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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 김춘수 문학의 주춧돌
김춘수와 언어 _ 허만하/ 무의미 시론의 문학사적 의의 _ 이승훈/ 김춘수의 초상, 그리고 접목시와 편집시 _ 오규원/ 김춘수의 시 세계‘자선自選대표시’10편의 세계 _ 윤호병/ 2부 / 내가 만난 김춘수 시인 김춘수에게 보내는 편지 _ 전혁림/ 우울하던 시절의 김춘수 선생 _ 김진경/ ‘적막’속의‘즐거움’_ 조영서/ 「타령조」와「누란」_ 윤후명/ 대여 선생님이 들려 주셨던 시 세 편 _ 류기봉/ 오갈피나무와 부용과 코끼리와 앵두밭과 _ 이원/ 김춘수 선생님께 _ 심언주/ 3부 / 내가 읽은 김춘수의 시 한 편 영원토록 1:1인 꽃 _ 김영승/ 공포의 시작 _ 김언희/ Wnrdma _ 함기석/ 어느 날, 구름 _ 성미정/ 뼈 없는 뿔 _ 이수명/ 아무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라는데 _ 조말선/ 처용과 나 _ 신동옥/ 사랑하는 나의 하나님 _ 김옥희/ 4부 / 대담 - 우리 시대의 큰 시인 김춘수 선생의 시와 삶, 그리고 산문 _ 강현국/ 나의 아버지 김춘수 _ 김지선 5부 / 나의 예술인 교우록 청마(靑馬)/ 미당(未堂)/ 동리(東里)/ 공초 선생(空超先生)/ 강 화백(姜畵伯)/ 화인(花人)/ 조향(趙鄕)/ 전혁림(全爀林)/ 윤이상(尹伊桑)/ 파석(巴城), 동기(東騎), 노석(奴石), 일영(逸影)/ [奇人列傳]/ 위 혜원(惠園)/ 남윤철(南潤哲)/ 김윤기(金允基)/ [청포도] 청포도 동인들 천상병(千祥炳)/ 고석규(高錫珪)/ 문신(文信)/ 조두남(趙斗南)/ 이윤수(李潤守)/ 이호우(李鎬雨)/ 이설주(李雪舟)/ 정점식(鄭点植)/ 요산(樂山)과 향파(向破)/ 대구의 文友들 주요 연보/ 작품 목록/ 주요 연구 목록/ 학위논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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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령조」와 「누란」
윤 후 명 소설가 내가 김춘수 시인을 좋아하게 된 것은 그의 시 「타령조(打令調)」 를 읽고서였다. 물론 그는 많은 시를 썼고 그 가운데「꽃」은 대표적인 작품으로 손꼽힌다. 그러나 나는 시를 공부하면서「타령조」에 빠져들었다. 「타령조」도 여러 편인데, 「타령조 10」을 읽었을 때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이세반도(伊勢半島)에서 온 오토미,/ 네 말을 빌리면/ 지형이/ 태평양을 바라고 기어가는 거북이 모양인 밀감밭에서/ 밀감은 따지 않고/ 바다에만 먼눈을 팔다가 일터를 쫓겨난 오토미,/ 빠 쿠로네꼬의 여급이 된 지/ 채 열흘이 안 되는 오토미,/ 오토미의 손등은 나이보다 늙고 꺼칠했지만,/ 오토미의 볼과 이마는 이세반도의 밀감밭의/ 밝은 밀감빛이었다고 할까,/ 나이 열다섯만 되면 마음이 익는다는/ 이세반도에서 온 열아홉 살 오토미의 눈에는/ 그 커단 눈에는/태평양보다는 훨씬 적지만/ 바다가 너울거리고 있었다./ 오토미, 너는 모를 것이다./ 그로부터 일 년 뒤/ 세다가야 등화 관제한 하숙방에서/ 시도 못 쓰고 있는 나를/ 한국인 헌병보가 와서 붙들어 갔다./오토미, 참 희한한 일도 있다./ 어젯밤 꿈에/ 이십 년 전 네가 날 찾아왔더구나,/ 슬픔을 모르는 네 커단 두 눈에는/ 태평양보다는 훨씬 적지만/ 바다가 여전히 너울거리고 있었다. 좀 긴 인용이 되고 말았어도 시인을 얘기하는 방법으로 나는 이 길을 택할 수밖에 없다. 이세반도의 밀감밭에서 온 빠 쿠로네코의 여급 오토미가 시인과 어떤 관계였는지는 알 길이 없다. 그런데 시인의 연보를 보면 1940년 일본대학 예술학원에 입학했다가 2년 뒤 일본의 총독 정치를 비방했다고 붙잡혀 세다가야 경찰서에 6개월 동안 갇혔다가 한국으로 돌아왔다는 기록이 있고, 그때 붙잡혀간 일이 이 시에 적혀 있으며, 이십 년이 지난 어느 날 꿈속에 여전히 두 눈에 바다가 너울거리는 그녀가 나타나는 것이다. 나는 그 인연이 매우 아름답고 공교롭다고 여겼다. 그로부터 나는 도쿄에서 가깝다는 이세반도를 꼭 가보고 싶었고, 쿠로네코, 즉 검은 고양이라는 이름의 술집에도 들러 술 한 잔을 기울이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아직 이세반도에도, 검은 고양이 술집에도 가보지를 못했다. 언젠가 도쿄의 거리에서 코네코, 즉 작은 고양이라는 술집을 발견하고 무작정 기어들어가 맥주를 마신 것은 그 연상 작용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쨌든 시인은 그렇게 내게 다가왔다. 그러다가 막상 시인과의 첫 대면은 그로부터 훨씬 늦은 80년대의 어느 날이었다. 무엇 때문인지 몰라도 프레스센터에 갔다가 시인을 만난 나는 그제서야 인사를 올렸다. 