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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의 말
환담(幻談) 관화담(觀?談) 골동품 마법 수행자 갈대 소리 작품 해설 작가 연보 |
Rohan Koda,こうだ ろはん,幸田 露伴,고다 시게유키幸田成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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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날이 더워지면 여러분들께서 혹 높은 산으로 가시거나 또는 시원한 바닷가로 가셔서 그렇게 이 힘겨운 나날을 알찬 생활의 일부분으로 보내고자 하시는 것도 당연합니다. 하지만 한 번 몸이 늙으면 산에도 가지 못하고 바다로도 나서지 못하게 되지만 그 대신 좁은 뜰의 아침 이슬, 툇마루의 저녁 바람 정도로 만족하며 평화로운 나날을 무난히 보낼 수 있게 된다는 것으로, 뭐 노인은 그런 것들로 낙착(落着)해야만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이치입니다. 산에 오르는 것도 정말 좋은 일입니다.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 높은 산, 험한 산 같은 곳에 오르게 되면 일종의 신비로운 흥밋거리도 많습니다. 그 대신 또 위험한 일도 생길 수 있기 때문에 무서운 이야기가 전해지기도 합니다. 바다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이야기해 드리고자 하는 건 바다 이야기지만 그 전에 먼저 산 이야기를 하나 해두고자 합니다.
--- p.13 산에서는 광선이 비치는 상태에 따라 자신의 신체 그림자가 건너편에 나타나는 경우가 자주 있습니다. 네 명 중에는 그런 환영인가 하고 생각한 사람도 있었겠죠, 그래서 자신들의 손을 움직여보고 몸을 움직여 보았지만 그것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는 이렇게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오래된 경문 구절 중에 ‘마음은 능수능란한 화가와 같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쩐지 떠오르는 말이 아니겠습니까? --- p.18 그런데 낚시의 운치야 그걸로 족하다 해도 역시 낚시의 근본은 물고기를 잡는 것이기 때문에 너무 잡지 못하면 놀이의 세계도 좁아집니다. 어느 날, 한 마리도 잡히지 않습니다. 잡지 못하게 되면 미숙한 손님은 자칫 뱃사공을 향해 투덜투덜 푸념하곤 하지만 이 사람은 그럴 정도로 천박하진 않은 사람이라 그날은 낚지 못했어도 평상시 같은 기분으로 돌아갔습니다. 그 다음날도 기일이라서 다음날도 또 그 사람은 기치 공을 데리고 나갔습니다. 그런데 물고기는 그야 물고기니까 가만히 있다가 먹이가 보이면 물 테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있는데 어떨 때는 뭔가가 싫어서, 예를 들어 물이 별로라든가 바람이 싫다든가 혹 뭔가 불명의 이유로 그것을 꺼리거나 하면 먹이가 있어도 물지 않는 경우가 있는 법입니다. 하는 수 없죠. 이틀 내내 전혀 낚이지 않습니다. 