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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떠나서 돌아오지 않으려 했다
낯선 베를린, 별다르지 않은 나날들 나는 누구를 따라 떠나온 것일까 여행을 계속할 이유를 찾다 하녀방에서 파리에 물들다 바람을 따라 카미노를 걷다 중동의 사막에서 별을 바라보다 또다시 아디오스, 카미노! 피니스테라, 정말로 길이 끝났다 맨발로 인도를 걷는다 다시 서울, 나는 무엇이 달라졌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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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마르에서는 어둡고 비 오는 날만이 계속되었다. 그곳에는 화려하거나 세련된 건물, 색색의 정원은 없다. 채도가 낮은 낡은 벽과 돌길만 있어서 더욱 쓸쓸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곳곳에 괴테의 동상이 자리하고 그와 연인의 집이 있다. 아이스크림 하나 들고 아기자기한 꽃밭 근처를 사랑하는 이의 손을 잡고 천천히 걸어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바이마르를 괴테가 사랑한 도시라고 부르는 이유가 이것일까.
어느 음악학교에서 학생들의 공연을 보았다. 오르간과 두 개의 현악기로 이루어진 작은 연주회였다. 많은 사람이 찾아와 오후를 함께 보낸다. 캐나다에서 오신 옆자리의 할아버지는 이곳에 있는 국제학교 선생님이다. 까만 양복과 하얀 수염이 정말이지 잘 어울린다. 커다란 풍채만큼이나 따뜻한 인사를 건넨다. 언젠가 꼭 캐나다에도 가서 그림을 그려달라는 말과 함께 내가 문밖을 나설 때까지 손을 흔들 만큼 내 그림을 좋아해주셨다. ---p.63 내가 여행 가방을 쌀 때 가장 먼저 챙기는 것은 스케치북과 10년 넘게 써온 낡은 필통이다. 그리고 여행서나 회화집이 아닌 책 한 권을 반드시 챙긴다. 이번 여행에는 《월든》을 들고 갔다. 헬렌 니어링의 책과 소로의 책 중에 고민하다가 《월든》을 가져갔다. 호숫가를 감상하거나 갑자기 비가 내리거나 낯선 사람을 만난 상황에서 소로가 많은 조언을 해주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한다기보다는 책을 좌르륵 훑다가 마음에 드는 쪽을 펼쳐 몇 번이고 읽어본다. 혹은 마음이 붕 떠서 좀처럼 평온하지 못할 때 잔디에 앉거나 침대에 누워 이 책을 읽으며 위안을 얻곤 했다. 여행서에서는 가방에 카메라, 비상약, 손전등 등등 이런저런 자질구레한 것을 챙기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할 뿐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한 권 가지고 떠나시오’라는 조언은 없다. 위급 용품이나 안내서도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몸을 챙기는 것 이상으로 마음을 챙기는 것도 중요하다. 여행은 마음을 풍요롭게 하기 위한 것이다. 왜 바쁜 일정 속에 지친 마음을 가다듬을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못할까. 여행 가방에 무엇을 넣을지 고민한다면, 여권과 지갑, 공책 다음으로 무겁지 않고 몇 번을 읽어도 좋은 자신만의 책을 꼭 한 권 챙길 것.---p.66 아주 싼 비행기 티켓을 구해서 폴란드로 갔다. 대학 도시 크라쿠프는 멋진 곳이다. 가로세로 200미터로 유럽에서 가장 크다는 중앙광장은 골목 사이사이마다 다양한 음식점과 카페, 옷가게, 화장품 가게, 책방, 기념품 상점 등등 원하는 모든 것이 다 있다. 골목이 매우 많고 꼬불꼬불해서 이곳저곳 다니다 보면 길을 잃을 것만 같지만, 생각지도 못한 색다른 가게를 만나기도 하고 미로 같으면서도 은근 다 연결이 되어 있어 어느새 중앙광장으로 다시 되돌아오게 된다. 어디가 어딘지도 모른 채 그냥 돌아다닌다.---p.72 에펠탑은 파리 어디서나 조금씩이라도 보여서, 잠시 스쳐 지나가면서도 보게 된다. 그렇게만 봐도 참 예쁘다. 하지만 나는 ‘몇 시간 동안 한자리에’ 서서 가만히 지켜보는 것을 제일 좋아한다. 구름 사이를 지나다가, 햇빛에 반짝이다가, 노을 따라 분홍색으로 물들다가, 노란 불빛이 조금씩 켜지며 밤하늘 사이로 반짝거린다. 모두 다른 풍경이지만 전부 다 에펠탑이다. 한자리에 앉아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해가 지고 밤이 될 때까지 그냥 보기만 한다. ---p.108 불과 며칠 전과 전혀 다른 날들이다. 첫날 새벽부터 출발한 산티아고 순례길은 피레네 산맥을 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운동이라고 한 것은 동네를 걷는 것뿐이었는데 10킬로그램이 넘는 배낭을 짊어지고 30킬로미터가 넘는 산길을 걸어야 한다. 너무나 힘들지만 풍경이 정말 아름답다. 동화책에서나 보던 야생 양 떼를 보았다. 하늘이 손에 잡힐 듯이 가깝다. 하늘 바로 아래 언덕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어디에나 맑은 바람이 불고, 나비가 날아다니고, 꽃이 반짝인다. 아스팔트가 아닌 흙길을 걷는다. 길이 까마득하게 느껴진다. 