시인은 내 소설에 그의 시가 인용된 사실을 알고 있었다. 「누란(樓蘭)의 사랑」이라는 단편은 뒷부분에 그의 시 「누란」 가운데 ‘명사산(鳴砂山)’을 인용함으로써 결말을 짓고 있었던 것이다. 명사산 저쪽에는 십년에 한 번 비가 오고, 비가 오면 돌밭 여기저기 양파의 하얀 꽃이 핀다. 언제 시들지도 모르는 양파의 하얀 꽃과 같은 나라/ 누란(樓蘭). 그런데 여기 인용한 구절은 본래 시에서 가운데 몇 줄을 내 의도대로 생략한 것이었다. ‘양파의 하얀 꽃이 핀다’와‘언제 시들지도’ 사이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었다. 봄을 모르는 꽃, 삭운(朔雲) 백초련(白草蓮), 서기 기원전 백이십 년, 호(胡)의 한 부족이 그 곳에 호(戶) 천오백칠십, 구(口) 만사천백, 승병(勝兵) 이천구백십이 갑(甲)의 작은 나라 하나를 세웠다. 내가 의도적으로 빼버린 구절은 상당히 어렵고, 또 내 소설에는 그리 역할을 못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구절은 시에서는 묘미도 있고 의미도 있었다. 시인은 내 소설을 잘 읽었다고 말하면서도, 그 부분을 생략한 것이 아쉬운 모양이었다. 나는 그저 죄송해서“네, 네. ” 하고만 있었다. 그 뒤에도 여러 차례 모임에서 시인을 뵐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나는 인사만 올렸을 뿐 외곽을 빙빙 돌았다. 병실에 누우셨다는 말에도 차일피일하다가 그만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내 시 공부의 중요한 시기를 점하셨는데… 삼가 명복을 비옵니다. --- p.1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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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수 시인의 삶과 문학에 대한 해명
책은 모두 5부로 짜여 있다. 1부 ‘김춘수 문학의 주춧돌’에서는 허만하·이승훈·오규원·윤호병 씨가 선생의 삶과 문학을 안에서, 총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기를 꿈꾸는 마음으로 선생의 시세계에 대한 이론적 접근을 보여준다. 2부 ‘내가 만난 김춘수’에서는 전혁림·김진경·조영서·윤후명·류기봉·이원·심원주 씨 등의 글을 통해 시인으로서의 선생의 삶과 그 내면을 엿볼 수 있게 하였으며, 3부 ‘내가 읽은 김춘수의 시 한 편’에서는 김영승·김언희·함기석·성미정·이수명·조말선· 신동옥·김옥희 씨 등 젊은 시인들이 선생의 대표작 몇 편에 대해 쓴 감상 에세이를 실었다. 4부 ‘대담-우리 시대의 큰 시인’에서는 강현국 시인이 생전에 선생님과 나눈 문학과 삶의 안팎, 그 궁금함을 들여다본 인터뷰와 선생님의 장녀인 문학평론가 김지선 씨와의 대담을 통해 선생님을 추억한다. 5부 ‘나의 예술인 교우록’에서는 예술의 길을 함께 걸어온 청마와 미당, 동리와 전혁림 등 사람들과의 인간관계를 선생의 육성으로 들을 수 있다. 선생의 삶과 문학을 총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기를 선생 가신 지 15년이 지났다. 大餘김춘수 선생은 잘 알려진 바와 같이 한국현대시사의 거봉이셨다. 선생께서 개척하신 무의미 시론은 이른바 순수시 계보 형성·발전의 이론적 토대였다. 많은 학자들이 선생의 문학을 연구해 왔고, 많은 시인들이 선생의 삶과 시를 기리는 글을 써왔지만 선생의 삶과 문학에 대한 해명을 한곳에 모아 볼 수 있는 책이 없어 아쉬웠다.『우리 어느 둑길에서다시 만나리』의 출간은 이러한 아쉬움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의 결과이다. 선생의 삶과 문학을 안과 밖에서, 총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기를 꿈 꾸는 마음으로, 선생의 시세계에 대한 이론적 접근인 1부 김춘수 문학의 주춧돌, 시인으로서의 선생의 삶, 그 내면을 엿본 2부 내가 만난 김춘수, 선생의 대표작 몇 편에 대한 젊은 시인들의 감상 에세이인 3부 내가 읽은 김춘수의 시 한 편, 선생의 문학과 삶의 안팎, 그 궁금함을 들여다본 4부 우리 시대의 큰 시인, 예술의 길을 함께 걸어온 사람들과의 인간관계를 선생의 육성으로 들어보는 5부 나의 예술인 교우록 등 다양한 성격의 글들을 다섯 갈래로 나누어 한데 모아 엮었다. 『우리 어느 둑길에서 다시 만나리』의 출간이, 이 책 속에서, 선생과 독자들이 다시, 그리고 오래 만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귀중한 원고의 게재를 기꺼이 허락해 준 여러 필자들, 그리고 출판 사정의 어려움에도 출판을 맡아 준 학이사 신중현 대표와 직원들께 감사드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