조수가 낮을 때라면 몰라도 조수도 괜찮은데 이틀 내내 조금도 잡히지 않는 것은 낚시객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고 해도 뱃사공에겐 재미가 없었습니다. 그것도 낚시객께서 낚시도 잘할뿐더러 인간적으로도 괜찮은 사람이라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있자 사공은 도리어 움츠러들었습니다. --- p.29 괴이함을 보고 괴이하다고 하지 못하는 용기로 이상한 걸 보고서도 ‘여기 장대가 있으니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의미에서 한 말이었지만 사공도 살짝 몸을 구부려 장대 쪽을 엿봅니다. 낚시객도 머리 위의 어둠을 엿봅니다. 그러자 이미 어두워지고 뜸 뒤편이라 장대가 있는지 없는지 거의 알 수 없습니다. 도리어 낚시객은 사공의 이상한 표정을 바라보고 사공은 낚시객의 이상한 표정을 바라봅니다. 낚시객도 사공도 이 세계가 아닌 세계를 상대의 눈 속에서 찾아내고 싶은 듯한 눈빛으로 서로에게 보였습니다. --- p.47 그런데 만성 선생은 다년간의 노고가 빛을 발하여 앞날이 평탄 광명하게 보여 오는 듯해 마음가짐이 느슨해진 건지, 혹 다소 도가 지나친 면학 때문인지 어쩐지 알 수 없지만 안타깝게도 불명의 병이 그를 덮치게 되었다. 그즈음은 이제 막 세간에 신경쇠약이라는 병명이 알려지기 시작하던 시기였지만 정말 이른바 신경쇠약이었던 건지, 혹은 정말 만성위장 병이었는지, 아무튼 의학 박사들의 진단도 몽롱하고 사람에 따라 상이한 불명의 병이 덮쳐서 만성 선생은 점점 쇠약해져 갔다. 절약하던 예산밖에는 없었기 때문에 본인은 남보다 배로 고민했지만 도무지 병을 이길 수 없었기 때문에 얼마 안 있어 학업을 내려놓고 심신 보양에 힘쓰는 게 좋다는 권고를 따라 곧장 산수가 청한(?閑)한 곳에서 활기로 가득 찬 천지의 호연지기를 들이쉬기 위해 도쿄의 속세를 뒤로했다. --- p.51 마침내 길이 완만해지자 강 건너편에는 무시무시하게 높은 암벽이 놓여 있고 그 아래로 냇물이 흐르며 이쪽은 산이 자연히 열려 층을 이룬 산속 밭이 아주 약간 보이고 좁쌀이나 수수가 이삭을 늘여놓았나 싶었지만 토끼가 망쳐놓은 듯 완전히 엉망이 된 콩밭에 이미 잎도 떨구고 검게 말라버린 콩이 쓸쓸히 우는 듯한 모습으로 서 있고 그 너머로 꾀죄죄하고 경사가 급한 초가집이 두세 채씩 띄엄띄엄 서글프게 보여 왔다. 하늘은 아까부터 어슴푸레했는데 쌀쌀한 바람이 사--- p.앗 불어 내려온 순간 참나무인지 떡갈나무인지 누런 잎이 공중에서 흩날리며 떨어져 내려와 동시에 나뭇잎에 맺힌 물방울뿐만 아니라 진짜 빗방울도 똑똑 떨어지기 시작했다. 골짜기 윗부분을 올려다보자 옅은 흰 구름이 쑥쑥 몰려오며 순식간에 산봉우리를 갉아먹더니 바위를 갉아 먹고 소나무를 갉아 먹고 건너편 커다란 바위벽마저 금세 한 폭의 그림처럼 갉아 먹으며 좋은 경치를 보여주었으나 펼쳐 들고 있던 양산 위까지 덮쳐 쏟아질 듯 구름이 낮게 흘러 내려와 버틸 수 없을 정도로 세찬 장대비가 쏟아지기 시작해 숲속의 나무들도 목소리를 더하여 별 볼 일 없는 이 산속에 들어온 타지인을 괴롭히기라도 하려는 듯 덮쳐왔다. 만성 선생도 역시나 마음속으로 두려움이 들어 살짝 달려나갔는데 다행히 가장 첫 농가가 바로 눈에 띄어 툭툭툭 달려가서 농가 봉당(土間; 실내와 현관을 구분 짓는 일본 전통 가옥의 흙마루 공간)으로 뛰어들자 우산이 건드려 입구 처마에 가로댄 장대에 걸려 매달려 있던 옥수수 한 묶음이 투-둑 떨어진 순간 봉당 구석 절구 근처에 웅크리고 앉아 있던 듯한 하얀 정원 새 두세 마리가 캬악캬악 놀란 소리를 내며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 p.56 비는 무서운 기세로 내린다. 