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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도 세상이 낯설다 _ 안상헌
나를 죽일 수 없는 책은 나를 크게 만든다 | 나를 넘어 인간을 보다 | 영웅에게 책읽기를 배우다 | 나는 아직도 세상이 낯설다 책 너머 생각 너머 _ 김혜란 나란히 가야 행복하다 | 우리는 섬이 아니다 | 책의 재발견 | 두 여성의 힘 나는 아직도 학생이다 _ 민도식 쇼펜하우어에게 글쓰기를 배우다 | 나는 아직도 학생이다 | 흔들리는 삶에서 빛을 줍다 | 민주주의를 넘어서 인생은 해석이다 _ 박소현 습관은 그곳에 하루 한 번 갖다 놓는다 | 흘러가는 강물처럼 인생의 베일을 벗기며 | 가벼움과 무거움의 이중주 | 가는 곳마다 행복이었다 괄호의 세계 _ 양송 ‘다움’은 힘이 세다 | 너희가 잠언을 아느냐 | www.얼렁뚱땅 서평.com | 지금 여기로 가는 길 찾기 인생아, 안녕 _ 윤한나 슬픔도 내 삶이다 | 내 삶의 성석聖石을 찾아서 | 깃털이라는 욕망 | 인생은 살아지는 거야 낡은 서랍 속의 나 _ 이소연 지구별 동행자 | 인생은 해석이다 | 살고 싶었다 | 내 몸이 성하다 책에 나를 비추다 _ 이형준 내 안의 비상하는 갈매기를 찾아서 | 시작하기에 시작된다 | 인생의 비밀은 클리셰에 숨어있다 | 나를 뒤흔드는 타인 책이 다시 말을 걸어왔다 _ 정수란 삶의 모든 노력은 죽음으로 귀결된다 | 독서에 관하여 나 데리고 사는 법 _ 하주은 내 마음속 갈매나무 한 그루 | 하늘 바람이 춤추는 곳 | 사랑은 결여를 품고 | 노년을 기다리는 우리의 자세 독서의 수신修身 _ 홍순철 아름다운 나라의 영원한 부재 | 유토피아의 역설 | 마음의 균형이 무너질 때 | 독서의 수신修身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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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깊이 있는 사상가들은 이해되는 것을 두려워할까? 대중에게 이해되는 책은 기존의 관념, 사상에 잘 부합되는 내용을 담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새로운 생각은 대중을 불편하게 하며 이해되지 않기에 거부되는 경향이 있다. 새로운 것은 낯설다. 낯설고 익숙하지 않은 것은 내가 알지 못하는, 지금의 나보다 훨씬 큰 사유를 품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런 점에서 낯선 곳으로 안내하는 책이야말로 내 생각을 키워줄 좋은 책이다. 깊이 있는 사상가들은 이해되는 것을 두려워하며 차라리 오해받기를 바란다는 말은 이런 의미일 것이다.
---「안상헌, 「나를 죽일 수 없는 책은 나를 크게 만든다」」중에서 감성을 높이고 창조성을 발휘하는 방법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배움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배움이 기존의 지식을 외워 뱉어내는 훈고訓?의 성격이었다면, 이제는 기존 지식에서 새로운 창의와 결합하는 새로운 것을 내놓아야 한다. 새로움(initiative)만이 새로운 세상을 여는 열쇠가 된다. 이것이 과거의 배움과 지금의 배움을 새로운 관점으로 받아들이고 실천해야 할 이유다. ---「민도식, 「나는 아직도 학생이다」」중에서 책을 읽는 여자는 삶의 중요한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 근거를 묻는다. 근거를 묻는 행위는 단단하게 맞물린 세상의 규칙을 파괴한다고 그들은 생각했다. 여자에게 책은 잠재된 위험이며, 가장의 의무를 지닌 남자는 그런 위험을 감지하고 예방해야만 했다. ---「박소현, 「습관은 그곳에 하루 한 번 갖다 놓는다」」중에서 나는 ‘무엇’을 누구와 먹는가보다, 무엇을 ‘누구’와 먹을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내가 매일 만나는 사람이 음식이고 그 사람들과 함께하는 순간이 음식이라면 지금 먹고 있는 음식에는 이러한 ‘일상’의 풍경이 소담하게 담겨있다고 말하고 싶다. 음식을 먹는다는 행위가 단지 배를 채우기 위해서만은 아닌 것처럼 우리는 ‘먹고, 기력을 회복하며, 이를 통해 자기 몫의 삶의 행로를 밟는다’는 저자의 바람도 함께 곁들여서. ---「양송, 「너희가 잠언을 아느냐」」중에서 그랬다. 나는 책 속에서 진한 위로를 받았다. 내 십 대를 버티게 한 것은 펄 벅의 『대지』와 토머스 하디의 『테스』였다. 비극이 희극보다 위로가 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나보다 큰 슬픔을 가진 이들이, 혹은 유사한 고통을 가진 자들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실은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동력이 되었다. 현실 속에서 거뜬히 슬픔과 맞닥뜨리며 한판 승부를 내보자며 덤빌 수 있었다. ---「하주은, 「내 마음속 갈매나무 한 그루」」중에서 유토피아에는 ‘존재하지 않는 곳’과 ‘좋은 곳’이라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유토피아 건설을 외치는 지배자들은 대부분 그곳에 대해 ‘좋은 곳’이라는 의미만을 강조한다. 우리가 바라는 유토피아는 아마 ‘존재하지 않는 곳’에 대한 부질없는 희망일 가능성이 크다. 내가 아닌 다른 인물이 건설할 유토피아에 대한 기대와 혜택을 바랄 생각은 접는 것이 나을 듯하다. 『당신들의 천국』에서도 그랬고 현실에서도 마찬가지다. 의도를 지닌 유토피아의 건설은 성공하기가 어렵지 않던가. 애당초 유토피아는 책에만 존재했을지 모른다. ---「홍순철, 「유토피아의 역설」」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