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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원의 글
칠두도 하잖아!_ 전유성(개그맨) 내가 본 모델 김칠두_ 이상봉(패션 디자이너) 모델계의 테리우스, 김칠두_ 오미연(탤런트) 인생의 후반, 용기와 희망을 선사한 김칠두 선생님_ 최순화(모델) 프롤로그 야, 너도 할 수 있어! 응원의 그림 Part 1 질풍노도의 칠두 될성부른 떡잎 언터처블 막둥이 세상에서 가장 험한 등굣길 그래도 중학교는 마쳐야지 이놈아! 돈 버는 것 빼고는 못 하는 게 없었던 팔방미인, 아버지 책으로 익힌 공부, 몸으로 익힌 공부 아버지의 아픈 손가락, 김칠두 잊을 수 없는 그 이름, 고○○ 선생님 택시와 함께 날아간 대박의 꿈 그래도 고등학교는 마쳐야지 이놈아! ‘어쩌다 범생이’ 순수한 친구들과 함께한 ‘문학의 밤’ 출석 일수라도 채워라, 좀 Part 2 영원한 자유인 ‘스지 의상실’ 미스터 김 꿈으로 끝난 모델의 길 싱싱한 배추와 무가 왔어요~ 술과 장미의 나날들 77번 웨이터 김칠두 “저는 술 한잔 해야겠습니다” 어쩌다 직장인 사글세 보증금과 맞바꾼 포니 한 대 내 삶을 바꾼 린이의 우유 한 통 부천 미니슈퍼, 장사의 시작 슈퍼와 구멍가게 사이 마음의 고향, 남대문에서 밀려나다 ‘아메리카상’의 꿈 꿈은 사라지고 몸은 강화도로 Part 3 마흔, 순댓국을 알 나이 강화도령, 채소 장수로 돌아오다 역마살이 낀 미다스의 손 순댓국집을 한번 해보면 어떨까요? 대박 신화, ‘장터 순댓국’의 시작 눈길을 사로잡는 화려한 칼질 퍼포먼스 순대 없는 순댓국집 고기를 삶아다 줘 봐! 시화에 꽂히다 ‘털보 토종 왕순대촌’, 대박 신화의 시작 어쩌다 문을 연 영통 직영점 영통점 대박을 이끈 돼지갈비와 소곱창전골 007 뺨치는 순대 비법 찾아내기 대작전 체인점의 시작 복수혈전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실패는 또 다른 실패를 부른다 Part 4 칠두, 런웨이를 날다 린이가 바꿔준 두 번째 인생 제2의 김칠두는 나? 김칠두 이전과 이후 패션의 완성은 주름살 모델은 아무나 할 수 있다? 없다? 배우고 때로 익히면 즐겁지 아니한가 오뚝이 혹은 7전 8기 나를 성장시키는 경쟁심리 부록 화성에서 온 여자, 아내 이야기_ 나는 다시 태어나도 당신만을 사랑하리라 속 깊은 딸, 린이 이야기_ 아빠 하고 싶은 것 다 해 행동으로 보여주는 아들, 웅이 이야기_ 아들아, 너는 계획이 다 있었구나 에필로그 ‘뜨아’와 믹스커피 |
이헌건의 다른 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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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예전처럼 학교에 안 가거나 가출을 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중학교는 마쳐야지 이놈아!” 하시던 아버지의 슬픈 음성이 귓가에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 대신 내 나름의 방식으로 학교생활에 적응하고 즐겼다. 그것은 방과 후에 남대문시장이나 청계천 등을 돌아다니며 미군 용품을 사서 친구들에게 파는 것이었다. ‘미군용품’이라고 하니까 거창하게 들리지만 주로 초콜릿이나 캔디, 껌 같은 종류였다. 아직 국내 산업이 제대로 자리를 잡기 전이라 남대문시장에는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군용물품이 많았다. 그중에서도 ‘C레이션’과 같은 군용물품의 인기가 높았다. ‘가출 청소년’ 시절의 경험 덕분에 짭짤한 용돈 벌이를 한 셈이다. 어른이 되어 한때는 손대는 장사마다 대박이 나면서 ‘장사의 신’ 소리까지 들었던 것도 어쩌면 이때부터 그 싹을 보였던 건지도 모르겠다.