흡사 태고부터 영겁의 미래까지 커다란 강줄기가 흘러가듯 비가 쏟아져 내려 자신의 생애 중 어느 한 날에 내리는 비가 아니라 상주불멸(常住不滅)로 내리는 빗속으로 자신의 짧은 생애가 잠시 끼어들기라도 한 것처럼 내리고 있다. 그래서 또한 그것이 신경 쓰여 잠들 수 없다. 쥐가 놀라게 하거나 개가 짖어주기라도 한다면 좋겠다 싶을 정도로 다른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주지승도 젊은 승려도 없는 듯이 고요하다. 아니, 절대 우리의 오관이 지배하는 세계에는 없다. --- p.66 그림은 아름답고 커다란 강을 접한 부유하고 화려한 마을의 일부를 그리고 있었다. 그림의 상반부를 이루고 있는 강 건너편에는 비취색의 황홀해질 법한 먼 산이 보이고, 그 바로 앞쪽에는 언덕이 굴곡져 있고, 그 사이로 다층탑도 있고 높은 전각도 있고 울창한 나무들로 거무스름하게 가려진 벼랑도 있고 화사한 꽃으로 파묻힌 계곡도 있고 그곳에서부터 쭉 벼랑 쪽으로 드넓게 펼쳐진 곳에 아름다운 요릿집 몇 채도 있고 남녀노소, 말을 탄 사람, 한가하게 걷는 사람, 생계에 쫓겨 분주한 지게 장수,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개미만큼이나 조그맣게 보이고 있다. 붓은 그저 기분이 내키는 대로 움직일 뿐, 당연히 그 자세한 사정을 그릴 리는 없지만 그럼에도 절로 사람들의 모습과 심정이 마음속으로 절절히 전해져 온다. 요릿집 아래 물가에는 놀잇배도 있고, 배 안쪽의 사람들은 크기가 참깨 반 알만 하지만 역시나 모습이 분명하게 보인다. 큰 강 위쪽에는 돛으로 강을 달리는 꽤 커다란 배도 있고, 조릿대 잎 모양을 한 어선도 있고, 낚시하는 듯한 어부의 모습도 보인다. --- p.80 골동품은 아무리 생각해도 여러 가지 의미에서 나쁜 물건이 아니다. 특히 노인이 되거나 부자가 되거나 하면 골동품이라도 만지작거려 보는 게 무엇보다 바람직하다. 불로 회춘의 약 따위를 노인에게 먹여 젊은이를 방해하게 하는 건 못된 술수이다. 노인에게는 노인에게 상응하는 노리개가 있고 구석 쪽에서 가만히 교만한 표정을 짓게 놔두는 편이 천하태평을 위한 기원이다. 아이들은 셀룰로이드 장난감을 쥐고 노인들은 도기 장난감을 쥔다, 는 소학교 독본에 써 두어도 지장이 없을 것이다. 또한 부자는 유독 돈이 넘쳐 가련한 운명에 갇히게 되는 존재이므로 육조시대 불상, 인도 불상 정도로는 구제할 수 없기 때문에 하은주 무렵의 대 고물, 여우털 세 가닥이 붙은 달기의 놋대야, 이윤이 쓴 탕 냄비, 우왕이 신은 설피 등등을 대단히 높은 가격에 사게 해야 하는데 이것이 바로 유무상통, 세상의 불공평함을 사라지게 하며 사회 공산주의라든가 무산계급이라든가 하는 까다로운 천지신명들의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바치는 무악의 한 자리에도 버금갈 것이다. --- p.98 당 태상이 손을 통해 가늠하자 크기부터 무게, 골질, 유약 색깔 균형까지 정말 자기 집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이에 서둘러 자신이 소유한 걸 꺼내 견주어보자 형제나 쌍둥이처럼 어느 쪽이 어느 쪽이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똑같았다. 