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여는 글 ― 장자는 내가 되어 나로 사는 길로 가는 안내자입니다
1강 ○ 소요유1 - 변화에 대하여 2강 ○ 소요유2 - 다름에 대하여 3강 ○ 제물론1 - 참된 욕망에 대하여 4강 ○ 제물론2 - 균형에 대하여 5강 ○ 제물론3 - 밝음에 대하여 6강 ○ 제물론4 - 가능성에 대하여 7강 ○ 양생주1 - 일에 대하여 8강 ○ 양생주2 - 믿음에 대하여 9강 ○ 인간세 - 비움에 대하여 10강 ○ 덕충부 - 덕에 대하여 11강 ○ 대종사 - 진인에 대하여 12강 ○ 응제왕 - 근원에 대하여 |
|
장자 속으로 걸어 들어가,
‘진짜’ 나에 이르다 그동안 사람들은 주로 《장자》를 동양사상 고전이나 지식, 교양을 쌓을 목적으로 읽어 왔다. 그러나 《깨달음으로 읽는 장자》의 저자 장길섭은 《장자》라는 텍스트에 숨겨진 영성을 발견했다. 젊은 시절부터 깨달음 즉, 도에 관심이 많아 수많은 책을 섭렵하고 수련한 것이 바탕이 되었다. 이 책은 그런 오랜 과정을 거쳐 얻은 깨달음으로, 《장자》를 새롭게 해석해 낸 것이다. 깨달음의 죽비, 《장자》 당나라 때 선승 남악이 한 청년을 눈여겨본다. 큰 깨우침을 얻을 싹수가 보였던 것이다. 그런데 청년은 매일 불상 아래서 가부좌만 틀고 앉아 있다. 남악이 이유를 묻자 “부처가 되기 위해서”란다. 다음 날 남악은 명상 중인 청년 옆에서 기왓장을 갈기 시작한다. 듣다 못한 청년이 눈을 떠 “아니, 스님 뭐 하시는 겁니까?” 불쾌한 내색을 하자 “뭐 하긴. 거울 만들려고 그러지.” 한다. “참, 스님도. 기왓장을 간다고 거울이 되겠습니까?” 청년의 핀잔에 남악이 받아친다. “그렇다면 자네는 앉아 있다고 부처가 되겠나?” 청년 이름은 마조. 남악은 “마조면, 본성이 뛰는 것인데 앉아만 있다고 부처가 되겠느냐? 부처는 부처대로 놔두고 너는 네 길을 가야 그게 진정 부처되는 길이 아니겠느냐?”고 조언한다. 즉, 남 따라할 생각 말고 자신의 소질과 재능을 발견해 실현하라는 일침이다. 이 일화는 깨달음을 얻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또한 그것이 자신의 삶과 구체적으로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사람들은 자신만의 소질과 재능을 갖고 태어나며, 그것을 발견해 실현하는 것이 삶의 이유이자 목적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달란트도 이런 의미다. 《깨달음으로 읽는 장자》는 《장자》를 통해 자신의 소질과 재능이 무엇인지 깨닫도록 이끈다. 그것은 진짜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이기도 하다. 이것이 《장자》를 텍스트로 삼은 여느 책과 다른 점이다. 《장자》를 동양사상 고전으로 풀이해 놓거나 장자란 인물 자체에 초점을 맞춘 책들과 달리, 이 책은 《장자》를 깨달음을 위한 죽비로 사용한 것이다. 깨달음의 과정을 담은 [내편] 《장자》는 [내편], [외편], [잡편]으로 구성돼 있다. 여기서 [내편]은 장자가 직접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깨달음으로 읽는 장자》는 [내편]만 다루며, [내편]을 깨달음의 과정으로 해석한다. 깨닫기 위해선 먼저 의식이 변해야 한다. [내편] 맨 앞에 있는 [소요유]는 의식을 바꾸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 준다. 크기를 알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곤’이라는 물고기가 변해 ‘붕’이라는 새가 되었다. 이것은 운명이 고정돼 있지 않음을 말하며, 자신의 운명을 바꾸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함을 강조한다. 그 첫걸음은 자신이 가장 하고 싶고, 잘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다른 사람과 나를 비교하며 망설일 필요는 없다. ‘곤’은 ‘곤’대로 행복하고, ‘붕’은 ‘붕’대로 행복하며, 곤이 붕이 되는 과정을 지켜본 매미와 새끼 비둘기는 그들대로 또한 행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모두 신에게서 비롯되었으나, 저마다 짊어져야 할 삶의 몫은 다르다. 