--- 「잊을 수 없는 그 이름, 고○○ 선생님」 중에서 ‘77번 웨이터 김칠두!’ 왠지 예감이 좋았다. 평소 나이트클럽 문화를 충분히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터라 일도 별로 어려울 것 같지 않았다. 그런데 막상 부닥쳐 보니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는 진리를 실감하게 되었다. 일단 처음에는 내 손님이 아무도 없기 때문에 돈을 만질 수가 없었다. 결국, 신입 웨이터가 해야 할 가장 큰 일은 전단 배포였다. 친구와 나는 영업이 시작되기 전까지 발에 땀이 나도록 뛰어다니며 전단을 돌렸다. ... 하지만 웨이터 생활은 오래 못 갔다. 단골이 늘어나는 만큼 외상도 덩달아 늘어나면서, 앞으로 남고 뒤로 밑지는 일이 계속 이어졌기 때문이다. 외상을 못 받아내면 내가 메꿔야 했다. 결국, 7개월 만에 웨이터 생활을 접고 다시 백수로 돌아왔다. --- 「77번 웨이터 김칠두」 중에서 동대문 신평화상가에서 다시 옷가게를 열었다. 이번에는 디자이너 브랜드가 아니라 남의 옷을 떼어다 파는 가게였다. 디자이너 브랜드와 비교하면 남는 건 많지 않지만, 여러 디자이너의 옷 가운데 괜찮다 싶은 것만 모아서 파니까 ‘폭망’의 위험성은 덜했다. 하지만 동대문에서도 나는 일어서지 못했다. 이윤이 워낙 박했던 데다 시간이 지날수록 일수로 빌린 돈의 높은 이자를 감당하기 어려웠던 탓이다. 남대문에 이어 동대문에서까지 실패의 쓴잔을 마시고 나니 다시 생활비를 걱정해야 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한참을 돌고 돌아 다시 신혼 초의 그 각박한 시절로 돌아오고 만 것이다. 게다가 적지 않은 빚까지 떠안은 채로. --- 「마음의 고향, 남대문에서 밀려나다」 중에서 메뉴는 순댓국으로 정했지만, 그때까지 직접 순댓국을 끓여본 적은 한번도 없었다. 집에서 먹을 것도 아니고 장사를 하려면 순댓국 전문가가 되어야 할 텐데, 어떤 종류의 순댓국을 할 건지, 순댓국만 할 건지, 가격대는 어떻게 할 건지 등등 체적인 계획은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도 덜컥 계약부터 했다. 그게 바로 ‘칠두 스타일’이다. 일단 저지르고 나서 시작하는 것. --- 「대박 신화, ‘장터 순댓국’의 시작」 중에서 나를 모델로 쓴 뒤에 매출이 많이 올랐다는 이야기가 종종 언론에 소개되곤 한다. 특히 어르신들보다 젊은이들 사이에서 인기가 더 좋다니, ‘젊은 층을 대상으로 하는 시니어 모델’로서 나름 경쟁력을 인정받은 셈이다. 그런 기사가 실린 날은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요즘은 시니어보다 젊은이들과 함께 무대에 서거나 광고를 찍는 일이 많다. 나이는 물론 생각하는 방식도 다르지만, 젊은이들과 호흡할 수 있어서 좋다. 젊은이들에게서 느껴지는 팽팽한 긴장감도 좋다. 미안한 마음보다는 정정당당하게 실력껏 겨뤄보자는 생각이 더 커지는 요즘이다. 어쩌면 이런 경쟁심이 나를 더 성장시켜주는 힘인지도 모르겠다. --- 「나를 성장시키는 경쟁심리」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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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캔 두! 그러니까 유 캔 두!
