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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1부. 위기의 시대, 다시 자본주의를 고민할 때 종말을 말하기에는 아직 이른 신자유주의_『탐욕의 종말』 자본주의 위기의 시대에 다시 읽는 『자본』_『Hi, 마르크스 Bye, 자본주의』 마르크스 『자본』의 훌륭한 동반자_『데이비드 하비의 맑스 '자본' 강의』 계몽에 대한 내재적 비판자, 마르크스_『왜 마르크스가 옳았는가』 사회주의는 문명적 대안이어야 한다_『윌리엄 모리스』 돈이 있기 전에 부채가 있었다_『부채, 그 첫 5,000년』 2부. 잃어버린 역사적 가능성을 되짚다 이제 우리 자신의 역사를 쓰자_『The Left 1848~2000』 민중의 집에 미치자_『민중의 집』 어디 이런 정치가, 없나?_『장 조레스, 그의 삶』 개혁이냐 혁명이냐 아니면 그 둘의 변증법?_『사회 개혁이냐 혁명이냐』 그는 아나키스트였다, 왜?_『나는 사회주의자다』 '종북'과 '반공'을 넘어 현대사를 다시 읽기_『이재유, 나의 시대, 나의 혁명』 해방 공간, 누가 옳았나_『조선혁명론 연구』 자본주의와 마오주의를 함께 비판하는 루쉰의 후예_『내 정신의 자서전』, 『망각을 거부하라』 3부. 만만치 않은 도전, 좌파의 건설 그람시를 '다시' 읽자_『남부 문제에 대한 몇 가지 주제들』 국가를 '변형'하라_『국가, 권력, 사회주의』 마르크스주의 해체 이후의 탈자본주의 대안?_『리얼 유토피아』, 『마르크스가 살아 있다면』 오늘날 헤게모니 투쟁은 계급투쟁?!_『헤게모니와 사회주의 전략』 프랑스의 '플랜 B'는 유로존 탈퇴?_『프랑스는 몰락하는가』 유럽 좌파의 고민_『인간이 먼저다』 한국의 보수파와 수구파, 그들은 누구인가_『한국의 보수와 수구』 4부. 좌파, 녹색의 문제의식과 만나다 거대 기계에 맞서_『기계의 신화 2』 자율성을 잃으면 혁명도 없다_『행복은 자전거를 타고 온다』 '이중 위기'의 시대, 앙드레 고르를 읽자_『프롤레타리아여 안녕』 지역에서부터 혁명을_『머레이 북친의 사회적 생태론과 코뮌주의』 녹색과 적색이 만나야 할 이유_『미래를 위한 경제학』 생태사회주의의 새로운 교과서_『기후 정의』 글자의 이야기 속에서 우리의 생각을 시작하자_『낱말의 우주』 5부. 자본주의가 아니면 안 된다는 관성을 넘어 '사회주의'의 그 '사회'를 물으며 노동운동의 '녹색화'를 꿈꾼다_『영국 노동운동사』 마르크스주의를 넘어 사회주의를 다시 생각하자_『자유로 가는 길』 가보지 않은 길, 협동조합 국가_『우애의 경제학』 먼저 고민했던 사람, 체 게바라_『체 게바라, 혁명의 경제학』 자본에 맞서는 정치를 발명하라_『21세기 사회주의』 '1주 1표'라는 혹세무민을 넘어 기업에서도 '1인 1표'를!_『기업은 누구의 것인가』 자본주의 아닌 삶, 어떻게 가능한가_『파레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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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좌파가 ‘자본주의’를 잘 알지 못해 역사 속에서 실패를 거듭한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좌파가 더 몰랐던 것은 자신이 만들겠다고 한 ‘사회주의-코뮌주의’ 쪽이 아닐까. 지난 한 세기 동안의 실천을 경험하고 나서는 더욱더 그렇게 느껴진다. 그렇기 때문에라도 우리는 예전과는 다른 책들을 읽고, 같은 책도 다르게 읽으며, 무엇보다도 읽기 자체를 다시 시작하는 데서 재출발해야 한다.--- pp.11-12
이 대목에서 꼭 함께 짚어봐야 할 게 있다. 오늘날 위기에 처한 게 자본주의만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마르크스가 자본주의 비판의 준거점으로 삼은 그 임노동 계급 역시 지금 위기다. 수 세대를 이어온, 그리고 최근 더 극성스러워진 자본주의는 노동계급 내부에 커다란 균열과 분단을 낳았다. 우리의 경우 이것은 무엇보다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문제로 나타나고 있다. 겉으로만 보면, 이들 사이에는 연대는커녕 경쟁과 차별만이 존재하는 것 같다. 도대체 이들을 하나의 계급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지 자체가 쟁점이 된다.--- p.40 동아시아만큼 이 근대 국가라는 질곡이 인민을 옥죄는 곳도 달리 없다. 일본에는 천황제 국가의 유제가 여전하다. 중국에는 ‘사회주의’를 내건 거대 국가가 실상은 자본주의의 버팀목 역할을 한다. 한반도에서는 하나도 아닌 두 개의 국가가 일촉즉발의 대결 상황을 60년 넘게 지속하고 있다. 100년 여정의 중간 기착지가 이것이다. 이것은 그야말로 100년 전 고토쿠 슈스이가 맞부딪혔던 일본 국가라는 현실의 지속, 아니 그 확대판이 아닌가.--- p.144 ‘정통’론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곧 ‘무오류’론에서 벗어난다는 것이기도 하다. 자랑스러운 역사라도 잘못은 잘못대로 평가해야 한다. 