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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서경성으로 떠난 여행
등장인물 소개 프롤로그-계속되는 싸움 수상한 방문객들 팽팽한 활시위 치솟는 불길 반전 하얀 그림자 서도의 꿈 낭도들의 결집 세 개의 알 풍류대도를 논하다 뿌려진 씨앗 서책의 행방 적지에서 시를 읊다 대화궁의 신축 칭제건원의 대의 갑판 위에서의 결투 서경에서 온 소식 천도의 좌절 서경이 일어서다 떨어진 목 감춰진 의도 저항 최후의 결전 에필로그-꿈의 씨앗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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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업이 다시 빛을 볼 수 있을까? 이제 잿더미에 잠긴 개경을 버리고 어디로 가야 할까? 서경으로 가야 할까? 남경일까? 동경일까? 서경이 아니라도 좋다. 그 어디라도 좋다. 이자겸을 벗어날 수만 있다면. 척준경의 목소리를 듣지 않을 수 있는 곳이라면. 그래도 어둠의 잿빛을 뚫고 희망이 자라고 있었다. 새싹이 파랗게 피어나고 있었다. 인종이 허리를 굽혀 검은 재로 뒤덮인 땅을 비집고 올라온 새싹을 바라봤다. ---p.88, 「반전」 중에서
만남은 짧았으나 의미는 깊고 깊었다. 다행이었던 것은 앞날을 걱정만 하고 있던 묘청과 정지상, 윤언이가 만나서 뜻을 합쳤다는 것이었다. 가끔은 걸림돌이 디딤돌이 되는 게 세상의 이치였다. 누군가에 의해 사라진 서책들이 세 사람을 서경으로 불러 모았다. 최악이라 생각했던 상황에서 세 사람은 뜻을 하나로 모았다. 묘청은 서경에 남았다. 분노한 서경인들의 뜻을 모으기 위해서였고 정지상은 인종이 있는 개경으로 돌아가고 있었다.---p.149, 「낭도들의 결집」 중에서 한참 동안 정지상을 바라보던 김부식은 목소리를 차분하게 가다듬었다. 조용했지만 싸늘한 목소리가 김부식의 입을 타고 흘러나왔다. “옛 영광이 있었다고 오늘날 다시 그 영광을 재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은 송을 중심으로 오랑캐인 여진의 금을 타도하여 질서를 확립한 뒤 예와 법이 살아 있는 나라를 만들어야 할 때입니다.” “저도 남들 못지않게 공맹의 예와 법을 공부했다 자부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공맹의 예가 유일한 예이고 법이라고는 생각하질 않습니다. 백성이 평안한 길이 있으면 그걸 따르면 될 일이지 어찌 공맹의 예와 법만 언급하십니까? 어사대부와 제 사이엔 현실인식에 대한 차이만 있는 것이 아니지 않나 싶습니다.” 정지상의 반론을 들은 김부식의 얼굴이 파랗게 변해갔다. ---p.270, 「적지에서 시를 읊다」 중에서 김부식 일파의 공격 속에서 인종은 말없이 눈을 감고 앉아만 있었다. 돌연한 군사들의 등장으로 수세로 몰린 묘청파와 함께한 인종 자신이었다. 어가를 돌려 개경으로 가자고 한 것은 수세를 피하고자 함이었지 뜻까지 굽히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묘청 일파를 벌하라 하는 것은 자신을 벌하라 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었다. “병장기를 거두라!” 한마디를 뱉어놓은 채 한참을 침묵하던 인종이 울부짖듯 외쳤다. “더 이상 피를 원치 않는다. 짐의 명령을 거부한다면 짐과 고려의 적으로 간주하겠다. 창칼을 거두고 개경으로 돌아간다!” ---p.369, 「천도의 좌절」 중에서 김부식은 2년을 기다려 서경성 안으로 들어섰다. 오랜 기다림의 시간들이 끝나가고 있었다. 병장기를 든 어느 누구라도 목숨을 보전치 못할 것이었다. 오랜 기다림의 이유는 서경성이 아니었다. 김부식이 바란 것은 그들의 멸절이었다. 김부식은 2년 동안을 지켜보고 있었다. 누가 서경성으로 들어가는지, 그들이 왜 서경성으로 들어갔는지를. 그들이 무엇을 지니고 서경성으로 들어갔는지, 그들이 무엇을 지키려고 저항하는지. 김부식은 병사들을 보내 서경성의 모든 성문을 걸어 잠갔다. ---p.447, 「최후의 결전」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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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을 위한 명분 vs 개혁을 위한 명분, 승자는 누구인가
