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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말
1부│인의의 맹자 1 맹자와 맹자의 시대 나아갈 때와 머무를 때 /백가쟁명의 시대 /인간의 마음心과 본성性 2 맹자의 정치사상 24 정치의 필요/ 하필왈리何必曰利 /이익을 다툴 때 중재의 기준 ─ 인仁과 의義 인의예지의 사단 / 정의正義의 과잉 /의義와 예禮의 조화 / 다스리는 자는 어떠해야 하는가? /어떤 정치를 펴야 하는가? 3 맹자의 윤리사상 사람의 본성은 선한가 /선은 무엇인가? 고자와의 첫 번째 논쟁 ─ 인의는 본성이 아니다 / 고자와의 두 번째 논쟁 ─ 삶의 본능이 본성이다./고자와의 세 번째 논쟁 ─ 의는 바깥에서 온 것이다 / 인간의 본성은 선해야 한다(?) /삼강과 오륜 ─ 도덕과 윤리/ 형식으로서의 윤리 /맹자의 혁명사상 2부│이데아의 플라톤 1 플라톤과 『국가』 정치인에서 철학자로 /서양철학에 드리운 플라톤의 그늘/『국가』에 대하여 2 사태 속으로 올바름 ─ 받은 것을 되돌려 주는 것(?)/트라시마코스와의 논쟁 3 플라톤의 이상 정치 올바른 삶의 탐구를 위한 올바른 정체의 탐구/전쟁의 기원 ─ 수호자의 필요/ 올바른 나라의 성향들 플라톤의 이상理想에 몰아치는 파도 /최선자정체의 타락 4 플라톤의 교육사상 보편교육으로서의 시가와 체육 /이데아Idea ─ 보편적인 앎 /수호자를 위한 교육과정 / 대학大學 ─ 수호자가 되는 과정 3부│민주주의자, 맹자와 플라톤 민주주의자, 맹자와 플라톤 다시 사태 속으로 / 민주주의에 대한 근본 물음 / 민주주의라는 단어의 독특성 /고대 희랍의 민주정체 vs 근대 유럽의 민주주의 /정언명령─네 이웃을 사랑하라 그리고 경로, 효, 인 / 자유 ─ 조건 없는 선택 /평등 ─ (불)가능한 이상 /다시 묻는 물음 참고문헌 및 원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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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보통 예禮를 눈에 보이는 것으로 여기고 의義를 눈에 보이지 않는 추상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실상은 반대이다. 의를 개념으로 생각하면 추상적이지만 실지로 의義는 의로운 행위나 의롭지 않은 행위 등 구체적인 행위로 드러난다. 우리가 부끄러워하거나 분노하는 것은 구체적인 대상과 상황에 대해서이지 추상적인 개념에 대해서가 아니다.
예禮는 반대로 구체적인 대상과 상황 이면에 있는 눈에 보이지 않는 영역에 작용한다. 다시 한번 반복하면 사양하는 마음은 거절하고 양보하는 마음이다. 무엇을 거절하고 양보하는가? 이미 나의 것이거나 나의 것이 될 것을 거절하고 양보한다. 내 집과 이웃집 경계에 쌓인 눈을 치우는 것은 누구의 의무인가? 교실과 복도 사이에 있는 문과 문턱을 청소하는 것은 누구의 의무인가? 그것을 수오지심, 곧 의義의 기준으로만 따진다면 누구에게도 그 의무를 지울 수 없다. 하지만 내 집과 이웃의 경계도, 문과 문턱도 청소해야만 한다. 나의 의무는 아니지만 그것을 청소하는 마음이 바로 예의 씨앗이 되는 사양지심이다. 그리고 사양지심이 확대되면 이웃과의 경계만 청소하는 것이 아니라 이웃집 앞 눈도 치우고, 교실 청소를 먼저 끝낸 후에 복도청소도 도와주는 행동으로 확장된다. --- p.53 우리 삶의 대부분은 동물과 큰 차이가 없다. 살기 위해 먹고 자고 배설하고 번식한다. 그런 중에 간혹 우리는 윤리적인 선택을 한다. 나와 상관없는 누군가를 돕고 내 것임에도 타자에게 양보하며 나와 무관한 행동을 보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며 만일 그것이 불의하다면 분노한다. 맹자는 이런 것이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것이라 여긴다. 그는 동물과 별로 다를 바 없는 대부분의 삶보다는 그런 중에 순간순간 빛나는 사람의 마음을 중요하게 여겼다. 많은 사람이 이런 마음을 잃게 될 때 ‘하필왈리何必曰利’라는 말로 맹자가 우려했던 모두가 개인의 이익을 다투는 사회가 될 것이고 공동체는 위태로워질 것이다. 그러니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보편적인 교육을 통해 사람들이 그 마음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해야만 한다. 그럼 그가 주장하는 보편적인 교육, 윤리교육의 내용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 윤리교육의 바탕이 되는 인간의 본성은 어떠한가? --- p.74 나의 자유는 타자에 대한 지배가 아닌 타자와의 동등한 관계에서 나온다. 그렇다고 나와 타자가 같다는 뜻은 아니다. 부모와 자식이 같을 수 없고 선생과 학생이 같을 수 없다. 부모와 자식이나 선생과 학생의 경우처럼 어떤 관계에서는 지시와 복종이 필요할 때도 있다. 