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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 서문·4
1부 정치에 관하여·19 국가를 다스리는 근본적인 방법 | 에도 시가지와 무사의 거주지 관리 | 계약직 하인 관리 | 여행자의 체류에 대한 관리 | 호적 | 여행증명서 | 실직한 무사와 수도승 관리 | 기녀, 배우 그리고 거지 관리 | 세습 하인 | 무사의 생활 방식을 바꿔야 한다 | 해상교통 관리 2부 경제에 관하여·113 경제정책의 중요성 | 조급한 경향의 풍습을 바꿔야 한다 | 예법제도가 없다 | 막부의 재정 | 영주의 빈곤을 구제하는 방법 | 무사의 빈곤을 구제하는 방법 | 물가 문제 | 금은화의 수량 감소 | 금전의 대차거래 | 예법제도 | 무가의 미곡 저장 3부 관리의 등용과 처우에 관하여·201 관리의 처우와 직위, 봉록 그리고 위계 | 사등관제도 도입 | 관리의 조직과 직무 분담 | 관리의 재능을 판별하는 일 | 대관의 직책 | 하타모토 등 관리의 인재 등용 | 관리는 기량 있는 자를 선발해야 한다 | 근무 시간은 여유가 있어야 한다 | 관직은 문무의 구별이 있어야 한다 4부 사회질서에 관하여·275 경비병의 행동에 대한 제약 | 법령을 통일해야 한다 | 양자 | 몰락한 영주의 가신은 향사로 삼아야 한다 | 규모가 큰 영지는 분할해야 한다 | 결혼한 여자는 남편의 가풍에 따라야 한다 | 귀천에 상관없는 여자의 일 | 첩에 대한 호칭 | 첩을 부인으로 삼는 일 | 첩을 숨기는 일 | 밀고 | 싸움 당사자의 쌍방 처벌 | 도박 | 강도 | 천주교도 문제 | 농지 매매 | 막부 서고의 서적 | 학문 | 유학자 | 의사 마치면서·330 |
荻生そら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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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를 다스리는 일은 바둑판의 치수를 재서 종횡으로 선을 긋는 일과 같다. 전체를 조망하는 계획에 따라 모든 일을 추진해 나가는 것이다. 선이 그어져 있지 않은 바둑판에서는 아무리 고수라도 제대로 바둑을 둘 수 없다. 그와 마찬가지로 계획 없는 정치는 불가능하다.
---「국가를 다스리는 근본적인 방법」중에서 어떤 공무원이 체포와 형벌 권한을 독점하고 있다고 하면 그에게 뇌물을 주어서라도 죄를 면하려고 하는 것이 서민의 당연한 심정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수비대는 체포하는 일만을 임무로 하고, 체포자는 형벌을 관장하는 다른 공무원에게 넘겨 그 공무원이 죄를 조사해 살리든지 죽이든지 조치를 취하게 하는 것이다. ---「에도 시가지와 무사의 거주지 관리」중에서 에도를 통치하는 행정관리는 사려 깊어야 한다. 그는 에도 사람을 잘 보살피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하며, 자기가 통치하는 지역에서 죄인이나 하층천민이 나오는 것을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 한다. 막부 또한 그가 그렇게 자각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또 윗사람은 행정책임자가 자기 생각대로 일을 추진하도록 너무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 ---「기녀, 배우 그리고 거지 관리」중에서 세상에 기근이라도 일어난다면 다른 영주의 땅에서도 도입과 같은 자가 얼마든지 나올 것입니다. 