모든 역사적 사건을 들여다보면 어김없이 승자의 ‘명분’이 등장한다. 라이벌 관계에 있는 두 세력이 갈등을 빚는 코드 역시 ‘명분’이며, 역사는 결국 승자의 손을 들어준다. 그러므로 사료에 남겨진 ‘명분’은 승자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그 이면을 재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후대 사람에게 마련해준다. 저자 또한 이러한 ‘명분’의 이면에 주목한다. 소설 속에서 김부식은 이자겸의 난을 제압하면서 불타버린 개경을 되살리기 위해 기존의 유학사상을 더욱 확고히 할 것을 인종에게 제안하는 반면, 정지상은 고구려 정통성을 계승해 자주적 민족사상을 새로 도입할 것을 권한다. 이후 그들의 사상적 차이는 각각 반대의 명분을 만들어내면서 이야기의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자신이 처한 현실을 벗어나고 싶었던 인종은 서경으로 수도를 옮겨 옛 조선의 기강을 가져와 도입하는 새로운 국치를 꿈꿨지만 개경 중심으로 확고히 다져진 기존의 문벌귀족세력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묘청의 등장 이후 김부식 중심의 개경파와 정지상 중심의 서경파는 갈등이 깊어지고, 결국 “현실을 즉시하라”는 김부식의 말을 거부하지 못한 인종은 서경천도를 무산시키면서 묘청의 반란을 제공하는 원인이 된다. 소설이어서 가능한 상상, 소설이기에 필요한 해석 소설의 전개 과정에서 두 가상 인물의 등장과 활약은 극적인 장면을 연출하면서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정지상의 정인이자 묘청과 정지상의 만남을 주선하는 조휘는 당찬 성격을 지닌 여인이다. 서경천도의 뜻에 동조하며 중요한 임무를 맡기도 한다. 김부식의 음모로 고조선의 건국 비밀이 담긴 서책이 분실되는 사건이 발생하자, 그녀는 자진해서 일본으로 건너가 김부식의 눈을 피해 서책을 되찾아온다. 이 소설의 결말에서 정지상의 아이를 데리고 서경성을 탈출해 후대에 희망을 남기는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또한 속세를 피해 산 속에 은둔하며 낭인의 삶을 보내던 허역은 윤언이와 함께 김부식 일파의 음모를 직접 적발하고 처단하면서 서경천도를 추진하는 데 도움을 주는 핵심적인 인물이다. 한편 저자는 이 책의〈에필로그〉에서 윤언이와 관승스님의 대화를 통해 김부식이 쓴 《삼국사기》에 의문을 던진다. 고구려, 백제, 신라 등 삼국의 역사를 중국에 편입된 역사로 축소시킨 《삼국사기》는 김부식의 사대주의 사상이 그대로 반영된 역사서라는 점은 이미 일반적인 평가이지만, 여기에 서경천도를 반대하면서 서경인들을 학살하고 멸절시키려 했던 역사적 과오를 숨기기 위한 대책이었다는 새로운 해설을 덧붙인다. 잔혹한 역사는 반복된다, 고로 다시 역사를 읽어야 한다 저자는 1980년에 일어난 ‘광주 민주화 운동’의 혼돈을 간접적으로 체험하며 젊은 날을 보냈다. 이 사건 역시 ‘묘청의 난’의 결말처럼 정권을 주도한 사람에 의해 죄 없는 무고한 시민이 무차별 학살을 당했으며, 사건의 승자가 정국의 1인자로 떠올라 한 시대를 풍미했다. 또한 시대적 변화와 함께 역사의 방향도 달라졌다. 잔혹한 역사는 반복된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이 소설을 구상하게 된 까닭이다. 왜곡된 역사의 진실을 밝히는 작업은 후대 사람들의 몫이다. 저자는 그런 점에서 올바른 역사 인식을 갖고, 진실과 허구 저 너머를 살펴보려는 시도는 분명 필요하다고 말한다. 고려의 서경천도에 숨겨진 진실과 역사적 의의를 한 편의 이야기로 읽으면서 독자들은 진정한 역사의 승자는 누구인지, 그 이면에는 무엇이 있는지 다시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