60대 중반의 나이에 혜성처럼 나타나 런웨이와 방송계를 강타한 김칠두. 그는 지난 2년간 아이돌스타 못지않은 스케줄을 소화하며 단숨에 대세 모델로 부상했다. 카리스마 넘치는 이목구비에 은빛 수염과 장발을 휘날리며 오늘도 런웨이와 방송, CF 무대를 종횡무진 누비는 중이다. 김칠두를 특히 좋아하는 건 1020을 비롯한 젊은 층이다. 그들은 20대의 패션을 찰떡같이 소화하는 김칠두의 ‘힙한’ 스타일과 감각에 환호한다. ‘어, 이 할아버지, 느낌 있는데?’ 어디 그뿐인가. 청춘시절의 꿈을 놓친 동년배들은 그를 보며 ‘나도 한번 저질러 볼까?’ 하고 용기를 충전한다. 하여, 그의 SNS는 젊은층과 동년배들의 자기고백의 마당이 되곤 한다. 청춘들은 ‘나도 저렇게 멋지게 나이 들고 싶다’고, 동년배들은 ‘나도 저렇게 못다 이룬 꿈을 이루고 싶다’고 말이다. 김칠두는 「아이 캔 두! 김칠두!」에서 시종일관 인생에 ‘늦은 때’는 없다며 실패를 두려워 말고 기꺼이 도전하라고 외친다. 곧, 김칠두의 “아이 캔 두!”를 뒤집으면 바로 “유 캔 두!”가 되는 이치. 방송 출연으로 친해진 개그맨 전유성도 한마디 거들지 않는가. “내 인생 내가 사는 거다. 나는 할 수 있다. 김칠두를 봐라! 얼마나 폼 나냐?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 하고 살자. 칠두도 하잖아!” 물론 그는 앞으로도 ‘칠두 스타일’을 시전하며 직진한다는 계획이다. 무엇보다도 ‘시니어 모델’로 불리는 데 만족하지 않고 이제부터 진짜 모델로 승부를 보겠단다. 바로, 한국 무대에 만족하지 않고 세계 4대 패션쇼 무대에 당당히 서겠다는 포부다. 혹시 남의 이목이 두려워 망설이고 있다면, 결과를 확신할 수 없어 주저하고 있다면, 김칠두의 행동력이 바로 답이다. = 칠두 스타일_Cildu Style 바보들은 고민하고, 칠두는 행동한다.= 작가의 말 “야, 너도 할 수 있어!” 나 김칠두의 시간도 다르지 않다. 한 마리 나비처럼 런웨이 무대를 날아올랐지만, 바로 그 순간을 위해 나는 적어도 30년의 세월을 기다려왔다. 젊은 시절 한때 모델을 꿈꾸었지만 ‘현실’이라는 높은 벽 앞에서 그 꿈을 접었고, 환갑이 넘은 나이에 비로소 그 꿈을 펼쳤다. ... 꿈을 접고 살았던 지난 시간, 심지어 ‘생활’조차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의심스러웠던 지난 몇 년 동안에도 나는 언젠가 다시 일어설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 시절, 내게 큰 힘이 되었던 한마디가 있다. “야, 너두 할 수 있어.” 초보 영어학습자를 위한 광고의 어느 장면에서 주인공이 속삭이듯 들려주었던 그 말은 ‘나도 할 수 있다’라는 강한 자기암시의 효과를 가져왔다. ‘그래, 나도 할 수 있다! 김칠두, 아이 캔 두!’ 늦은 나이에 모델을 꿈꾸는 이들, 희망의 끈을 그만 놓아버리고 싶은 좌절의 순간을 겪고 있는 모든 이들, 희망찬 미래를 설계하는 모든 이들에게 이 말을 들려드리고 싶다. “야, 너도 할 수 있어!” 그 희망의 증거는 바로 나, 김칠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