다만 그런 지시와 복종의 관계는 필요에 의한 일시적인 관계일 뿐 영속적인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가 아니다. 내가 만일 낯선 곳에 간다면 그 지리를 잘 아는 사람의 인도에 따라야 한다. 그렇다고 내가 그 사람의 지배를 받는 것이 아니다. 내가 그 지역을 잘 알게 되면 나를 인도했던 사람과 나는 대등한 관계가 된다. 나는 내가 인도받았던 것처럼 나보다 늦게 오는 사람들을 안내할 의무를 진다. 플라톤의 ‘올바른 나라’가 그리는 ‘한마음 한뜻’의 사람들은 이런 관계를 맺을 것이다. 본질적으로 서로 동등하고 자유로운 사람들이 성향에 따라 때로는 누군가가 인도하고 누군가는 복종하는 그런 관계 말이다. --- p.186 이처럼 용기의 이데아는 모든 용기 있는 행동에 눈에 보이지 않게 붙어 있지만 모든 용기 있는 행동을 드러나게 한다. 그렇게 붙어 있는 용기의 이데아가 용기 있는 행동을 용기라 부를 수 있게 한다. 성경에 ‘눈이 있는 자는 보고 귀가 있는 자는 들으라’는 예수의 이야기가 있다. 눈이 있으면 당연히 보이고 귀가 있으면 당연히 들리거늘 왜 이런 이야기를 했을까? 어쩌면 이 세상에는 플라톤의 이데아처럼 감각적인 눈과 귀에는 보이거나 들리지 않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하게 봐야 하고 들어야 할 것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것을 보고 듣기 위해서는 교육과 훈련이 필요하다. 이제 이데아를 볼 수 있는 지성의 능력을 키우기 위한 구체적인 교육과정을 살펴보자. --- p.205~206 맹자는 왕정의 시대에 살았고 플라톤은 민주정에 대해서 부정적이었다. 그런데 맹자와 플라톤을 민주주의자라 부를 수 있을까? 우리는 어떤 사람을 민주주의자라고 부를 수 있는가? 스스로를 민주주의자라고 주장하는 사람일까 아니면 스스로를 무엇이라 부르던 민주주의적 언행을 하는 사람일까? 원시불교 경전인 수타니파타에는 석가가 당시 가장 높은 계급인 브라만에 대해 비판하는 내용이 나온다. 브라만으로 태어나거나 브라만처럼 입고 브라만처럼 머리를 땋는다고 브라만이 아니라 브라만으로서의 언행을 해야 브라만이라고.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민주주의자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아니라 실제 민주주의자로서의 언행을 하는 사람을 민주주의자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 p.225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눈에 보이는 불평등보다는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보편적인 평등의 조건이다. 이런 보편적인 조건이 눈에 보이는 불평등한 세계가 조화롭게 굴러가도록 하는 것이다. 보이는 세계의 불평등한 관계에서 나의 위치는 나에게 달려 있지 않다. 때로는 남보다 낮은 위치에 때로는 남보다 높은 위치에 있게 된다. 만일 내가 남보다 높은 위치에 있게 되어 그런 불평등한 관계가 나의 보이지 않는 평등의 조건을 해치게 된다면 언제든 그 위치를 사양辭讓하고 낮은 위치로 내려와야 한다. 반대로 남보다 낮은 위치에 있게 된다면 그런 불평등에 주목하기보다는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천작’의 평등에 시선을 돌려야 한다. 불평등한 관계의 세계에서 높은 위치인 인작을 차지하기 위해 평등의 조건인 천작을 해쳐서는 안 된다. 이런 삶의 태도를 필자는 ‘자발적 불평등’이라 부른다. --- p.263 민주주의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서부터 출발하여 민주주의자로서의 조건까지 살펴본 지금 다시 물음을 반복해본다. 맹자와 플라톤은 민주주의자인가? 민주주의에 대한 고민을 관통한 후에도 이 물음에 대해 쉽게 답을 얻기 어렵다. 어쩌면 이 질문은 끊임없이 물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민주주의와는 반대에 있는 정체인 왕정의 시대에 살았던 맹자와 민주정에 대해서 반대했던 플라톤을 왜 민주주의를 고민하면서 불러내야 하는가? 그들은 어떤 ‘민주주의자’들 보다 민주주의가 고민해야 할 요소에 대해서 고민했기 때문이다. 그들을 민주주의자라고 부를 수 있는지 없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민주주의자로서 살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물음에 그들의 고민이 해답의 실마리를 던져준다. 이제 ‘맹자와 플라톤은 민주주의자인가’라는 질문을 다음과 같이 바꾸어보자. 나는 민주주의자인가? --- p.26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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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은 우리 삶의 지침이며 나침반이다.