그러므로 차이와 차별에 짓눌리지 말고 자기의 삶을 온전히 즐기고 책임지라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어느 날 물고기가 새가 되는 기적이 일어나기도 하고, 설령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아도 스스로 만족스럽게 살 수 있다는 얘기다. [제물유]에서는 자신의 소질과 재능을 발견하고 실현하는 방법을 알려 준다. 일단은 몰입할 수 있는 것을 찾아야 한다. 지금 바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면 된다. 차근차근 실력을 쌓아 몰입의 대상을 업그레이드하면서 말이다. 그러다 보면 어느 지점부터는 자신 안의 참된 욕망(Desire)이 삶을 이끌어 갈 것이다. 물론 몰입만 잘한다고 소명대로 살 수 있는 건 아니다. 삶이란 혼자 꾸릴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삶이란 관계고, 관계란 주고받음이다. 이 주고받음을 잘할 수 있는 원리와 기술을 익혀야 한다. 그 원리를 장자는 ‘조삼모사 조사모삼’ 얘기를 통해 전한다. 원숭이 기르는 사람처럼 모든 것이 하나에서 비롯되었음을 깨달은 사람은 사는 데 유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유연함을 배워 어느 것에도 집착하지 말라 조언한다. 자신을 뚫고 나와 자유로워지라 사람들이 자신의 소질과 재능을 깨닫지 못하는 것은 왜일까. 세상에서 배운 숱한 생각과 느낌이 본성을 가리고 있어서다. 그러므로 자신을 가둔 견고한 생각의 틀을 부수고 진짜 자신을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 결국 장자는 자신이 나비가 된 꿈 얘기를 통해, 깨닫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변화시켜야 하는 인간의 ‘숙명’에 대해 말한다. 시간과 장소, 사람에 따라 어떻게 변화하고 적응할 것인가를 아는 게 살아가는 최고의 기술인 셈이다. 그렇다고 술만 익혀선 삶이 완성되지 않는다. 술을 넘어 도 즉,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러야 한다. 장자는 이 과정을 백정 포정이 19년간 소를 잡으면서 깨우친 단계에 비유한다. “제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도입니다. 기술의 경지를 넘어선 것입니다. 처음 소를 잡을 때는 눈에 보이는 것이 온통 소뿐이었습니다. 삼 년이 지나자 소의 몸체가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마음으로 대할 뿐, 눈으로 보지 않습니다. 감각 기관은 쉬고, 마음이 원하는 대로 움직입니다. 소의 자연스러운 결에 따라 힘줄과 뼈 사이에 칼을 밀어 넣고, 골절 사이의 빈 구멍에 칼을 댑니다. 이렇게 정말 본래의 모습에 따르니, 아직 인대나 건(腱)을 베어 본 일이 없습니다. 큰 뼈야 말할 나위도 없지 않겠습니까?” 포정이 골절 사이 빈 구멍에서 칼을 자유롭게 놀릴 수 있는 경지에 이른 것은 19년간 그 일에 자신의 뜻과 마음, 정성을 다해 몰입하고 또 몰두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나’는 사라지고 오직 나의 ‘참된 욕망’만이 남아 이 욕망이 삶을 이끌어 가는 경지에 이른 것이다. 이것이 신과 우주가 바란, 온전한 삶의 모습이다. 바야흐로 위로와 힐링의 시대. 그러나 약발이 오래가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그래서 어쩌라고?”란 말이 찝찝하게 남기 때문이다. 결국 자신과 독대하지 않는 한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깨달음으로 읽는 장자》는 그 고독한 순간부터 함께 출발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