부모를 버리는 것은 인간으로서 할 수 없는 행위이므로 어머니를 버린 도입에게 어떤 형태로든 형벌을 내린다면 본보기로서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다른 영주에게도 모범이 될 테지요. 하지만 그러한 자가 우리 영내에서 나왔다는 것은 우선 해당 농촌을 다스리는 행정관리자의 책임입니다. 그리고 그를 거느리는 고위직 관리의 책임도 있습니다. 또 그 위에도 책임자가 있을 것입니다. 그들의 허물에 견준다면 도입이 범한 죄는 매우 가볍습니다. ---「기녀, 배우 그리고 거지 관리」중에서 진정한 제도는 과거 역사를 돌아보고 미래를 예측해서, 말하자면 세상이 평화롭고 늘 풍요로워지도록 군주가 자신의 의도대로 정해놓은 규범을 말한다. 과거 역사를 돌아본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인정(人情)은 시대에 따라 변화하지 않고 옛날이나 지금이나 항상 같다. 고대의 성인은 그러한 인정을 잘 파악하여 사람들이 편하게 생활하도록 제도를 만들었다. 한편 인정은 나쁜 방향으로 흘러가려는 속성이 있는데, 고대 역사를 보면 군주들은 그것을 억제하려고 노력했음을 알 수 있다. ---「예법제도가 없다」중에서 한편 법규로 차용금에 대한 이율을 정하고, 이자가 어느 정도 쌓이면 신고하도록 정해둔다. 법률에 반하는 높은 이자는 죄로 삼고, 이자가 쌓여서 금액이 일정 한도에 달하면 소송을 받아들이지 않도록 한다. 이자를 순조롭게 지불하는 경우라도 이자의 총액이 원금과 같아지게 되면 그 이상은 이자를 납부하지 않고 원금만 상환해 나가게 한다. 이렇게 법규를 세워둔다면 재판이 정체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금전의 대차거래」중에서 사실 쇼군은 자신의 위엄과 권위로 일반 백성이나 상인 중에서 재능과 지혜가 있는 자를 등용해 얼마든지 가신으로 삼을 수 있다. 이는 국가를 다스리는 도이기에 삼갈 필요가 전혀 없다. 어쨌든 지금은 가문을 중시하는 방침과 현명한 인재를 등용하는 방침이 완전히 대척점에 있다. 국가를 잘 통치할 것인가, 아니면 혼란에 빠뜨릴 것인가가 나눠지는 것도 이 점에 달렸다고 할 수 있다. ---「하타모토 등 관리의 인재 등용」중에서 아랫사람이 부끄러워하는 마음, 즉 염치를 알게 하는 것은 고대로부터의 도(道)다. 그러나 그 도는 아랫사람에게 염치를 가르쳐서 되는 게 아니라 아랫사람이 부끄러운 상황에 처하지 않도록 함으로써 이룰 수 있다. 사람이란 대우하는 방법에 따라 착해질 수도, 악해질 수도 있는 법이다. 하등의 인간으로 취급하면 하등의 인간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윗사람은 이런 사실을 모르고 좋지 않은 행동을 한다. ---「하타모토 등 관리의 인재 등용」중에서 지위가 높은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신분이 높고 자라면서도 꽤 안정된 생활을 해왔는지라, 어려움이나 고통을 모른다. 그래서 무슨 일이든 제 생각대로만 한다. 사람의 지혜는 어려움이나 고통을 경험함으로써 발달한다. 그런 경험이 없는 이에게 지혜가 있을 리 없다. 난세의 명장은 지혜롭지만, 이는 그가 목숨을 걸고 전쟁을 겪었고 어려움도 수없이 경험했기 때문이다. ---「관리는 기량 있는 자를 선발해야 한다」중에서 어느 시대나 기량 있는 사람은 있는 법이다. 단지 그가 사회의 상층에 있느냐, 아니면 하층에 있느냐의 차이다. 상층에 있다면 인재가 있는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인재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기량 있는 사람이 왜 하층에 있는 것일까? 