‘인류 역사에 기록으로 남겨진 수많은 사람이 다양한 형태의 삶의 흔적을 남기고 이 땅을 떠났다. 그중에서 수백 년 또는 수천 년 동안 거르고 걸러져서 남게 된 주옥같은 기록물이 고전이다.’ 5쪽’ 우리 삶의 매 순간은 결정적인 순간이다. 고전을 읽는 이유는 그 결정적인 매 순간에 올바른 결정을 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니 고전을 우리의 삶과 관련지어서 삶의 지침이자 나침반으로 읽어내지 못한다면 고전을 읽을 이유가 없다. 고전 속에서 삶의 지침을 찾아 나가려 부단히 노력하는 저자가 공자와 소크라테스에 이어 이번에는 맹자와 플라톤의 사상을 삶의 지침이자, 나침반으로 삼고자 한다. 동서양의 두 거장을 끌어낸 키워드는 ‘민주주의’이다. 우리 모두 민주주의라는 삶의 방식 속에 놓여있다. 과연 민주주의란 무엇이며, 어떻게 사는 것이 민주주의자로 사는 것일까? 고전은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맹자』나 『국가』라는 고전은 어떻게 읽어야 삶의 지침이 되고 나침반이 될 수 있는가? 저자는 맹자와 플라톤의 사상들을 구체적인 생활 속에서의 사례를 들어 설명하고 적용해나간다. 그리고 그 문제를 이 책을 읽는 독자의 삶 속으로 가져오기 위한 여러 가지 생각해봐야 할 질문들을 던진다. 묻지 않으면 생각할 수 없고, 구체적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삶의 지침이나 나침반으로 삼을 수도 없다. 특히 생각의 지평을 넓혀나가야 하는 청소년들에게 있어 질문은 더욱 중요하다. 저자는 맹자와 플라톤의 고전을 읽으면서 질문들을 던지고 그 질문들을 소크라테스가 했던 것처럼 근본적인 것을 찾아 나가도록 독려한다. 저자를 따라 사고의 지평을 넓혀나가는 고전 독법을 익혀보자. 맹자와 플라톤은 현재 우리에게 무엇인가? 저자는 이 질문을 던지며 『맹자』와 『국가』를 읽어나갔다. 그리고 그들처럼 지금 현재 우리가 처한 민주주의라는 삶의 방식, 공동체 운영원리에 대해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공동체가 운영되는 원리인 민주주의와 그 공동체의 일원인 사람의 본성은 어떤 관련이 있는가? 저자는 맹자의 정치, 윤리 사상을 통해서 민주주의자의 본성과 행동을 끌어내고, 플라톤의 이데아론을 통해서 유령과 같이 우리 주변을 떠도는 민주주의를 올바로 알기 위해서 민주주의의 본질을 볼 수 있는 지성이 필요하다는 것을 발견한다. 그리고 독자 스스로 ‘나는 민주주의자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맹자와 플라톤이 제안하는 기준에 따라 자신을 점검해보도록 권유한다. 저자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의 생각과 행동의 지침과 나침반을 맹자와 플라톤이 남긴 고전을 통해서 어떻게 갖추게 되는가를 보여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