오히려 위대한 성취를 보여준 인물이나 사례일수록 그 오류와 한계에 대한 점검도 더욱 철저해야만 한다. ‘잃어버린’ 대의를 ‘다시 시도’하기 위한 역사 읽기라면, 마땅히 그래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는, 슬라보예 지젝이 늘 인용하는 사무엘 베케트의 문구(“다시 시도하라, 또 실패하라, 더 낫게 실패하라”)처럼, “지난번보다 ‘더 낫게’ 실패”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p.153 혁명 러시아에서는 기존의 의회 대신 새로운 대의기관으로 소비에트가 등장했다. 구체제의 경찰과 군대도 해산되고, 국가 기구 전체가 새로 조직됐다. 그런데 이 새로 등장한 국가가 과거의 차르 정부는 상대도 안 될 만큼 더한 관료 독재를 펼치기 시작했다. 우리가 이미 다 아는 이야기다. 10월 혁명의 이러한 변질은 자본주의 중심부에서 혁명 노선이 대중의 신뢰를 잃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현실사회주의의 실상이 외부에 그대로 알려지는 게 우파의 어떠한 반공 선전보다 더 효과적이었다.--- p.209 ‘사회주의’는 한마디로 자본의 지배를 사회의 자기 통치로 대체하겠다는 이념이다. 그런데 이런 구상이 처음 등장한 때부터 항상 난점이 따라붙었다. 그것은 ‘자본’의 실체는 분명한 데 반해 ‘사회’는 그렇지 못하다는 점이었다.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마가렛 대처 식으로 “사회는 없다”는 게 아니다. 칼 폴라니가 『거대한 전환』에서 그토록 힘주어 이야기하는 바, 사회는 분명히 있다. 하지만 그 실체는 좀처럼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p.223 이 책은, 수구는 몰라도, 적어도 보수에 대해서는 우리의 시야를 밝히는 힘을 갖고 있다. 보수의 관심사는 오직 현상 유지이기에 보수파는 그것에 이롭다면 어떠한 변신도, 궤도 수정도 감행할 수 있다. 그래서 노동자와 여성의 참정권에 반대하던 ‘자유주의’는 사회주의의 위협 앞에서 보통선거권을 인정하는 ‘자유민주주의’로 변신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저자의 날카로운 지적처럼, 그 사회주의의 위협이 역사 속 기억으로 사라진 우리 시대에는 다시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으로 고전 자유주의가 회귀하는 것이다.--- pp.269-270 교통의 속도가 전반적으로 빨라졌다고 해서 만인의 이동 시간이 줄어드는 게 아니다. 대다수 서민들은 속도 증가에 따라 새로운 시간 목표를 강요받고 여기에 억지로 적응하게 된다. 이제 그/그녀는 자신의 두 발로 걷던 거리의 범위를 넘어서 출퇴근해야 하고, 통근 시간에 맞추기 위해 길거리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한다. 이것이 새벽 일찍 일어나 몇 시간이나 교통 체증과 싸우며 일터로 향하는 현대인의 모습이다. 결과적으로 서민들이 이동에 소요하는 시간은 더 늘어나고만 있다. 이동 시간이 단축된 것은 오직 소수 부유층뿐이다. 이들은 엄청난 에너지를 써대며 비행기를 타고 ‘지구화’를 만끽한다.--- p.291 자본주의는 자본의 지배와 확장을 위해 타율성 영역을 인류 역사상 유례없이 확장했고, 이제는 그나마 남아 있는 자율성의 기반들마저 끊임없이 타율성의 지배에 복속시키려 한다. 불행히도, 자본주의의 대안으로 등장한 사회주의 역시 타율성의 지배라는 점에서는 결코 새롭지 못했다. 대규모 산업이 인간 생활을 지배하는 구조를 자본주의로부터 그대로 이어받았기 때문이었다. 다만 타율성의 주체가 사기업에서 국가로 바뀌었을 뿐이었다.--- p.304 성장 자체에 도전한다는 것은 말처럼 그렇게 쉽지 않다. ‘성장’은 이미 자본가들만의 깃발은 아니기 때문이다. 반자본주의 도전의 후보자로 제시되는 세력들도 성장에 미련을 갖는다. 한국에서도 2007년 대선 즈음에 이른바 ‘진보적 성장’이 유행어가 된 적이 있다. 우파만이 아니라 좌파도 ‘성장’을 중심에 놓고 대안을 제시한 것이다. 그만큼 좌파의 잠재 지지자들에게도 ‘성장’은 호소력 있는 긍정적인 가치다.--- p.323 결론은 무엇인가? 주식회사에는 주인이 없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자본주의 법체계에서 주식회사의 주인인 것처럼 전제되는 주주들도 사실은 주인임을 내세울 아무런 근거를 갖고 있지 못하다. 주식회사는 본래부터 그렇게 주인 없이 성립된 생산 공동체다. 따라서 주주 소유권을 전제하고 그로부터 연역되는 경영권이라는 것도 거짓 논리에 지나지 않는다. 저자가 보기에는 한국의 재벌 문제도 바로 이 근본적 문제에서 파생하는 것이다.--- p.409 주식회사는 주인 없는 사회적 자산이다. 그런데도 자본주의 법체계는 이 사회적 자산의 경영권을 주주라는 특정 집단에게 맡긴다. 하지만 주주는 사실 일종의 채권자에 불과하다. 이들에게는 경영의 의지도, 능력도 없다. 그러다 보니 실제로는 대주주들의 묵인과 담합 아래 소수 과두 세력이 기업을 지배한다. 한국에서는 이 과두 세력이 총수 일가로 나타날 뿐이다. --- p.4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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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색’과 ‘녹색’의 책을 집어들고 읽으라!