노란색 이정표를 따라 무작정 한 걸음씩 걸을 뿐이다. ---p.132 사막에서의 하룻밤은 특별하다. 우리나라에서 온 여행자 여럿, 일본인 어머니와 아저씨, 러시아 아가씨, 미국에서 온 브랜든. 그렇게 와글와글 모인 멤버가 모두 좋은 사람이다. 이집트 친구들이 사막 모래 위에 불을 피워서 요리해준 저녁 또한 맛있다. 갓 튀겨준 팝콘과 뜨끈뜨끈한 군고구마, 혀가 아릴 정도로 달콤한 샤이. 모든 게 특별할 바 없는 평범한 음식인데도 사막이라는 이유만으로 달리 느껴진다. 모닥불 근처에 둘러앉아 손을 녹이고, 차를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고, 춤을 추고, 노래한다. 그렇게 고요한 사막 어딘가에서 우리가 머무른다. 모래 위를 산책하는 것도, 모닥불 가까이에서 맨발을 녹이는 것도, 차 앞유리에 누워 별을 바라보는 것도 좋다. ---p.180 라다크 작은 마을 어느 곳에서 결혼을 축하하는 자리에 초대받았다. 진한 갈색 피부에 유난히 깊은 주름만큼 미소도 깊은 할머니들과 함께였다. 옆자리엔 아이들이 수줍게 앉아 있다. 검고 긴 머리를 양쪽으로 곱게 땋았다. 화려하고 낡은 도자기 찻잔에 버터와 소금, 소다와 물로 만든 버터차를 마신다. 인생의 행복한 날. 사랑하는 사람들이 함께이기에 소박한 음식만으로 노래하고 춤출 수 있다. ---p.3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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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로 만나는 감성 여행 에세이!
‘나’를 만나러 스케치북 하나 들고 세계 각지를 떠돌다 《나는 아주, 예쁘게 웃었다》는 우리 주위에서 만나는 평범한 이십대의 자아 찾기 과정이 일러스트와 함께 진솔하게 펼쳐진다. 스물다섯 어느 날 문득, 자기 자신과 서울의 모든 것이 싫어진 저자는 서울 생활을 모두 정리하고 가방 하나 달랑 메고 여행길에 오른다. 쓸쓸한 베를린의 가난한 방에서, 도망치듯 여행을 떠나왔지만 현실은 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후 자기를 찾기 위한 긴 여행자의 길로 들어선다. 2년여 동안 유럽 일대와 중동, 인도 등을 여행하며 방랑한다. 산티아고 길도 두 번이나 걸었다. 그리고 그 방랑 끝에서 ‘아주 예쁘게 웃고 있는’ 자기 자신을 비로소 발견하게 된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리라 여겼던 서울로 돌아오는 672일간의 방랑 여행은 때론 쓸쓸하고, 때론 아름답다. 이 책은 불안하고 어설픈 이십대의 자화상을 제대로 보여준다. 스물다섯 청춘, 낯선 곳으로 도망치다 이십대 청춘은 힘들다. 대학만 들어가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만 같지만, 대학 생활은 취업의 전초문일 뿐, 청춘의 낭만도 꿈을 키워가는 즐거움도 없다. 좋은 곳에 취직하기 위한 새로운 입시의 시작일 뿐이다. 우리 청춘들에게는 자기 자신을 살펴볼 시간이 없다. 우리의 이십대는 찬란하지도 화려하지도 않다. 저자 봉현도 마찬가지였다. 꿈에 그리던 대학 생활은 남루하고 초라했다. 휴학과 복학을 반복하다가 결국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 때문에,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야 만다. 사람들 속에서도 외로웠고, 사랑도 위안이 되어주질 못했다. 결국 스물다섯 즈음, 서울을 떠나고야 만다. 낡은 스케치북 하나 들고 말이다. 2년간의 방랑, 그 끝에서 비로소 나를 만나다 서울을 떠났다고 해서, 낯선 곳으로 왔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았다. 떠나와도 별다를 것 없는 생활 속에서, 이러려면 왜 떠나왔나 후회하기도 한다. 하지만 여행을 계속하면서 저자는 비로소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된다. 깨끗하지 않은 옷은 입지 않고 불편한 곳에서는 자지 못한다고 생각했던 자신이, 거적때기 같은 옷을 입고 매우 열악한 곳에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지낼 수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자신에게 먼저 다가오는 사람에게 마음을 열지 못해 항상 외로워했었는데, 어느새 누구하고나 친구가 될 수 있다는 사실도 깨달았고, 혼자서도 외롭지 않다는 걸 비로소 알게 되었다. 여행을 하면 할수록 세상 어디에 있든 ‘나는 나일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저자는 긴 여행을 다녀왔다고 해서 크게 변한 건 없다고 말한다. 단지 2년간의 방랑 끝에 조금은 더 강해지고 자기다워진 나를 만날 수 있을 뿐이다. 천천히 읽기를 권함 이 책은 청춘의 한가운데에서 헤매고 있는 독자에게는 공감을 주고, 이십대 청춘에 막 들어선 독자에게는 앞으로 경험하게 될 미래를 대비하게 해주며, 청춘의 혼란함을 이미 건너온 독자에게는 그 시절의 아픔과 추억을 선사할 것이다. 우두커니 유럽과 중동과 인도의 어디쯤에서 자신을 찾기 위해 치열하게 그림을 그렸던 저자의 아픔이 오늘 당신에게 아름답게 찾아갈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