자신의 덮개를 단천의 솥에 대보자 딱 들어맞았다. 대좌를 맞춰보아도 또 그를 위해 만든 것처럼 딱 들어맞는다. 마침내 화들짝 놀란 태상이 숨을 내쉬지도 못할 정도가 되어 “하여 자네 이 정요 세발솥은 어디 어느 곳에서 전래하였는가?” 하고 물었다. --- p.111 진지하게 마법을 다뤄본다면 어떨까. 이는 인류학에서 다뤄야 할 사항들이 많으리라. 또 종교 일부분으로서 다뤄야 할 조목도 많을 것이다. 전설 연구 안에 넣어서 다뤄야 할 부분도 많을 것이다. 문예 작품으로, 심리 현상으로, 그 외 각종 의미로서 다뤄야 할 점도 많을 것이다. 문학, 천문학, 의학, 수학 등등도 그 역사의 첫머리는 마법과 관계가 있다고 해도 좋으리라. --- p.125 자기 자신의 젊음, 공의 청아하게 늙어 비쩍 마른 모습과 그 못 미더움, 더욱이 어린 소나무의 푸릇함 마저 곧 사라져 버릴 듯한 미약함, 낡아 빠진 두레박 따위를 사용하고 계시는 무상함, 이를 생각하고 이를 느끼며 데도쿠는 자연스레 따스한 마음을 움직였으리라, 부디 이 소나무가 적어도 한두 자가 될 때까지도 순조로이 건강하시길, 하고 ‘심어 둔 오늘부터 소나무 푸름도 오래오래 살아남아 그대께서 보아야 하리.’ 하고 축수하여 올리자 ‘해 뜨는 곳에 살며 한적하고 한적함도 흔해져 버리면 오늘부터 소나무를 심어만 보라.’ 하고 공은 지나가는 말을 하듯 답했다. 그 그릇, 그 덕, 그 재주가 아니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난세에 태어난 자가 여든 즈음 나이에 어린 낙엽송을 심고 있던 그때, 해가 뜨는 곳의 노래에서는 눈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이즈나 법 성취자 또한 좋지 않은가. --- p.162 강을 접한 곳이라서 어느새 낚시를 취미로 낙점하게 되었다. 언제나 간신히 기억으로 떠오르는 건 그곳으로 마음이 끌려가던 강렬함이다. 그즈음 마침 낚싯대 하나를 입수하게 되어 장류(長流) 쪽으로 맛을 들인지도 대략 1년 정도가 지나 매일같이 나카가와(中川) 강변으로 나갔다. 지금이야 나카가와 연안도 각종 공장 굴뚝이나 건물들도 보이고 사람 왕래도 빈번하며 민가도 많아졌지만 그 당시에는 스미다강(隅田川) 근처 데라시마(寺島)나 스미다 주변 여러 마을조차 그다지 번잡하지 않아 한가로운 별장지스러운 광경을 간직하고 있었고 하물며 나카가와 강변 가, 더군다나 히라이바시(平井橋) 다리에서부터 상류 쪽의 오쿠도(??), 다테이시(立石) 등등 주변은 매우 한적하여 물은 그저 느릿느릿 흐르고 구름도 그저 잔잔히 뭉쳐 다닐 뿐, 황모백로(?茅白蘆; 누런 풀과 흰 갈대) 둔치에 때때로 물새가 모습을 비추곤 하던 곳이나 다름없었다. 낚시도 낚시 나름대로 즐거웠지만 나 자신은 평야 한복판 느릿한 물길 주변, 평범하다면 평범하지만 무언가 특이할 것 없는 화이안한(和易安閑; 온화, 상냥하고 편안, 한가로움)한 경치가 마음에 들어 그렇게 자연에 안겨 몇 시간을 보내기를 도쿄의 왁자지껄하고 휘황찬란한 광경에 정신을 소모하며 향락을 향음하는 것보다 까마득히 즐겁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또 실제로 그런 나카가와 강변에서 노닐거나 뒹굴거리며 낚시를 하다가 고기가 낚이지 않을 때는 서투른 노래 한두 마디라도 건져 올려 돌아와서 아름답고 달콤한 가벼운 피로감에 이끌려 맑고 담백한 꿈속으로 빠져들었지만 다음날 아침 개운히 눈을 뜨면 다시 싱그럽게 힘이 차오를 거란 사실을 굳이 말하지 않아도 자연스러운 일로 생각하고 있었다. --- p.164 둘이서 함께 둑 위로 올랐다. 