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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란덴부르크 비망록
독일통일 주역들의 증언 개정판
양창석
늘품플러스 2020.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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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개정판을 내면서
서문

1장 시민 혁명으로 동독이 무너지다
2장 서독 정부는 어떻게 대응했나?
3장 화폐통합으로 사실상 통일이 되다
4장 정치적 통일이 이루어지다
5장 대외적 걸림돌을 제거하다
6장 독일 통일의 교훈: 우리는 어떻게 통일을 해야 하나?

부록: 독일 통일 과정 연표
참고 문헌
주(註) & 독어 및 영어 약어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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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

경북대 경영학과 졸업, 런던정경대(LSE) 석사, 단국대 정치학 박사. 1982년 통일부에서 공무원 생활을 시작한 후 주독일 대사관, 주미국 대사관 통일관으로 근무,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뉴욕) 북한정책 과장, 통일부 대변인, 사회문화교류 본부장, 남북출입국사무소장, 정세분석 국장을 거쳐 남북회담본부 상근회담대표. 통일부 기획조정실장/남북회담 본부장, 개성공업지구 지원재단 감사를 지냈다. 현재 한국기술교육대학교 초빙교수·선양하나재단 한국대표이다. 저서로는『동·서독 화폐통합』(주독일 대사관)이 있다.

품목정보

발행일
2020년 03월 06일
쪽수, 무게, 크기
390쪽 | 404g | 130*185*30mm
ISBN13
9791188024346

책 속으로

“통일 후 20년 동안을 돌이켜 볼 때 많은 비판과 회의가 있을 수 있으나 통일의 부정적 측면보다는 긍정적 측면이 극명하게 돋보인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동독 주민들이 시민 혁명과 민주적 절차를 통해 얻어 낸 것이기에 더욱 값진 것이다.
--- p.11

나는 독일 통일 과정에 직접 참여했던 통일의 주역들을 많이 만났다. 동방정책의 설계자인 에곤 바 수상실 장관, 프리스니츠 내독관계성 차관, 도비예 내독관계성 차관보, 슈테른 수상실 국장 등 고위 관료들은 독일 통일의 값진 경험을 소개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통일에 대한 통찰력도 제공해 주었다.
--- p.12

1989년 5월 2일은 독일 통일로 가는 첫 관문이 열린 날이다. 동독 주민들이 자유를 찾아 서독으로 갈 수 있는 길이 열렸다. 헝가리 정부가 오스트리아와의 국경지역에 설치된 철조망을 철거한 것이다. 이날 철조망 제거 행사에는 헝가리와 오스트리아의 외무장관이 직접 참석했다. 비록 극히 제한된 지역의 철조망을 제거했고 여전히 국경수비대가 감시를 하고 있었지만 그 반향은 너무나 컸다.
--- p.20

동독 주민들이 대거 탈출한 그 순간까지도 호네커를 비롯한 동독 공산당 지도부는 동독의 안정에 상당한 자신감을 갖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폴란드를 비롯한 이웃 사회주의 국가들에서 일어나고 있는 개혁을 거부한 것은 당연지사였다. 1989년 6월 동독 정부는 천안문 광장 시위에 대한 중국의 무력 진압을 “질서와 안전의 회복”이라고 공식 옹호했다. 이와는 달리 동독 주민들 사이에는 헝가리와 폴란드에서 추진되고 있던 개혁에 대한 갈망이 눈덩이처럼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 p.25

서독 정부는 동독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독일 주민에 대한 유일대표권을 견지해 왔기 때문에 동독 탈출민들을 서독시민으로 빨리 정착시키는 데 큰 문제가 없었다. 서독 정부와 여당은 “동독의 고유 국적을 인정하지 않았던 정책이 결실을 맺을 수 있었다”라고 평가하고, 만약 사민당의 주장대로 동독 국적을 인정했더라면 1989년 탈출난민을 받아들이는 데 상당한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 p.38

라이프치히 시 슈나이더 데터스 국장은 필자와 한 인터뷰에서 “동독 주민들은 1985년 소련의 개혁 과정을 보고 공산주의가 변혁을 이뤄 낼 수 있다는 확신을 가졌다. 그런데 정치적 변혁을 거부한 동독 지도부의 정치적 무능이 동독 주민들을 실망시켰다.
--- p.62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을 때만 해도 콜 수상을 비롯한 서독 정치 지도자들은 독일 통일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장벽 개방 환영대회 연설에서 콜 수상은 “급진적인 구호나 주장을 따르지 말고 국제정치와 유럽, 독일의 상황 등을 전체적으로 고려하여 지혜롭게 대처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11월 20일 라이프치히, 동베를린, 드레스덴, 할레 등에서 벌인 시위에서 동독 주민들은 “우리는 한 민족이다”라는 구호와 함께 통일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 p.75

프리스니츠 전 내독성 차관은, 드레스덴 주민들이 콜 수상에게 “우리는 한 민족이다”라고 외친 것이 화폐통합을 서둘러 추진하게 된 기폭제였다고 말했다. 11월 20일 라이프치히 월요 데모에서 통일을 요구하기 시작함으로써, 그동안 민주화를 요구하던 동독 혁명이 통일 쪽으로 방향을 선회했던 것이다.
--- p.94

1988년 3.8%, 1989년 4.5% GNP 성장, 1988년 재정 적자는 GNP 대비 0%, 자본수지는 1988년 1,275억 마르크, 1989년 1,356억 마르크 흑자, 1988년 추가 일자리 창출 120만 명, 이것이 통일을 앞둔 서독의 경제 성적표였다. 서독 경제는 통일을 위해 유리한 재정적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당시 내독성 차관이었던 프리스니츠는 “서독의 경제력과 재정 상태가 역사상 유일무이하게 통일에 가장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라고 회고했다.

--- p.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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