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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독자에게
서자로 태어나다 의학을 택하다 *이야기 속 이야기: 조선 시대의 기록 문화 한양 생활을 시작하다 유희춘의 신임을 얻다 서른에 내의원에 들어가다 *이야기 속 이야기: 조선 시대의 의료 제도 특별한 스승, 노수신을 만나다 선조에게 책을 하사받다 *이야기 속 이야기 : 맥이란 무엇인가? 험난한 정치 속에서 자신의 길을 가다 두창의 명의가 되다 선조의 병을 고치다 《동의보감》 편찬의 소임을 맡다 의주로 피난 가다 *이야기 속 이야기: 허준과 양예수에 대한 전설 한양으로 돌아오다 본격적으로 《동의보감》 편찬에 나서다 《동의보감》, 의학의 모든 것을 담다 《동의보감》, 의학 서적 최초로 세계기록유산이 되다 《동의보감》의 핵심은 정기신이다 《동의보감》은 사람 중심으로 구성되었다 *이야기 속 이야기: 《동의보감》과 민간요법 전염병의 전문가로 우뚝 서다 *이야기 속 이야기: 전염병은 언제 어떻게 생기는가? 허준, 전설이 되다. 허준의 발자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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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출판 다섯수레의 ‘살아 있는 역사 인물’ 시리즈는
우리 역사에 큰 획을 그은 다양한 분야의 인물을 통해, 그들이 남긴 의미를 새롭게 조명해 보는 역사 인물 평전입니다. 1. 기획 의도 《동의보감》으로 새롭게 태어난 조선 의사 허준 이야기 우리가 허준에 대해 알고 있는 많은 것은 소설과 드라마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내용 중에는 사실과 다른 부분이 많습니다. 이런 문제가 생긴 것은 허준에 관한 기록이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허준은 서자였고, 오늘날과 달리 좋은 대우를 받지 못한 의사였기에 기록이 적은 것은 당연할 수 있지만 오늘날의 관점에서 없던 일까지 지어내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이 책은 《동의보감》내경편과 외형편을 우리말로 오롯이 번역한 바 있는 저자가 《동의보감》 출간 400주년을 맞아 청소년의 눈높이로 인간 허준의 면모를 제대로 들여다본 인물 보고서입니다. 허준은 의학 서적 최초로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동의보감》을 펴냈을 뿐만 아니라 세계 의학사에서 매우 중요한 일을 했습니다. 허준이 성홍열을 치료한 1613년은, 영국 의사 시드넘이 성홍열에 대한 기록을 남긴 1676년보다 60년이나 앞섭니다. 허준은 성홍열의 증상뿐만 아니라 원인과 치료법, 예방법까지 기록해 놓았습니다. 이것은 세계 전염병 역사에서 획기적인 사건입니다. 이외에도 허준은 의학 서적을 정리하고, 의학을 대중화하는 데 큰 업적을 남겼습니다. 허준이 살아온 과정을 보면 참으로 집념에 가득 찬 삶이었습니다. 당시 조선에서는 두창이나 성홍열에 걸리면 귀신의 소행이라고 여기며 치료하지 않고 굿을 하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의사들마저 전염될까 봐 손을 대지 않는 위험한 병이었는데, 허준은 전염병이 유행하는 곳에 가서 환자들을 살피고 치료했습니다. 이는 의사로서의 책임감만이 아니라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조선 시대를 살다 간 의사 허준을 오늘날 다시 돌아보게 됩니다. 우리는 이 책에서 보여 주는 허준의 진짜 삶과 학문, 의술을 통해 그의 집념과 애민정신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동의보감》의 구성과 특징을 자세하게 살펴보면서 역사적 가치를 다시 한 번 깨달을 것입니다. 《동의보감》 편찬에 나서다 백성의 건강은 일차적으로 나라의 책임이고 비용도 나라가 부담했습니다. 그래서 조선 시대 왕들은 의학에 관심이 컸습니다. 특히 선조는 의학에 조예가 깊어 웬만한 의원보다 의학 지식이 깊었습니다. 그런데 선조 때는 흉년이 자주 들고 전염병까지 돌아 백성들의 건강 상태가 매우 나빴습니다. 두창도 자주 돌았고 《동의보감》을 편찬하라고 명한 1596년에는 학질까지 돌았습니다. 또한 중국식 의학에 우리 몸을 맡기는 것을 벗어나기 위해 우리 실정에 맞는 새로운 의서가 절실하게 필요했습니다. 선조는 광해군의 두창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허준의 됨됨이를 알아봤습니다. 또한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사대부 관료들은 제 살길을 찾아 도망갔지만 허준은 피난길에 동행하여 끝까지 선조를 보필해 두터운 신임을 받게 됩니다. 이에 선조는 허준에게 친히 새로운 의서를 편찬하라고 명하면서 조리와 양생의 중요성을 언급합니다. 사람이 병에 걸리는 것은 조리와 양생의 잘못에서 생기는 것이므로 수양이 먼저이고 약물은 그다음이라고 이야기하면서, 새로운 의서는 조리와 양생을 위주로 하고, 일반 백성도 알기 쉽게 우리나라에서 나는 향약 이름을 같이 쓰라고 명합니다. 이는 건강 주권과 의약품 주권에 대해 언급한 것으로, 백성들 개인의 양생을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약재를 이용해 값싸고 편리하게 병을 치료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동의보감》에 의학의 모든 것을 담다 《동의보감》은 우리나라 의서인 《의방유취》, 《향약집성방》, 《의림촬요》를 비롯한 230여 종의 의서를 참고해 편찬되었습니다. 허준은 정유재란과 선조 승하의 책임을 져 유배되는 와중에도 집필의 열정을 놓지 않고 1610년에 《동의보감》을 완성하여 3년 후인 1613년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중국에 맞서 우리의 독자적인 의학 체계를 만들었다는 자부심과 당시까지 동양의학의 모든 것을 담은 보물이라는 데 의미가 큽니다. 또한 우리 땅에서 나는 향약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그 이용을 강조해 자신의 몸을 스스로 돌볼 수 있게 한 점이 돋보입니다. 다양한 국내외 의서를 참고하여 편찬해 임상의에게 유용하게 이용되며, 중국과 일본에까지 전해져 동아시아 의학 발전에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이에 유네스코는 《동의보감》을 의학서적으로는 세계 최초로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며 그 가치를 인정했습니다. 시대를 초월한 《동의보감》을 펴낸 조선 의사 허준, 전설이 되다 인간의 한계를 넘어 집념 어린 노력을 한 사람, 사회의 편견을 뛰어넘는 용기를 가진 사람, 어떤 위험에도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려는 의지를 굽히지 않은 사람, 주위의 비난과 노년의 유배라는 난관을 꿋꿋하게 헤쳐 나간 사람, 죽음을 무릅쓰고 환자를 치료한 사람, 허준은 1615년 11월 77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400년 전에 만들어진 의서가 오늘날에도 여전히 빛나는 이유는 어떠한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의 임무를 수행한 허준의 노력이 바탕에 있기 때문입니다. 허준과 《동의보감》의 정신을 오늘날 되살리는 것은 우리의 몫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