소년은 둑에서 강 상류 쪽으로, 나는 둑 서쪽으로 내려가야 했다. 헤어지며 말을 나눌 땐 이미 해는 저물고 저녁 바람이 곁으로 차갑게 불어왔다. 소년은 강 상류 쪽으로 둑 위를 더듬어 갔다. 노을빛이 점점 더 다가왔다. 어깨에 멘 장대, 손에 쥔 어롱, 자락이 짧은 통소매에 뺨을 두건으로 가린 조그만 그림자는 기나긴 둑의 수 풀길 저편으로 점점 더 작아져 가는 쓸쓸한 그 모습. 내가 잠시 서서 배웅하자 그도 다시 문득 뒤를 돌아 나를 바라보았다. 나를 보며 살짝 고개를 낮게 숙이며 인사했지만 그 용모는 더 이상 분명하게 보이지 않았다. 해오라기가 저녁 하늘을 갸--- p.악하고 울며 지나갔다. 그 다음날도 다음다음 날도 나는 똑같이 니시부쿠로에 나갔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그 소년과는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었다. --- p.18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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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근대 문학의 거목, 대 로한이 이끄는
증폭된 감각으로 그려진 여운 깊은 환담 세계 그곳에는 멀리 항구 불빛이 아스라이 보이는 시커먼 밤바다가 있었다. 그곳에는 폭우가 쏟아져 앞길을 덮쳐오는 어둠 속 시각이 차단된 절벽 위의 암자가 있었다. 섬세한 감각은 더 선명해지고 눈앞의 세계는 낯선 얼굴로 우리를 응시한다. 어둠 속 알 수 없는 길을 더듬어 나가야 하지만 길은 이상하도록 곧게 뻗어 있었고 그 길 위에 선 이들은 나아갈 수도, 그렇다고 도망칠 수도 없었다. 고다 로한의 기담은 유혈이 낭자하거나 오감을 시큼하게 하는 자극적인 이야기가 아닌 벼루에 먹을 오래 갈아 느릿느릿 그려내는 담담한 수묵화 세계 속의 기이한 이야기이다. 밤바다 한가운데서 낚싯대를 발견하는 재야의 낚시객, 폭우가 쏟아지는 절벽 위 암자 속에 홀로 남겨진 신경쇠약 만학도, 전란과 권력의 폭풍 속에서 고독하게 마법을 수련하는 무사, 너무나 아름다운 세발솥과 그 모조품 사이를 헤매는 골동품상, 잡히지 않을 걸 알면서도 낚싯대를 드리우는 추레한 소년. 이들의 이야기는 짙음과 옅음을 덜고 더해가며 아직까지 세계의 구석에 스며들어 있다. 그리고 원숙한 노년 작가인 로한이 든 붓을 통해 그 환담이 현대의 우리의 마음속에도 천천히 번져 온다. 중국 고전을 연상시키는 단단한 문어체와 심원한 이상을 바라보는 대가의 고고한 작풍 너머에는 낚시를 즐기고 술을 좋아하며 집안일을 도맡아 했다는 로한처럼 아련하고 따스한 시선이 녹아 있다. 다니자키 준이치로, 히구치 이치요 등에게 큰 영향을 주고 후대 문인에게 대(大) 로한이라 불리는 그를 향해 아주 살짝 경계를 푼다면 깊은 어둠 속에서도 어떤 포근함이 느껴질 것이다. “억양도 각색도 없는 이야기가 부유감과 기시감이 맴도는 공포를 즐겁게 해준다.” -아마존 네티즌 리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