과거와는 다른 책을 읽고, 같은 책이라도 달리 읽자. 다른 눈으로 세상을 바라봐야 이전과는 다르게 행동할 틈이 열린다. 적색 사회주의에서 녹색 사회주의로! 『장석준의 적록서재』는 2012년 1월부터 2013년 4월까지 ‘프레시안 books’에 연재된 동명의 서평들을 묶어 펴낸 책이다. 진보정당 운동에 몸담고 활발한 저술 활동을 펼치고 있는 장석준은 이 서평집에서 서른일곱 권의 책을 읽어나가며 자본주의를 왜 극복해야 하며, 그것이 어떻게 가능할지에 대한 근본적 모색을 시도한다. 쉽게 예상할 수 있듯 ‘적록서재’의 ‘적(赤)’은 전통적 좌파의 흐름을, ‘록(綠)’은 최근의 생태주의 흐름을 상징한다. 단 여기서 적색과 녹색은 그저 나란히 늘어선 색깔이 아니다. 저자가 상정하는 녹색은 기존의 사회주의 사상을 포괄하면서 일반적인 의미의 ‘생태주의’를 넘어서는 것으로, 적색의 운동이 전제로 삼아야 하는 색깔이다. 곧 적록서재의 ‘적록’은 단순히 ‘적색’과 ‘녹색’의 연대가 아니다. 차라리 ‘적색’에서 ‘녹색’으로, 즉 ‘적색’ 사회주의가 ‘녹색’ 사회주의로 바뀌어야 한다는 게 이 책의 메시지다. 서평으로 채운 이 책의 구성도 그러한 문제의식과 흐름을 같이한다. 첫 장에서 마르크스 사상을 비롯한 자본주의 비판을 다룬 저자는, 이어지는 두 개의 장에서 자본주의를 넘어서려 했던 역사적 시도와 현재의 노력들을 폭넓게 조망한다. 네 번째 장에서는 ‘적색을 담아내지 못하는 녹색’과 ‘녹색으로 향하지 않는 적색’을 넘어 새로운 녹색의 운동으로 전환할 것을 주장하며, 마지막 장에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대안들이 제시되어 있는지 소개한다. 일관된 흐름의 주장을 펼치는 데에, 저자가 굳이 서평집이라는 까다로운 수단을 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는 자본주의 너머의 대안을 제시하는 책들을 소개함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책 읽기라는 역사적 대화에 뛰어들 것을 당부하는 것이다. 서평으로 시도하는 좌파의 재구성 서평은 최근 꽤 각광을 받는 장르다. 서평 형식을 빌린 에세이, 책으로 자신의 비전을 이야기하는 정치인들의 책, 표지에 보란듯이 얼굴을 내밀며 독서 편력을 자랑하는 유명인의 책, ‘인문학 수호자’를 자처하는 이들의 고전 서평집까지……. 서평은 저자의 정치적 태도와 삶의 자세를 보여줄 수 있는 유용한 도구다. 『장석준의 적록서재』는 저자 개인의 일상은 배제한 채, 다루는 책의 내용과 배경 설명에 집중한다. 이 서평집에 포함되는 책들은 여지없이, 흔히 말하는 ‘좌파 쪽’ 책들이다. 책 읽기를 통해 기존 좌파를 반성하고 새로운 대안을 살핌으로써 함께 좌파를 재구성해보자는 것이 이 책의 목표다. 자본주의를 고민하고 그 너머의 또 다른 대안 사회를 찾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독자 자신만의 ‘적록서재’를 채워나가는 데에 이 책이 충분한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