그것은 윗사람에게 인재를 구하려는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그럴 마음이 있더라도 선발 방법이 나쁘면 마음이 없는 것과 같은 결과가 되고 만다. ---「관리는 기량 있는 자를 선발해야 한다」중에서 인재를 감별하는 것이 로주나 반토 같은 높은 지위에 오른 사람이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직무다. 이 일에 실패하면 직무를 다하지 않고 녹봉을 받는 죄를 짓는 것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단지 자신의 재능과 지혜를 발휘하는 것만을 직무라고 생각한다. 윗사람은 재능과 지혜를 발휘하고, 아랫사람은 그에 따라야 한다고 여긴다. 윗사람이 아랫사람과 능력을 비교하고 경쟁하려고 드는 것은 그가 어리거나 미숙하기 때문이다. (…) 윗사람에게는 잘하는 분야가 있는 것조차 바람직스럽지 않다. 잘하는 분야가 있다는 것은 그 분야에 대해서는 너무 잘 알아서 다른 사람의 의견을 잘 받아들이게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인지상정이다. ---「관리는 기량 있는 자를 선발해야 한다」중에서 현재는 고위직일수록 매일 조정에 나가 시간 여유가 없음을 자랑하는 게 일이다. 하루 일과가 끝나더라도 바로 퇴근하지 않는다. 같은 직급의 관리가 많이 있다면 교대로 일처리가 가능할 텐데, 전원이 얼굴을 모두 모아서, 즉 행동을 함께하여 출근한다. 일이 없어도 마치 있는 것 같은 표정을 하는데, 이것이 요즘의 경향이다. 이는 모두 자신의 직무에 전념하지 않기 때문이다. 맡은 일을 잘 처리하고 조정에 봉사한다는 진실한 마음만 있다면 다른 사람의 눈에 어떻게 보일지 신경 쓸 필요가 없는데도 말이다. ---「근무 시간은 여유가 있어야 한다」중에서 일반적으로 밀고를 비겁하다고 하는 것은 개인 간의 도덕 문제에 얽혀 있을 경우다. 이와 달리 반란 기도 사건을 밀고한 것은 막부에 대한 커다란 충절이다. 전국시대에는 이러한 사람이 많았다. 모두 주군에게 충절을 다한 것으로 인정받아 영주나 하타모토로 발탁됐으며, 그 자손은 지금도 계속 그 관직을 계승하고 있다. 무릇 사적인 도덕과 공적인 도덕 혹은 충절은 서로 다른 것이다. 정치를 할 때 물론 사적인 도덕이라고 무시해서는 안 되지만, 공적인 지배 관계와 모순되어 국가에 손해를 끼치는 일일 경우 사적인 도덕은 무시될 수 있다. ---「밀고」중에서 도박을 하는 자는 법률에 따라 처벌되는데, 매 100대 정도가 적당하다. 현재는 벌금을 부과하는데, 이는 매우 잘못된 것이다. 금전이 많은 자에게 벌금을 매긴다면 도박을 허용하고 세금을 갈취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도박」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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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를 완성하고 근대를 열어젖힌
