득을 위해 자신의 욕망을 희생한다는 생각을 갖게 하여 비자발적 운동이 되게 한다. 그러나 생명을 외경하고 신비와 아름다움을 존중하는 생명적 생태운동은 그 반대이다. 생명에 외경심을 가진 이는 자연을 존중하고 위하는 것이 희생이 아니라 기쁨으로 여긴다. 그로 인해 자발적으로 친환경 생활을 연구하며, 자연과 생명이 온전히 회복된다. 생명적 생태계 의식이 출판계에 적용되면 대형 인터넷 서점이 작가, 출판사, 동네서점을 죽이는 장사를 하지 않는다. 이들이 죽으면 신간이 줄고 독자가 떠나며 자신도 죽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생명적 생태계 의식이 도소매업에 적용되면 대형마트가 골목시장, 구멍가게, 중소제조업을 죽이는 장사를 하지 않는다. 작은 것들이 살아야 돈이 돌아서 자신도 사는 상생의 이치를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방식으로 생명의 정치, 생명의 경제, 생명의 교육과 예술 정신이 생명수업을 통해 이 사회에 확산되기를 바라며 작가는 <신비로운 나 생명수업>을 완성했다. 남녀노소 모두가 생명의 주인공이다. 모두가 신비로운 나와 생명의 자아를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저자의 책은 ‘나를 신비롭게 느끼고, 내 안의 신비로운 보배를 실현하는 경험’으로 독자를 이끄는 데 역할을 할 것이다. 『신비로운 나, 생명수업』속의 문장 돈, 자동차, 집, 지위 등의 과시욕에 사로잡혀 그것들의 노예로 사는 이에게서는 신비를 느낄 수 없습니다. 인터넷, SNS에서 타인의 평판에 목을 매며 살아가는 이도 신비롭지 않습니다. 성형수술로 비슷해진 얼굴에서도 신비를 느낄 수 없습니다.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후줄근하게 지친 회사원도 마찬가지입니다. 돈의 노예, 물질의 노예, 평판의 노예, 일의 노예로 사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우리 사회는 신비와 멀어지고 있습니다. 신성이 사라진 사회는 물질적으로 풍요할지라도 언제든 쇠락하거나 정복당할 운명입니다. -『신비로운 나, 생명수업』 8쪽- 자기 생명의 보배로움과 신비를 발견한 사람만이 자신의 최대치를 실현할 수 있습니다. 자기 생명의 보배로움과 신비로움을 터득한 이는 몸과 마음의 상승과 확장을 꾀할 수 있습니다. 생명의 보배로움과 신비로움을 회복하여 이르고자 하는 목표지점은 ‘나라보다 큰 나, 지구보다 큰 생명의 삶’입니다. -『신비로운 나, 생명수업』8쪽-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모두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고민하며 근심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어떻게 살아야할지 고민하는 남녀노소 생명의 주인공들을 위한 것입니다. 모두가 생명의 신비로운 이치를 깨우쳐 무엇에도 주눅 들지 않는 자존감을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대외적으로는 어떤 강대국의 압력에도 움츠러들지 않는 정신의 국민으로서 당당함이 길러져 무궁한 국운으로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신비로운 나, 생명수업』 11쪽- 과학자가 곤히 잠들어 있을 때였다. 침실에 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그는 방에 갇혀 정신을 잃어갔다. 이때 신의 음성이 들렸다. “생명이 어디에 있느냐?” 그는 공기가 부족해 숨을 헐떡였다. “공기, 공기가 생명입니다. 공기를 주세요.” 신은 방에 공기를 불어 넣었다. 그러자 물이 빠져나가 한 방울도 남지 않게 되었다. 잠시 후 과학자는 타는 듯 갈증을 느꼈다. 목이 말라 죽어가는 그에게 신이 물었다. “무엇이 생명이냐?” 그가 소리쳤다. “물, 물이요.” 신은 아직 가르칠 것이 남아 있는지 사방의 벽이 조여들게 했다. 공간이 점점 좁아지자 과학자가 소리쳤다. “공간, 공간이 생명입니다.” 신은 그가 서 있는 바닥을 없애버렸다. 그러자 허공에서 불안하게 떠돌며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당신이 주신 땅이 곧 생명입니다.” “아직도 깨달은 게 없느냐?” 과학자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생명의 나무 가지 끝을 잡고 있는 자신이 나무 전체를 안다고 소리쳤음을 알 수 있었다. -『신비로운 나, 생명수업』16~17쪽- 밖이 참새 소리로 시끄러웠다. 플라톤이 창을 열고 참새를 쫓았다. 한 참새가 투덜거리며 말했다. “인간이 하는 짓이 우스운 걸요.” “대체 뭐가 우습다는 거냐?” “참새들은 진선미 따위를 배우지 않고도 안답니다.” 플라톤은 진선미 철학을 강의하던 중이었다. 플라톤이 놀라 물었다. “어떻게 말이냐?” “보세요! 참새는 들판의 허수아비가 진짜 사람이 아니란 걸 금방 알아요. 좁쌀과 모래를 구분할 때 실수하는 일도 없죠. 참새에게 참된 것을 알아보고 판단하는 진(眞)의 본성이 있기 때문이에요.” “흠! 그럴 듯하구나!” “어디 그뿐인가요. 어미 참새는 가장 좋은 벌레와 좁쌀을 물어다 새끼에게 준답니다. 참새에게 가장 좋은 것, 즉 선(善)을 알아보고 판별하는 본성이 있기 때문이에요.” 플라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아름다운 걸 알아보고 판별하는 미의 본성도 네게 있느냐?” 참새가 거침없이 대답했다. “윤기가 흐르는 깃털과 부리를 보세요. 날아가는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요. 아름다움을 찾아 사는 것은 모든 참새의 본성인 걸요.” 다른 참새도 한 마디 했다. “때가 되면 가장 아름다운 짝을 찾아 짝짓기 하는 참새들을 보고도 모르시겠어요.” 플라톤은 한 방 맞은 기분이 들었다. 구름 뒤에서 스승 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라고 하지 않았더냐!” 말하며 웃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신비로운 나, 생명수업』 66~67쪽- 세상과 하나가 되는 데 방해가 되는 내 마음의 벽을 허무는 것처럼 큰 깨달음은 없을 것입니다. 성인, 선사들이 알려주는 깨달음은 마음의 벽을 깨뜨려 하나가 되는 하나됨 경험이기도 합니다. 하나됨이란 나와 너, 남과 여, 좌익과 우익처럼 대극적인 것이 자신을 잊고 초월하여 융화되는 것입니다. 또한 싫음과 좋음, 이익과 손해, 미와 추, 삶과 죽음처럼 내 마음에 자리 잡은 대극적인 관념들이 허물어져 호불호(好不好)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러자면 마음의 완고한 벽을 허물어야만 합니다. 서로 반대의 것이 역동적으로 하나를 이룰 때 우리는 신비를 경험합니다. 서로 벽으로 막혀 있던 것이 통하여 하나가 되기에 희열과 신비로운 느낌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신비로운 나, 생명수업』208~209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