동아시아의 ‘정치 이야기’ 일본사를 바꾼 한 통의 상소 1703년 정월 그믐밤 에도성, 47인의 사무라이가 도쿠가와 막부 직속 고관인 키라 요시히사의 저택을 습격했다. 두 해 전 키라와의 갈등 끝에 목숨을 잃은 다이묘(영주) 아사노 나가노리의 가신들이었다. 일대 복수극이 벌어졌고, 키라 일가를 포함한 저택 식솔들은 모조리 살해됐다. 수도 한복판에서 벌어진 대학살이었지만 문제는 당시 일본이 무사도를 숭상하는 국가라는 점이었다. 에도의 조야는 목숨 걸고 주군의 복수를 감행한 가신들의 ‘사무라이 정신’을 칭송하는 목소리로 들끓었다. 죄인들을 몰래 숨겨주고 먹여주겠다는 이들이 줄을 이었고, 막부는 사건의 처분을 놓고 고민에 빠진다. 이때 올라온 한 통의 상소. “가신들의 복수는 의롭고 충성스러운 행위입니다. 그런 한편 막부의 법 또한 엄연하며 무겁습니다. 무사도는 기리어 마땅하나 사사로운 의리가 막부의 질서를 뛰어넘어서는 안 됩니다. 충의를 다했다는 이유로 법을 어긴 자를 처벌하지 못하면 천하의 법도가 서지 않기 때문입니다. 죄를 물어 사형시킬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화려하게 핀 무사들을 아름답게 지게 해주는 길이기도 합니다.” 쇼군 도쿠가와 쓰나요시는 이 상소를 채택해 사무라이들에게 할복을 명한다. 300년 에도 시대의 최대 논쟁으로 기록된 이 사건(일명 ‘주신구라’)을 사적 의리(무사도)와 공적 질서(법치)의 충돌로 명쾌하게 정리하고, 법치의 손을 들어줌으로써 시대의 전환을 끌어낸 상소문의 주인공은 정치사상가 오규 소라이(荻生?徠, 1666~1728)다. 일본사 최고의 지식인, 정치와 도덕을 분리하다 오규 소라이는 에도 시대(1603~1868)의 사상가이다. 쇼군의 건강을 책임지는 어의의 아들로 태어난 소라이는, 부친이 탄핵과 유배를 당하면서 소년-청년기를 벽지에서 보냈고, 그곳에서 기층 백성들의 고단한 삶을 생생히 목도했다. 그는 이때의 경험이 당대의 유학자-정치인들과 ‘다른 생각’을 품는 계기가 되었다고 회고한다. 소라이는 무엇보다 기존 성리학(주자학)의 형이상학적 담론을 “억측에 기반한 요설”이라 신랄하게 비판하며, 가시적이고 경험론적인 실천윤리와 그 작동기제로서 정치를 강조했다. 요컨대 관념보다 현실을 우선함으로써 정치에서 도덕을 분리해낸 것이다. 유학자로 출발해 기존 유학을 혁파한 이런 신선한 학풍은 ‘소라이학’으로 명명되며 일가를 이루었고, 바다 건너 조선에까지 이름을 떨치게 된다. 실제로 한 세대 뒤 조선의 탈주자학-반주자학 흐름을 주도한 정약용은 소라이학을 두고 ‘찬란한 문체’라는 최량의 찬사를 보낸 바 있다. 시공을 초월한 ‘현실정치 이야기’ 학자로서 성가를 높이던 소라이는 당대의 실력자 야나기사와 요시아스의 가신으로 발탁되어 현실정치에 발을 들인다. 앞서 소개한 주신구라 사건이 이 시기의 일로, 그는 부모를 버린 자를 벌하는 대신 패륜의 직접 원인인 빈곤을 초래-방조한 정치인의 죄를 묻는 등, 파격적인 주장을 거듭하며 주자학의 도덕관념에 젖어 있던 정가에 파급을 일으켰다. 만년에 이른 소라이는 쇼군 도쿠가와 요시무네의 정치적 조언자로 자리매김한다. 『정담』은 이 시기 쇼군의 자문에 응한 소라이의 정견을 묶은 것이다. 소라이의 유작이자 그의 세계관과 학문적 방법론의 정점에 위치한 작품이지만, 최고 권력자를 위한 비밀스런 조언이 담긴 만큼 탈고 즉시 봉인되었고, 세간에 상재된 것은 메이지유신이 일어나던 1868년에 이르러서였다. 최초로 공개될 때 이미 150년 전의 생각이었던 셈이다. 그럼에도 소라이가 제시한 정치-경제-사회질서 분야의 개혁안과 그 정책을 실행할 인재의 등용과 처우에 관한 전방위적 통찰들은, 한 세기 반 넘는 시간의 풍화를 넉넉히 견뎌내며 막 근대로 진입하던 일본사회를 다시 한번 크게 격동시켰다. 그렇다면 또 한 번의 150년이 지난 오늘날에는 어떨까? 소라이와 『정담』을 니콜로 마키아벨리와 『군주론』에 견준 바 있는 20세기 일본 정치학계의 덴노(천황) 마루야마 마사오는 대표작 『일본 정치사상사 연구』에서, 소라이가 “일본의 근대를 개척”하고 “정치를 발견”했다고 진단함으로써 이 동아시아 클래식의 시효와 지평을 현대로까지 확장해낸 바 있다. 가까운 시일에 마루야마의 평가가 뒤집히지는 않을 것 같다. 『정담』은 여전히 쓸모 있는 ‘현실정치 이야기’인 셈이다. |